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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일 년 전인 선조24년(1591년)의 시대적 배경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등장인물 인 최입지(최 립)와 이숙헌(이율곡)은 역사상 실제 인물입니다. 사건들은 물론 실제와 다르지요.
하지만 조령주막은 분명히 존재하는 곳이었고 이곳을 다녀 간 조선시대 수 많은 인물들 가운데 이황과 이율곡이 있습니다.
선조들의 멋들어진 풍류와 국난을 앞둔 조선의 위기감을 동시에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조령주막(鳥嶺酒幕)
이 남천/
최 입지 진주목사는 말 위에 올라서서 조금 전 조령 제2의 관문인 조곡관을 막 통과하던 일행을 둘러봤다. 일행이라고 해봤자 봇짐을 둘러맨 시종 두 사람과 임금이 보낸 하사품인 비단과 도자기 따위를 실은 당나귀 한 마리를 모는 관리 한 사람과 일행의 선두에 서서 사주경계를 맡은 병졸 두 사람이 전부였다. 병졸 두 사람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면서 사주경계의 눈빛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조령은 백두대간 능선을 따라 여섯 개의 봉우리가 늘어선 부봉을 끼고 넘어가는 숲이 울창한 험준한 고갯길이라서 능선을 타고 돌아다니는 호랑이가 종종 행인들을 위협했다는 보고가 끊이질 않는 곳이었다.
또한 신묘년(1591년, 선조 24년)에 들어와서 변방 지역에 도적떼가 자주 출몰해서 공관 행장(行裝)을 노린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여 청렴하고 검소한 진주목사 최 입지마저도 병졸과 시종 한 사람씩 더 붙여 한양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조령은 영남 선비들이 한양에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마다 자주 이용하는 조선 최대의 길인 영남대로가 관통하는 새재 길이었다. 최 입지 진주목사는 며칠 전 주상 전하를 알현(謁見)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던 일을 떠올렸다.
“주상 전하. 한낱 벽촌의 미천한 수령 주제에 여쭙기 황송하오나, 바다 건너 남방 오랑캐인 왜적들이 요즘 들어 일으킨 흉흉한 소문을 들으셨사옵니까?”
“무슨 소문을 말하시는가?”
왕궁의 처소에서 봉황무늬가 아로새겨진 얇은 비단 천으로 만든 평상복 차림으로 오랜 충신인 최 입지 진주목사를 허물없이 마주하고 앉은 선조대왕은 이렇게 되물었다.
“주상 전하. 이미 아시고 계시는 일이겠사옵니다만, 왜적의 수장인 평수길이 주군인 원씨에 배역(背逆)하여 원씨를 멸망시키고 자칭 관백(關白)이라 칭하면서 주변 섬들을 자신의 수하로 넣기 위해 속속 정벌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계시겠지요.”
최 입지 진주목사는 왕궁 내에 상주하는 궁녀들이 마침 주위에 없는 틈을 이용해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자신이 들은 정보를 선조대왕에게 고하는 중이었다. 당시에 조정은 동인과 서인간의 마찰과 불화가 들끓고 있었기 때문에 왕과 친견한다는 말만 돌아다녀도 큰 화근이 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을 잘 이해하고 우려하고 있던 선조대왕은 최 입지 진주목사를 은밀하게 사석(私席)으로 불러들여 대신들의 눈총을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선조대왕은 그만큼 최 입지 진주목사를 신임하고 총애했다.
“얼마 전 일본국에 다녀 온 통신사를 통해서 대강 얘기는 전해 들었소이다. 그 종자들이야 본래 남의 물건을 탐하고 의리나 인륜 보다는 영토와 재물에만 욕심을 부리는 본디 무식하고 야만스런 자들이니, 얼마든지 주군을 배신하고 권력을 찬탈할 위인들이 아니겠습니까. 그들의 내정이 그렇게 어수선한 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겠소.”
“그러나 주상 전하. 최근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관백 평수길이 대명을 친다고 하옵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영토를 통해서 들이닥칠 것이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되옵니다.”
“그런 소식은 어디를 통해서 들을 것입니까?”
“대마도 태수 종의조의 아들이 연변(沿邊)수비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자랑스럽게 떠들었다고 하옵니다.”
“그렇다면 그 연변 수비대 장관은 어찌 그런 중대한 첩보를 조정에 알리지 않았던 거요.”
“주상 전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연변 수비대 장관은 그 말이 실없는 소리로 들렸기 때문에 무시해 버린 줄 아뢰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중대한 첩보를 태수 아들이 함부로 흘린다는 것은 경우에 닿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사실 소인이 듣기에도 믿기 어려운 소문이었습니다. 왜적처럼 망령된 종족들이 아무리 전함을 갖추고 해상전에 능하다고 해도 대명을 상대로 전복을 꾀한다는 일이 어디 가당한 일이겠사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낱 해상국의 오랑캐 주제에 대명을 넘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런 소문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헛소문이니 마음에 담지 마십시오. 오늘은 정사를 의논하기 위해 만난 자리가 아니니 그저 오랜만에 나와 함께 약주나 한잔 드십시다.”
선조대왕은 오랜 충신인 최 입지 진주목사의 가늘고 섬세한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면서 만면에 웃음을 짓고 말했다. 평소에 문필가로 공문서 제조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최 입지였지만 당정 싸움에서 미천한 신분 출신을 업신여긴 대신들이 번번이 선조대왕의 뜻을 거역하고 그의 관직을 변방의 외직으로 자꾸만 밀어냈다.
그도 한때는 사신으로 명나라를 오고가며 명의 황제나 고위관료들을 만나 자신이 직접 작성한 공문으로 저들의 신망을 얻고 국익에 일조하는 외교적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서 명성을 드높였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재신들의 고위직 천거는 동인과 서인으로 명백히 나뉘어져서 동서 양인의 반열에 끼지 못하는 낮은 계급 출신의 그로써는 출세 길에 제약이 분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런 시대적 상황을 한탄하거나 조정의 실정(失政)을 원망하지 않았다.
입신양명 보다는 백성의 편에 선 실용적인 관리가 되는 것이 그의 소신이고 철학이었다. 그 때문에 높은 관직은 애시 당초에 그가 꿈도 꾸지 않았다. 임금의 총애로 높은 지위에 오른 적도 여러 번 있었지만 그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겸손하게 아뢰어 관직에서 체면(遞免)될 것을 여러 차례 상소한 적도 있었다.
“주상 전하. 그렇다고 해도 이미 돌아간 문우 숙헌(율곡 이이)이 말했던 병력증설을 염두에 두시고, 각 번에 병력을 증파하고, 특히 왜구가 자주 출몰하는 해안 연변의 경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옳을 줄 아뢰옵니다.”
최 입지 진주목사는 신중한 마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알았소. 내가 공의 충정을 왜 모르겠소. 자, 그 무관들에 관한 얘기는 여기서 그만둡시다. 내가 알아서 조처하겠소. 왜구들이 만일에 이 나라를 침범한다면 명나라에서 우리를 도와줄 것이 분명하고 어찌되었든 조정이 오랑캐에게 짓밟히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나저나 오랜만에 숙헌의 이름을 들으니 돌아가신 그 양반 생각이 나고 그의 탁연(卓然)했던 시문이 듣고 싶어지는 구료. 허, 허, 허.”
선조대왕은 헛웃음을 지으며 최 입지의 직언(直言)에 자꾸만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애써 벗어나려 했다. 최 입지 진주목사는 선조대왕의 의중(意中)을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만나 뵙기 어려운 주상전하 앞에서 이미 시작한 간언(諫言)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느 새 궁녀들이 하나 둘씩 음식이 담긴 그릇을 들고 나타나는 바람에 그는 주상에게 전하려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이후 술좌석에서 선조대왕의 심정을 헤아린 최 입지는 더 이상 국사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조곡관을 통과해서 내려오는 길의 좌측 벼랑에는 조곡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퍼붓고 있었다. 때마침 목이 말라 입술을 푸르르 떨며 허연 거품을 입에 문 말에게 물도 먹이고 폭포 구경도 할 겸 최 입지는 말에서 내려섰다.
앞장 선 진주목사가 말을 물가로 끌고 내려가자 일행도 잠시 여장을 풀고 폭포 근처에 모여
들었다. 폭포는 규모가 그렇게 크지는 않았지만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팔월의 늦더위를 식혀주기에는 충분했다. 최 입지는 시종을 불러 말에게 물을 먹이도록 지시하고 폭포 근처로 다가가서 세차게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봤다.
월월 일일 국운은 먹구름에 덮친 듯 어둡도다.
변방의 진에선 하릴없이 밥 짓는 연기만 피어나고
조정의 중추에선 파벌의 담론만 부질없구나.
장차 온 나라가 먹구름으로 어두워지면
낙하하는 저 폭포처럼 왜적의 함성이 범람하리니
이를 어찌 할꼬, 어찌하면 좋을꼬.
폭포를 바라보며 최 입지 진주목사는 마음속으로 이런 시문을 지으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모든 것이 아직 풍문일 뿐 확인된 일은 없었으나 왜구들의 최근 움직임과 왜국(倭國)의 대내외적 동향은 심상치 않은 것이다.
선조대왕께서 하늘처럼 믿고 있는 명나라의 군사력은 물론 막강하지만 전란이 일어나면 자국의 힘으로 적과 대항해서 이겨야 하는 것이지 외세에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님을 최 입지는 깨닫고 있었다.
스물 한 살의 약관에 식년문과 장원급제를 했던 그가 역시 같은 날에 치러진 무과시험에서 장원을 한 고향 친구인 신 유구 울산방어진 수장을 통해 일전에 들은 얘기로는 울산방어진 연변에 요즘 들어 왜선이 자주 출몰한다고 했다.
신 유구도 역시 미천한 출신이라고 해서 무과에 당당히 장원했지만 지금까지 줄곧 변방의 진을 관할하는 수장에 머물러 있었다.
“얼마 전에는 왜인의 승속이 무리지어 우리 진에 몰려와서는 행패를 부리더군.”
얼마 전 신 유구와 함께 그의 진지에서 만나 회포를 풀고 있을 때 그가 최 입지에게 하는 말이었다.
“승속이라면, 승려들까지도 변방에 왕래한단 말인가.”
“말이 승려지. 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영락없는 도적이라네. 괜히 종을 치면서 마을을 염탐하고 돌아다니다가 여염집 아낙네를 만나 희롱하는가 하면 집안에서 쓸 만한 도자기라도 발견하면 환장하고 흥정하려 들고 그것도 신통치 않다 싶으면 야밤을 틈타 몰래 기어들어가 훔친다네.”
신 유구는 막걸리 한 사발을 시원하게 들이켠 뒤에 탁자 위에 빈 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 놓으며 말했다. 그는 최근 울산 앞 바다에 발생하는 왜구들의 사소한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서 잠을 잘 때도 갑옷을 갖추어 입고, 수장으로써 병리(兵吏)들에게 본을 보이려고 항상 대기 상태로 긴장하며 지낸다고 했다.
“부하들은 전시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오히려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지만, 내 느낌은 정확해. 뭔가 큰 일이 닥칠 것만 같다네.”
이런 말을 내놓는 친구의 낯빛에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신 유구는 책임감이 강하고 곧은 기개와 충절로 단단히 뭉쳐 진 의로운 사람이었다. 변방의 일개 수장 노릇을 하기에는 아까운 인재임이 틀림없다고 최 입지는 늘 생각해왔었다.
“오랑캐 승속들이 어울려서 하는 말소리를 들어보니, 우리 조정에서 나서서 명나라와 자기 나라간의 중재를 해줘야 우리 국토가 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군. 조정에서는 이런 사실에 대해서 어떤 대책을 강구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네.”
신 유구는 김치 한 조각을 안주 삼아 씹으며 입가에 묻은 막걸리 자국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며 말했다. 최 입지 또한 변방의 수령직에 있으니 조정의 일을 깊이 있게 알 도리는 없었다.
“안 그래도 주상 전하께 상소문을 올리려고 생각해오던 차에 자네로부터 왜적의 동향에 대한 정보도 알아볼 겸해서 이렇게 찾아왔다네. 조정에서는 통신사를 파견했다고 들었네만 통신사로 간 두 사람의 대신이 서로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바람에 중사(重事)를 놓고 조정에서도 좀처럼 실상을 분별하지 못하고 설왕설래하고 있는 형편이라네.”
“통신사도 양인에서 출신이 서로 다른 사람을 보냈나보군. 그렇다고 왜국의 실상은 하나의 진실만을 드러내놓고 있을 것인데 어떻게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것마저도 당리당략을 놓고 서로 싸워야 할 성질의 것인가, 보고 듣는 것은 오직 하나뿐일 텐데....... 쯧, 쯧."
신 유구는 동서 양인으로 붕당 되어 서로를 비방하고 싸우는 조정의 형편을 한심스럽고 불안하게 여겨 혀를 차며 말했다. 중앙의 고위 무관직책을 탐내는 속물은 절대 될 수가 없는 소탈하면서도 대범한 인물이 그였다.
그에게는 오직 성상의 안위와 태평성대를 누리는 조국의 미래만이 중요할 따름이었다. 오랜만에 친구가 찾아왔다고 시종을 시켜 닭찜과 부침개를 내놓았지만 그는 손도 대지 않고 짠 김치 조각만 우물거리고 있었다. 그런 친구의 검박(儉朴)한 모습을 보고 최 입지도 좋은 음식에 선뜻 젓가락이 가지질 않았다.
최 입지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폭포를 바라보며 잠시 옛날 생각에 머물렀다. 신 유구와 함께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전주 고향 마을을 떠나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났다.
한양에서 매년 유월 중순에 치러지는 문무과 과거 시험을 보기위해서 두 사람은 영남 선비들의 과거길 가운데 가장 운수 좋은 길로 통한다는 문경새재를 지나갔던 것이다.
문경(聞慶)이라는 지명 자체가 <경사스런 소식을 먼저 듣는 곳>이란 의미를 갖고 있었으니 과거수험생들이 이곳을 경유해서 한양으로 가는 것도 나름대로의 큰 의미가 있었다. 더구나 문경새재는 영남대로라고 하여 조선 태종 때 영남 지방과 수도 한양을 이어주는 조령(鳥嶺) 길을 일찍이 개척해 놓은 터라 이곳을 이용하는 선비들을 비롯한 객상과 민초들에게는 한양으로 향하는 요로(要路)였던 것이다.
과거 시험을 치룬 같은 날 전주 고향 친구로서 문과와 무과에 각각 장원한 두 사람은 금의환향하던 길에 이곳 조곡폭포를 지나게 되었다. 유년 시절부터 마을에서 개구쟁이로 어울려 놀고 장난치던 사이였으니 무슨 허물이 있었을 것인가.
장원급제자로서의 체면 따위는 아랑곳없이 그들은 벌거벗고 폭포로 헤엄쳐 들어가 멱을 감고 물장구를 치면서 그동안 억눌러왔던 기쁜 마음을 마음껏 풀어놓고 놀았던 것이다. 최 입지는 그때의 일을 떠올리자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가득 번졌다.
출신은 미천하나 천하에 인재 낳음에
빈부차이와 신분 상하구별은 없으니
천하 만민은 본래부터 평등하도다.
위와 아래를 차별하는 자 대의를 모르고
빈천과 부귀를 구분하는 자 졸속하니
붕당의 동서 중신들 그리할까 우려하노라.
최 입지는 세차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빈궁한 집안에서 태어나 당당히 과거에 장원급제했던 자신과 벗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런 시문을 마음속으로 읊조렸다.
최 입지 진주목사와 일행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동을 시작했다. 조곡폭포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오른편 골짜기를 끼고 돌아서 아래쪽으로 유연하게 흘러내렸다. 계곡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묵묵히 견디며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바위들은 조선 건국 이전은 물론이거니와 태곳적 고대 국가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있었을 것이다. 바위들은 먼 옛날 지각변동에 의해서 생겨났겠지만 지금처럼 모가 나지 않는 둥근 형태를 갖게 된 것은 수많은 세월동안 흐르는 물에 의해 깎이고 비바람과 풍설을 맞으며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인간이 돌을 다듬어 수려한 모양새를 만든다 해도 자연의 힘으로 오랜 세월을 통해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모양새에 비할 수는 없으리라. 최 입지는 소위 꾸구리 바위라고 말하는 너럭바위를 바라보면서 자연은 인간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존재해왔고 어머니의 자궁에서 한 생명이 자라나듯이 세상을 먹이고 키워서 성장 시키는 것은 자연만이 지닌 위대한 힘이요, 헤아릴 수 없는 장구한 세월과 함께 한 자연의 인내심이라는 생각을 했다.
