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서던테라스 앞의 귀여운 크리스마스 조명물>
올해 일본에서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됐습니다. 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연말이어서 그런지 한국이 더 그리워지네요. 다행히 가족이 크리스마스 때 올 예정이어서 쓸쓸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일본의 크리스마스는 언뜻 보면 분위기가 우리와 비슷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조금씩 다릅니다. 어떤 점이 다른지,일본 도쿄의 크리스마스 풍경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적어 내려 가겠습니다. ‘아,일본은 이렇게 크리스마스를 지내는구나’ 하고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주세요.
1) 평일- 일본에서 크리스마스는 공휴일이 아닙니다. 이상하다 싶지만,차분히 이유를 따져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우리와 달리 국민 중에 기독교 인구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입니다. 1%도 안 됩니다. 최근 통계로는 0.6%인가 0.7%인가 그렇다고 하네요. 그러니,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공휴일로 지정할 이유가 없는 것이죠. 더욱이 일본은 불교신도-우리와 상당히 다르지만-가 많지만, 석가 탄신일(양력 4월8일) 도 공휴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일본과 중국은 종교와 관련해 어떤 법정 공휴일도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올해 크리스마스 이브는 공휴일입니다. 분명히 24일 이브는 일본 달력에 붉은색 공휴일로 표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쉬는 이유는 크리스마스와는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현재 일왕(日王)인 아끼히토의 생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정확히 23일이 생일이지만, 올해는 23일이 일요일이라 그 다음날인 24일이 일종의 대휴(代休)로 공휴일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층에서는 일왕의 생일을 ‘크리스마스 이브 이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크리스마스가 휴일은 아니지만 이 날을 전후로 일본은 본격적인 연말 휴가시즌에 들어갑니다. 신정이 공식 설날인 일본에서는,관공서가 12월 29일부터 1월 3일까지 휴일입니다. 일반기업도 이 기간을 전후해 휴일로 지내는 곳이 많습니다. 학교도 짧은 겨울방학에 들어갑니다. 제가 있는 게이오 대학도 12월 23일부터 1월 5일까지가 겨울 방학 기간 입니다.
<일루미네이션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줄서있는 일본인들>
2) ‘커플 데이’- 대부분 일본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발렌타인 데이나 할로윈 데이 같은 신나는 서양의 이벤트 중 하나일 뿐입니다.앞서 말씀 드린 대로 기독교 인구가 거의 없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당연히 ‘경건하게 보내자’ 이런 식의 분위기도 아예 없습니다. 그냥 신나게 먹고 놀고,즐기는 날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처럼 크리스마스 세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이라는 크리스마스의 기원도 모르는 일본인들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그냥 ‘유명한 외국명절’ 일 뿐입니다.
특히 젊은 커플들에게는 최대의 명절입니다. 어떤 멋진 이벤트를 만들까,어떤 로맨틱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낼까 난리입니다. 잡지와 TV에서는 최소한 한달 전부터 어디에서 만나서,어떤 선물을 하고,무엇을 먹고,무엇을 해야 할지 각종 정보를 쏟아내며 호들갑을 떱니다. 유명 백화점과 쇼핑센터도 대목입니다. ‘크리스마스 전쟁’이라고 표현될 정도로,12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사력을 다합니다.
또 유명 레스토랑과 호텔도 오래 전부터 예약을 하지 않으면,자리를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내 유명 호텔은 최소 몇 달 전에 예약이 끝난다고 합니다. 이날 쓸 유흥비를 위해서 여름부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젊은이의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을 정도로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특히 러브호텔이 가장 성황을 이루는 날이라고 합니다. 성 문화가 개방적이다 보니,이날 연인과 얼마나 좋은 호텔에서 보냈는지가 자랑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성(聖)스럽기는 커녕 성(性)스럽다고 해야 겠죠. 또 크리스마스에 홀로 보내는 젊은이는 당연히 불쌍한 사람으로 취급됩니다.
<신주쿠 백화점 다카시마야 백화점앞의 일루미네이션...서커스가 소재>
3) 일루미네이션-사전에 ‘전구나 네온관을 이용해서 조명한 장식이나 광고’라고 나와있는 일루미네이션은 일본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특색 있게 만듭니다. 서울의 청계천에서도 일루미네이션 전이 열리던데,이를 연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여들만한 곳에는 거의 어김없이 멋진 일루미네이션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도쿄타워나 신주쿠,롯본기,오다이바,오모테산도,마루노우치,긴자 등 도쿄 번화가는 개성 있고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이 설치돼 눈길을 끕니다. 도쿄뿐만 아니라 훗카이도와 요코하마,나고야,오사카 등 일본 전국에 걸쳐 특색 있는 일루미네이션이 설치됩니다.
각각의 일루미네이션은 그냥 조명장식이 아니라,일종의 컨셉이 있는 하나의 멋진 공간예술 작품으로 대우를 받습니다. 작품명도 있고,프로듀서는 유명세를 탑니다. 훗카이도는 화이트 일루미네이션(꽤 유명해서 한국에서 가는 관광상품도 있습니다),롯본기 힐스는 블루 일루미네이션,나고야의 이탈리아촌 겨울 일루미네이션,’별의 꿈’요코하마 일루미네이션 등입니다. 이를 보기 위해 오는 관광객도 꽤 많다고 합니다. 각지에 설치된 일루미네이션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층 띄웁니다.
일루미네이션 정도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에도 꽤 정성을 쏟습니다. 긴자 거리를 돌아다니면,나름대로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많이 보게 됩니다.화장품 회사인 시셰이도 긴자 본사의 트리는 해마다 전구색깔이 바뀌는데,어느 색이냐가 이 일대에서는 화재거리라고 하네요. 올해의 색은 붉은색이라고 합니다.
