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매일 기획특집
이재창 시인, 남도문학 현장을 가다 (28) - 동화작가 김목
잔잔한 감동 안겨주는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남도의 토속적 신화,민담,전설 등 바탕으로 묘사
지역,국가에 대한 자긍심,역사를 보는 눈 일깨워
도서벽지 골라 교직생활,어린이의 애정 온몸 실천
2004. 01.07(수) 00:00
동화작가 김목씨(54, 전교조 전남지부장)는 70년대의 대표적 동화작가중 한 사람이다. 그는 어린이들이 지니고 있는 맑고 고운 심성에 환상과 현실세계가 적절히 조화돼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쓴다. 그의 잔잔하고 과묵한 성격만큼이나 작품들도 무게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교훈적이다.
또한 향토색 짙은 남도가락의 리듬 속에서 전통사상을 노래한다. 그것은 한국의 토속적인 신화, 전설, 민담 등에 바탕을 두고 교단에서 겪은 일들과 함께 자신이 아이들에게서 느껴지는 것들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러면서 작품 하나하나를 모두 자신이 가꾸는 텃밭의 작물들처럼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우리 민족의 뿌리를 말하는 역사성을 이야기하는데도 도외시 하지 않는다. 나주 반남의 고분을 소재로 한 장편동화는 우리 지역 어린이들에게 지역과 국가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주고 우리 역사를 바로 보게 해주는 눈을 갖도록 해준다.
그의 문단생활 초기에는 도서벽지를 찾아다니며 교직의 의미와 어린이들에 대한 애정을 글로 묘사하면서 우리 민족의 설화와 민담에 관심이 많았고, 우리 민족의 전통성을 살리면서 재미있게 글을 쓰기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한 탐구,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가지며 작품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다 그는 1980년 광주항쟁을 겪으면서 소외받고 억눌린 것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인간성 회복에 대한 고찰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 우리 이웃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작품에 묘사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민족분단의 문제,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 대동단결의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민족을 넘어서 올바른 세계관으로 미래를 살아갈 어린이들을 위한 작품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럼 그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는 작품들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작품집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를 보면 표제작을 비롯해 ‘개구리 사랑’‘할머니의 안경’등 22편의 이야기 모두가 진실한 삶의 감동을 전해 준다. 우리 땅의 흙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동화집이다. 어렸을 적에 골목길에서 하던 놀이를 아스라한 기억속에서 끄집어내 자유를 박탈당한 채 우리에 길들여진 회색여우의 이야기와 연결하면서 옥수수 감자를 쪄먹으며 할머니 무릎에 누워 들었음직한 텁텁하면서도 구수한 동화를 수런수런 들려준다. 그는 아이들의 생활과도 밀접하고 우리의 정서에 맞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작품속에 투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작품에 우리의 뿌리인 농촌이야기가 많은 양을 차지한다. 그는 뙤약볕에서 농사를 지으며 검게 타고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보다도 백설공주가 더 예쁘고 누런 송아지보다 얼룩송아지가 더 좋게 생각되는 현실에 반기를 들며 우리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동화가 우리시대의 어린이들에게 더 좋은 교육적인 가치와 희망을 심어준다고 말한다.
작품집 ‘멀리뛰는 개구리’역시 시골 어린이들의 건강한 삶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동화집의 대부분은 그가 한때 근무했던 나주 산포남초등학교 어린이들을 소재로 농촌에서 일하는 부모님들의 소중함과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깨우쳐 주고 있다.
표제작 ‘멀리뛰는 개구리’는 농촌의 세 아이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도시 아이들처럼 풍족하지는 못하지만 개울가나 들판에서 뛰놀며 천진한 장난과 따뜻한 마음을 펼치는 개구쟁이 세 소녀의 이야기가 뭉클함을 느끼게 한다.
또한 나주의 골짜기, 전설, 민담 등을 연구하면서 어린이들에게 민족의식을 깨우쳐주고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반문하곤 한다. 향토색 짙고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작품 속에서 진실된 작가로서의 그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새농민’에 2년여에 걸쳐 연재된 이 작품은 저자가 13년간 교사로 재직하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뒤 쓴 동화로 농촌아이들에 대한 그의 애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은 그의 장편동화집 ‘황금동관의 왕국’이다. 이 작품은 일제의 식민지 기간 중에도 씩씩하고 밝게 자라나는 우리 어린이들의 모습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고대의 마한제국이 어떠한 문화적 정치적 위치를 지닌 것인가를 오늘의 어린이들에게 밝혀주는 소중한 동화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거의 끝나갈 무렵 반남면의 초등학교 개구쟁이들이 무궁화꽃을 일제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이야기 속에 일본이 왜곡시킨 역사에 대해 그 진실을 어린이들이 알기 쉽게 풀어놓은 작품이다.