새재길 왼편의 산비탈에 빽빽이 들어선 소나무와 참나무도 나무 하나 하나가 인간의 수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오래된 수령을 갖고 있었다. 어떤 소나무의 경우는 국조의 탄생 이전에 싹을 틔워 자라난 것들이다.
수백 년 전 그것들은 한낱 어리고 연약한 풀포기에 지나지 않았다. 두터운 낙엽더미 속에서 삐죽하게 초록색 어린잎을 내밀고 본능적으로 햇빛을 향해 작은 몸을 기울였을 것이다. 덩치 큰 나무들 사이에서 한 싸라기의 햇빛이라도 받아낼 수 있다면 행운이요 감사한 은혜였다.
지금 사방으로 나뭇가지를 벌리고 울창한 잎으로 하늘을 가린 저 거목들에게도 한없이 어리고 나약해 보이는 어린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장정 두 세 사람이 끌어안아도 모자랄 정도로 아름드리 밑줄기를 키워냈지만 저 나무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련과 인고의 세월이 있었을 것인가.
아름드리나무들이 어지러이 내려놓은 그늘을 말굽으로 밟으며 지나던 최 입지 진주목사는 인간의 흥망성쇠가 한낱 나무들의 한 생애에도 미치지 못 할 만큼 덧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태조 왕건이 고려를 세웠지만 34대의 공양왕을 끝으로 새로운 조선왕조에 의해 몰락하고 말았다. 한 시대는 이렇게 흥망성쇠를 겪어나가지만 이러한 인간 세상의 세월은 고작 오백 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수령 육백 년 된 느티나무나 은행나무는 숱한 왕조가 뒤바뀌며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에도 자신의 한 생애를 굳건하게 지키며 살아 온 셈인 것이다. 태조가 세운 조선왕조 또한 얼마나 오랫동안 한 시대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신묘년 올해로 건국 이 백 주년을 맞게 되는 조선은 그동안 여러 차례 작은 전란은 있었지만 비교적 큰일 없이 태평성대를 이루어 왔다. 인간 세상에서는 한 세대가 삼십 여년에 불과하다. 그 한 세대만이라도 전쟁이 없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것이다.
그만큼 인간의 세상은 욕심과 광기가 지배하는 세상인 것이니 잠시라도 마음 편할 날이 있다면 다행중의 다행이요 하늘이 크게 돕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백 여년을 태평성대 할 수 있었던 조선시대야말로 하늘이 돕는 천운의 왕조가 아닌가.
그러나 역대 선왕들의 왕권에 얽힌 역사는 결코 평탄치만은 못했다. 이것은 인간의 욕심과 광기에 의해 만들어진 권력 내부의 혼란인 것이다.
조변석개(朝變夕改), 조불려석(朝不慮夕)한 인간 세상의 변화무쌍함은 모두가 부질없는 욕심과 광기 탓이니 우리는 곧은 절개와 고고한 기품으로 살아가는 저 하나의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지금 국운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암울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백 년을 이끌어 온 평화 시대가 어떤 국난을 정면으로 맞게 될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고난은 외부에서 찾아온 인간의 욕심이며 광기 때문이다. 최 입지 진주목사는 나뭇가지 사이로 비친 눈부신 하늘을 올려보면서도 생각이 시국에 미치자 마음이 산란하기만 했다.
산속에 불어드는 온화한 바람 소리도,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도, 계곡을 흘러가는 맑은 물소리조차 지금 그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왜놈들이 미쳐서 날뛰는 불안정한 대외정세 속에서 장차 조선의 국운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 것인가.
“영감마님, 조령주막에 잠시 머물렀다 가시면 어떨까 아뢰옵니다.”
관리가 갑자기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최 입지 진주목사는 정신이 깨어난 듯 상념 속에서 눈을 떴다.
“오, 그래. 조령주막에 도착했는가. 조령주막이라, 거 참 오랜만에 반가운 곳이네. 이곳에서 아예 하루 묵고 가세.”
최 입지 진주목사는 관리에게 이렇게 지시했다.
“네에, 그렇게 하신다면 저희들은 더 바랄게 없사옵니다. 잘 알겠사옵니다.”
관리는 희색이 만면해서 일행들에게 돌아가 이 사실을 알렸다. 오랜 시간 봇짐을 메고 오느라 지치고 고단해진 시종들은 투숙이라는 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사주경계를 하며 긴장하고 있던 두 명의 병졸도 긴장을 풀며 함께 기뻐했다. 그 모습을 말 위에 앉아 말없이 내려다보던 최 입지 진주목사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죽령주막. 이곳은 그에게 있어서 얼마나 감회가 새로운 곳인가. 숙헌과 동짓달 길고 긴 밤을 문학과 철학 얘기로 하얗게 지새우며 지냈던 추억이 머무는 곳이 아니던가. 과거 보러 가는 길에도 신유구와 함께 주막에 앉아 한 잔의 막걸리로 의기투합했던 추억이 있는 곳이다.
한양에 오고 갈 때마다 빠짐없이 들려서 쉬어 가는 죽령주막. 최 입지는 일행과 함께 말에서 내려서며 초가이엉으로 지붕을 올린 낮은 담장을 따라서 발길을 옮겼다. 주막집 참싸리 나뭇가지를 엮은 사립문은 사시사철 활짝 열어젖혀져 있다. 오고 가는 길손 어느 누구라도 기꺼이 환영한다는 뜻인 것이다. 최 입지 진주목사와 그 일행은 사립문을 통과해서 주막 안마당으로 들어섰다.
“이리 오너라, 게 아무도 없느냐?”
관리가 앞장서서 마당으로 나서더니 안채를 향해서 큰 소리로 주인을 불렀다. 비록 변방의 한직이지만 그래도 정3품의 고관이 출두하셨으니 예의를 갖추라는 뜻이었다.
“사또 나으리 납시었사옵니까.”
안채의 부엌문이 삐거덕거리며 열리더니 주모가 쏜살같이 튀어나와서는 일행 앞에 넙죽 고개를 숙였다.
“에그그, 사또라니. 진주목사 영감마님 납시었느니라.”
관리는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고, 그렇사옵니까. 소인네가 미처 몰라 뵈었사옵니다. 영감마님께서 여기까지 어인 행차시옵니까.”
주모는 황급하게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절을 올렸다.
“영감마님 납시었습니까.”
공주목사 일행이 안마당에 들어서자 행랑채 툇마루와 마당 한편에 세워진 원두막과 널평상에 앉아 있던 길손들이 너나없이 자리에서 웅성거리며 일어서더니 최 입지 진주목사와 일행을 향해 넙죽 인사를 올렸다.
“주모, 영감마님과 우리가 묵고 갈 테니, 방 좀 두 개만 내주소.”
관리가 주모를 보고 이렇게 말하자 주모는 급하게 안채와 행랑채 상황을 살피더니 일단 안채의 작은 방에 모인 사람들을 파리 쫒듯이 손으로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이보시게들, 영감마님께서 그 방에서 주무시고 가신다고 하시잖나? 냉큼 술상들 들고 널평상으로 나오시게나. 내가 새로 하나 깔아놓을 테니까. 어서들 서둘러.”
주모는 사람들을 닦달해서 마당으로 쫒아낸 다음 방바닥을 쓸고 닦으며 청소했다. 그러는 사이 최 입지 진주목사는 마당과 원두막 그리고 행랑채 여기저기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원두막을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들은 갓을 쓰고 도포를 갖추어 입은 선비 세 사람이었다. 그들은 탁주를 기울이며 한참 진지하게 열중하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진주목사 일행의 갑작스런 행차로 심기가 불편해진 그들은 힐끗거리며 일행의 행동거지를 살피느라 대화가 끊어진 상태였다.
행랑채에 딸린 세 개의 방과 긴 툇마루에도 사람들이 모여서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이 영남과 한양 사이를 오가며 비단이나 영남의 특산품 등을 팔러 다니는 객상(客商)이나 장돌림들이었다. 주모는 시중드는 아이를 시켜서 일행들이 머물 행랑채 한 곳을 비우고 청소하라고 불호령을 내리고 있었다.
민초들이 우글대는 장소에 고관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당황하게 되는 법이다. 변변한 일도 없는 양반의 자식들도 대접을 소홀히 하고 알아주지 않으면 성질을 내는 것이 조선의 계급사회인 만큼 관속들의 등장은 모두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소탈한 최 입지 진주목사의 경우라면 사정이 달랐다. 그는 격식과 예의를 굳이 남에게 강요하려는 권위주의가 없었다. 고관에서부터 평민에 이르기까지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려는 마음으로 살아온 때문이다. 더욱이 자신의 출신도 평범한 민초의 자제였으니 누구보다도 민초의 마음을 잘 헤아릴 수 있었다.
“진주목사 최 입지올시다. 주모. 날 알아보시겠소?”
눈에 익은 주모를 다시 만나게 되자 반가운 마음에 최 입지 진주목사는 이렇게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주모는 방을 훔치느라 굽혔던 고개를 살짝 쳐들고는 그를 유심히 쳐다보더니 곧바로 웃음을 환하게 밝히며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예, 일전에 이 숙헌 대감마님과 함께 기숙하시며 시문을 논하시던 영감마님 아니십니까?”
“그렇소, 용케 기억하시는 구료. 한양 오르는 길에도 잠시 들렸소만 그때는 못 보았소.”
“예, 그때 다녀가셨다는 얘기는 지아비를 통해 들은 바 있사옵니다. 안 그래도 다녀가셨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르옵니다. 참말로 반갑사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주모는 안채에 딸린 작은 방을 치우고 난 뒤 그에게 예의를 갖추며 정중하게 맞이했다.
방안에 자리 잡은 최 입지 진주목사는 관모를 단정하게 벗어놓고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씻어냈다. 팔월 중순이 지나자 무더위는 한 풀 꺾였지만 아직도 한낮의 태양은 땀이 불끈 솟게 뜨거웠다. 주모가 살짝 닫아놓고 간 방안은 바람이 통하지 않아서 후끈했다.
최 입지는 일단 방문부터 활짝 열어젖혔다. 늦은 오후로 접어들어 노릿해진 태양빛이 가득 들어 찬 주막 안마당에는 여러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밥을 먹고 급히 자리를 떠나는 사람, 술값을 치루겠다고 주모를 부르는 사람, 안주를 새롭게 주문하는 사람 등으로 안마당은 시끌벅적했다.
시종들은 관리를 도와서 노새에 실은 관물을 내려 행랑채 숙소 안으로 옮기고 있었다. 병졸 중 한 사람은 목사가 타고 온 말을 마방에 데리고 가서 여물을 먹이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조령을 넘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여름 날 늦은 오후의 부산한 안마당 풍경 속에서 최 입지 진주목사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어느 겨울날의 풍경을 떠올렸다. 선조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뜻을 상소하다가 오히려 동인과의 사이에 오해만 사고 그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던 숙헌과 이곳으로 와서 짧고도 긴 동숙을 한 것은 그가 죽기 이년 전 겨울이었다.
당시 최 입지는 조정의 친서를 지니고 명나라에 다녀 온 직후였다. 숙헌은 그의 절친한 벗이며 존경하는 스승이기도 했다. 숙헌이 몸종을 보내 최 입지를 보자고 했던 것은 사간원 안뜰에서였다.
때는 12월 중순 매서운 바람이 불고 날씨는 갈수록 추워지고 있었다. 어제 내린 눈으로 사간원 안뜰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서 영하의 날씨에 바삭하게 얼어붙고 있었다. 사간원 안뜰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얼어붙은 눈 위로 나무의 푸른 그림자가 사방으로 드리워진 모습이 아름답기 이를 데 없었다.
숙헌은 관복을 갖춰 입고 느티나무 아래서 흰 눈 위에 붓으로 그린 것처럼 푸른 나뭇가지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우두커니 내려다보며 찬바람과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대감, 어찌 이렇게 추운 곳에서 기다리고 계십니까. 차라리 대감 댁을 찾아가서 뵈올 걸 그랬나봅니다.”
약속 시간에 정확히 맞춰 나간다고 했지만 조금 늦어진 최 입지가 안쓰럽게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영감, 이 나무 좀 보게. 난 이 나무가 사람 같다네. 정직하고 우직하며 인내심은 말할 것도 없고 힘과 용기를 갖춘 장군 같아 보여.”
숙헌은 느닷없이 나무 얘기부터 꺼내놓았다. 두 사람이 말을 할 때마다 입에서는 저녁 짓는 연기처럼 입김이 피어올랐다.
“방금 대사간을 만나고 왔네. 다들 내가 서인이라도 된 듯이 야단들이라네. 동인과 서인 사이에 서서 어떻게든 양인을 화합시키려고 한 것이 오히려 분열만 조장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네. 이제 어떻게 마음을 정해야 할지 모르겠네. 왜 이렇게 분열이 된 건지. 그것이 정말 나로 인해서 그리 된 것이라면 나는 책임을 지고 조정을 떠나야 할 거야.”
숙헌은 양미간을 깊게 찌푸리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대감, 가당치도 않은 소립니다. 그들은 모든 책임을 대감에게 떠넘기려는 겁니다. 대감이 양인 사이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책임은 오히려 양쪽 두령들의 옹졸함과 편파적인 생각에 있는 겁니다.”
최 입지는 숙헌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숙헌은 덕망이 높고 학식이 깊으며 동서 양인의 충돌을 누구보다 가슴 아파하는 중용의 도의를 지닌 자였다.
“입지, 자네야 말로 내 진정한 벗이 아닌가. 머리도 식힐 겸해서 며칠 다녀올 때가 있는데 함께 가고 싶어서 이렇게 불렀네. 공무에 여념이 없다며 내 청을 물리칠 생각은 하지 말아주게나. 난 작정하고 계획을 세워둔 것이니까. 자네가 동행할 수 없다면 이번 여행은 아무 의미가 없을 걸세.”
“대감. 하필이면 이 추운 겨울에 여행이라뇨? 대체 어디로 가시려고 그럽니까.”
“조령주막에 가서 한 사나흘 묵다 오세. 문경새재에 지금 눈이 발목까지 뒤덮었으니 함부로 찾아올 사람도 없을 것이고, 우리가 간다고 이미 전갈을 보냈으니 그쪽에서도 다른 손님들은 받지도 않을 걸세.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거야. 어때, 좋은 생각 이지 않나?”
“대감도 참 엉뚱하십니다. 그곳까지 가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어쨌든 대감과 함께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준비는 되었습니다. 서둘러 갑시다.”
이 숙헌과 최 입지는 이렇게 의기투합하여 한 겨울에 이곳 조령주막까지 오게 된 것이다. 몸종들도 하나 따라붙지 못하게 하고 단지 둘이서만 산비탈 길을 잘 타고 오른다는 노새 두 마리에 몸을 의탁하고 이곳까지 달려 온 것이다.
겨울의 조령주막은 산사보다도 고요하고 아늑한 곳이다.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좌측의 주흘산과 우측의 조령산봉우리에 눈은 겨우내 뒤덮여 있었고 문경새재길 또한 인적이 끊어져 적막하기만 했다. 눈길 위에는 토끼나 쥐의 발자국이 찍혀있거나 때론 삵이나 호랑이 발자국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잎을 벗은 물푸레나무와 단풍나무들이 골짜기를 따라 늘어서 있고 그 사이로 겨울의 얼음장 같은 바람이 지나가면서 나뭇가지에 얹혀있던 눈을 낮에는 녹이고 밤에는 다시 얼려서 새벽녘과 해가 뜨기 전까지 만들어내는 가지의 눈꽃은 살벌한 장관이었다.
노새는 눈길에 미끄러지는 일도 없이 우리를 태우고 언덕길을 잘도 올라왔다. 털모자와 솜옷을 겹겹이 껴입고 장갑과 털신을 신었어도 산비탈에 경사지어 휘몰아치는 눈보라 날리는 얼음 바람에 차마 눈을 뜨기 어려웠고 양 볼은 감각을 잃어버릴 정도로 얼어붙어 버렸다. 조령관에 당도해서야 우리가 그동안 어렵지만 이곳까지 잘 찾아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우리가 온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던 주모는 등잔불을 밝혀들고 교구정 앞길까지 마중 나와 있었다. 교구정은 경상도에 새롭게 부임하는 관찰사가 이임 관찰사에게 관인을 인계받는 장소로 사용하는 작은 규모의 관가 소유의 별채였다.