훗카이도 화이트 일루미네이션은 벌써 올해가 27회째 랍니다.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부여하고,일종의 전통으로 만들어 낸 뒤,끝내는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우는 일본인 특유의 기질과 상술이 일루미네이션에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이세탄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케이크...2주전 예약 끝>
4) 케이크- 우리도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는 가정이 많습니다만, 일본은 그 정도가 다릅니다. 우리가 설날 떡국을 먹는 것처럼, 다들 당연히 크리스마스에 먹어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기간에 소비하는 양도 엄청 납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거리에 케이크를 엄청나게 쌓아두고 팔아 치운다고 합니다.
질적으로도 다릅니다. 우리같이 그냥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빠가 빵집에 들러서 사오는 정도가 아니라,이때 먹는 ‘크리스마스 케이크’라는 별도의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생크림과 딸기로 장식한 스폰지 케이크의 일종인 ‘스트로베리 쇼트케이크’가 주종인데,요즘에는 꼭 이 종류만을 고집하지 않고 다양한 종류로 만든다고 합니다. 유명백화점이나 호텔,유명 파티셰가 있는 유명 제과점에서는 보통 10월 중순에서 말부터 주문을 받는다고 합니다. 대개 11월이면 주문이 끝난다고 하는데,얼마나 유명하냐에 따라서 마감도 빨라진다고 합니다. 개수도 딱 정해져 있습니다. ’000(유명 파티셰)씨가 만든 000백화점 000개 한정’식으로 라벨이 붙는다고 합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전쟁’으로 표현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유명한 케이크를 먹으려면 최소 한달 전부터 예약을 서둘러야 한다고 하네요.
특히 올해는 전통 있고 유명한 대형 식품 메이커들이 위장판매를 해온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대량 생산되지 않는 케이크’,’인기 파티셰가 만드는 한정 케이크’가 더욱 주목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를 두고 ‘오리지날’과 ‘스페샬’을 강조한 마케팅이라고 한답니다. 하여튼 사진에서 보시면 알겠지만,무척 귀엽고 앙증맞게 만듭니다. 유명 백화점과 제과점에는 요즘 워낙 사람이 많은데다 사진촬영이 금지가 돼서 많이 찍지 못했지만,정말 잘 만듭니다. 저도 이번에 가족과 같이 먹어볼까 하고,가까운 동네 백화점을 찾았는데 벌써 지난 일요일에 마감이 됐네요.
<일본 KFC 홈페이지...기간한정 크리스마스 세트 예약중>
5) 치킨 -앞의 네 가지는 대충 이해가 갔지만,저는 대부분 일본 가정에서 치킨을 먹는 날로 인식한다는데 솔직히 놀랐습니다. 일본 친구들을 붙잡고 보통 일본 가정의 크리스마스 풍경은 어떤지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각종 장식을 한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서 케이크와 치킨을 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날’이라고 말하더군요. ‘치킨’은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정말 먹느냐고 거듭 되물었죠. 제가 하도 놀라니까,한국은 안 먹냐면서 오히려 이상한 듯이 반문하더군요. 혹시나 제가 아는 친구들만 먹나 싶어서,다른 일본인에게도 물어봤더니 다들 먹는 것이 보통이랍니다. 2천4년 한 광고회사의 조사에 따르면,크리스마스에 먹고 싶은 요리 1위로 ‘로스트치킨’이 41.9%로 1위를 차지했을 정도니까요.
혹시 서양의 추수감사절 때 칠면조를 먹는 것이 일본에 전해지는 과정에서 와전됐나 싶어서,인터넷을 뒤져보니 족보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더군요. 서양에서도 미국,영국은 칠면조,프랑스는 로스트치킨,호주에서는 생후 1년 된 양의 고기인 호깃을 먹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크리스마스에 치킨을 먹게 된 것은 KFC의 상술이 결정적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KFC가 일본 진출 초기에 “크리스마스에는 켄터키를!”이라는 구호로 대대적인 광고를 펼쳤는데,이것이 엄청 히트를 치면서 일반화됐다는 것입니다. 미야자와 리에 같은 여배우도 지난 1986년 13살의 앳된 나이에 KFC의 “켄터키 크리스마스” TV광고에 출연했습니다(당시 CM영상이 최근 유튜브에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더군요). 하여튼 일본 KFC의 대성공작으로 평가 받고 있고,일부 마케팅 책에 유명한 사례로 나온다고 합니다. 다양한 팩이 있는데,특히 플라스틱 통에 치킨과 샐러드,케이크를 넣은 KFC 크리스마스 선물 세트인 ‘파티배럴’이라는 제품은 수량 한정으로 석 달 전부터 예약을 받는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가격대는 4천엔 에서 5천엔 정도로 비싸네요.
그러나 올해는 이달 초 치바현의 KFC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고3 학생이 자신의 블로그에 “두 달 전 켄터키에서 바퀴벌레를 잡아다 튀겼다”는 글을 올려 상당한 파문이 일었다고 합니다. 일본 KFC측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고,그 학생도 장난이라며 사죄했지만,이미지에 상당한 타격을 받았다고 하네요. 또 이 학생은 결국 학교도 자진 퇴학했다고 하네요. 일본 외식업계에서는 이번 해프닝이 올해 매상에 어떤 영향을 줄 지 관심사라고 합니다. 해마다 크리스마스 때면 KFC매장 앞에 길게 줄을 선다는데,올해는 아무래도 줄어들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더군요.
<일루미네이션을 배경으로 사진찍는 일본 어린이들>
<록본기힐스의 '블루 일루미네이션'...올해가 5번째>
출처: http://ublog.sbs.co.kr/youpeck |
첫댓글 이뻐요~물론 우리나라에도 많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