주례이야기
조 용 휘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여 학교의 관리자가 되고 보니, 결혼식 주례 청탁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처음으로 내가 주례를 선 것은 교감으로 근무하던 2006년 6월 17일이었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여교사가 결혼 1주일을 앞두고 나에게 주례를 서 달라고 하였다. 나는 그동안 한 번도 주례를 서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교장선생님도 계시는데 어떻게 내가 주례를 할 수 있겠느냐고 극구 사양하였으나, 이틀을 연속 찾아와서 노 처녀 혼사길 막을 거냐며 협박(?)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하였다.
막상 주례를 하겠다고 승낙한 날부터 결혼식 날까지 주례에 대한 부담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젊은 시절에는 친구나 동료 교직원들의 결혼식에서 여러 번 사회를 보았었다. 하지만, 주례는 처음인지라 어떤 내용의 주례사를 들려주고, 실수 없이 주례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 걱정이 앞섰다.
주례를 승낙한 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인터넷에서 많은 주례사를 검색하는 작업부터 하였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종교인, 의사, 경제인, 교수 등 유명 인사의 주례사가 탑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탑재된 주례사는 다분히 종교적인 색깔이 강하고, 그동안 예식장에서 흔히 들었던 내용이 대다수였다. 약간씩 표현은 달랐지만, 나라와 사회에 봉사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부부간에 사랑하라는 내용들로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 사람들이 지금까지 다른 결혼식장에서는 듣지 못하였던 새로운 내용의 주례사를 만들어 들려주는 거야’ 라고 다짐하였다.
결혼식 3일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주례사 작성에 들어갔다. 이틀 밤 동안 작성한 주례사 초고를 여러 차례 고치고 다듬어 아내에게 보여 주었다. 내용이 아무리 좋은 주례사도 길이가 길면 하객들이 잘 듣지 않는다는 아내의 충고를 받아들여, 6분 분량으로 줄였다. 내 생애 처음으로 작성한 주례사는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완성되었다.
주례사는 시작 인사, 신혼부부에게 당부하는 말, 끝인사로 나누어 구성하였다.
먼저 시작 인사는 결혼식 날의 날씨를 알아보기 위해 주간 일기 예보를 들어본 후, 계절과 날씨에 알맞은 내용으로 썼다.
여러 가지로 바쁜 토요일 오후에 참석한 하객에게는 감사하다는 인사말, 혼주와 당사자인 신혼부부에게 축하의 인사말로 최대한 예의를 갖춘 표현을 하였다.
신부와 신랑의 학력, 직업, 용모, 성격에 대해서는 많은 친지가 인정할 수 있는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장점 위주로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그리고 주례가 초보라는 사실을 알리고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널리 양해해 달라는 당부도 넣었다.
주례사의 핵심인 신혼부부에게 당부하는 내용 작성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얻은 유용한 자료 및 가족과 친지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신혼부부에게 당부하는 말을 작성하였다. 우선 주례사 주제를 ‘행복한 결혼 생활’로 정하고, 구체적으로 노력해야 할 실천 사항으로는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행복과 불행은, 단 1% 차이로 좌우되기 때문에 각자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비익조’라는 신화를 인용하여 쉽고 재미있게 썼다. 즉 신랑 신부는 한 쪽 날개를 가진 비익조처럼 서로의 날개가 되어, 서로의 단점을 사랑으로 채워나가야 하며, 만약 두 사람이 미쳐 다 채우지 못할 때에는 양가의 부모 형제와 친지, 하객들이 도와주도록 당부하였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한 실천 사항으로, 첫 번째는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 주고, 서로가 상대방의 기를 살려주자.
두 번째는 흔히 부부 싸움은 ‘칼로 물배기’라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화나고 다툼이 있을 때 최선을 다하여 싸움으로 까지 가지 않는 노력을 하자.
세 번째는 남의 남편이나 아내와 비교하는 일은 가정의 행복을 깨는 지름길이기 때문에 절대로 다른 부부와 비교하지 말자.