한겨울의 교구정은 텅 비어있었고 창문이나 방문이 없이 대청마루가 환하게 뚫린 목조 구조물인지라 사방으로 찬바람이 흉흉한 소리를 내며 지나다니는 통에 더 없이 을씨년스럽게 보였다. 산골에는 해가 일찍 저물어 늦은 오후지만 밤중처럼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뒤로 업고 노새 위에 눈사람처럼 굳은 두 노인네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나자 주모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령주막 안채에 우리가 머물 방안은 훈훈했고 방바닥은 설설 끓었다. 주모의 남편이 온종일 군불을 지펴놨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동안 추위와 싸우며 산길을 헤치고 온 두 사람은 방안에 들어오자마자 긴장이 풀리면서 얼어붙었던 몸이 녹느라고 옷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다.
얼어붙은 양쪽 볼이 녹을 때는 볼때기 살이 간질간질해져서 두 사람은 부스럼이라도 되는 듯 연신 볼을 긁어댔고, 상대방의 뻘건 볼 살을 바라보며 불에 올려 진 새우처럼 변했다며 웃었다.
주모는 각종 한약재를 넣어 오랜 시간 삶아낸 찜닭 한 마리와 뜨겁게 데운 소주를 내왔다. 주막에 찾아온 손님 중에 주상 전하를 제외한다면 가장 높은 어르신들이 이곳에 손님으로 찾아 온 것이니 주모는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던 중에 뜨거운 소주를 입 속에 털어 넣으니 술기운은 식도를 타고 위장까지 단숨에 짜릿하게 전해졌고 거기에다가 김이 펄펄 나고 인삼향이 그윽한 찜닭 한 조각을 입속에서 우물우물 씹어 삼키니 이 세상에 이런 호사가 어디 있겠나 싶어 두 사람은 늙수그레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악동들처럼 낄낄대며 웃었다.
죽령주막에서의 길고도 짧은 동숙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날밤은 두 사람 모두 깊은 잠에 취해 있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아침 햇살이 방문을 환하게 두드릴 때서야 그들은 잠에서 깼다. 주모는 부엌에서 열심히 불을 때며 조식거리를 준비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지게에 마른 나뭇가지를 한 짐 해다가 마당에 부려놓고 있었다. 마당에 소복한 눈은 한쪽으로 잘 쓸어서 모아 놓아져있었다.
숙헌과 최 입지는 서늘한 산골의 맑은 아침 공기를 들이마시며 툇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주모가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담아 수건과 함께 대청마루에 갖다놓았다.
“대감마님, 밤새 편안하셨는지요. 세안 물을 대령했사옵니다. 곧 조식을 올리겠나이다.”
주모가 허리를 깊이 숙이며 정중하게 문안 인사를 올렸다.
“아랫목이 뜨뜻해서 추운 줄도 모르고 깊은 잠을 잤구료. 주모도 잘 주무셨는가?”
숙헌은 뒤얽힌 수염을 가지런히 손으로 쓰다듬으며 주모의 인사에 답했다.
“예, 소인네도 편히 잘 잤습니다.”
주모가 인사를 하고 부엌으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그녀의 남편이 다가와서 인사를 올렸다.
“밤새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군불은 충분히 땠지만 웃바람에 춥지는 않으셨는지요.”
“자네가 군불을 잘 살려줘서 우리가 호강했네. 수고가 많았네.”
이번에는 최 입지가 이렇게 남편의 인사를 받고는 대청으로 가더니 물이 든 대야를 들고 와서 숙헌에게 건넸다.
“대감, 먼저 세안하시지요. 나는 새로 갖다 쓸 것이외다.”
숙헌이 세안을 하는 사이에 최 입지는 수건을 들고 옆에 지키고 서 있었다. 행랑채에 딸린 부엌에서는 남편이 솥을 걸어놓고 노새가 먹게 될 여물죽을 끓이고 있었다. 솥에서 펄펄 김이 솟아올라 마당을 거쳐 마방에까지 이르자 구수한 냄새에 식욕을 느낀 노새 두 마리가 콧김을 씩씩 내뿜으며 여물통 앞을 떠나지 않고 서성대고 있었다.
숙헌이 세안을 마치자 때맞춰 주모가 새로운 대야에 물을 담아 들고 왔다. 최 입지도 새 대야에 든 물로 얼굴을 씻었다. 최 입지가 세안 하고 있는 동안에 숙헌도 역시 수건을 들고 벗의 옆을 지키고 서있었다.
숙헌은 최 입지보다 세 살이 위인 마흔 여섯이었다. 나이를 불문하고 숙헌은 최 입지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 입지의 입장에서는 지위나 학력으로 보아 자신 보다 월등한 숙헌을 존경하는 스승으로 대했다.
숙헌은 그런 의례가 늘 둘 사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마고우처럼, 동고동락한 친구처럼 허물없이 자신을 대해주고 자유롭게 속내를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한 관계이기를 고대했던 것이다.
물론 숙헌의 이런 마음을 잘 헤아리고 있는 최 입지는 이따금 농담도 건네면서 스스럼없이 대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친한 벗일수록 예의를 갖추고 격식을 따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최 입지는 되도록 신중한 태도로 숙헌을 대했다.
세안을 마친 두 사람이 방안에 들어가 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모가 조반상을 내왔다.
“대감마님, 소인네가 반찬 솜씨가 부족하여 혹여 입맛에 안 맞으실까 우려되옵니다. 그래도 차린 정성을 봐서 맛있게 들어주시옵소서.”
“반상을 보아하니 빛깔도 곱고 냄새는 더 좋아 절로 식욕이 당기는 구료. 주모의 음식 솜씨야 이 고을 최고라 듣고 있으니 맛은 더할 나위 없으리라.”
숙헌은 놋그릇 안에 담긴 밥과 국, 각종 반찬을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며 찬탄을 했다.
“대감마님, 과찬의 말씀에 소인네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그저 민망할 따름이옵니다.”
주모는 숙헌의 칭찬에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자리에서 물러났다. 최 입지는 숙헌의 칭찬이 허튼 소리가 아니었음을 금방 확인 할 수 있었다. 차려진 음식 하나하나가 정성스럽고 정갈한 맛이 있었다. 여염집의 아낙네 솜씨라고 믿기 어렵게 음식마다 고유의 풍미를 골고루 갖추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조반을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주모는 숭늉그릇을 들고 왔다.
교자상 위에 차려놓은 음식 대부분이 비워져 있는 것을 본 주모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대감마님, 더 필요한 것은 없으신지요. 말씀만 해주시면 소인이 더 가져다 놓겠사옵니다.”
“주모, 물그릇은 거기다 놓고 이쪽으로 와서 앉아보시게나. 긴히 할 말이 있소이다.”
숙헌은 자신의 옆 자리를 가리키며 주모에게 다가와 앉도록 지시했다. 부끄럽고 주저하는 마음으로 숙헌의 옆에 사뿐히 내려앉자 그가 주모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주모, 궁내 전향사에 와서 일해 볼 생각은 없소? 입궁할 뜻이 있다면 적극 천거해 주리다.”
“대감마님, 아뢰옵기 송구합니다만. 소인네가 죽령주막을 십 년 째 도맡아 하고 있는 것은 사대부의 자손이나 천민의 자손을 막론하고 이곳에 찾아 온 모든 손님들에게 공평한 대접을 해 올리자고 하는 일이옵니다. 궁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어느 한 편만을 위해 봉직하는 일이니 제 뜻과는 다른 줄 아룁니다.”
여염집 아낙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소신 있게 답변하는 그녀를 보고 두 사람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산은 물을 부러워하지 않고 물 또한 산을 탐내지 않으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이다. 조반 잘 먹고 실례를 범했구료. 주모처럼 욕심이 없다면 무슨 다툼이 있을 것이며, 편을 갈라 분열할 일도 없을 테니. 부디 철없는 영감의 실언은 잊어버리시게. 허, 허, 허.”
숙헌은 겸연쩍어 하면서 자신이 했던 제안을 거두었다. 최 입지는 미안한 눈빛으로 고개를 못 드는 주모를 향해 물었다.
“요즘도 호환을 당하는 자가 있습니까? 듣자하니 조령산에 백호가 산다는 소문이 돌던데.”
다른 얘기로 어색한 상황을 환기시켜 보려고 최 입지가 느닷없이 꺼낸 질문이었다.
“대감마님, 호랑이가 영물인데 분별없이 사람을 해칠 수는 없지요.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호랑이 발자국이라는 것이 삵의 발자국이 아닌가 싶습니다. 태종 시대에는 가끔씩 호환을 당하는 사람이 있다고 전합니다만 지금은 헛소문에 불과하다고 소인네는 사려 되옵니다.”
주모는 자신의 견해를 또렷이 밝혔다. 이 여인이야말로 심산유곡에 은둔한 현자가 아닌가 싶었다. 비록 여인의 몸이지만 세속적 기준을 넘어서서 망령되게 행동하지 않으며 헛된 소문에 이끌려 다니지 않는, 더군다나 자신의 의견과 소신대로 삶을 살아가는 군자가 아닌가.
주모는 자신이 들은 옛 선인들의 전설에 관해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내놓았다.
“소인네가 요즘 호환이 없을 거라고 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답니다. 죽령 길을 내던 시절 그러니까 태종 때 있었던 일화를 알고 계시옵니까?”
“우리야 여기 사람이 아니니까 이 지방에서 내려오는 전설은 잘 알지 못하지.”
“그렇다면 소인네가 알고 있는 전설을 말씀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무슨 얘긴지 듣고 싶네. 어서 얘기 해 보시게나.”
숙헌이 이렇게 관심을 보이자 주모는 흥이 나는 듯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태종께서 집권하시며 한참 조령 길을 개척하고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문경현감이 조정에 상계(上啓)해야 할 중요한 문건이 있었지요. 문경현감은 새재를 넘어 요성역까지 문서를 전달할 역졸 한 사람을 역졸 가운데서도 가장 기골이 장대하고 발이 빠른 자를 골라서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임무를 받은 역졸이 새재를 넘어가는데 중간쯤에서 그만 호랑이를 만나게 되었답니다. 힘깨나 쓴다는 역졸이었지만 맹수를 당해낼 수는 없어 그만 죽임을 당하고 말았지요.
이렇게 된 줄도 모르는 문경현감은 한양에서 공문에 대한 답문이 오기만을 목이 빠지라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조정에서는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으니 그 이유를 밝히라는 공문이 내려왔답니다.
그때서야 비로써 일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문경현감이 서둘러 심부름을 보냈던 역졸의 행방을 찾으니, 그 역졸은 지금까지 귀임하지 않았고 행방불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답니다. 문경현감은 이런 사실을 즉각 보고하지 않은 관리들을 엄하게 문책하고 군사를 풀어 새재 곳곳을 뒤졌더니 마침내 죽은 역졸의 뼈만 남은 시체와 함께 행장 속에 든 전달되지 못한 장계(壯啓)를 찾을 수 있었답니다.
문경현감은 일이 지연된 사건의 경위를 조정에 보고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태종께서는 몹시 분노하시면서 봉명사를 시켜 문경새재 산신령을 잡아오라는 명을 내리셨답니다. 어명을 받은 봉명사가 문경새재에 도착은 하였지만 어떻게 산신령을 잡아야 할지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봉명사는 생각 끝에 궁여지책이지만 새재 산신각에서 제사를 올리고 제문을 지어 호환을 일으킨 산신령의 여죄를 묻고 제문을 불태운 다음 가까운 절인 혜국사에 머물면서 혹시라도 있을 산신령의 회답을 무작정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삼경쯤 잠을 뒤척이고 있던 봉명사의 귓가에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잠잠해지더랍니다. 다음 날 봉명사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산신각을 찾아갔더니 집채만 한 거대한 호랑이 한 마리가 산신각 앞에 죽어있더랍니다.
봉명사는 산신령의 회답임을 알아차리고 그 즉시 호랑이 가죽을 벗겨 태종께 진상하고 그간의 경위를 보고했답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는 호랑이가 행인을 습격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는 전설이옵니다.
그런데 그 뒤로 한참이 지난 뒤에 조정대신 전진공이라는 분이 혜국사에 잠시 유숙하고 있었는데 그날 밤 그의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서 전하기를 아직 국가로부터 면죄를 받지 못했으니 국왕께 상소하여 억울한 나의 죄를 사면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태종께 전진공이라는 자가 산신령을 대신하여 사죄상소를 올렸더니 태종께서 친히 하회하여 산신령의 죄를 사하였다고 하는 전설입니다.”
주모는 조령 길에 얽힌 전설을 담담하게 들려주었다.
“흠....... 산신령은 이 땅에 살다간 선조들 가운데 성정(性情)이 고결하고, 절개가 곧은 사자(死者)의 이명(異名)이 아닐까 생각했었소. 헌데 정작 주모의 얘기를 들으니 과연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는 구료. 산신령도 국토의 수호령으로써 엄연히 국주의 법도를 따라야 하는 것이니 면죄를 받지 않고는 평생 죄책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오. 국법을 무시하고 책임을 회피하는 이 시대에 큰 가르침을 주는 전설이라 생각하오.”
숙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모가 들려 준 얘기를 곱씹고 있었다.
“대청마루에 걸려있는 거문고를 보았소만, 그것은 누구의 것인지? 혹시, 주모...”
최 입지는 대청마루에 대야를 가지러 갔다가 보게 된 거문고 생각이 나서 주모에게 넌지시 물었다.
“예, 소인네가 젊은 시절에 예악에 관심이 있어 배워두었던 현금이옵니다.”
“오, 역시 그랬군. 기회가 되면 한번 들려줄 수 있겠소?”
“지금 당장은 곤란 하옵고, 석찬을 물리고 나시면 그때 기회를 봐서 미약한 재주지만 연주해보겠나이다.”
“오, 그래주겠소. 대단히 기대가 되오. 안 그렇습니까, 대감?”
“어서 해가 저물기를 바라야겠는걸. 허, 허. 허.”
조반을 물리고 최 입지와 숙헌은 산책할 채비를 차렸다. 솜바지와 솜저고리를 입고 소모자까지 쓰니 웬만한 찬바람에도 견딜 만 했다. 신발 안감에 솜을 덧댄 겨울용 목화를 신고 마당에 나서자 마방에서 노새를 돌보고 있던 주모의 남편이 다가왔다.
“대감마님들 어디 행차하시렵니까?”
“이 근처를 좀 둘러볼까 해서 나왔소.”
“눈이 많이 쌓여 있으니 설피를 갖다 드리겠사옵니다.”
주모의 남편은 헛간 쪽으로 가더니 설피 두 짝을 꺼내들고 와서는 두 사람 신발에 일일이 덮씌워주었다.
“좀 무겁고 불편해 보여도 눈 쌓인 곳은 신발이 빠져서 고생스러우니 신고 가시옵소서.”
“고맙네.”
두 사람은 설피를 신은 탓인지 거위처럼 뒤뚱거리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주막을 벗어나와 산길을 향해 나섰다. 산골의 겨울 아침은 맑고 투명했다. 공기는 차갑지만 티끌하나 없는 옥과 같았다.
찬란한 햇빛은 얼음처럼 투명한 허공을 가로질러 산과 골짜기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숙헌과 최 입지는 고개를 들어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여섯 개의 봉우리를 바라봤다.
얼마 전에 내린 눈으로 봉우리는 하얗게 덮여 있었고 비탈진 숲에 가득한 겨울나무와 창백한 잎을 단 소나무, 잣나무 등이 눈을 가지에 입고 고요히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골짜기를 세차게 흘러내리던 물도 두껍게 얼음이 언 채로 그 위에 소복하게 흰 눈을 덮었다.
설피를 신은 발은 눈 위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겼다. 두 사람은 아무도 밟지 않은 새하얀 눈밭을 지나 눈처럼 흰 줄기를 곧게 뻗어 올린 자작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가느다란 자작나무 가지에는 잔설이 남아 얼어붙은 채 눈꽃을 만들어 화려한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흰 눈에 덮인 산천은 우리네 민의(民意)처럼 하얗고
설화(雪花)에 맺혀 흐르는 옥로(玉露)는 백성의 눈물인가
시름을 모르는 하늘은 홀로 높고 푸르건만
발밑에 밟히는 눈은 탄식하듯 푸석이네
숙헌은 자작나무 숲을 거닐며 시문을 읊조렸고, 이에 화답하듯 최 입지도 시를 지었다.
