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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무심선원 김태완 선원장의 공부이야(하)🗼
⑦ 내 자신이 이만큼 자유롭게 되고 선원의 일도 여러 가지로 바쁘고 하자 스승님의 회상에 공부하러 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선원을 열고 난 2~3년 뒤에는 스승님의 회상으로 공부하러 가는 일은 그만두고 가끔씩 시간이 날 때에 들러 인사만 드렸습니다.
이제는 스승에게 의지함 없이 나의 길을 스스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하겠다는 내면적 욕구도 있었고, 내 자신의 공부는 내 스스로가 완성해야지 언제까지나 스승의 영향 아래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장성한 자식이 독립하여 자기의 길을 찾아간다고 하여야 할까요?
한편 무심선원이란 이름으로 선원을 열어 놓고 또 신문에 글도 쓰고 하여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인지 종종 마음공부하시는 분들이 찾아오셔서 대화를 요청하곤 하였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저의 공부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자신의 공부를 드러내 보이시고 저는 제 공부를 드러내 보이면서 서로 탁마하고 공부하는 기회로 삼는 것이지요. 여러 부류의 공부인들이 찾아왔습니다. 어떤 분은 분명하게 외도(外道)의 길에 서 있었고, 어떤 분들은 저와 같은 길에 서 있었습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서 저는 제가 분명히 세속에서 해탈하여 얽매임 없고 머묾 없고 흔들림 없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만, 한편으로는 아직은 해탈한 자리의 힘이 세속의 분별과 시비의 힘을 압도할 만큼 충분히 강하지는 못함을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마치 빨리 자라서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처럼 좀 더 강하고 확실하고 흔들림 없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부러 선지식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네 공부가 높으냐 내 공부가 높으냐 하고 겨루어 보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으나 그 순간 내면에서 시비심과 승부욕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는, 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어 공부에 방해가 될 것만 같았기에 그만두었습니다. 이렇게 싹이 올라와 자라고 있는 내 공부가 아무런 방해 없이 순수하게 본래의 성품에 따라 자랄 만큼 충분하고 완전히 잘 자라주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또 어떤 부분에서는 분명하게 판단이 서지 않아서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찾아오는 분들을 만날 때에도 그분들의 공부의 큰 테두리가 옳은 길에 있는지 그른 길에 있는지는 분명히 판단이 되었지만, 미세한 부분에 들어가서는 공부가 어느 정도로 완성되어 있는지를 잘 판단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것은 물론 나의 공부가 그렇게 미세한 부분까지 초점이 정확히 맞아 있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나의 눈도 그렇게 미세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온갖 것들로부터 많이 자유롭고 또 언제나 흔들림 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바른 공부의 길에 들어서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아직 스스로의 힘과 능력이 부족함 또한 분명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또 입으로는 분명 여법(如法)하고 앞뒤가 맞는 분명한 말을 자신만만하게 하면서도 마음속은 그렇게 자신만만하지 못하고 무언가 부족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도 하였습니다. 이전보다는 많이 자유로와졌다고 하지만 역시 아직 육체와 마음의 감각이나 의식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것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여전히 육체가 있고 마음이 있어서 그 장애에 걸려 있었죠.
특히 어쩌다 욕망에 끄달릴 경우나 가족이나 친지 등 사람들에 끄달릴 경우에는 언제나 자신의 공부가 아직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끼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루에 일정한 시간은 혼자만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여전히 좋아하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이라든지 친지들도 여전히 부담스러운 존재였으므로 집에서도 가능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했습니다.
