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란과 청복(淸福)
김종훤(수필가)
난(蘭)은 강한 햇볕에 노출되기를 싫어한다. 한적한 산야, 약간 그늘진 곳에서 영화도 없지만 오욕도 없는 조용한 삶을 희구한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그러나 흠도 없이 티도 없이 자연이 준 분수대로 살다가 자연이 준 수명대로 죽어가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난은 자연의 상태에서 채취당해 좁은 화분 안에 가두어진 삶을 살고 있다. 그러기에 난은 자연의 삶을 매우 그리워하고 자유의 날을 소망하면서 자기 수련에 경건히 정진하는 모습이다.
정( )한 물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고, 정한 모래가 아니면 뿌리를 내리지 않음은 제 살던 풍토가 그리워서요, 기온이 알맞지 않으면 성장을 멈추고, 습도가 알맞지 않으면 꽃을 피우지 않음은 제 습성대로 살고자 하는 말없는 저항인 것이다. 이는 난 본래의 성품이기도 하지만 자연의 상태에서야 이다지 까다롭게 굴 까닭이 없는 것이다.
난은 더위에 시달리거나 추위에 얼어도 시들어지지 않는다. 죽어도 평소의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말라죽는다. 비록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바르게 살다 깨끗이 죽을지언정 비굴한 삶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뿌리 부분의 두터운 세포층에 항상 적당량의 수분을 저장하고 있다가 수분공급이 부족할 때 자기자신의 것만으로 유유자적한다. 그러나 수분이나 양분의 공급이 적당량을 넘으면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필요량 이외의 정도에 넘친 물질은 바라지 않는 탓이다. 쾌적한 환경, 자유로운 생활만 보장된다면 난은 필시 좁은 화분 안에서도 자족할 터이다.
난은 집착이나 욕심이 적기 때문에 언제나 푸르고 싱그럽게 살 수 있다. 그 푸르고 싱싱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건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난은 욕심은 적으나 생명의 의미는 꾸준히 추구한다. 무더운 여름내 아무런 변화도 없는 듯하지만 실은 남몰래 꽃망울을 잉태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으내 겨우내 조심조심 몸 안의 생명을 가꾼다.
아직 차가운 이른 봄,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꽃망울은 방그레 얼굴을 붉히면서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한다. 조선의 여인들이 쓰던 푸른빛 장옷인 양 푸른 꽃부리를 살며시 들추면서 다소곳이 내어미는 새하얀 얼굴의 춘란소심(春蘭素心)--순백의 나비런 듯 살포시 사려앉은 아련한 모습은 잠시 황홀한 경이에 젖게 한다. 소망이 넘쳐나는 밝은 표정과 기쁨을 머금은 청순한 눈매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세사(世事)에 영합하지 않고 제 뜻대로 순수하게 살다 순(殉)한 생명의 부활이다.
좋은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 기꺼움이 그 눈초리에 나타나게 된다는 청안(靑眼)과도 같은 꽃, 온갖 잡스러움을 멀리하고 세심(洗心)으로만 소심(素心)으로만 가꾸어 피운 신앙과도 같은 꽃, 세상의 모든 일에 감사와 기쁨으로 충만하여 자연히 밖으로 나타나는 법열의 미소와도 같은 꽃......이 소심란을 마주하면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청복(淸福)이란 것이 무엇인지 조금쯤 알 듯한 충동을 받기도 한다. 참으로 사랑스럽고 소망스러운 꽃이다.
난(蘭)--가만히 뇌어보면 입안에서 개운한 맛을 자아낸다. 그 맛을 진득이 음미하면 향수어린 고향의 향긋한 맛이 뇌리에 퍼진다. 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에서 개구쟁이 친구들과 개암을 따먹던 애틋한 추억의 그 맛......
난은 이름조차 아름답다. 글자조차 예쁘다. 좋은 친구를 난객(蘭客)이라 하고 뜻맞은 친구와의 사귐을 금란지교(金蘭之交) 곧 금란(金蘭) 또는 난교(蘭交)라 한다. 훌륭한 남의 자식이나 아녀자의 고결한 정절은 난옥(蘭玉), 지조가 굳은 사람을 난석(蘭石), 아름다운 샘을 난천(蘭泉), 아름다운 집을 난당(蘭堂), 문장의 아름다움을 난조(蘭藻)라 하는 등 모두가 한결같이 아름다운 말들이다.
오동나무는 천년을 늙어도 항상 곡조를 품고 있고, 매화나무는 일생 동안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는 옛시가 있는데 그 항장곡(恒藏曲)과 불매향(不賣香)을 함께 갖춘 것이 난초가 아닌가 싶다.
항상 푸르고 싱싱하여 그 청초함을 잃지 않음은 늘 노래와 소망을 품고 있음이요, 차라리 시들어 죽을지언정 정한 물이나 정한 모래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음은 그 향기, 그 지조를 팔지 않음이다.
꽃의 향기는 맑되 진하지 않아 청향(淸香)이라 하고, 은은하고 그윽하여 유향(幽香)이라 한다.
원만히 휘어진 곡선의 멋스러움, 정갈하고 맑은 자태, 순박하면서도 결곡한 때깔 등 예나 이제나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는 그 고결한 천품을 변치 않은 탓이리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싱싱한 생명력이 전해져 오는 청초 무비함이야말로 난의 성품 중에서도 가장 빼어난 진수이다.
<중용> 첫머리에 "하늘이 주신 것이 성품이요, 성품을 따르는 것이 도(道)요, 도를 닦는 것이 가르침이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라는 말이 있다. 하늘에서 받은 성품을 그대로 잘 따른는 것이 도(道)인데, 그 도를 잘 닦는 것이 자기의 본성을 깨닫에 하는 교육이라는 뜻이다. 난이야말로 솔성(率性)의 경지에 들어선 군자(君子)임이 분명하다.
오늘도 난초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청심(淸心)과 청향(淸香)과 청복(淸福)을 배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