문경새재 넘는 새야 산봉우리 높다 한탄마라
고난을 넘어 선 마음은 산봉우리 내려다본다
조국강산 덮은 눈아 숨긴 거짓 자랑마라
위선으로 숨긴 마음이야 봄이 오면 드러나리
자작나무 가지에 앉은 오목눈이 한 쌍이 서로의 깃을 다듬어주며 다정하게 놀고 있었다. 하얀 눈밭에 길게 드리워진 자작나무 푸른 그림자 사이로 까치 여러 마리가 내려앉아 담소를 나누는 듯 깍깍대고 있었고 조령산 봉우리 위의 하늘에는 솔개 한 마리가 큰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사람만이 이 땅에 주인인 듯 행세하지 산새들은 저토록 무심한데. 오랜만에 조정에서의 번잡한 공사를 피할 수 있어 마음이 홀가분하네.”
숙헌은 솔개의 비행을 눈여겨 바라보면서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가급적 빠른 시일 안에 성상께 사직소를 올리고 자연으로 돌아와야겠어. 이처럼 고요한 자연을 놔두고 어디서 영달(榮達)을 누리려 했단 말인가.”
최 입지는 숙헌의 이 말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저 숙헌이 바라보듯 고개를 들어 산봉우리 가까운 하늘에서 타원을 그리며 날아다니는 솔개를 바라봤다.
그도 얼마나 많은 사직소를 올렸던가. 성상의 은혜를 과분하게 입었다고 생각하며 높은 봉직에 오를 때마다 자신을 낮추어 외직에 보임되기를 체면(遞免)했던 것이다. 가장 위에 선 자는 늘 누군가의 가슴을 딛고 있으며 이류의 자에게 있어 근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러움이 지나치면 질투가 되고 질투는 원한을 낳게 되니 앞선 자보다는 자의적으로 뒤에 선 자가 현명한 자가 아닌가. 그래서 최 입지는 늘 이류에 머물기를 원했다. 남의 가슴을 밟고 성장하기보다는 내 도량 밭에 저들이 뿌리를 내리고 유세(有勢)하기를 허용해 온 것이다.
숙헌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지금 조정의 막강한 실력자이고 성상과 가장 가까운 권력의 우두머리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권력의 그늘에 가려지는 걸 거부했다.
그는 자기의 머리 위로 자연의 태양빛이 환히 비추기를 원했지 성상의 그림자가 막아서주길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적이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이 적을 적으로써 인정하지 않으면 적은 없는 것이다.
권력과 지위를 노리는 모리배나 성은을 입으려는 간신들은 언제나 성상의 그늘이 자신을 가려주길 바라고 음지에서 힘을 키우려고 애를 쓰는 종자들이다. 숙헌은 저들이 그런다고 한들 저들을 적으로 인정하는 법이 없으니 적들도 전의를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숙헌은 오히려 적과 적을 화합 시키고 중재하려고 노력을 거듭해 왔다. 그렇지만 그런 노력은 양측의 오해와 비난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최 입지는 숙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숙헌은 이제 지치고 피로한 것이다. 그는 본래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다.
후학을 양성하고 백성과 친교하며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사는 일. 그것이 숙헌이나 최 입지가 생각하는 선비의 도리이고 군자의 정도였다. 배운 자들은 못 배운 자들에게 배운 것을 나눠주어야 한다.
많이 가진 자는 빈궁한 자들을 위해 곡간의 열쇠를 내주어야 함도 당연한 것이다. 누군가가 재물과 곡식을 많이 쌓아놓은 것은 누군가의 곡간을 비게 한 원인일 수 있다. 토지가 생산할 수 있는 양은 일정한 것이다. 분배의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면 이런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많이 가진 자는 누군가의 재산과 양식을 절취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부귀와 영화를 누리는 일류의 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재산을 지키려 하기 보다는 재산을 덜어내어 이류의 원한을 사지 않도록 경계할 일이다.
분배의 정의를 바로세우는 것은 일류인 자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만일 민란이나 전란이 일어나게 되면 일류의 자는 언제나 적개심의 대상으로 지목되어 가진 재산 모두를 빼앗길 뿐 아니라 원한에 의해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숙헌이나 최 입지는 여전히 부귀를 모르는 검소한 살림을 꾸려나가고 있다. 특히 최 입지의 경우는 가난하다. 글을 짓고 싶어도 문방제구를 살 돈이 없어 글을 못 쓸 정도이다.
선조대왕의 은덕아래 태평성대는 이루었지만 여전히 조선의 백성들은 가난하고 무식하다. 이런 조선의 현실 속에 공직자의 신분을 가졌다고 해서 부귀하다면 그런 자는 사욕을 채우기 위해 간계를 꾸미는 영악한 자임에 분명하다.
공직자란 백성의 녹을 먹고 백성의 일을 돌보는 사람에 불과한 것이다. 백성이 가진 것을 내놓지 않으면 공직자는 생존할 수 없다. 공직자는 오히려 백성을 섬겨야 한다. 자신을 살려주는 소중한 존재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도리는 거꾸로 뒤집혀서 흘러간다. 백성을 지배하고 자기 발밑에 누이려고 하는 공직자가 거의 대부분이다. 백성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백성을 업신여긴다. 공직이 봉사직임을 모르고 권력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주무르고 있는 공금이 백성의 돈이 아니고 권력의 재산쯤으로 파악한다. 그 때문에 공금이 횡령 당하거나 헛된 공사비로 낭비되고 있다. 권력의 재산이라 생각하니 권력이 강하고 지위가 높을수록 자신의 재산으로 착각하는 사례가 공공연하게 일어난다.
숙헌과 최 입지는 성상께서 하사한 녹봉 이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공직자들이 녹봉만으로 살아간다면 실상 그들의 살림은 일반 백성들 보다 나을 것이 없다. 공직자들에게 주어지는 녹봉이란 백성들의 곳간에서 나온 것이니 의당하다 할 것이다.
두 사람은 교구정 앞마당에 있는 용추에 이르렀다. 팔왕과 선녀가 어울렸다고 하는 전설을 지닌 용추에서 백성들은 지역에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제를 올리며 하늘에 기원했다. 특히 여름에 가뭄이 심하게 들면 이곳에서 관찰사를 위시한 농민들이 모여서 기우제를 지냈다.
숙헌과 최 입지는 얼어붙은 소(沼)인 용추를 향해서 고개를 숙였다. 숙헌은 동서 양인의 분열이 화합으로 전환되기를 빌었고, 최 입지는 왜적의 침입으로 나라에 큰 환란이 일어나지 않기를 기원했다.
두 사람은 죽령 제 이 관문인 조곡관을 지나 조곡폭포에 도착했다. 폭포 물은 거대한 얼음기둥 모양으로 얼어붙어 있었다. 국토의 대동혈맥인 백두대간에는 강물의 발원지인 천수(泉水)가 골짜기마다 솟아나고 있었다.
흘러가는 모든 물은 샘에서 출발한다. 산의 음기가 집중되는 이곳에서 솟구쳐 나오는 물줄기는 산과 산 사이에 골을 만들면서 흘러내려 간다. 사계절 언제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물은 산의 생명력이요 뿌리 깊은 기운이다.
어떤 샘도 솟아오르는 물의 기운을 멈추는 법이 없다. 겨울의 추위가 물을 얼어붙게 한다 해도 솟아나는 물은 굳어질 수가 없다. 천수의 흐름이 끊어진다면 산은 기운을 잃고 산에 의지해 살아가는 생명체도 괴멸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산이 만들어진 이래로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천수를 품은 산은 영원한 모성의 활력이며 신비인 것이다. 두꺼운 얼음 층 아래 샘은 따뜻한 생기를 내뿜으며 솟아오르고 있고 쉼 없이 물줄기를 아래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골짜기의 물이 꽝꽝 얼어붙고 마치 정지된 것같이 보이지만 얼음 층 밑바닥에는 흐르는 물줄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물의 유연한 흐름은 우주의 리듬과 같은 것이다. 영원히 멈출 수 없는 생명의 리듬, 그것이 바로 물의 흐름인 것이다.
숙헌과 최 입지는 폭포수의 얼음 기둥 안쪽으로 물줄기가 낮은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다. 용소는 두껍게 얼음이 얼었고 그 위로 눈이 내려쌓여서 작은 마당을 이루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용소의 얼음 층을 밟으며 폭포로 접근했다.
얼음기둥 안에서 가물거리면서도 생명의 불꽃을 꺼트리지 않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얼어붙는 추위에 맞서 결코 멈출 수 없는 물의 생동하는 기운을 가까이 느끼기 위해서 다가가고 있는 것이다. 수맥은 국토의 혈맥과 같다. 물의 흐름과 순환이 없다면 국토는 피폐해지고 대지 위에 존재하는 생명들은 고사할 것이다.
인체의 칠 할 이상이 물인 것과 같이 국토의 칠 할 이상이 물로써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피가 혈관을 타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순환하며 몸 안의 노폐물을 내보내고 몸 밖의 산소를 실어 나르듯 국토의 수맥을 흐르며 순환하는 물은 땅위의 모든 생명체를 살아있게 하는 기운이며 힘의 원천인 것이다.
두 사람은 거대한 얼음 기둥 앞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여 본다. 국토의 생명력인 물소리가 얼음의 두꺼운 벽을 통과하여 그들의 귀에까지 생명의 파동을 전달하고 있었다.
얼어붙은 용소 한 가운데에 말없이 선 두 사람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깊은 고독과 침묵이 폭포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눈에 덮인 세상은 본래 더욱 고요한 것이다. 눈이 내리는 날에는 주위가 먼저 조용히 소리를 낮춘다. 눈이 내릴 때에는 더욱 소리가 낮아지고 눈이 그치고 세상이 눈에 덮였을 때는 고적감이 극에 달하는 것이다.
더욱이 산중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평상시에도 지나가는 바람소리와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산새의 울음소리 외에는 조용할 뿐인 이곳이다. 이런 곳에 눈이 깊이 내려 쌓이니 지나가는 바람도 소리를 죽이고 잎이 다 떨어진 겨울 텅 빈 가지에는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조차 낼 수 없으니 그저 고요하다. 이따금 소나무에 쌓인 눈이 털썩하며 가지에 인 눈의 무게를 못 이겨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산봉우리 위의 하늘을 날고 있는 솔개는 타고난 시력으로 산 아래 아득히 먼 곳에 두 개의 검은 점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미물이 사람인 것을 알아차린 솔개는 자신들의 먹이가 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하며 다른 먹잇감을 찾아 눈알을 굴릴 것이다.
눈을 가지에 인 많은 나무들과 깊숙이 몸을 감춘 산짐승들과 사람이 세운 보잘 것 없는 구조물들 그리고 눈에 잘 띄지도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높은 곳에 있는 솔개는 여유롭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높이 나는 솔개는 세상을 보고
낮게 나는 박새는 일신(一身)만 안다
높게 멀리 내다보는 새의 고독을
낮게 떠들어대는 세간의 잡새들은 알까
설피를 신은 어색한 발걸음으로 주막을 향해 들어서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건 주막에서 잔심부름하며 시중드는 아이였다.
“대감마님, 산책 다녀오셨사옵니까.”
“오, 그래. 수재로구나.”
숙헌은 아이를 잘 알고 있는 듯 반겼다. 두 사람이 안채 툇마루에 앉자 아이는 재빨리 달려와서 두 사람의 설피를 벗겨내 주었다.
“대감마님, 한양에도 눈이 많이 왔사옵니까? 여기는 그저께 내린 폭설로 이렇게 눈이 많이 쌓였사옵니다.”
“오, 그래. 한양에도 눈은 내렸단다. 그렇지만 여기처럼 많이 오진 않았구나.”
설피를 벗기려고 고개를 숙인 아이의 더벅머리를 쓰다듬으며 숙헌은 다정하게 말했다. 아이를 대하는 숙헌의 태도는 자상한 아버지와 같은 인자한 모습이었다. 오 수재는 부모에게서 버림받은 고아였다. 주모가 젊은 시절 출입했던 기방 주인이 업둥이 인 수재를 받아 키웠다.
다행히도 강보에 싸인 아이의 품에는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 및 시가 적혀 있었다. 그것마저 없는 채 버려졌다면 아이는 근본도 없는 천애의 고아가 되었을 것이다.
아이는 여러 명의 기녀들이 서로 돌아가며 보살펴 주었다. 특히 주모가 아이를 정성스럽게 자기 자식처럼 돌봐주었다. 기방에서 조령주막으로 나올 때 기방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의 환경을 염려한 주모는 주인의 허락을 받아 오 수재를 데리고 나왔다.
아이는 이곳으로 옮겨져 산골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건강하고 자유롭게 자랐다. 주모는 아이를 마음껏 뛰놀게 놔두었다. 아이는 산으로 들로 숲으로 다니면서 대자연의 생명력을 마음껏 흡기(吸氣)했다. 자작나무 숲에선 새의 노랫소리를 들었고 수풀을 뛰어다니며 마주치는 작은 벌레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골짜기에 흘러내리는 물소리를 들으며 헤엄치고 놀다가 지치면 물가 마당바위에 앉아 온몸에 가득 쏟아져 내리는 햇볕을 받으며 휴식을 취했다. 바위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면 바다처럼 파란 하늘은 눈이 시렸고 간간이 떠도는 뭉게구름은 염소도 되었다가 호랑이도 되었다가 의붓어머니의 얼굴이 되기도 하는 등 천변만화 하는 요술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받는 정서적인 영향은 자연을 보고 듣고 느끼는 데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었다. 조령주막을 거쳐 가는 숱한 사람들의 언행을 듣고 보면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춘추의 가절 깊은 달밤에 기숙하던 사대부 선비들이 시문을 짓고 거문고 가락에 맞춰 낭송하는 모습을 보며 시정을 느꼈다.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객상이나 장돌림들이 주고받는 세상 얘기를 들으면서 조령산골 저 너머 또 다른 세상을 상상하고 동경했다.
아이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들 모두에게서 정서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나 어느덧 열 두 살의 더벅머리 소년이 되었던 것이다. 숙헌은 아이의 성장하는 모습을 간간이 보아왔었다. 숙헌은 이 아이가 비범하다고 여겼고 틈이 나는 대로 아이를 불러 성현의 일문(逸文)을 들려주고 그 뜻을 해설해주었다.
그러면 총명한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장의 의미를 되새겼고 더러는 행간에 숨은 뜻까지 읽어내는 발언을 하여 숙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수재야, 그동안 무엇을 하며 지냈느냐? 일전에 보낸 서책은 읽어 보았느냐?”
“예, 대감마님. 주옥같은 성현의 말씀 가슴에 새겨가고 있사옵니다.”
“오, 그래. 참으로 훌륭하구나. 기억이 나는 구절이 있다면 말해주겠느냐?”
“학이불사즉망(學而不思卽罔) 사이불학즉태(思而不學卽殆)라고 성현께선 말씀하셨사옵니다.”
“오, 그래. 그 말의 뜻을 풀이해 보겠느냐?”
“학이불사즉망, 배우기만 하고 생각이 없으면 남는 것이 없고. 사이불학즉태, 생각만하고 배움이 없으면 위태롭다는 말씀이옵니다. 배움과 생각을 적절히 해서 중용의 도리를 깨우치라는 의미로 해석하였사옵니다.”
산골 소년 열두 살 먹은 오 수재라는 아이의 입에서 거침없이 논어의 명문(銘文)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 입지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아이는 글귀의 풀이만이 아니라 자신의 견해까지 또렷이 밝히는 것이다. 아이의 총명함에 마음을 빼앗긴 숙헌은 조용히 아이에게 물었다.
“지금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 있느냐? 급한 일이 없다면 너와 더 많은 공부를 해보고 싶구나.”
아이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에 숙소로 찾아뵙겠다고 답변하고는 안채에 딸린 부엌으로 가서 주모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다. 곧 이어 다기를 담은 찻상을 들고 두 사람의 숙소로 아이가 들어왔다.
차를 준비해 온 아이를 보고 숙헌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행랑을 뒤지더니 궁중에서 가져온 기름종이에 싼 한과를 내놓았다. 아이는 다관에 든 찻물을 찻잔에 돌려가며 따르더니 공손하게 두 사람 앞에 내밀었다.