⑧ 그 당시에는 선원이 금정구 남산동에 있었는데, 저녁에 연산동 토곡에 있는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지하철을 동래역에서 내려, 온천천 강변 산책로를 따라 한 시간 정도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오는 것을 즐겼습니다. 물론 평소에 부족한 운동을 겸하는 산책이기도 하였지만 혼자서 냇가 산책로를 걸어가는 것은 또한 공부의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홀로 이 자리, 이 법과 함께 걷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법의 즐거움에 취하여 한 발 한 발 걸음을 옮겼다고나 할까요? 산책로 주변의 풍경이나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내 마음 자리, 이 법의 자리와 마주하며 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몇 년도인지 기억은 없습니다만, 지금이야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저는 언제나 지금 이 자리에 머물러 있고자 하기 때문에 내가 언제 어디서 무슨 체험을 했는가 하는 것들은 생각하지도 기억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의 이 이야기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공부에 대한 믿음을 주리라는 기대 때문에 억지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날 저녁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혼자 법에 젖어서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산교라는 무지개다리 밑을 지나는데 문득 마음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마음이 없으지니 법의 자리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갑자기 허공처럼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육체는 여전히 이전처럼 걷고 있고,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도 이전과 다름이 없었지만, 육체든 감각이든 느낌이든 생각이든 모두가 아무것도 없는 허공과 같아서 아무런 걸림도 장애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비로소 정확히 초점이 들어맞고 틈이 사라져서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음이 없고 법이 없으니 모든 경계에도 대상에도 전혀 걸림이 없고 끄달림이 없었습니다. 그 날 저녁 집에 도착하여 아내와 아이들을 보아도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전혀 성가시지 않았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너무나 자유로왔습니다. 사람들도 없고 나 자신도 없고, 마음도 없고 세계도 없었습니다. 공부니 법이니 하는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상쾌했습니다. 마음이 없어짐으로써 비로소 모든 구속에서 해방이 되더군요. 사실 그 이전에는 늘 바로 (손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이 자리에 깨어 있긴 하였으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에서 일어나는 욕망이나 마음에 부딪히는 경계들이 언제나 성가신 것이었고 극복의 대상이었습니다. 장애가 있고 걸림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마음이 없고 보니 사람도 없고 세계도 없고 진리도 없고 공부도 없고 깨달음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티끌하나 걸릴 것이 없어요. “산하대지에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는 방거사의 말이나, “깨달음을 얻는 부처가 없는데 또 무슨 깨달음이 있겠는가?”라고 하는 경전의 말을 비로소 알겠더군요.
그 이후에는 경전의 말이나 선사(禪師)들의 말이나 아무런 걸림 없이 보는 족족 저절로 소화가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애매했던 구절들도 이제는 그냥 술술 수긍이 되니 감탄도 절로 나왔습니다. 누가 공부에 대하여 말하면 그 세밀한 부분까지 판단이 되었습니다. 이른바 세간에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선사들의 실제 살림살이가 어떤지도 알아보겠더군요.
거위왕은 우유와 물을 섞어 놓으면 물은 버리고 우유만 마신다는 말이 와 닿았습니다. 육조스님의 “본래 한 물건도 없다.”는 말씀, 금강경의 “얻을 법이 조금도 없다.”는 말씀, 반야심경의 “얻을 것이 없기 때문.” 또는 “장애가 사라진다.” 또는 “색이 공이고 공이 색.”이라는 말씀, “만법에 자성(自性)이 없다.”는 말씀, “중도(中道)는 무주(無住).”라는 말씀,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라는 말씀, “어리석은 사람은 바깥 경계를 없애려 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마음을 없앤다.”는 말씀 등이 모두 참으로 평범한 말이더군요.
어느 때에는 어떤 책에서 “만약 세계가 둘이 아니라면 바로 지금 눈앞의 일이 모두 진실이다.”라는 구절을 보았는데, 이 말도 크게 공감되며 감동이 일었습니다. 또 마조어록에 있는 “서 있는 곳이 곧 진실이고, 발길 닿는 곳마다 주인공이다.”라는 구절이나, “중생이라고 마음이 작은 것도 아니고 부처라고 마음이 큰 것도 아니다.”라는 구절도 진실하게 와 닿았습니다.
또 대혜가 서장에서 말한 “어리석음도 헛된 망상이요, 깨달음도 헛된 망상이다. 헛된 약을 가지고 헛된 병을 치료함에 병이 나아 약을 치우면, 여전히 다만 옛날 그 사람일 뿐이다. 만약 따로 사람도 있고 법(法)도 있다면, 이것은 삿된 외도(外道)의 견해이다.”는 구절도 분명하게 와 닿았습니다.
⑨ 2005년 가을부터는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대혜보각선사어록』 30권을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동안 보아 온 한국 간화선의 행태에 많은 의문점이 있었으므로, 간화선의 창시자가 말하는 선(禪)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서 대혜종고의 어록 전체를 번역하는 일을 맡았던 것입니다.
