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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 일관 변치 않는 나무처럼
수필에 봉사하는 수필계의 거목
대담 : 송명화 (본지 주간/수필가)
“단풍은 낙엽을 전제로 한 종말의 변신이 아니라 그것은 완성의 미학이다. 봄의 새싹, 여름의 녹음을 통하여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인간에게 봉사할 대로 봉사하고 이제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낙엽은 다음 생명의 탄생을 위한 양보의 미학이다. 한번 피었던 잎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붙어 있으면 다음해 새봄을 맞아도 새싹을 틔우지 못한다.”선생의 다섯 번째 수필집 <세월이 흐르는 소리>에 실린 ‘낙엽에 대한 사념‘의 일부분이다. 나무가 인간에게 봉사할 대로 봉사하였다고 그는 말했지만 대담을 준비하면서 나는 그가 수필에 봉사할 대로 봉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선생은 경남 하동에서 태어났다. 진주사범학교와 마산대학을 졸업하고 ‘현대문학’ 추천으로 문단에 수필가로 등단하였으며 ‘월간문학’ 신인상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수필비평에 발을 들여놓으셨다. 현재 한국문인협회부이사장, 한국수필문학가협회회장, 한국문학비평가협회부회장으로 계시며 월간 ‘수필문학’ 발행인 겸 편집주간이시다. 수필집으로 < 평촌수필 >외 4권, 평론집으로 <새로운 수필문학 창작기법>외 2권을 상재하셨다.
그가 수필집 <세월이 흐르는 소리>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 그러기에 초지일관 변치 않는 위대한 나무처럼 수필을 위하고 싶다’는 선생의 수필 인생을 알고 싶었다.
■ 선생님이 걸어오신 수필 인생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처음에는 소설을 공부했습니다. 등단도 제대로 하기 전에 지방신문에 장편을 두 번이나 연재하는 등 소설에 미쳤습니다. 그러나 전업작가가 아닌지라 직장에 다니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시간과 정력에 한계가 있어 수필을 쓰게 되었습니다. 수필을 쓰다 보니 우리 수필계가 너무 취약하여 월간 ‘수필문학’을 창간하게 되었고 수필비평도 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 많은 작품집과 비평집을 펴내셨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집은 무엇인지요?
아무래도 첫 수필집 <이 후회의 계절에>를 잊을 수 없습니다. 첫사랑의 그리움처럼 기억에 남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그리고 비평집 <새로운 한국수필문학의 향방>은 나의 수필지론으로 수필가지망생이나 작가들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습니다.
■ 선생님의 수필 ‘날마다 행복’을 읽고 선생님의 행복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저의 소견으로는 월간 <수필문학>의 번창과 우리나라 최대의 수필가 모임인 한국수필문학가협회를 이끄는 것이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선생님의 행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의외로 일상 속 소소한 일들에서 행복을 찾으셨더군요. 선생님의 행복론을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인간의 행복은 거창한 명예나 위치나 사업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작고 사소한데서 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사를 모두 긍정적으로 보면 행복하기 그지없고 비관적으로 보면 그런 비극이 없는 것 같습니다. 된장국 한 그릇, 열차 칸에서 미소짓는 소녀의 모습, 직장에서 아침에 나누는 차 한 잔, 집안에서 식구들간에 다정한 말 한마디… 그런데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작은 일, 가까운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수필의 기본 정신이 아닐까.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는 따스한 눈과 가슴을 갖는 것이 수필을 쓰고 읽을 때의 기본 마음가짐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 선생님은 오랜 세월동안 다섯 권의 수필집을 상재하셨습니다. 선생님 수필경향의 변천사를 알고 싶습니다.
나의 수필은 처음에는 서정적이다가 소설을 쓴 결과인지 서사적 스토리 위주가 되고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욱 그렇게 나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수필창작평론을 하다 보니 논리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수필은 제제로 주제를 겨냥하는 문학장르입니다. 수필 창작 과정에서 문장이 갖는 중요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수필은 문장의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간결하고 산뜻한 문장, 그러면서 더러는 유머나 위트가 있고 지적 정보도 가미된 문장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 수필계에 가장 중요한 현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수필은 재미가 없다고들 합니다. 대개가 신변적인 비슷한 소재를 진부한 문장, 설명 위주의 문장으로 쓰다 보니 새로운 감각이나 진한 감동을 느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수필을 진솔한 자기체험의 고백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진솔한 고백을 않고 자기 현시와 누구나 다 아는 시들어 빠진 내용을 자기만 흥분하여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러는 에로티시즘도 구사하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장에 신선한 수식구도 넣고 또 때로는 대담한 생략이나 승화의 기법을 동원해야 한다고 봅니다. 수필은 거창한 담론이 아닌 고루 거각의 대문 열쇠같이 작으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경이요 충격이라고 생각합니다.