아이의 태도를 지켜보던 최 입지는 이 아이가 뼈대 있는 양반 집안의 자손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자체가 망단(妄斷)이라고 반성하며, 산골 주막의 시중드는 아이의 신분으로써 저렇게 예절바르고 고상한 자태를 내뿜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황홀해져서 바라볼 뿐이었다.
숙헌은 한과를 집어서는 다정하게 아이의 손에 건네주었다. 아이는 쉽게 맛 볼 수 없는 궁중 유과를 맛있게 음미하며 아이 특유의 해맑은 웃음을 지었다.
“송홧가루로 만든 것인데 소나무의 고유한 풍미가 느껴지느냐?”
“예, 대감마님. 봄철에는 소나무 꽃을 따먹으러 산으로 다니기도 했는데 그때 먹던 수꽃의 향과 맛이 여기서도 느껴지옵니다.”
“오, 그래. 수꽃이 활짝 펴서 터지면 그게 바로 꽃가루인 송홧가루가 되는 거지. 허, 허, 허.”
“우리나라에는 소나무가 많아서 오월이 되면 바람을 타고 산 여기저기에서 노랗게 송홧가루가 날리는 장관을 볼 수 있사옵니다. 수분되지 않은 꽃가루들이 계곡물을 타고 흘러내려오면 물이 노랗게 보일 정도입니다.”
“그렇지. 나도 궁중에서 봄볕을 쬐러 조정으로 나와 보면 마당 여기저기에 서 있는 소나무에서 노란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보았단다. 때론 옷에도 묻고 얼굴에도 묻어나더구나. 꽃가루가 코에 들어가면 기침도 나고 눈에 들어가면 눈물도 나오지 않더냐. 그렇지만 버드나무의 솜털 달린 열매가 날리는 것보다는 한결 운치가 있지 않나 싶다.”
“예, 저희 어머니께서도 버드나무 솜털 열매는 질색하십니다. 히, 히.”
아이는 가지런한 흰 이빨을 드러내고 아이다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아이는 주모를 어머니로 여기는 것 같았다. 비록 낳지는 않았지만 키운 정성도 대단한 것이니 당연히 모친으로 생각해도 될 법 했다.
최 입지는 아이와 주모 사이의 관계를 숙헌에게 나중에야 듣게 되었으니 당장은 아이가 주모의 친자(親子)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과자를 맛있게 먹었다. 산골에서는 구경할 수도 없는 과자인지라 시종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주 조금씩 과자를 아껴 먹으며 맛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학습한 내용 중에 또 생각나는 구절이 있으면 얘기해 줄 수 있겠느냐?”
숙헌은 아이의 더벅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면서 각별한 애정을 담은 눈길로 말했다.
“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이(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이라고 성현께선 말씀하셨사옵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이미 배운 것은 잘 익히고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면 가이위사이(可以爲師矣)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면 아는 지식은 복습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을 배워나가야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사옵니다.”
“오, 그래. 성현의 문의(文意)를 정확하게 간파했구나. 아주 훌륭하다. 올바른 스승은 늘 자기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 배우는 제자보다 가르치는 스승이 더 열심히 면학에 힘써야 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다. 허, 허, 허.”
숙헌은 아이의 거침없는 답변에 놀라워하면서 대견하여 어쩔 줄 몰라 했다. 최 입지도 아이의 영특함을 보고 마음 깊이 탄성을 올리고 있었다. 이런 벽촌에 나라의 희망이 숨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서당에 다녀 본 일도 없고 오며 가며 당대의 대 학자인 숙헌을 보며 사숙(私淑)해 온 아이다.
“군자무본 본립이도생(君子務本 本立而道生)이라고 성현께선 또한 말씀하셨사옵니다. 군자무본(君子務本) 군자는 기본에 힘쓴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 기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라고 읽었사옵니다. 무릇 군자라면 기본이 바로 서야하는 법이고 기본이 바로 서야 도리를 알게 된다고 생각했사옵니다.”
“오, 그래. 학문의 목적은 사람의 기본을 세우려는 것에 있다. 기본이 바로 선 사람은 도리를 알게 되고 도의(道義)적 자각에 이르게 되니, 가정에서는 효행하고 사회에서는 선행을 일삼아 국가 내외의 모범이 될 것이다. 허, 허, 허.”
한 잔의 따뜻한 녹차를 앞에 놓고 숙소에서 세 사람의 군자가 모여 문답을 나누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오랜 담소 뒤에 아이는 노새에게 먹일 쇠죽을 끓여야 한다면서 자리에서 물러났다.
“어떤가, 최 입지. 이만하면 내가 왜 조령주막에 들락거리는지 알겠지.”
숙헌은 얼굴 한 가득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벗에게 말했다.
“으흠, 대감께서 여길 오자고 한 뜻을 알겠소이다. 저 아이는 장차 큰 인물이 되겠소이다. 사숙만으로도 저리 익히고 깨닫는 것이 풍부한 아이이니.”
최 입지도 경탄하면서 말했다.
“조식자리에서도 보았듯이 주모의 품행이 얼마나 절도가 있고 걸출하던가. 주모가 실제로 저 아이를 낳았다고 해도 전혀 억지스럽지 않게 보일 정도라네. 저 아이나 주모가 서로 성정(性情)에 좋은 영향을 교환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생선을 싼 종이에선 비린내가 나지만 향을 싼 종이에선 향기가 나듯이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배운다 할 것 없이 상호간에 선진(先進)이 될 거라는 말이네.”
“대감, 나는 의당 저 아이가 주모의 친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두 사람이 닮은 점이 많다고 여겼는데........”
최 입지는 그때서야 주모와 아이에 관한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었다. 어떤 부모였기에 저런 총명한 아이를 품에서 떼어내었던 것일까. 얼마나 살기가 고난스럽기에 그런 후회할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세간의 위인은 고난스런 환경에서 태어나는 법이지. 부모의 사행(邪行)은 용서 받기 어려우나 대악(大惡)이 대선(大善)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 천명(天命)의 심의(深意)가 아닐까. 저 아이의 경우는 오히려 부모의 배신과 비정 때문에 숙명을 이겨내는 기상(氣像)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이 드네.”
숙헌의 말에 최 입지는 충분한 생각을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고난이나 시련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박복한 운명이라면 복운을 쌓는 노력을 남들보다 백배(百倍)해야 할 정신이 들게 마련인 것이다.
고난에 직면해 본 사람들만이 복운의 소중함을 아는 것이다. 추악한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어 순미(純美)한 운명으로 뒤바뀌어 놓는 것은 금강석 같은 야무진 인내와 굳건한 의지가 없으면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기세와 열정 속에 타고 난 기지(奇智)와 재능도 발현(發顯)되어 가는 것이다.
“내가 수재를 한양에 데리고 가서 면학할 수 있게 권유했지만 주모의 올곧은 성품은 아이의 유학 권유를 정중히 거절했다네. 대감의 사숙만으로도 충분하다면서 말이야. 이곳의 환경이 비록 열악하다고 할지라도 장차 공부할 사람이면 환경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그 뜻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었네. 아이에게도 물었지만 아이 역시 어머니의 곁을 멀리 떠나지는 않겠다고 하더군.”
숙헌과 최 입지는 아이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주모와 아이의 사상은 지금 이 땅에 살아가는 민초들이나 사대부 가문의 경박한 사상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세상은 입신양명의 허욕에 젖어있고 출세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쟁의 과도기이다.
이런 시대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성현의 도리와 가르침을 생활상에서 견고하게 지켜나가는 모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숙헌은 조령주막에 모자를 만나기 위해 오는 것이다. 일국의 재상 자리에 있는 어르신이 여염집의 은자를 만나기 위해 온다는 것도 숙헌 같은 고풍의 학자가 아니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중식에는 산채 비빔밥이 나왔다. 주모가 들고 온 상 위에는 놋그릇에 담긴 각종 산채가 즐비했다. 지난봄에 이 집식구들이 산과 들에서 채취해서 말려둔 나물들로 취나물, 고들빼기, 엉겅퀴, 고수 등이었다.
각종 나물을 뜨뜻한 밥에 얹고 고추장에 썩썩 비벼서 먹는 향기로운 맛과 풍미는 더할 나위 없는 식도락인 것이다. 상을 물리고 나서 최 입지는 갑자기 생각이 난 듯 주모에게 물었다.
“주모, 이 근처에 대나무가 있는가?”
“대감마님, 대나무는 어쩐 일로 찾으시옵니까. 헛간에 잘라놓은 대나무가 있긴 하옵니다만 찾으시는 물건에 적합할 런지는 모르겠사옵니다.”
“어디 좀 구경해봅시다.”
갑자기 대나무를 찾는 최 입지의 속을 모르는 숙헌은 호기심어린 눈으로 벗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주모의 안내를 받아 헛간으로 간 두 사람은 길쭉하게 잘라놓은 대나무 몇 그루를 찾았다.
“오, 주모. 이 정도면 충분하겠소. 연을 만들어 보려고 하니 칼 좀 얻어 쓰세.”
최 입지의 말에 숙헌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다.
“난, 무슨 일로 대나무를 찾나 했소. 연이라........”
두 사람은 대청마루에 앉아서 한나절 동안 연을 만드는데 골몰했다. 대나무를 적당한 두께와 길이로 잘라낸 다음 사각의 방패 모양으로 골조를 만들었다. 그 위에 엷은 한지를 놓고 풀 먹인 종이를 대나무가 닿는 면에 갖다 붙여놓으니 제법 든든하게 달라붙어서 방패연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두 사람이 연을 만드는 동안 마당에서 마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노새를 돌보던 아이는 몇 번인가 대청마루로 찾아와서 흥미롭게 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가곤 했다. 호기심에 가득한 아이의 눈동자에는 기대와 설렘도 잔뜩 어려 있었다.
주모에게 명주실을 얻어 연줄을 만들고 연실을 감아둘 수 있는 얼레도 대나무를 깎아서 만들었다. 최 입지는 병졸의 호신용 방패 크기만 한 제법 큰 방패연을 번쩍 치켜들고 한번 좌우로 흔들어보았다. 방패연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가자 숙헌은 묵과 벼루를 가져와서는 열심히 갈더니 중간 붓으로 먹을 묻혀 방패연의 겉면에 새 조(鳥)자를 큼지막하게 썼다. 그리고 세필로 하단에다 장난스런 문구를 적어 넣었다.
높은 구름에 걸린 연은
하늘에 둥지를 틀고
새재를 넘나드는 새 되었다
“수재야, 이리 오너라.”
문구를 적고난 숙헌은 행랑채 툇마루에서 햇볕을 쬐고 앉아있던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안채 대청마루로 쪼르르 달려왔다. 아이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띠고서 싱글벙글하였다.
최 입지가 아이에게 방패연을 건네주자 아이는 신기한 듯 연의 여기저기를 한참동안 살폈다.
“잘 만들었다곤 할 수 없지만, 연이란 바람과 사람이 잘 조화를 이뤄야 나는 법이니, 이젠 수재 너만 믿는다.”
최 입지는 얼레까지 아이의 손에 들려주면서 말했다.
“아쉽게도 눈 때문에 지금 당장 성능을 시험하진 못하겠구나. 눈이 녹는 대로 시험해 보고 나중에 잘 날렸는지 알려다오.”
“대감마님, 그럼 이 연은 제게 주시는 것이 옵니까?”
“그렇고말고, 내가 너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이 연을 만들게 된 것이다.”
최 입지는 아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이는 기쁨에 겨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높으신 두 어르신의 각별한 애정을 받자 감격에 벅차서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것이었다.
“대감마님, 감사드리옵니다. 제가 애지중지 가지고 있다가 눈이 녹으면 바로 시험해 보도록 하겠사옵니다.”
“오, 그래. 연 날리는 법은 알고 있겠지?”
“지금은 잘 모르오나, 저희 아버님께 여쭙고 알아서 하겠사옵니다.”
아이는 싱글벙글 웃으면서 방패연과 얼레를 들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산골의 낮은 짧았다. 태양은 산봉우리를 넘어가 버리고 황금빛 찬란한 후광만 하늘 높이 뻗어 올렸다. 나뭇가지의 그림자도 점점 길어만 지고 산에서 골짜기를 향하여 황량한 바람이 불어 내렸다. 바람이 불때마다 나뭇가지가 흔들리면서 눈꽃가루를 허공에 흩뿌렸다.
낮 동안에 지붕에 덮였던 눈이 녹으면서 초가지붕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서로 키를 재보려는 듯이 나란히 매달렸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고드름 끝에서 똑똑 떨어지던 물방울도 차디차게 다시 얼어붙었다.
골짜기에서 내려온 바람은 무리를 지은 짐승 떼처럼 자작나무 숲을 우우 울리면서 지나갔다. 길고 긴 어둠의 시간이 찾아 온 것이다. 주모는 처마 기둥에 호롱불을 켜서 마당을 밝혔다. 최 입지는 숙소 안에서 등잔의 심지에 불을 밝히니 달려들었던 어둠이 놀라 뒤로 물러서는 듯 등잔불 주변이 환해졌다.
석반(夕飯)은 주안(酒案)과 겸해서 나왔다. 밥과 된장국, 계란찜과 각종 전이 막걸리와 함께 한 상 가득 차려 있었다. 전은 방금 지져서 기름이 번드르르하게 윤기가 흐르고 따스한 김이 났다. 두부전, 고추전, 버섯전등 다양한 전이 접시에 가지런히 담겨져 있었다.
“주모, 우리 함께 석반을 드세. 아침에 얘기한 대로 거문고 소리도 들려줘야 하지 않겠나?”
숙헌은 스스럼없이 주모에게 말했다. 하지만 주모는 화들짝 놀라면서 말했다.
“대감마님, 누가 들을까 두렵사옵니다. 어느 내전이라고 감히 소인네가 동석하겠사옵니까. 하지만 아침에 한 약속은 지키겠사옵니다. 석반을 드신 후에 소인네가 다시 찾아뵙겠사옵니다.”
주모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숙헌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최 입지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말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등잔불이 웃바람에 가느다랗게 흔들렸다. 숙헌과 최 입지는 반주로 몇 잔의 막걸리를 마시자 기혈이 통한 듯 온몸이 따뜻해졌다.
얼마 후에 주모가 인기척 소리를 내며 교자상에 숭늉 그릇을 얹어 들고 방에 들어왔다. 주모는 두 사람 앞에 숭늉 그릇을 내려놓고 빈 교자상에 술과 안주를 옮기고 큰 상은 들고 나갔다. 주모는 잠시 후에 돌아왔다. 그녀의 손에는 거문고가 들려져 있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몇 잔의 술을 더 마신지라 알큰하게 취기가 돌았다. 주모는 방 윗목에 조용히 자리 잡더니 거문고를 두 무릎 위에 뉘었다. 오른손에 술대를 잡고 왼손으로는 현 위에 살포시 손을 얹었다.
주모의 행동을 지켜보면서 두 사람은 귀를 가슴에 붙이고 연주가 시작되기를 침을 꿀꺽 삼키며 고대하고 있었다. 주모는 지그시 눈을 감더니 술대를 잡은 손으로 현을 튕기기 시작했다.
현의 음색은 가을의 단풍과 같은 색으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고 원색적이지만 경박하지 않은 고상한 느낌으로 들려왔다. 산골의 조령주막에 은은하게 진양조로 울리는 거문고 소리는 주막의 초가지붕 위로 방금 떠오른 여인의 눈썹과 같은 초승달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행랑채에도 등잔불이 밝혀져 창호지 문틈으로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사랑방에선 오 수재와 주모의 남편이 마주앉아 새끼를 꼬고 있었다. 그들의 귀에도 거문고 가락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비록 신분 사회의 차별 때문에 산골 주막에서 지금 막 시작된 연주회에 아이와 남편이 동석할 수는 없었지만 사랑방의 두 사람도 주모의 음악을 경청하고 있었다. 거문고의 느릿한 가락은 호수 수면에 비친 달빛처럼 은은하게 안채로부터 흘러나와 눈에 덮인 초가의 지붕을 넘어 새파랗게 얼어붙은 밤하늘로 퍼져 나갔다.
