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필요한 것은 노후
스님 회향할 ‘터전’마련
2008년도 불교미래사회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스님 65.4%가 노후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불안 요소로는 거처 25%, 생활비 23.2%, 질병치료 21.8% 순이었고 종단이 가장 먼저 세워야할 노후 대책으로 의료 및 생활 수발자 지원 39.8%, 거처문제 35.2%, 수행비용 18.2%를 꼽았다. 또 스님들이 개인 재산을 축적하는 이유가 26. 1%가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인 것으로 조사됐다. 응답자 중 67.1%는 노후 거처를 마련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는 스님들 대부분이 노후를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불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스님들이 나이 들어가면서 회향할 곳이 마땅찮습니다”
지난 3월 21일 21세기 미래불교를 밝혀나갈 것임을 천명하고 창종 대법회를 가진 ‘대한국불교조계종’ 창종주이자 초대 총무원장으로 추대된 덕산 응천 스님은 새로운 종단 출발을 앞두고 창종의 의미를 우선 스님들의 노후 복지라고 정의했다.
지난 해 10월 15일 창종 선포식에 이어 창종 법회가 봉행된 5개월 여 사이 전국 100여개 사찰이 입종한 배경 또한 노인 복지 차원에서 마지막 가는 길을 안정되고 편안하게 인멸할 수 있는 도량을 찾고자 하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고 설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터전’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생활의 터전이 어디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스님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그만큼 자신의 터전이 불분명하고 노후가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죠”
불교와 관련된 종단만 하더라도 200여개가 넘는다는 통계를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종단을 창종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결코 호의적이지 않은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생각해볼 때 어려움은 익히 짐작할 수 일일 터인데도 일을 벌였고, 더 큰 일들을 눈앞에 두고 있다.
덕산 응천 스님은 신라 도의국사를 종조로 ‘대한국불교조계종’을 창종할 때 “우리 모두 일불제자로서 종단, 종파 구별 없이 보살정신으로 함께 가자”고 말했다. 참 맑은 정신으로 깨달음을 통한 우리 모두의 길을 향해서는 것이었다. 그 결과 5개월 동안 부산 전국비구니원, 옥선사, 울산 정현사, 부산 기장 화엄사 등 100여개 타 종단 사찰들이 승적을 포기하고 대한국불교조계종에 입종하기에 이르렀다.
체계적인 교육 체제로 21세기 미래불교 열 것
‘대한국불교조계종’ 초대 종정으로 모신 혜광 스님은 곽동선 태허 스님의 같은 문도이자 덕산 응천 스님의 승가 맏 사형인 세수 83세의 노스님이시다. 평생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사찰 주지 한번 안 하고 ‘무소유’ 정신으로 몸담아 온 존경받는 인물로 알려졌다.
“우리 대한국불교조계종 종도 여러분들은 종정 예하님을 정신적 지주로 받들고 한국불교와 세계불교 발전을 위하여 수행정진하면서 홍포해 줄 것을 부탁드립니다.”
덕산 응천 스님은 혜광 스님을 종정으로 모실 때 이렇게 강조하고 80평생 오로지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수행 정진 해 오신 스님으로서 초야에 묻혀 지내오신 분이라고 소개했다.
창종 총무원장 덕산 응천 스님은 금강경과 화엄경, 법화경 등을 소의경전으로 출발하면서 부처님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고 정직하고 강직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종단을 운영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즉 부처님을 시봉하는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내 품에 안고, 큰 고목나무처럼 비바람에도 버텨내는 버팀목 역할을 하겠다는 다짐하고 창종에 앞서 열 가지 ‘터전론’을 설명했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는 것이 그 첫째, 부지런히 일하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두 번째, 몸을 닦고 정진하며 천성을 함양하는 것이 세 번째였다. 그리고 괴로움과 힘든 일을 이겨내고 참아내는 것, 희생하고 삼가 바치는 것, 존중하고 포용하는 것, 중생에게 즐거움을 주고 괴로움을 없애주며 기쁘게 베푸는 것, 바르게 알고 바르게 보는 것, 규칙적이고 성실한 것, 마지막으로 법도를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이 ‘터전론’은 결국 노스님들의 안락한 터전과 복지를 내건 운영 약속이자 방침이고 철학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대한국불교조계종’ 총본산은 서울 삼각산 자락 평창동 정토사에 자리 잡았다. 여기서 내려다보면 서울 주변 일대 경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종 선포식과 종헌 종법 제정의 산실이고 삼보신문 현판식도 이곳에서 행해졌다. 불보살이 사는 번뇌의 굴레를 벗어난 아주 깨끗한 세상을 일컫는다는 ‘정토’라는 말뜻과 함께 모든 중생들에게, 또 모든 스님들에게 무량정토, 극락정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의 중심지인 셈이다.