*** ‘작으면서도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경이요 충격’, 수필가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말이다. 필봉을 끊임없이 갈고 닦는 일은 프로라면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될 일이지 않은가. 수필은 쓰면 쓸수록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개성적이고 감동적인 소재를 찾아 수필 한 편 엮을 수 있다면 몇 밤을 샌다고 하여도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 미리 준비한 바 없음에도 불구하고 물 흐르듯 거침없는 선생의 답변을 들으니 수필가이면서 이론가이고 또 행정가이기도 한 선생의 수필 사랑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 <수필문학>지를 창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입니까?
한국문협에서 발간한 ■■文壇遺史■■에도 밝힌 바가 있습니다만 ■■수필문학■■은 최초에 김승우, 김효자씨가 1972년에 창간하였습니다. 그 당시는 수필이 장르로 독립성을 갖지 못하다가 그 월간지의 발간으로 수필의 장르는 이 땅에 태어났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것이 10년 정도 계속되다 재정난으로 폐간의 비운을 맞았습니다. 약간의 공백이 있는 동안 그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나머지 88년에 본인이 재창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는 정기간행물 등록이 어려웠는데 이삼 년을 기다리며 정부와 교섭을 계속한 나머지 어렵게 등록증을 얻게 되었습니다. 오로지 한국수필의 위상 정립, 작품발표를 통한 질적 향상과 수필인 상호간 교제의 가교역을 다짐하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금년까지 17년 동안 우리나라 유일의 수필전문 월간지로서 꾸준히 발간하고 자매단체인 한국수필문학가협회와 함께 시상제도, 세미나, 연간대표작품선집 등 많은 수필집을 아울러 발간하며 명실공히 한국 최대의 수필문학 메카로서의 역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 월간 <수필문학>을 운영하시는 선생님의 경영철학을 알고 싶습니다.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않고 소박하고 작은 데서부터 출발, 유능한 필자 발굴, 정확한 교정, 시의에 맞는 특집, 문제점 제시 및 의견수렴, 선진이론개발 등에 전력하고 저널리즘적 편집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신인 등단은 처음부터 2회 추천으로 완료함으로써 신인들의 질적 향상을 기하고 있으며 국내 우수한 기업체의 광고유치로 재정의 플러스 뿐 아니라 재계 및 사회의 인정을 받는 문학지가 되기 위하여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 21세기 수필시대를 맞이하여 수필전문지들이 많이 창간되고 있습니다. 수필창작인구의 증가 추세로 볼 때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수필전문지가 17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많을수록 좋은 편이나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서점 판매보다 대개 등단 신인들에 의한 강매, 수필집 광고 등으로 제작비를 메꾸어 가고 있는데 그것은 봉사 제닭 잡아먹기 식이어서 얼마지 않아 적자생존의 결과를 가져와 정리되리라 생각됩니다.
*** 수필전문잡지사의 경영자로서 수필 발전에 진력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선생의 단단한 경영철학을 알고 나니 월간 ‘수필문학’의 탄탄한 미래가 점쳐졌다. 다음은 비평가로서의 선생께 몇 가지 질문을 드렸다.
■ 선생님은 <월간문학> 문학평론을 통해서 평론가로 등단하셨습니다. 등단작품과 등단과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1988년 12월 <월간문학> 신인상 평론부문에 당선되었는데 논문은 <金素雲의 知日性과 그 수필세계>였습니다. 장르에 있어 수필을 택한 것은 수필의 홀대와 비평부재 풍토를 탄식한 나머지 이론적 배경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에서이고 김소운론을 택한 것은 그는 우리 수필의 선각자로 사회성 있는 비평수필로 독특한 수필세계를 보여 주었을 뿐 아니라 <木槿通信> <岩波文庫> 등으로 우리 국위를 일본에 선양했는데 일각에서 친일파로 매도함에 분개하였지요. 그는 知日派는 되어도 親日派는 아니라는 것을 밝히고 싶었습니다.
그 논문의 당선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공인된 수필비평가란 영광을 얻었고 김소운을 사모하는 많은 숨어 있는 독자들을 연결하게 되었으며 조병화 선생을 회장으로 박재식 선생과 본인이 부회장을 맡아 소운문학회를 결성했습니다.
11월 2일은 그의 기일인데 그 날은 수필가들이 모여 묘소성묘 및 작은 심포지엄을 갖는 등의 행사를 한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해 왔습니다. 김소운은 자신의 저작권을 동경대학에 기증, 동경대학에서도 매년 문학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습니다.
■ 객관적이고 공정한 잣대로 비평계를 선도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작가와 비평가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수필문학의 비평은 타 장르와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수필은 자신의 고백으로 잘됐다 못됐다는 그 작가의 인격과 자존심에 연관되기 쉬우므로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그 대신 비평을 받는 작가도 수용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흡점이나 오류를 지적했다 하여 그것이 절대적인 판결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심한 비평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수용여부는 작가의 역량과 성숙 여부와 관련이 큽니다. 대가나 경력자일수록 혹평의 수용이 관대하고 신인일수록 그 벽이 얇습니다.
■ 수필 비평이 예전에 비해 양적으로 많이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평이라기 보다 수필가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주례사 비평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수필계의 발전을 위해서 비평가가 해야 할 몫이 크다고 봅니다.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짚어 주시겠습니까?