초승달도 이 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지금 자작나무 숲에는 초승달에서 흘러나온 미미한 달빛이 눈꽃 위로 내려앉아 여인의 속눈썹처럼 바르르 떨고 있었다. 사납게 떼 지어 몰려다니던 바람도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진양조의 느리고 여유로운 거문고 가락만이 산골의 밤을 장악하고 어둠 속에 희미하게 잠겨 있는 온갖 사물들의 정곡(正鵠)에 잔잔한 여운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주모의 술대가 점점 민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락은 이제 중모리로 빨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중모리의 기운 찬 가락에 반응한 듯 처마에 달린 고드름 하나가 툭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문고 빠른 장단은 저 멀리 자작나무 숲 교교한 달빛에 젖은 눈꽃들을 흔들어 하나 둘씩 꽃잎을 떨어지게 했다.
안채에서 숙헌과 최 입지는 방금 부은 잔을 들고 마실 생각도 잊은 채, 음악소리에 젖은 가슴을 마시고 있었다. 주모의 손놀림은 더욱 빨라지며 중모리에서 자진모리로 가락은 세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하.......!”
숙헌은 낮은 음성으로 탄성을 올리더니 속이 타는 듯 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최 입지는 조금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흔들며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이제 거문고 가락은 휘모리장단으로 바뀌며 최고조에 이르렀다. 처마 끝의 고드름이 일제히 흔들리고 초승달빛은 조령주막의 안마당으로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듯 가느다란 빛의 가닥들을 일제히 세워 쏟아 붇고 있었다.
소리에 감응할 수 있는 모든 사물들과 주막 안에 두 귀를 모두(毛頭)세운 사람들은 이 순간 모골이 송연해 지는 것을 느꼈으리라. 어둔 바다에 풍랑이 솟구쳐 일어나듯, 세찬 비바람에 숲 전체가 흔들리듯 휘모리장단에 실린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정령이 진한 감흥으로 진동하기 때문이다.
휘몰아치던 장단은 발밑에서 정수리까지 격렬한 가락을 끌어올리더니 긴 여운을 남기며 끝이 났다. 술대를 잡은 주모의 손놀림이 멈추고 일순간에 정적이 찾아왔다.
“주모, 가히 입신(入神)의 경지라고 해야 할 것 같소. 정말 대단하시오. 잠시 선경(仙境)에 머물다 온 듯 혼미 하더이다.”
숙헌은 주모에게 술 한 잔을 따라 건네면서 찬탄의 말을 했다.
“대감마님, 소인네의 미진한 솜씨에 과찬의 말씀이시옵니다.”
주모는 이렇게 말하고는 숙헌이 건네주는 잔을 받아 몸을 돌려 한 모금 마셨다.
“주모의 거문고 장단에 맞춰 내가 창화(唱和)하려네. 우리 사형(師兄)이신 이황선생님의 도산십이곡 중에서 읊을까 하네만.”
숙헌은 취흥에 겨워 이런 제안을 했다. 주모는 흔쾌한 표정으로 다시 자리를 교정하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술대를 현위에 올리고 튕기기 시작했다. 진양조의 느릿한 가락이 현을 울리며 흘러 나왔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료~”
숙헌의 낮고 걸걸한 음색으로 도산십이곡의 첫 소절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시조는 긴 호흡으로 느긋한 여운을 즐기는 선비들의 여흥이다. 풍류주인이 된 숙헌은 주모의 낭랑한 장단에 어울려 선비의 노래를 읊조리고 있는 것이다.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어리석은 선비
이렇게 살아간다 한들 무엇이 부끄러울까~
하물며 자연을 사랑하여 병이 되었으니
이런 병을 고친다 해서 좋을 것 무언가~
안개와 노을로 집을 삼고 풍월을 벗 삼아
태평한 세상에 병으로 늙어 가누나~
이런 가운데 다만 허물이나 없기를 바라니~
순풍(淳風)이 죽었다는 말 사실이 아니로다
사람의 성품이 어질다는 말 진실이네~
천하에 허다한 영재를 속여 말하지 말지니~
뜻하지 않게 사숙이었던 이황 선생님과 동서 양인의 논쟁에 휘말려 서로 등지게 되었지만 숙헌의 마음에서 선형의 존재가 상실된 것은 아니었다. 지금 숙헌은 목청을 높게 올려 선형의 시조를 노래하고 있었다. 그동안의 불미한 반목과 갈등을 회고하면 할수록 어리석고 부질없다 여기면서 말이다.
철학적 논쟁이 정치적 분쟁으로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 순수 학문의 논단에 불순하게 끼어든 정략과 파벌의식은 결국 조정에 먹구름만 몰고 왔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윽한 향기의 난초가 산골짜기 피었으니
자연스레 보란 듯이 좋기만 하여라~
흰 구름 산에 걸렸으니 자연스레 보기 좋아라~
이러는 가운데 아름다운 한분을 더욱 못잊겠다~
산 앞에 누각이 있고 누각 아래 물 흐른다
떼 지어 갈매기들은 오르락내리락 하는데
새하얀 늙은 망아지 어찌하여 멀리 마음 두느냐~
쇠잔한 선형의 모습을 떠올리며 숙헌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고매한 대학자의 쓸쓸한 회한에 가슴이 저렸을까. 숙헌은 이내 손으로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쳤다. 최 입지는 공(公)의 그런 감개(感慨)를 지켜보며 깊은 시름에 잠겼다.
봄바람에 꽃은 산을 뒤덮고
가을밤에 달은 누각에 가득하다~
사계절의 풍류는 사람과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천지조화의 오묘함에 끝이 있으랴~
숙헌은 도산십이곡 중에 육장까지 읊고는 끝을 맺었다. 얼어붙은 영하의 창공에 초승달은 높이 떠서 산골의 조령주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흰 눈에 덮인 주막의 지붕 위로 교교하게 흐르는 달빛처럼 안채에서 새어나오는 그윽한 거문고의 가락과 군자의 애잔한 시조 가락은 영하의 어둠을 뚫고 숲과 산봉우리 저 멀리까지 퍼져 나갔다.
최 입지는 숙헌과 함께 했던 지난겨울의 추억에서 불현듯 깨어났다. 몇 해만에 찾아오는 조령주막은 이제 숙헌과 다시는 올 수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그 몇 해 사이에 숙헌은 명운을 달리했던 것이다. 그의 때 이른 죽음은 그의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았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을 텐데 그처럼 허망하게 이 세상을 등지고 뒤돌아서야만 했던 것일까. 최 입지는 숙헌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조령을 넘어가려는 길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비우자 조금 전에 그 많던 객상들은 썰물처럼 빠져버리고 마당은 갑자기 텅 비었다. 행랑채에는 병졸과 시종 및 관리가 사이좋게 어울려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숙헌과 동행했던 겨울의 추억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마당 이곳저곳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갑자기 떠오르는 사람이 있어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주모의 의붓아들 인 오 수재였다. 조금 전 주모의 심부름을 하던 시동은 수재가 아니었다.
마당을 오가며 빈상을 치우는 주모의 남편을 보았지만 바쁜 사람을 불러 세우기가 무안해서 최 입지는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안채에서 대청마루로 나오다보니 들창 있는 벽면 시렁 위에 거문고가 얌전하게 놓아져 있었다. 최 입지는 태사신을 신고 마당에 내려섰다. 행랑채의 관리가 그를 발견하고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와 보려하는 것을 최 입지는 손짓으로 중지 시키고 천천히 안채의 뒤란과 마방을 돌아다니면서 수재의 행방을 찾았다.
하지만 수재는 어디에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 원두막에 모여 있던 사대부 유생(儒生)들은 모두들 자리를 비우고 안보였다. 최 입지는 빈 원두막에 걸터앉아서 저 멀리 보이는 자작나무 숲에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늦은 오후에 불어드는 산풍(山風)이 자작나무 숲을 흔들고 지나가자 햇빛을 받은 윤기 나는 이파리들이 은빛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숙헌과 함께 걸었던 저 숲은 그때는 눈꽃이 화사하게 핀 한 겨울이었다.
갑작스레 숙헌을 회상하니 가슴 깊이 그리움이 사무쳤다. 최 입지는 자기도 모르게 눈가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하지 못했다. 분열과 반목질시의 시국은 순정(純正)했던 한 유학자의 생기(生氣)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생명의 불씨마저 꺼트린 것이다.
가까이 모시며 그의 남모를 고뇌와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서둘러 입명(立命)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 입지는 회한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때 주모가 술상을 가지고 원두막으로 다가왔다.
“영감마님, 여기 계셨사옵니까. 막걸리와 파전으로 일단 허기를 다스리시옵소서.”
주모는 원두막 한가운데 술과 김치, 파전이 놓인 교자상을 가볍게 내려놓았다.
“주모, 재수가 안 보이는 구료. 재수는 어디 갔는가?”
“영감마님, 우리 재수가 올해로 열다섯 살이 되었사옵니다. 올 초에 사숙하던 숙헌 대감님의 임종 소식을 듣고 난 뒤로 부쩍 시무룩해하고 의기소침해하더니 오동나무 꽃 필 때쯤에 말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나가면서 글을 한 줄 남기고 갔는데 내용인 즉은 문경읍내에 나가 서당에 다니면서 글공부에 전념할 것이니 심려(心慮)하지 마시라는 내용이었사옵니다. 걱정이 된 소인네가 읍내로 가서 백방으로 수소문해보니 어느 양반집 향교지기가 되어 향교 옆 관사에 거주하면서 제 말처럼 인근 사당에 다니며 공부에 매진하고 있었사옵니다.”
“아, 그동안에 그런 일이 다 있었구료. 그래 총명한 아이이니 잘 해낼 것이요. 과거를 준비하려는 생각인가 보오. 그럼 그렇지, 숙헌대감도 그때 주모에게 유학을 권하지 않았겠소. 숙헌대감이 이런 날이 올 줄을 내다보고 미리 준비 시키려고 했던 것일세.”
“소인네가 외람되게 대감마님의 호의를 거절하고 말았사옵니다. 그때의 불초(不肖)함이 오늘날 이런 죄보(罪報)로 나타난 것 같사옵니다. 재수의 장래를 염려하기 보다는 소인네의 신념을 우선한 것이 그런 불충을 낳게 된 것이옵니다.”
주모는 옷소매로 땀을 닦는 것인지 눈물을 훔치는 것인지 몰랐다.
“주모, 보아하니 객점(客店)에 사람들도 없는 것 같으니 시급한 일이 없다면 나와 술 한 잔 나누세.”
“영감마님,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우선 제 잔을 받으시옵소서.”
어찌된 일인지 주모는 최 입지의 청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주모는 막걸리 사발에 한 가득 술을 부어 올렸다. 최 입지가 술병을 들어 주모에게 따라주려 하자 주모는 술병을 붙들고 자작자음(自酌自飮)했다.
“영남대로로 통하는 죽령고개는 예로부터 과거 보러가는 선비들이 꼭 지나쳐 가는 길이옵니다.”
“그렇지, 나 역시 약관(弱冠)의 나이에 과거를 보겠다며 친구와 함께 이곳을 지나쳐 한양까지 갔었지. 여기 조령주막에서 잠시 쉬어가며 막걸리 한 사발로 여독을 풀기도 했고 말이야. 주모는 당시에는 이곳 주인이 아니었지. 그때는 노인네 내외가 살고 있었는데, 그 할머니가 술을 맛있게 잘 담근다고 소문이 나있었네. 하지만 음식 맛이 신통하지 않아서 그 점이 서운했던 기억이 나네.”
“영감마님, 소인네가 알기로는 그 당시 과거에 장원급제 하셨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옵니까?”
“사실이라네. 식년문과에 장원급제 했지. 함께 갔던 친구도 무과에 합격했고. 그땐 정말 꿈을 꾸는 것만 같았네. 과거 시험공부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닌데 장원을 하다니 말이야. 운이 따랐던 것이 분명하네.”
“영감마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건 영감마님께서 천부적으로 재능을 타고나신 탓이라 여겨지옵니다. 어찌 운이 좋아서 될 수 있었겠사옵니까. 팔도 방방곡곡에서 청운의 꿈을 안고 입신양명을 쫒아 온 선비들이 아니겠사옵니까. 저마다 사숙하는 향교에서 제일의 서생으로 인정받아 이미 이름이 양양한 분들일 터인데 그런 쟁쟁한 분들과 겨루어 장원을 하셨으니 영감마님의 문재는 하늘이 낸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과찬의 말이오. 내가 지닌 재주는 보잘 것이 없다오. 전하께서 과분한 품관을 하사할 때마다, 심정이 얼마나 심란한 줄 주모는 모를 것이외다. 군자는 명리명문에 앞서 제 분수와 능력을 먼저 알아야 하는 법이거늘 어찌 조잡한 문재를 가진 졸렬한 자가 중차대한 조정의 고위 관직을 얻고 기뻐 할 수 있단 말인가.”
최 입지는 목이 타는 듯 막걸리 한 사발을 단숨에 들이켰다. 주모도 오늘따라 벌컥벌컥 술을 마셨다.
“격식 갖추지 말고 내 잔을 받으시게. 잔은 주고받아야 제 맛이 아닌가.”
최 입지가 선뜻 다 마신 빈 술잔을 주모에게 건네며 술병을 들자 주모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양손을 들고 잔을 받아들었다. 최 입지는 술병을 기울여 한 잔 가득 막걸리를 부었다. 잔을 받은 주모는 몸을 돌려 단숨에 잔을 벌컥벌컥 비워냈다.
주모는 입가에 묻은 술을 옷소매로 쓱 닦아내더니 곧바로 잔을 최 입지에게 내밀었다.
“허, 허. 오늘 술이 되는 것 같소. 어디 한번 취해봅시다.”
원두막에서 최 입지와 주모가 술을 주고받는 동안에 행랑채에서도 관리를 비롯해 병졸과 시종 간에 술판이 벌어졌다. 그들의 주된 대화의 내용은 시종과 행랑살이 하던 하녀간의 염문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시종 낄낄대며 음방(淫放)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마방에서 공주 목사 일행이 데리고 온 말과 노새에게 꼴을 베어다가 먹이던 시동이 행랑채의 열려진 방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얘기에 관심을 보이더니 아예 행랑채 앞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사랑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황토 빛 마당에 가득 들어차 있던 늦여름의 태양 볕도 서서히 열기를 잃고 타고 난 재처럼 가무러지고 있었다. 어른들의 음담패설에 넋을 잃은 아이는 툇마루 밑에서 두꺼비 한 마리가 어기적거리며 발밑에서 기어 나오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우툴두툴한 피부에 둥글넓적한 몸을 뒤뚱거리며 두꺼비는 헛간 쪽으로 가기 위해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방에서 태연한 모습으로 풀을 씹고 있던 말이 흉측하게 생긴 두꺼비를 발견하자 콧김을 푸르릉 내뿜으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말이고 두꺼비고 간에 지금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시동은 사랑방에서 흘러나오는 얘기에 정신이 팔려 어린 나이에 뭐가 그렇게 이해가 된다고 낄낄대며 툇마루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감마님, 혹시 달성판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사옵니까? 우리 고을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얘기 옵니다만.”
적당히 취기가 오른 주모가 옷매무새를 다시 고치면서 정좌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달성판관에 얽힌 얘기가 있소? 난 금시초문이로군.”
“영감마님, 옛날에 달성에 신임 사또 임명을 받은 사람이 있었사옵니다. 당시에 판관 임명을 받은 자는 육방관속들이 본가까지 가서 예우하며 모시고 오는 관례가 있었사옵니다. 한데 막상 판관 임명자를 찾아가 보니 키는 작달막하고 얼굴은 못생긴데다 나이까지 약관의 나이로 어렸사옵니다.
그래서 육방관속들은 속으로 신임 판관감이 아니라며 애송이라고 흉을 보았사옵니다. 달성으로 가는 길에 죽령고개를 거치게 되었사옵니다. 그런데 고개 말단에서 남루한 옷차림의 어떤 한 사내가 바위에 올라앉아 슬피 울고 있었사옵니다. 그 사내는 판관의 행차를 보더니 한걸음에 달려와 엎드리며 자신의 억울함을 판관에게 고했사옵니다.
판관은 사내의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는데 그 얘기는 다음과 같사옵니다. 사내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무척 가난한 민촌에 사는 자였사옵니다. 어느 날 홀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장례비용이 없었던 사내는 유일한 재산이었던 닭 다섯 마리를 내다팔기로 결정했사옵니다. 닭을 팔러 가는 날도 닭 모이를 구할 돈이 없어서 이웃을 돌며 수수를 구해다가 닭에게 모이를 주고 문경장터로 나갔사옵니다.