끝인사 직전에는 혼인 서약 내용과 주례사의 핵심 내용을 다시 요약하여 상기시켰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신혼부부와 양가 가족 및 하객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을 당부하는 말로 주례사를 끝맺었다.
결혼식이 시작되어 사회자의 주례 소개 후에 주례사를 시작할 즈음 식장 뒤쪽은 약간 소란하고, 여기저기서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찬 물을 끼얹은 것처럼 식장 안은 조용해졌다. 하객들이 주례사에 귀를 기울인다는 생각에 자신감 넘친 음성으로 주례사를 읽어 나가며 가볍게 손짓까지 하는 여유도 생겼다.
많은 하객들의 반응은 또랑또랑한 눈망울로 주례를 응시하며, 주례사의 내용에 공감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소리 내어 웃기도 하였다. 주례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결혼식이 끝난 후에 동료 교직원들과 함께 3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대기업 중역으로 은퇴하였다는 72 세 된 신랑 외삼촌이 찾아와 오늘 주례사 내용이 참신하고, 음성이 부드러워 지금까지 들어본 주례사로는 최고라면서 술잔을 권하며 칭찬하였다. 주례사를 인터넷에 탑재하고, 주례협회에 전문 주례로 등록을 권유하여 단순히 입에 발린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나의 첫 주례는 성공적이었다.
처음 주례를 선 이후에도 고향 친구의 아들, 오래전에 함께 근무하였던 직장 동료의 아들, 내가 배웠던 댄스스포츠 선생님의 딸,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제자 등 다섯 번의 주례를 섰다. 주례와 관련하여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은, 23년 동안 소식 한 번도 없다가 수소문 끝에 찾아온 23년 전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아 가르친 제자 커플이다. 두 사람은 10 여 년 전에 유행하였던, 동창 찾기 사이트인 ‘아이러브스쿨’에서 만나 사랑을 키워 왔다고 하였다.
37세 동갑인 두 사람은 어려운 가정환경과 경제적 여건으로 인해 결혼이 늦어졌다. 지난 해 11월 결혼식 1개월을 앞두고 나에게 와서 주례를 부탁하였다. 처음에는 졸업 후에 한 번도 연락도 않다가 저희가 궁하니까 찾아와서 주례를 간청한다는 괘씸한 생각도 들었지만, 오죽 다급하였으면 나를 찾아와 부탁하였을까 싶어 주례를 섰다.
1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에 강남의 예식장 제자의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에게 사전 과제로 준 서약 내용을 각자의 육성으로 주례와 여러 하객 앞에서 직접 낭독하게 하였다. 두 사람이 결혼 생활을 하면서 만약 서로가 참을 수 없을 만큼 큰 다툼이나 갈등이 생겼을 때, 지금 이 결혼식에서 서로에게 다짐하였던 서약서를 꺼내어 서로가 확인할 수 있게 색 다른 주문을 하였다.
이렇게 한 이유는 행복한 삶을 위해 가끔은 서로가 남편과 아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고 파국을 막기 위한 예방 차원도 있다.
내가 처음으로 주례를 섰던 여교사는 2007년 5월에 첫 딸을 낳았고, 지난 해 추석에는 부부가 찾아와 그동안의 소식을 들었다. 금년 1월에는 아들을 낳아 시부모를 모시면서 어린 남매를 건강하게 잘 키우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다. 이렇게 주례사 내용을 잘 실천하며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소식을 접할 때 주례를 선 보람을 느끼며, 내가 주례를 서준 다섯 쌍 부부 모두가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을 기원한다.
첫댓글 와우! 정말 행복한 부부들인 것 같습니다. 참바세님의 바른 성정에 문학의 실력이 보태어져 주례들이 훌륭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제 ㅇ{쁜 자식도 잘 부탁드릴 기회를 주십시오. 값진글 고맙습니다.
결혼식에 詩낭송이 겯들이면 금상첨화라합니다 다믐 주례하실때는 시 낭송을 직접해 보세요 진짜 멋있는 주레가 될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