우리 수필의 비평은 오히려 비평을 받아야 할 글들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어려운 용어나 논지도 알 수 없는 비평들이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쓴다고 비평이 아니고 항상 유협이 문심조룡(文心雕龍)에서 말한 문장 삼이(文章三易)를 유의해야 한다고 봅니다. 비평이 현실과 타협하여 미사여구나 주례사가 되면 맛을 잃은 소금의 신세로 전락합니다. 따끔한 일침도 있어야 하고 비평은 판결이 아니라 예비적 해석이며 꿈보다 해몽이란 말은 비평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 문장삼이(文章三易)란 ‘보기 쉽게, 알기 쉽게, 읽기 쉽게’ 쓰라는 게 아니던가. 수필이 시나 소설에 비해 치열함이 부족하다는 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소금 같은 비평, 수필가의 느슨한 붓끝에 일침을 가하는 천둥 같은 비평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 않은가. 비평을 통해 수필의 발전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믿기에 비평도 비평받아야 하겠다는 거침없는 선생의 말은 한여름 폭포수 마냥 시원하였다.
*** 문단의 어른들을 만나 뵈면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그 분의 연륜이 낳는 분위기 속에서 푸근함을 느끼게 된다. 인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 싶어 몇 가지 삶과 관련된 질문을 드렸다.
■ 문단의 대선배님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이시기도 합니다. 인생을 적절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무어라 생각하시는지요? 또 마음속에 새기고 있는 경구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인생은 아무래도 예정적이요, 운명적인 것 같습니다. 한때 우리는 ‘운명’이란 말을 기피하고 금기시 했습니다. 그것은 일제의 압박 속에서 신음하다 보니 생의 의욕을 포기하고 현실의 지속에만 급급하게 된 국민적 풍조를 불식하기 위한 의식개혁의 일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유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며 살다 보니 ‘운명’이란 말처럼 지당하고 소망적인 말은 없을 것 같습니다.
운명적으로 못살게 되었다는 부정적인 사고보다 운명적으로 잘 살게 되었다든가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가기 마련이라는 긍정적 편에 서면 우리의 삶은 잘 살든 못 살든 귀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기독교의 예정론과도 상통한다고 봅니다. 하필이면 세상에 그 많은 직업 중 나는 이 직업을 택하게 되었는가. 수많은 사람 중 하필 그 사람과 결혼하고 만나고 어울리는가 등을 생각해 보면 그것은 우연이나 노력보다는 운명적으로 결정 지워진 길을 걷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주어진 길에 정진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을 좋아합니다.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말인데 사람끼리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사의 정감인 슬픔과 기쁨, 고통과 즐거움, 이별과 만남, 미와 추, 부족과 만족, 불안과 평안 등의 상반된 두 개의 개념이 서로 협력의 관계에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슬픔이 다하면 기쁨이 오고 고통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고, 이는 상호 태극의 모양처럼 맞물고 돌아가며 순환하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마음의 고통을 당해 봐야 아름다움의 가치를 알고 가난의 고통을 당해 봐야 풍족의 가치를 아는 등….
■ 좌우명을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내게 평소 생활의 좌우명이 있다면 ‘생활은 평범하게 생각은 고생하게’입니다. 이는 니체의 말로써 인간은 부하고 귀한데도 처하고 가난한 밑바닥 삶도 경험해야 참다운 인간 삶의 맛과 멋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어려운 처지에 있든 생각(사고)만은 높게 지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선생을 저렇게 가식 없고 편안하게 보이게 하나 보다. 녹차를 음미하며 선생의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 깊은 사색보다는 늘 부르르 끓기 잘 하는 내 성격의 거친 결이 부끄러워졌다.
■ 계간 <에세이문예>는 수필문학의 발전을 위해 본격수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또한 수필가들의 발표 지면을 늘리며 수준 높은 수필들을 실음으로써 수필가들의 문학적 의욕고취와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저희 문예지에 격려와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부산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동시에 동아시아 관문 해양도시로서 존재가치가 큽니다. 그런 대도시에 처음으로 수필전문지가 나왔다는 것은 만시지탄입니다. 좋은 작가와 작품을 발굴하여 지방문단 나아가 한국문단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랍니다. 지방이라 하지만 우리나라는 국토가 좁으므로 골목대장이 되지 말고 그 대상을 전국을 아우르고 폭 넓고 심도 있는 기획으로 관심을 끄는 잡지가 되길 기원합니다.
*** 선생께서 주시는 숙제가 무겁다. 그러나 꼭 해내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무겁다기보다는 오히려 가슴이 벅차 올랐다. 사무실에서 나와 선생의 사무실과 인접한 인사동 거리를 함께 걸어 내려갔다. 예의 고풍스럽기만 하던 인사동이 젊은이들로 새로운 바람을 타고 있었다. 복날이니 삼계탕을 사 주겠다며 앞서 걸어가시는 선생의 소매 긴 흰 셔츠가 멋스럽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낄 줄 알고 삶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진 수필계의 거목이 어둠 내리는 인사동 거리에 휘적휘적 고급스런 분위기를 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