장터에서 볼일을 보러 가야겠는데 닭을 놓고 갈수가 없어 난처해 할 때, 때마침 닭장수가 나타나더니 자기가 닭을 보관해주겠다고 선심을 쓰면서 자기 닭장 속에 닭 다섯 마리를 집어넣었사옵니다. 사내가 볼일을 다 보고 와서 내 닭을 내놓으라고 하니 닭장수가 시치미를 뚝 떼고 오히려 역정을 내며 이놈아 네 닭을 내가 어찌 안단 말이냐! 하고 호통을 치는 것이었사옵니다.
사내가 아무리 사정을 해도 닭 장수는 들은 척도 안했사옵니다. 결국 본관사또에게 가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자 본관사또 역시 닭장수와 똑같은 소리를 하며 역정을 내더니 사내를 그대로 쫒아내었사옵니다.
사내의 이런 사연을 들은 판관은 사령을 보내 닭장수를 당장 잡아들였사옵니다. 판관은 사내 앞에 닭장을 내려놓고 닭장 속에서 사내의 닭을 가려내도록 했사옵니다. 사내는 정확하게 자신의 닭 다섯 마리를 가려냈사옵니다. 그리고 나서 판관은 닭 장수에게 이 닭이 네 닭이라면 아침에 무얼 먹였느냐? 라고 엄하게 물었사옵니다.
닭 장수는 당황하여 쌀이며 보리 등이라고 횡설수설 답변했사옵니다. 판관은 이번에는 닭 주인인 사내에게 똑같은 질문을 했사옵니다. 그러자 닭 주인은 이웃에서 수수 한줌을 얻어다 먹였다고 답변했사옵니다.
두 사람의 진술을 듣고 난 뒤 판관은 닭 한 마리를 잡아 배를 가르도록 명했사옵니다. 배를 갈라보니 과연 수수알이 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사옵니다. 판관은 닭 장수에게 닭 값의 열배를 물게 하고 크게 야단을 쳐서 쫒아낸 뒤에 문경본관 사또에게 따로 오백 냥을 빌어 사내에게 장례비용으로 주었사옵니다.
이렇게 사건을 명쾌하게 가려내는 판관의 통찰력과 지혜에 육방관속들은 그동안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 판관을 경멸했던 것을 크게 뉘우쳤다고 하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판관이 본관사또에게 빌려간 돈을 갚을 생각을 안 하자 본관에서 사령이 와서 돈을 갚으라는 사또의 명을 전달했는데 판관은 오히려 사령에게 시켜 대전통편 몇 장의 조문을 보면 내가 이미 돈을 갚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거라며 사령을 돌려보냈사옵니다.
과연 해당 조문에는 본관사또가 자기 고을에서 일어난 사건을 처리 못했을 때 벌금 오백 냥을 물도록 한 조항이 있었사옵니다. 이렇듯 달성판관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불쌍한 상주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똑똑치 못한 사또를 징벌했다는 전설이옵니다.”
“흠, 그런 일은 전설이라기보다는 실제 있었던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보이는구려. 새 가운데 까마귀와 학을 보게 되면 까마귀는 검은 깃털로 덮인 외모가 시꺼멓고 흉하지만 오히려 속살은 희고 깨끗하다오. 그런데 백설처럼 하얀 깃을 지닌 학은 눈부신 외모와는 달리 속살이 검다오.
동물도 이럴 진 데 사람은 어떻겠소. 외모만 보고 사람의 인격이나 성품을 성급히 판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소. 하지만 정작 사람은 겉만 보고는 알 수가 없는 법이라오. 이 얘기가 그런 점을 정확하게 짚어주고 있구료. 허, 허.”
최 입지는 주모에게 막걸리를 한잔 가득 채워주면서 호방하게 웃었다.
“주모는 아는 얘기도 많소. 이곳의 토박이라서 그런가. 죽령에 얽힌 또 다른 얘기도 있소?”
“영감마님, 소인네가 아는 것은 졸망(拙妄)할 따름이옵니다. 예로부터 이곳 죽령은 청운의 꿈을 품고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 길에 올랐던 곳이옵니다.
선비들 가운데 더러는 영감마님처럼 뜻을 이루고 금의환향 하였을 터이고 더러는 의기소침하여 돌아서던 길이기도 하였을 것이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과거 길에 얽힌 전설이 많이 있사옵니다. 그 가운데 하나를 얘기해보겠사옵니다.”
“오, 그러시게 주모.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롭구료. 어서 얘기 해보시오.”
“상주 고을에 첨지중추부사인 이 도광 첨지의 차남 이 보현 이라는 자가 과거 길을 떠나게 되었사옵니다. 죽령을 막 넘으려는데 그만 날이 어두워져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사옵니다.
헌데 그날 밤에 조곡폭포로 산보를 나갔다가 한 아리따운 여인이 용소에서 목욕하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사옵니다. 여인의 눈부신 자태를 보고 난 뒤로 이 보현은 이 여인에게 깊은 연정을 품게 되었사옵니다. 한참을 지켜보다가 여인이 물 밖으로 나오자 서둘러 처소로 도망치듯 돌아갔사옵니다.
그런데 잠시 후 처소 바깥에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사옵니다. 방문을 살짝 열고 내다보더니 조금 전 폭포에서 본 여인이 주막집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사옵니다. 과거를 보기 위해 남들보다 일찍 나선 길이라서 한양까지 서둘러 가지 않아도 여유가 있는 일정인지라 이 보현은 주막집 딸이 살고 있는 이곳에 며칠 머물 수 있는 묘책을 세우기로 하였사옵니다.
그의 묘책은 어찌 보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사옵니다. 그는 골짜기 바위에 올라가 일부러 발을 헛디뎌서는 발목에 골절상을 입도록 했습니다. 오직 자기가 흠모하는 여인의 곁에 있고 싶다는 열정으로 벌인 젊은 총각의 치기였던 것입니다.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소원한 대로 주막집 행랑채 작은 방에서 며칠 치료를 받으며 쉴 수 있는 구실이 생겼사옵니다. 매일 주막집 딸이 그의 처소에 드나들면서 병 수발을 해주었사옵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결국 정분을 맺게 되었사옵니다. 이 보현은 적극적으로 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를 썼고 그 마음이 통하여 산골 처녀의 가슴에선 사랑의 싹이 자라난 것이옵니다. 더구나 상대는 사대부의 자식이요 용모도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과거 시험을 앞두고 있는 선비인지라 그녀의 마음에도 연모의 정이 가득했사옵니다.
외설스럽게도 두 사람은 장차 혼인을 서약하며 동침을 했사옵니다. 원앙금침은 아니었지만 포근한 이부자리에 청사등롱 같은 촛불을 밝히고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이었사옵니다.
며칠 뒤에 이 보현은 과거 길을 떠났고 주막집 처녀는 조령관까지 따라 나와 눈물로 배웅을 하며 과거시험의 결과에 상관없이 돌아올 때는 남자의 집으로 가서 혼례를 올리기로 굳게 다짐하며 헤어졌사옵니다.
한양에 간 이 보현은 문과 시험에서 장원 급제 하였사옵니다. 한양에 도착해서 시험을 보기 전만해도 그의 마음속에는 오로지 주막집 처녀만이 자리 잡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나 장원급제라는 입사(入仕)를 하자 그의 마음에는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사랑했던 처자(處子)의 신분이나 환경을 따지게 된 것이옵니다. 근본도 없는 천민의 자식과 결혼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명예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이옵니다.
금의환향하는 길에 그는 죽령 주막을 어차피 거쳐서 가야 했지만 소리 소문도 없이 지나쳐 가버렸습니다. 심야를 틈타서 살그머니 지나간 것이옵니다. 이런 줄도 모르는 주막집 처녀는 이제나 저제나 임이 오기만을 기다렸사옵니다.
조령관 마루까지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리며 과거 길 선비들이 하나 둘 귀향하는 가운데 혹시나 임이 섞여 오지나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기다렸사옵니다. 그러기를 몇 날이 지난 뒤에 결국 과거 길에 나섰던 선비들 가운데 마지막으로 환향하는 일행의 입을 통해서 사랑하는 임의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되었사옵니다.
주막집 처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철석같이 가약을 맺었던 서방님이 돌연 배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환향하는 길에 자신을 따돌리고 자초지종을 설명하지도 않은 채 외면하고 돌아섰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거의 실성한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이옵니다.
젊은 처자는 상심해서 여러 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습니다. 처자의 모친은 이런 자식의 속을 알 수가 없었으니 무슨 병인 줄만 알고 혼비백산할 뿐이었사옵니다. 어느 날 극도로 쇠약해진 처녀는 자리에서 불현듯 일어나서는 자신이 자주 다니던 조곡폭포 마루로 올라갔사옵니다.
그리고 임이 살고 있는 고을 쪽으로 머리를 향한 채 깊은 원한을 품고 폭포 아래 몸을 던져 죽고 말았사옵니다. 이 처자는 죽고 난 뒤에 커다란 구렁이 형상을 한 요괴로 환생하였사옵니다. 그리고는 과거 길에 오른 선비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끔찍한 사건을 벌였사옵니다.
조령을 넘어가는 선비들이 조령주막이 있을 장소가 아닌 곳에서 주막과 마주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났사옵니다. 그것은 요괴인 처자가 도술을 부려서 지은 가짜 주막이었사옵니다. 그곳에 선비들이 잘못 들어서게 되면 절대로 살아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옵니다.
그 주막에는 천하일색의 주모가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져있었지만 그 주모가 바로 원한을 품고 죽은 처자가 환생한 요괴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주막에 들어섰다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다는 전설이옵니다.”
“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사리분별 없는 풋사랑의 무서운 결말을 보는 것 같소. 사내는 결국 일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여인을 단지 하룻밤 욕정의 대상으로 여길 뿐이었구려.
여심을 사로잡는 다는 것은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야 할 중대사이거늘 어찌 그런 경솔한 언약으로 한 여인의 삶을 송두리째 망치고 말았는지 참으로 슬픈 일이로다.”
최 입지는 무릎을 치며 탄식했다.
“소인네가 이 전설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가 있사옵니다.”
“오, 그런가. 그렇다면 한 번 들려줄 수 있겠소?”
최 입지는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이다. 숙헌과 함께 몇 해 전 겨울밤에 주모의 거문고 가락을 들은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그 날의 감흥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주모는 잠시 자리를 떴다.
긴 여름의 태양빛도 기운을 잃고 산봉우리 뒤로 자취를 감추자 주막 주변의 모든 풍광이 서늘한 산 그림자로 뒤덮인 듯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숲에서는 저녁에만 부는 골짜기 산바람이 시원하게 나뭇잎을 헤치며 지나갔다.
바람결에 팔랑거리는 자작나무의 이파리들을 바라보며 최 입지는 깊은 사색에 잠겼다. 비록 조령산과 조령주막을 위시한 모든 산천이 평화롭고 아늑하게만 보이나 지금 바닷가 저 먼 섬에서는 알 수 없는 불길한 징조들이 연일 국토의 안온한 내일을 기약할 수 없이 국운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는 것을 그는 깊이 우려하고 있었다.
안민낙토(安民樂土)는 허망일 뿐이런가
태평성대(太平聖代)도 꿈처럼 깨어나니
부국강병(富國强兵)을 미뤄 온 세월이
통한(痛恨)의 눈물을 쏟는구나
숙헌은 생전에 부국강병을 주창해 왔다. 조정은 두 편으로 갈라서서 서로의 견해가 분분한지라 이런 대국적 대의(大義)에도 두 패로 갈리어 논쟁은 격심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정치의 무능하고 치졸한 면모이다.
왕정은 왕과 신하가 하나의 마음으로 통촉(洞燭)하여 민심을 다스리고 국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동서 양인으로 분열된 조정은 당리당략만을 우선시 하고 있다. 국왕을 중심에 놓고 각자 한쪽씩 옥수(玉手)를 붙잡고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전하께서도 올바른 가치 판단이 되지 않아 국정의 향방을 잡지 못하고 있다. 동서 양인의 재상(宰相)들은 왕의 어수(御手)을 붙들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길 것이 아니라 재력(才力)을 다 바쳐 위로 왕을 받들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국정이 바로서고 국사가 문란하지 않으며 왕도의 길을 따라서 치정(治定)이 유수와 같이 흘러가기 마련인 것이다. 나의 벗이요 선자(先子)인 숙헌은 이 길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탁류의 대세에 휩쓸려 그도 그만 심중의 뜻을 펼치지 못한 채 낙향해야 했다. 그리고 찾아 든 뜻밖의 죽음. 최 입지는 다시 한 번 그의 죽음을 애도하며 원두막 처마에 붉게 맺힌 저녁 노을빛 같은 눈물을 흘렸다.
주모는 거문고를 들고 원두막으로 왔다. 그녀의 뒤에 시동이 술 한 병과 새로운 안주를 작은 상에 받쳐 들고 따라왔다. 주모의 뒤를 따라오면서 시동은 연방 싱글벙글 웃음 짓고 있었다.
최 입지는 시동의 천진한 표정에 절로 웃음이 번졌다.
“이 아이는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이렇게 웃고 있소?”
최 입지가 아이의 웃고 있는 얼굴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거문고만 들면 저렇게 웃는답니다. 노래 가락 듣기를 좋아하는 아이지요.”
최 입지는 술상을 내려놓고 돌아서는 아이를 불러 자리에 앉혔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주모의 곁으로 다가가서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주모는 거문고를 무릎 안쪽으로 누이고 자세를 바로잡았다. 오른손에 쥔 술대가 현을 튕기면서 주모는 노래 가락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허드렛일 하느라 기방에 있을 때의 섬세하던 여성스러운 손은 거칠고 투박해 보였지만 현을 뜯고 튕기는 손가락에는 기품이 배어 있었다.
어허리야 어허리야 어허
문경새재 넘어가는 길손님아
과거 보러 한양 가는 선비님아
해 저물고 날 어두워진다고
굴뚝 연기 없는 주막집일랑
행여 들락거리지 마오
사랑 꽃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 간 한 여인이 있어
오뉴월의 핏빛 한을 품고
온정(溫情)많은 선비를 홀리니
사랑 주고 목숨 잃을까 두려워라
과거길 이백 여리 어찌 쉬지 않고 가리요
탁주 한 사발에 목을 적실지라도
술잔에 내 그림자 안 비치거든
마시는 척 몰래 비워버리고
음독할 목숨 보전하세
어허리야 어허리야 어허
문경새재 넘어가는 길손님아
과거 보러 한양 가는 선비님아
날 춥고 바람 많이 분다고
굴뚝 연기 없는 주막집일랑
행여 들락거리지 마오
주막집에 이미 붙들려 밤새운다면
산중 절세가인 주모의 애절한 노래
청하지도 듣지도 마오
절창(絶唱)에 취해 잠들다가
끝내 깨어날 줄 모른다하니
여인의 한은 참으로 두려워라
사랑의 약속은 삼고(三考)할지니
언약은 반드시 지키고
마음을 주었으면 거두지 말라
사랑은 목숨 걸고 해야 하리
주모의 애끓는 노래 가락이 황혼의 주막을 더욱 붉게 물들였다. 구전하는 전설을 듣고 노래 가락을 지어낸 이 여인의 재기발랄한 모습을 보라. 최 입지는 지난날의 희미한 영화와 젊은 시절 절세가인의 자취만 남은 촌부인 주모에게서 흠모의 감정까지 일어나는 것을 다스려야만 했다.
주모의 노래 가락이 시작되었을 때, 행랑채에 있던 일행들도 슬금슬금 음악 소리에 이끌리어 툇마루로 모여들었다.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소리는 신분의 격차나 지위의 고하, 학문의 천심(淺深)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의 가슴에 공평한 울림을 전해준다. 마음을 울리는 공명에 감응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거문고 현이 한 올 한 올 소리를 풀어내고 가느다란 떨림과 함께 음파를 타고서 하늘을 나르고 나비처럼 춤을 추는 노랫말은 슬픈 심정을 토로하고 있어도 처연하지만 않고 오히려 찬연한 빛깔로 아롱지는 것이다.
주모는 노래를 끝마치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일행을 위해 석반(夕飯)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선의 여자들에게 맡겨진 살림살이는 일생의 무거운 짐이다. 주모는 여러 길손들을 상대해서 술도 빚어야 하고 안주거리도 만들어야 하며 식사 준비에도 철저해야만 했다.