그가 나주에 근무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 작품은 바로 반남면과 다시면에 산재해 있는 옛고분의 주인에 대해 알려줌으로써 어린이들로 하여금 자기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해 자랑스러움을 갖게 해준다.
일제시대 말기 무궁화꽃을 말살하기 위해 무궁화꽃을 ‘눈에피꽃’으로 만들어버린 그 악랄한 방법을 조선인교사 조성일이 생각해 내면서 이 동화는 시작된다. 자미산성에 오른 일본인들이 벌명당에 소변을 본 사실을 아이들이 알면서 그들을 골탕먹이고 일천황의 초상화에서 눈알을 칼로 도려내는 등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대단히 슬기로운 개구쟁이 짓으로 복수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준다.
상자에 뱀을 넣어서 일본인들에게 복수를 하기도 하고, 골목길에서 땅벌을 보자기에 싸고 불을 붙여 던져서 화난 땅벌이 보자기에서 나와 일본인들을 마구 쏘게 하기도 한다.
이런 개구쟁이들에게 어느날 마사오라는 일본인 청년이 스스로 마한의 후예라고 밝히며 찾아온다. 자신의 조상이 황금동관을 쓰고 황금동 신발을 신고 일본에 들어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은 후 마사오는 자신의 뿌리를 밝히기 위해 그리고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반남고분의 발굴조사단원으로 와 일본이 날조한 임나일본부설이나 대동아공영권의 이념적 바탕이 얼마나 허구인가를 알게 된다.
그가 이 동화집 머리말에서 말하듯 반남고분에서 나온 유물이 자기네 유물과 같은 형태라고 해서 왜가 조선의 남단을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허무맹랑하다는 것을 이 작품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올라가는 도레미파’는 포근한 글투로 쓴 13편의 창작동화집이다. 황폐하게 파괴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아음을 담은 '까치''살구마을 잔치'와 사람과 동물이 어울리는 정겨운 모습을 담은 '올라가는 도레미파''환이와 다람쥐' 등은 자연과 생명에 대한 작가의 사랑을 담아냈다. 또 '사라지는 마을' 등은 급속하게 해체되는 농촌에 대한 안타카움을 담고 있으며, '엄마는 다그래''농부와 도깨비'는 가족 사이의 훈훈한 정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는 동화가 좋아 글을 쓴다. 자신은 외국 번안소설만 읽고 자랐지만 우리의 뒷세대에는 한국작가가 쓴 좋은 동화를 읽혀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고 싶어 동화를 쓴다.
그는 동화는 단순하면서도 기승전결이 뚜렷해 우선 아이들에게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많은 작가들은 상징적이고 심미적이어야 좋은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니 자연묘사에 치중하게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린이들이 요즘 동화가 재미없다고 말하는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소설을 쓰기 위해 관문처럼 거치는 단계가 동화라고 생각했던 기존문단의 기류를 깨고 동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동화를 쓰는 일은 위대한 작가만이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동화 속에 환타지가 있어야 한다고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하지만 그것은 너무 황당무계해서 삶을 도외시하게 만드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동심천사주의가 순수라는 이름을 뒤집어쓰고 어린이들의 세계관 형성을 왜곡하는데 일조를 하고 있다고 일침을 놓는다. 변변찮은 아동문학 입문서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에서 서구의 안델센 동화가 동화의 정형으로 통용되는 현실에서 우리나라 정서에 맞는 동화가 많이 창작되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74년 소년중앙 동화공모 당선돼 등단
동화집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35쇄 출판...현재 전교조 전남지부장
아동문학가 김목씨는 1951년 6월29일 전남 함평군 사거리에서 학다리고등학교 국어교사이던 부친 김근호, 모친 지금순씨의 4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나 4살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부친이 교사인 관계로 이후 어린시절을 아버지를 따라 만경평야의 한가운데인 전북 김제 죽산에서 보냈다. 죽산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고, 초등 6학년 때 광주 사레지오 국어교사로 부임하신 아버지를 따라 광주로 전학을 와서 광주 서림초등학교, 광주 북중학교, 보성 예당고등학교, 목포교육대학을 졸업했다.