정토란 과연 이승 사람들에게는 꿈의 세상이다. 우리 모두의 이상향이기도하다. 훌훌 사생활을 모두 털어놓고 애종심, 애향심으로 나가면 바로 이것이 과연 정토가 아닐까.
스님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과 할 일
스님은 자의 보다는 타의에 의해 입산했다고 한다. 입산할 무렵의 형편은 모두가 가난하고 궁색하던 시절이었다.
“절에 갈래? 중학교에 갈래?”
스님이셨던 선친께서는 아마도 당신의 후계를 생각했던지 절에 가는 조건으로 옷과 운동화 선물로 14세 아들의 마음이 동하도록 만들었다. 지금으로부터 38년의 이야기지만 새 옷, 새 운동화는 누구나 가지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결국 그 때문에 경북 영천 고향을 떠나 부처의 가르침을 찾는 구도의 길에 들어섰다.
스님의 행장은 예상보다 화려하지 않았다. 이유는 태허, 설산, 일붕, 도철 등 큰 스님들 시봉 생활로 자기 활동을 못했던 데서 연유한다. 일찍이 14세 때 대한불교조계종 10교구 본사 은해사 입산을 계기로 불가와 인연을 맺었고 태허 스님을 은사로 득도해 운행(雲行)이라는 법명을, 설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며 응천(應天)이라는 법명을, 일붕 스님을 법사로 비구계를 수지하면서 지광이라는 법명을, 도철 스님으로부터 법사로 건당을 세우면서 덕산(德山)이라는 법호를 각각 받아 법호, 법명이 모두 넷이고 한 때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도 시봉했다.
스님은 지금도 일붕 서경보 문도 지회장이다. 동국대불교대학원에 다니면서 당시 불교대학장이던 큰 스님으로 인해 서울 교구 종무원장과 종회의원 등을 역임한 인연의 길이 무엇보다 소중하기 때문이다.
큰 스님들의 시봉 생활을 떠나 주지로 머문 곳은 포항 수정사, 덕성사, 해동정사, 영천 영통사, 봉화 지림사와 서울 평창동 정토사 등지의 사찰들이다. 이어 부산 지림사 포교원과 통도사 극락암 선방 등지서 수행 생활을 거쳤다.
평창동 정토사는 은사 설산 큰 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스님에게는 매우 의미가 있는 절이 된다. 바로 이곳에서 노 스님들의 의료사업 혜택 등 복지, 21세기 미래를 여는 각종 계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2050년이 되면 노인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노인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 수명이 80살을 넘어섰다.
불교계라고 이 현상이 예외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구도를 향한 스님의 길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노후 보장은 있어야 된다는 게 덕산 응천 스님의 생각이다. 여러 종단 소속의 스님들 대부분이 노후 머물 곳이 없다는 현실은 ‘대한국불교조계종’의 과제만은 아닐 것이다. 노후 스님에게 필요한 것은 건강하게 사는 것과 소일거리를 주는 일이다.
100여개가 넘는 전국 비구, 비구니들이 짧은 기간 동안임에도 여기에 동참한 것은 여기가 ‘삶의 터전’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때문일 것이다.
스님이 정토사 설산 장학회를 통해 해마다 중 고교생 3명씩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과 스님 노후 보장 대책은 아마도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은 온 세상에 많으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한다고 했다. 스님은 부처님 교리를 봉체하고 정법수행과 원융무애 사상으로 국태민안을 발원하면서 동시에 ‘터전’이 없는 스님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처의 길을 찾아 나섰으니 기대 또한 크다.
글 = 무악재 /사진= 이한규 국장
아래글은 나무아미타불 카페회원들이 달아놓은 댓글이다.
첫댓글 왜 포털 카페에 유사조게종단의 창종의 글을 올렸을까....?
종단명 변경을 요구하는 이들의 댓글에 신중히 고려 내지는 종단이름 공모...조계종을 쓰지 않을려고 고려중입니다등의 댓글로 응수하고 있다. 그는 한종단의 수장이다 수장답지 못한 게시글이며 댓글이다.
또한 한소식 했냐고 물어오는 이들의 질문에 한소식 못하였노라고 한다...
밑에 비웃는 출가자의 한줄의 글...
종단 이름 부터가 코메디라고 바르지 못한 처사라고 뭇매를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