이런 살림은 여자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커다란 노동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주모는 이 모든 일들을 혼자 도맡아 십 년이 넘게 이곳 주막을 운영해 오고 있다. 이따금 고을관리나 궁궐에서 귀한 손님이라도 받게 되면 식사는 물론 여흥까지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럴 경우에 그녀는 주모의 역할에 덧붙여 그 자신이 여흥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다. 이곳은 기방도 아니고 고을에 위치한 화려한 객점도 아니기 때문이다. 주모는 이런 과중한 일들을 능숙하게 해왔고 때론 여흥의 주인공으로써 여유롭게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살림살이는 고된 노동의 연속이 될 수도 있고 즐거운 삶의 활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성현들은 마음만이 중요하다고 말해왔던가.
주모가 거문고를 탄주(彈奏)할 때 그녀의 마음은 어떠했던가. 과중한 노동 한 가운데에서 약간의 시간을 내어 그녀 자신도 풍류를 즐기는 여유를 가질 수 있어 좋은 것이었다. 주모는 거문고를 연주하고 노래 가락을 직접 만들어 부르는 타고난 음악적 재능까지 갖추고 있었으니 조령주막을 다녀 간 선비들은 하나같이 주모를 찬탄했다.
숙헌은 일찍이 주모의 이런 재능과 기품 있는 성정(性情)에 탄복하였고 조령주막의 오랜 단골이 되었다. 비록 신분의 격차는 심대했지만 숙헌은 주모에게 굳이 예법을 들먹이지 않았고 늘 격의 없이 대했다. 주모 역시 어려운 손님을 만나 주눅 든 일이 없고 허물없이 대하는 대감마님에 대해서 격조와 품위를 잃지 않고 상대해 왔다.
숙헌과 주모 두 사람 사이에는 남다른 우정이 개입되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연정이 아닐까도 생각해본다. 최 입지는 불현듯 떠오르는 시문이 있어 두 사람의 미묘한 관계를 생각하며 읊조렸다.
바람이 비를 부르니
천둥이 질투하여 큰 소리 낸다
어찌하여 온 하늘을 가로막고도
그리 속이 검고 좁은가
우레여, 소심한 그대를 소리쳐라
바람은 비와 벗하여
맑은 눈물 뿌리며 놀 것이니
우레여, 잔뜩 찌푸려 너의 허물을 탓하라
꽃잎 같은 임은 파란에 지고
맑은 눈물은 넘쳐서
바람과 비를 묻었으니
환란이 그친 평정한 하늘가에
무지개 높고 화려하거든
생전의 다정했던 두 벗이
손잡고 노니는 다리인 줄 알아다오
최 입지는 안채 처소에서 저녁상을 받았다. 호박나물, 깻잎장아찌, 된장 박은 고추 등 소박한 반찬과 고봉으로 올린 밥이 나왔다. 시원한 무국에 밥을 넣어서 짭짜름한 찬에 먹는 식사는 간소했다. 식단을 보니 민초들의 삶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찬거리는 갈수록 값이 오르고 종류도 많이 줄었다. 조정은 많은 세금을 거두어 병영에 군자금으로 보냈다.
시국이 불안정하니 방어진을 새롭게 구축하고 성곽을 쌓는 공사로 병영에는 많은 돈이 필요했다. 병력도 점차로 증대하고 있었다. 최 입지는 몇 번이나 전하께 군비 강화와 방어 전략을 세워 두어야 한다며 상소를 올렸다.
그의 의견은 올 봄에 들어와서야 받아들여져 진지 구축과 국내 연변의 방어벽 공사가 시작되었다. 왜구는 배를 타고 접근하기 때문에 연변의 일선 방어가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최 입지는 오랜 친구이며 남동 연변 울산방어진의 수장인 신 유구에게 행문(行文)하여 병력과 장비를 엄히 단속하고 왜구의 침입에 대비한 방어 전략에 힘을 쓰라며 격려와 충고의 전문(箋文)을 보냈다.
신 유구로부터 답신(答信)이 왔는데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심각한 진의 상황 보고가 있었다. 최 입지는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고 싶어 달포 전에 울산 방어진을 다녀왔었다. 이런 시찰은 전하가 직접 전방 상황을 돌아보고 판단해야 마땅한 것이지만 조정의 문란한 정황(政況)상 전하의 행보(行步)마저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울산 방어진을 다녀온 뒤에 보고 느낀 점을 상세하게 진술한 보고서를 전하께 상소했다. 그러자 닷새 만에 최 입지는 전하의 밀사로부터 한양으로 상경할 것을 통보 받았다. 한양을 향해 상경할 때만 해도 최 입지는 전하와 시국에 대해 심원한 논의를 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성상(聖上)은 최 입지의 서신을 받고는 갑작스레 그리움의 감정이 북받쳐와 단지 사적인 술자리를 갖고자 했을 따름이었다. 선조께서는 집안의 맏형에게 의지하듯 명나라에 조정의 모든 안위(安危)를 맡기고 의탁한 것처럼 보였다. 자주국방이 아니라면 조국을 위기에서 구출할 길은 요원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최 입지로써는 안타깝고 불안한 일이었다.
성상의 생각이 저러하니 다른 재상(宰相)들은 오죽하겠는가. 무사안일에 빠진 조정의 정황을 생각하면 최 입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 오는 것이었다. 석반을 물리고 최 입지는 산책을 하려고 안마당에 내려섰다. 주위는 어느새 깊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마당에 밝혀 놓은 등잔에 날벌레들이 모여들어 부산하게 날개를 파드닥거리며 불길을 넘나들고 있었다.
행랑채에는 두 개의 작은 방 모두 호롱불이 밝혀져 있었고 일행들이 머물고 있는 방에서는 둘러앉아 엽전 치기 놀이 하는 소리가 시끌벅적하게 들려왔다. 하늘에는 반달이 처량하게 떠있었다. 반달의 은은한 달빛은 바위 절벽인 산봉우리의 한쪽 면을 고즈넉하게 비추고 있었다.
달빛은 주막의 초가지붕을 넘어와 안마당까지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마방에 묶여있는 말들은 선 채로 긴 눈썹을 내리깔고는 깊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반쯤 열어놓은 헛간을 무심코 들여다보다가 송판 벽에 걸려있는 연을 발견했다.
일전에 최 입지가 손수 만들어서 오 수재에게 주었던 선물이었다. 그때 만들어 준 연을 재수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최 입지는 헛간으로 들어가 벽에 걸린 연을 한참동안 들여다보았다. 방패연에 숙헌이 재미삼아 쓴 붓글씨 자국은 희미하게 바래져 있었고 군데군데 바람에 의한 찢긴 자국에 한지를 덧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최 입지는 오 수재에게 하늘로 향한 꿈을 주고 싶었다. 타고 난 문재(文才)를 잘 살려 청운의 꿈을 하늘에 실어 날려 보라는 의미에서 한나절 공을 들여 만들어 준 연이었다. 아이는 공(公)의 마음을 헤아렸을 것이다.
깊게 쌓였던 눈이 녹고 나자 산 아래 들판이나 둔덕을 찾아다니면서 바람이 적당한 날에 아이는 연을 띄우려고 달렸을 것이다. 가녀린 이마에 차가운 봄바람이 부딪쳐 붕붕 소리를 냈을 것이고 방패연의 가운데 구멍으로도 바람은 쉭쉭 소리 내며 상승력을 불러 일으켰으리라.
방패연이 창공을 향하여 높이 솟구쳐 올랐을 때, 아이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최 입지의 어린 시절의 경험을 되새겨 볼 때 아이 역시 벅차오르는 격정에 가슴은 쿵쾅거리며 뛰었을 것이다. 마치 연과 함께 하늘을 날아 오른 기분이 들었을 것이며 새가 된 것 같은 자유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얽매인 옹색한 삶에서 벗어나 하늘 높이 비상하는 큰 꿈을 안고 기개(氣槪)와 포부를 키웠을 것이다. 사숙하던 숙헌이 세상을 떠나자 새로운 결심을 하여 가출하기까지는 장고(長考)와 번뇌가 어찌 없었을 것인가. 하지만 영특한 아이는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독야청청(獨也靑靑)하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던가.
아이는 장차 숙헌과 같은 고매(高邁)한 유생(儒生)이 되어 한 시대를 풍미하고 과거에 장원급제 한 뒤 관직에도 나아가 재략(才略)과 재력(才力)을 한껏 발휘하여 민초에게 봉사하는 걸물(傑物)이 될 것이다.
하늘 아래 연이 있으나
세상을 내려다보는 눈을 갖추니
고공(高空)의 연은 불세출(不世出)이로다
솔개처럼 높게 멀리 보는 마음
방패연에 싣고 세상을 다스리면
태평천하 한 눈에 들어오리라
최 입지는 헛간의 미미한 어둠속에 오래도록 서서 방패연을 바라보며 아이의 장래를 생각했다. 천애의 고아가 되어 버린 험난한 인생, 그러나 천하는 인물을 알아보는 법. 주모와 같은 걸출한 의붓어머니를 만나 올바르게 성장했던 것이 아닌가. 이제 가출하여 홀로 선 아이는 세상을 풍부하게 경험하며 태어난 자가 지켜야할 도리와 중요한 덕목을 체험을 통해 깨달아 갈 것이다.
언젠가는 과거 시험 도정(道程)에 길손으로 이곳 조령주막에 머물게 될 것인가. 그날의 주모와 오 수재의 해후상봉(邂逅相逢)을 최 입지는 상상으로 그려 보면서 홀로 웃음을 지었다.
최 입지는 여유작작한 걸음으로 주막을 벗어나와 조령 길을 따라서 올라갔다. 달빛은 고갯길을 희미하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한 걸음씩 옮길 때마다 발아래 밟히는 조막만한 돌과 풀잎을 유심히 쳐다보며 최 입지는 자신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느꼈다.
백성의 삶은 풀뿌리와 같은 것이다. 밟히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세상을 뒤덮는다. 탐관오리나 기고만장한 관리들은 알게 모르게 민초들을 짓밟는다. 그러나 밟히는 민초는 사실상 밟은 그들의 오만한 존재 위에 인내와 성심(誠心)으로 군림한다.
가여운 것은 오만방자한 소수의 사악(邪惡)이지 선한 민중이 아니다. 참된 민중은 밟힐수록 깊고 강하게 뿌리를 내리며 세상을 강건(剛蹇)하게 받쳐준다. 세상은 민초들에 의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이지 사리사욕에 넋을 잃은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성상은 그런 면에서 민중의 편에 선 아름다운 통치자이다. 최 입지는 그런 전하를 충성으로 모시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전하가 국정을 펼치는 데 있어서 유능한 재상이었던 숙헌의 노력과 헌신이 큰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은 동서 양인의 주된 세력이 간심(奸心)한 탓이지 성상이 부덕(不德)하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산봉우리 저 너머 늑대의 울음소리가 처연하게 들려왔다. 야생의 울음소리는 달빛과 어울려 소리의 결정을 만들어 냈다. 숲 속 깊은 곳에서 잠이 든 새들의 뒤척이는 소리까지도 선명하게 들려왔다. 미미한 달빛을 받으며 고요하게 잠긴 숲과 고갯길은 고즈넉한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골짜기에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에 뒤섞여서 간간히 노랫가락이 들려와 최 입지의 귀를 의심하게 했다. 적막한 심야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다니 무슨 연유인가. 그것도 흐느낌에 가까운 여인의 한스러운 목소리였다.
조령고갯길에 얽힌 전설 속의 성황신이 살아온 것일까. 최 입지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여인의 구슬픈 노래 소리는 칠성단 감투바위 앞에서 낭랑(浪浪)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칠성단은 과거길 선비들이 풍운의 꿈을 이루어달라고 소원을 빌던 곳이었다. 과거 길에 오른 선비들은 고개를 넘기 전에 이곳 칠성단 앞에서 한양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금의환향의 길이 되기를 염원했고 관직에 등용되는 꿈을 빌었던 곳이다.
여인의 노래 소리는 가까이 다가갈수록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흐롱다리 아흐리덩덩
꿈결에 본 수재야 내 아들아
만면춘색 만록총중 홍일점아
청운의 꿈보다 귀한 것은
인륜과 혈연 아니더냐
자애 모성의 울안 벗어나
타향살이 어인 말이냐
아흐롱다리 아흐리덩덩
그리운 내 아들 오 수재야
반월하(半月下)에 만원(滿願)하니
고혈단신(孤孑單身)이란 생각도 말고
꿈길에 행여 모정을 만나거든
소리 높여 울며 안겨다오
아흐롱다리 아흐리덩덩
재천(在天)이여 수재의 재세(在世)동안
굽어 살펴 주소서 도와주소서
출셋길 입신양명(立身揚名)보다
우국충정(憂國忠情) 애민제일(愛民第一)의
치자(治者)가 되기를
정도(正道)로 인도해 주시고
정직(正直)과 신망(信望)의 자 되도록
인도해 주소서 보살펴 주소서
아흐롱다리 아흐리덩덩
여인의 구슬픈 노랫말은 이러했다. 어둠 속에서 희미한 달빛을 받으며 감투바위에 머리 조아리며 노래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주모였던 것이다. 최 입지는 놀란 마음을 쓸어 담으며 주모의 노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자신의 피붙이는 아니었지만 오 수재를 향한 주모의 사랑은 지고지순하며 헌신적인 것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학문을 배우기 위해 가출한 아들에게 사랑과 염려의 마음을 담아 저렇듯 깊은 밤에 칠성단에 나와 치성을 드리며 자신의 마음에 맺힌 한을 풀어내는 어미의 심정이 노랫말 속에 구구절절하게 배어 있었다.
최 입지는 주모의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두 뺨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열 달을 어미의 뱃속에 넣어 기른 이 땅의 어머니들은 저렇게 애타는 어미의 자식 걱정을 환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낳지도 않은 아이에게 쏟는 모정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모자랄 까닭은 없는 것이다. 핏덩이를 안고 처녀의 몸으로 젖을 먹여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시절도 있었다.
기방의 문란한 환경이 인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해서 산골로 이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숙고의 기간이 있었을 것인가. 오로지 자식 교육을 염려하여 생업도 포기했던 여인이었다. 타고 난 기질과 숙명이 어쩔 수 없어 술장사를 그만두지 못하게 했지만 그녀가 이끌어 온 조령주막은 주궁패궐(珠宮貝闕)의 객점이 아닌 풍류가객(風流佳客)의 안식처였다.
산 좋고 물 맑은 죽령의 중턱에 자리 잡은 조선 최고의 명소인 죽령주막에서 선비들은 글을 지으며 문재를 겨루었고 사대부의 유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시국을 토론하는 장이 되기도 했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재상이었던 숙헌도 이곳에서 주모의 거문고에 맞춰 시조를 읊조리지 않았던가. 그런가하면 평민들이나 객상들이 지친 몸을 쉬어가는 곳이기도 하였으니 이곳이야말로 평등한 민중의 휴게소이며 길손을 위한 진정한 쉼터인 것이다.
최 입지는 한 어머니의 애끓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슬며시 자리에서 벗어나왔다. 소나무와 전나무 숲 사이로 맑은 밤하늘이 보였고 모래알을 뿌려놓은 듯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러 펼쳐져 있었다. 어머니의 눈물과도 같은 별들을 바라보며 최 입지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산길을 내려오면서도 최 입지의 마음은 숱한 상념에 짓눌려 무겁기만 했다. 평민이든 사대부의 자손이든 서로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잘 살아나가려면 국가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이조 이백 년의 태평성대는 과연 지속될 것인가. 선조 이십 사년, 신묘년 팔월의 짙푸른 녹음이 어둠속에서 달빛을 받아 검은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산길을 내려오며 최 입지는 애잔하게 끊어질듯 이어질 듯 들려오는 주모의 노래 소리를 가슴에 담은 채 올라올 때의 느긋함과는 다른 숙연한 마음으로 조령 주막을 향해 무거운 발길을 내딛고 있었다.
-끝-
첫댓글 이 두 작품이 애정이 깊은가 보네, 중편인가?
원고로 치면 얼마나 될까? 난 분량 측정이 잘 안돼서..
한글에다 넣고 문서정보보기를 누르면 원고지로 계산해서 알려주죠.
원고지 307.7장이라고 나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