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법연화경 제 2 권
제 삼. 비유품
제 4 장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다시는 의심과 후회가 없으며 부처님 앞에서 친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수기까지 받았나이다.
그러나 여기에 있는 천이백의 마음이 자유자재한 사람들은 옛날 배우는 자리에 있을 때에 부처님께서 항상 교화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나의 법은 생 . 로 . 병 . 사를 능히 여의고 마침내 열반을 얻는 것이니라.' 하셨으므로 이를 배우는 이와 다 배운 이들은 각각 '나' 라는 소견과 '있다' '없다' 는 삿된 소견들을 떠나서 열반을 얻었다고 하였는데, 지금 세존으로부터 전에는 듣지 못하던 법을 듣고 모두 의혹에 빠져 있나이다.
거룩하신 세존이시여, 원컨대, 사부대중을 위하여 그 인연을 설하시어 그들로 하여금 의혹의 여의게 하옵소서."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내가 전에 말하지 않았더나?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여러 가지 인연과 비유와 갖가지 말의 방편으로써 설법하는 것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함이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이와 같이 설한 것은 모두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한 것이니라.그러나 사리불아, 내 이제 다시 비유를 들어 이 뜻을 분명히 할 것이니, 지혜있는 자들은 이 비유를 통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제 5 장
사리불아, 어떤 나라의 한 마을에 큰 장자가 살고 있었느니라. 나이는 매우 늙었으나 재산이 셀 수 없을 만큼 부자였고 전답과 가옥과 하인들이 많이 있었느니라.그 집은 매우 크고 넓었으나 대문은 하나뿐이었고, 모든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는데 백명 . 이백명 내지 오백명의 사람들이 그 안에 거주하고 있었느니라.그 집은 매우 낡아서 담장벽은 무너지고 기둥뿌리는 썩고 대들보는 기울어져 위태롭게 생겼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불이 한꺼번에 일어나 한창 타고 있었느니라.그때 그 집안에는 열명, 스무명, 혹은 서른 명이나 되는 장자의 아들들이 있었느니라.장자는 이렇게 큰 불이 사방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고 두려워하며 이렇게 생각하였느니라.'나는 비록 이 불타는 집에서 무사히 나왔지만 여러 자식들은 불타는 집안에서 장난하고 노느라고 불난 것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곧 불이 몸에 닿아 고통을 받을텐데 걱정하는 마음도 없고 빠져 나오려는 생각도 없구나.'
사리불아, 장자는 이렇게도 생각했느니라.'내가 힘이 세니까 아이들을 모두 옷 담는 상자나 궤짝 따위에 담아 단숨에 들고 나올까?' 하였다가 고쳐 생각하기를 '이 집은 대문이 단 하나 뿐이고 그나마도 좁다. 여러 아이들은 아직 어린데다가 아는 바가 없어 놀이에만 정신이 팔려있으니 혹시나 떨어지거나 넘어지면 불에 타지나 않을까? 내가 이 집이 이미 불타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에 대하여 말해서 빨리 뛰어 나오지 않으면 불에 타서 죽는다고 해야겠구나.' 이렇게 마음을 먹은 장자는 여러 자녀들에게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느니라.
아버지는 애가 타서 가엾게 생각하고 좋은 말로 타이르고 달랬으나 여러 자식들은 노는 재미에 빠져 믿으려 하지도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나오려는 마음이 전혀 없으며, 또한 불이 어떤 것이며 집이 어떤 것이고 무엇을 잃게 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다만 이리저리 동서로 달리고 뛰놀면서 그러한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기만 하였느니라.
그때 장자는 곧 이런 생각을 하되, '이 집이 이미 큰 불에 타고 있어 나와 아이들이 지금 나오지 않으면 반드시 불에 타게 될 것이니 내가 지금 당장 방편을 세워 아이들로 하여금 이 해를 면하게 해야겠다.'
그 아버지는 여러 자녀들이 갖가지 진귀한 장난감 같은 기이한 물건들을 각자마다 갖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들 마음을 즐겁게 이끌어 말을 하였느니라.