대학 졸업후 1971년 영광 법성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생활을 하면서 10월 유신을 통해 세상과 시국에 대해 눈을 뜨고 좌절감과 반항심 속에서 서해의 푸른 바다를 벗삼아 시와 소설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74년 소년중앙 동화 공모에서 법성포에서 홍농으로 가는 길에 있던 나룻터를 배경으로 쓴 중편동화 ‘강나루 할아버지’가 당선되고, 광주일보 신춘문예에 암울한 시대상을 어머니를 통해 개인적으로 위안받고자 쓴 시 ‘봄’이 당선되면서 등단, 본격적으로 문단활동을 시작했다.
1979년엔 해남 문내면 별뫼(일성산)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날개달린 장사’를 소재로 창작한 장편동화 ‘날개달린 장사’와 민담과 설화 등에 깊은 관심과 우리 민족의 이야기에 재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작품들을 모아 첫 동화집 ‘날개달린 장사’를 펴냈다.
1980년 어린이해 기념 동화가 당선되었으며, 장편동화 ‘날개달린 장사’로 제1회 한국동화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동화집 ‘미리안’‘만쇠씨의 자전거’‘아기 풀꽃’‘개구리들의 임금님’‘나는 가방’‘의협 홍길동’‘멀리 뛰는 개구리’‘황금동관의 왕국’‘여우야 여우야 뭐하니’‘농부와 도깨비’‘올라가는 도레미파’ 등을 출간했다. 현재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산하출판사)는 35쇄를 넘기며 꾸준히 발간, 스테디셀러로서 한국동화문학의 한 장을 열고 있다.
그는 1975년 광주아동문학가협회 총무로 활동하면서 동인지를 발간하며, 1984년 전남아동문학가협회 회장으로 마산에서 개최된 제1회 배구대회에 이어, 제2회 영호남 아동문학인 배구대회를 광주에서 개최해 마산, 대구, 부산 등지의 아동문학가들과 정기적으로 교류 왕래하며 상호 교류와 문학의 영호남 화합에 힘써왔다.
현재 서울에서 발간되고 있는 아동문학 전문지 ‘아동문예’(발행인 박종현)의 발간에 초창기부터 편집위원으로 참여해 왔으며, 이후 서울로 발행처를 옮긴 뒤에도 다수의 작품을 발표해 왔다.
그는 이후 1989년 전교조 결성으로 나주 산포남초등학교에서 해직하면서 시련기를 맞기도 했으나 1992년부터 나주신문에 꽁트와 장편동화 ‘레미네집 이야기’를 연재하며 각종 신문 잡지 등에 사회문제, 교육문제에 관한 그의 소신을 꾸준히 발표했다.
또한 지역방송국 최초로 제작된 MBC 어린이드라마 ‘우리들은 자란다’ 극본을 동화작가 김옥애씨와 함께 도맡아 쓰기도 했다. 매주 다른 줄거리로 어린이들의 세계를 그려가는 30분 분량의 시추에이션물인 이 드라마는 초등학생 5.6학년인 수아.수미 자매가 보험회사 외판원인 엄마.삼촌으로 구성된 집과 학교를 오가며 주변인물들과 함께 펼치는 이야기들로 주로 어린이 정서순화와 교육적인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때 일부 인사들은 해직교사에게 어린이드라마를 쓰게 했다는 항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후 그는 전교조가 합법화되면서 1994년 함평 학다리초등학교에 복직해 다시 교단으로 돌아왔다. 그해 그는 처음으로 그동안 써왔던 시들을 모아 시집 ‘누렁이’를 발간했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 진원지 나주를 배경으로 당시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나주역 사건의 주역 박준채씨와 댕기머리 이광춘 여사 등 생존인물을 중심으로 비디오 다큐를 제작하기도 했다.
2003년 9월 그는 분단 54년만에 첫 남북교원교류의 일환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현재 그는 남도문학회 회장, 전교조 전남지부장으로 부인 김옥례(초등학교 교사)씨와 사이에 김탁환(서울대 법대졸, 현 순천지검 법무관)과 김율환(서울대 경제학부) 두 아들을 두고 있다.
글 ; 이재창 편집부국장 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