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시를 쓰려면 우리는 詩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나 잘못된 환상, 허영 따위는 버려야 한다.
詩를 쓰는 사람들은 여러 부류다. 재미있어 쓰는 경우, 재능을 시험하고 싶은 경우, 타고난 경우(文才),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답답해서... 욕구불만으로 인해, 현실도피의 차원, 허영심, 시에 대한 막연한 환상,
자기 치료의 목적, 정말로 그 전율적 아름다움에 취해(카타르시스), 연애감정, 아니면 사기 좀 치려고 등등..
등등.. 기타등등...
참된 詩 쓰기는 일종의 사랑의 열병이나 수도자의 고행과도 같은 것이다. 詩를 쓸 때는 누구나 나름대로 방법이 있다.
그렇지만 그 중의 공통된 과정은 몰입이거나 집중이다. 몰입은 그 바탕이 열정과 순수다. 가슴으로 쓰는 글이다.
몰입이 없는 詩 쓰기는 집중이다. 머리로 쓰는 글이다. 둘 다 비슷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지 않다.
몰입은 시적 영감(詩的 靈感)을 근본으로 한다. 집중은 노력(勞力)을 기본으로 한다.
몰입에서의 시적 영감이란 진정성을 가진 작자의 시적 진실(체험)과 상상의 만남이다.
물론 집중에서도 시적 진실(경험)이나 상상이 존재한다.
그러나 진정성이 빠진 집중에서의 그런 재료들은 일종의 기술이며 노력이다. 그 결과는 말장난이다.
말장난이란 어감 때문에 집중의 詩 쓰기를 무시해선 안 된다. 그것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다난했던 피땀이다.
몰입은 창작이지만 창작과 말장난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얼마나 순수한 집중이었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예로 차를 운전한다고 치면 집중은 열심히 앞과 뒤와 옆, 사방을 신경 쓰며 운전하는 것과 비교된다.
조심성 있는 긴장이 곧 집중이다. 거기에 비해 몰입은 자동차 경주의 운전과도 같다.
둘 다 고도의 숙련이 필요한 기술들이지만 자동차 경주는 사생결단의 진정성이 곁들여진다.
전시적 상황에서의 최선의 행동과 일시적 훈련연습과도 비슷하다. 미숙한 상태에서의 몰입은 재능의 가능성이지만
집중은 자기개척이 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의 노력과 타고난 운동신경(감성)으로 숙달된 몰입은 창조로 이어진다.
그러나 詩를 쓰는 사람이 늘 긴장하고 몰입할 수는 없다.
그에게도 생리적 안정과 편안함과 그 밖의 욕구들이 내재하므로 그럴 때 써야 하는 경우는 집중이 될 수밖에 없다.
집중을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집중에서 나온 글을 말장난이라 일컫는바, 이는 매너리즘의 발단이 되기 쉽다.
그러면 이것을 어떻게 구별하여 바라볼 수 있을 것이냐. 간단하다. 백번씩 읽어보면 된다.
독서백편의자현(讀書百遍義自見),...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 백번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열 번도 좋고 스무 번도 좋다. 읽는 이의 마음이다. 다 읽어본 뒤 놔두고 놔두었다가 또 읽어보고, 가만있어도 저절로 알아진다.
두 가지의 이 몰입과 집중의 결과는 언뜻 같아 보인다. 그렇지만 몰입에서의 결과는 권태를 배척한다.
그런 글은 아무리 읽어도 함부로 싫증이 나지 않는다. 집중에서의 결과는 아무리 좋아도 언젠가는 꼭 싫증이 나고 만다.
詩 쓰기를 일종의 얼굴 화장이라 부르고 싶다.
얼마나 정성 들여 화장하느냐에 따라 본모습이 달라진다. 본 모습이란 사실적인 것을 말한다. 곧 시적 재료이다.
이 시적 재료를 얼마나 상상과 노력, 또는 진정성과 진실로 이끌어 가야 하느냐가 관건이지만 대부분의 화장은 노력으로
끝을 맺는다. 만일 이 노력만으로 쓰인 얼굴이라면 그것은 단지 본모습을 가리거나 착시로 몰아가는 기술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내면의 정신과 몰입으로 그려낸 얼굴이라면 화가들의 그림처럼 그 예술성이나 창조성이 빛날 것이다.
보디 페인팅을 단지 기술이라고만 말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보통 얼굴 화장은 화장 기술이라 말한다.
오이나 우유, 진흙 등등의 팩을 하고 그 위에 덧바르는 피부화장이나 색조화장을 예술이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노력이다.
詩 쓰기도 그와 같다. 온갖 허영심으로 미사여구를 쏟아내는 글은 자세히 보면 그 내막이 보인다.
요즘은 신춘문예의 글들이 미사여구는 아닐지라도 이런 경향을 많이 띠는 성 싶다.
그 이유는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입맛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좀은 색다른 시상과 필법도 그것이며 그들이 가진 개인적 문학개념에 맞아 주어야 한다.
잘 쓴다고 되는 일은 거의 없어 보인다.
본래는 숙련된 필력과 새로운 가능성을 함께 보는 것이겠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적인 또는 추세의 선택성이 있어 보인다.
어떤 시상이 떠오르면 이야기 줄거리를 만들어 그 핵심의 말꼬리를 변형시켜보면 알 수 있다,
섬세하게 분화되는 정서적 표현은 제외하고서. 말장난의 결과적인 글에도 좋은 글이 많이 있다.
대량의 공산품이나 소량의 수제품이나 그 사용가치에선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전자가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을 감동하게 하는 것은 예쁘고 잘 만들어진 것들이 아니라 한땀 한땀 기워진 한 인간의 열정과
순수, 영혼과 노력이다. 詩도 일종의 이야기다. 그렇지만 시와 이야기는 사뭇 다르다. 또한, 일정한 공식에 맞추어
집어넣는 팥소 같은 진빵이나 호떡도 물론 아니다.
첫댓글 비비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 카페에서는 다소 번거롭지만, 첫인사를 나눈 후 등업해 드리는 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좋을 글 부탁 드립니다.^ ^
안녕하세요. . ^^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
반갑습니다. 선생님. 충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