'너희들이 매우 좋아하고 보기 드물고 얻기 어려운 장난감이 있는데 너희들이 만일 갖지 아니하면 뒤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양의 수레, 사슴의 수레, 소의 수레가 지금 대문 밖에 있으니 맘대로 가지고 놀아라. 너희들은 이 불타는 집에서 속히 나오너라. 너희들이 달라는 대로 모두 나누어 주겠노라.'
그때 여러 자녀들은 아버지가 말씀하신 진귀한 장난감들이 마음에 들었기에 신이나서 용감하고 날쌔게 서로를 밀치면서 다투며 그 불타는 집에서 뛰쳐 나왔느니라.
이 때 장자가 여러 자식들이 모두 무사히 빠져나와 네거리 길 가운데 앉아 있어 다시는 장애가 없음을 보고, 마음이 편안하고 흐뭇하여 기뻐하였느니라. 이때 여러 자식들이 각각 아버지께 말씀드리기를, '아버지께서 주신다고 하셨던 양 수레 . 사슴 수레 . 소 수레를 주십시오.' 하였느니라.
사리불아, 그때 장자는 여러 자녀들에게 각각 똑같이 큰 수레를 한 대씩 나누어 주었느니라. 그 수레는 높고 넓어 많은 보배로 꾸며졌으며 주위에는 난간을 두르고 사면에는 풍경을 달았느니라. 또 그 위에는 일산을 펴고 휘장을 쳤는데 모두 진기한 보배들로 장식되었으며 보배줄을 엮어 늘어뜨리고 모든 꽃과 화려한 영락으로 드리웠으며 부드럽고 포근한 자리를 겹겹이 깔고 붉은 베개를 놓았느니라. 흰 소에게 멍에를 메웠는데 빛깔이 깨끗하고 몸체가 좋고 힘이 세어 걸음이 고르고 반듯하며 바람같이 빨랐느니라.
또한 많은 시종들이 따르고 호위하였느니라.
장자는 재물이 헤아릴 수 없이 많고 창고마다 가득 차 있어서 이런 생각을 하였느니라.
'나의 재물이 한량없이 많은데 변변치 못한 작은 수레를 여러 자녀들에게 줄 것이 아니다.
이 어린 아이들은 다 나의 자식인데 사랑하는데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 내게는 이와 같이 칠보로 된 큰 수레들이 수없이 많으니 응당 평등한 마음으로 골고루 나누어 주어야지 차별해서는 아니되리라. 왜냐하면 내가 이와 같은 물건을 온 나라에 두루 준다해도 모자라지 않을진대 하물며 나의 자식들에게 주는 것이랴.'
그때 모든 자식들은 각자 큰 수레를 타게 되어 일찍이 없던 즐거움을 얻었는데 이는 본래 바라던 것만이 아니었느니라.
사리불아, 너의 생각은 어떠하느냐? 이 장자가 여러 자식들에게 보배로 된 큰 수레를 평등하게 나누어 준 것이 허망하다고 하겠느냐?"
사리불이 사뢰였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그 장자가 다만 여러 자식들로 하여금 화재를 면하게 하여 그 목숨만 건지게 했더라도 허망한것이 아니옵니다. 왜냐하면 목숨을 보전한 것만으로도 이미 좋은 장난감을 얻은 것과 같거늘 하물며 다시 방편으로써 저 불타는 집에서 구제함이오리까.
세존이시여, 만일 그 장자가 가장 작은 수레 하나도 자녀들에게 주지 않았다 하더라도 허망하다고 할 수는 없나이다.
왜냐하면 그 장자가 처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방편으로써 자녀들을 불타는 집에서 나오게 하리라.' 이러한 인연으로 장자는 허망하지 않나이다.
하물며 장자가 자기의 재물이 풍부하여 한량없음을 알고 자식들을 이롭게 하려고 똑같이 큰 수레를 나누어 주었는데 어찌 허망하다고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착하고 착하다, 네 말이 옳다. 너의 말과 같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