3년 이상이 걸린 힘든 번역작업이었습니다만, 대혜의 어록을 통하여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간화선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들 가운데 의문을 가졌던 문제들의 답을 모두 얻을 수 있었습니다만, 그것 보다는 법과 방편을 보는 대혜의 안목(眼目)을 접한 것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대혜를 통하여 부처님의 깨달음이 무엇이고 불교의 방편이 무엇인가를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일체유심(一切唯心), 만법유식(萬法唯識), 유식무경(唯識無境).”이라든지, 『원각경』에서 말하는 “세계도 깨달음도 꿈과 같고 환상과 같다.”라든지, 『유마경』에서 말하는 “법(法)은 볼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알 수도 없다. 만약 보고 듣고 느끼고 안다면, 이것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일 뿐, 법을 찾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하는 말들도 확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대혜의 가르침과 대혜가 인용한 경전과 조사의 말씀들은 제가 깨달은 것을 입증해주는 증거이기도 하였습니다. 대혜의 어록을 통하여 저는 저의 깨달음과 안목을 미세하고 세밀하게 다듬었습니다.
특히 화엄경을 읽다가 앙굴리 마라가 임산부 집에 탁발간 공안을 소화시킨 뒤에 대혜가 말하기를 “참된 금강권(金剛圈)이란 바로 자기의 마음임이 밝혀져야 비로소 벗어날 수 있다.”라는 구절을 보고 대혜의 선이 어떤지를 확실히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런 시를 쓰기도 했습니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에게 속았구나
내가 나의 감옥이요
내가 나의 해탈문이로다
내가 없으니 세상도 없고
세상이 없으니 속임도 없다네
내가 없으니 감옥도 없고
내가 없으니 해방도 없도다
온갖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지만
하나의 일도 일어난 적이 없다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니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로다
마음 밖으로 벗어나려고 하므로 마음은 감옥이고, 마음 안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므로 마음은 감옥입니다. 내가 나를 속이고 내가 나에게 속습니다. 내가 나의 감옥이고 내가 나의 해탈문입니다. 문득 마음이 사라지면 안도 없고 밖도 없고, 나도 사라지고 감옥도 사라져서 걸림이 없습니다. 티끌 하나라도 마음이라고 할 무엇이 있다면, 아직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없다면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함에 어떤 물건이 있어서 장애가 되겠습니까?
이처럼 마음도 없고 세계도 없다는 깨달음 뒤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깨달음을 더욱 확신하게 되고, 더욱 힘을 얻게 되고, 더욱 세밀하게 되고, 더욱 자신만만하게 되고, 더욱 눈이 밝아져서 무엇을 보더라도 의심이 없게 되었습니다. 마음이라 할 것도 없고 법이라 할 것도 없으니, 둘이니 둘이 아니니 하는 말도 필요가 없고, 깨달음이니 어리석음이니 하는 차별이 없고, 부처라 할 것도 없고 범부중생이라 할 것도 없고, 티끌먼지 하나 걸릴 것이 없습니다.
법이니 마음이니 나니 타인이니 하는 온갖 것들은 아직 깨달음이 원만하지 못하여 생긴 그림자입니다. 마치 여름날 정오에 곧은 막대기를 태양을 향하여 세우는 것과 같습니다. 막대기가 조금만 기울어져도 그 모습이 그림자로 생겨서 차별되는 무엇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대기가 정확히 태양과 일치하면 그림자는 사라지고 온통 태양의 밝음이 있을 뿐 어떤 차별되는 물건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정확히 계합되면 둘이 없습니다. 나와 세계가 둘이 아니고, 나도 없고 세계도 없습니다. 변함없이 이전처럼 생활하지만 나도 없고 세계도 없습니다. 나도 없고 세계도 없지만, 당장 앞에 드러나는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일들은 너무나 생생합니다. 생생하면서도 앞도 없고, 뒤도 없고, 안도 없고, 바깥도 없고,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습니다.
사물 하나하나가 마음이니 사물과 마음에 차별이 없고, 사물과 사물에 차별이 없습니다. 마음이 따로 없고 경계가 따로 없고, 경계가 곧 마음이요 마음이 곧 경계입니다. 사물사물이 마음이고 마음마음이 사물입니다. 사물도 없고 마음도 없어서 마음에도 막히지 않고 사물에도 막히지 않습니다. 대혜의 선이 다만 이러할 뿐이고, 역대 조사의 선이 다만 이러할 뿐이고, 부처님의 법이 다만 이러할 뿐입니다.
박훈산 거사님이 저를 깨달음의 문으로 안내하신 첫 번째 스승이시라면, 대혜의 어록은 저의 공부를 증명해주고 온갖 의문을 해소시켜주어 공부를 세밀하게 갈고 닦아 준 두 번째 스승이었습니다. 이 몸을 낳은 이는 부모님이지만 이 마음을 드러낸 이는 스승님들입니다. 스승님의 은혜는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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