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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나무와 돌
-멀리 멀리 갔었네 6-
이 동 희
왜 이러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도대체 어디를 가는 것일까.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알 리가 있는가. 지금 나이가 몇인가. 계속 허둥대고 있다. 흔들리며 비틀거리며 그러나 앞을 향해 가고 있었다.
곡예의 연속이었다. 장춘에서 내려 상해 표를 끊고 전화를 걸고 하느라고 비행기를 놓칠 뻔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기내의 모든 사람들을 붙들어 놓고 기다리게 하였던 것이다. 멀쩡한 그 장본인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허둥거리는지. 그리고 도대체 여기를 왜 기를 쓰고 왔으며 또 이동을 해야 하는지, 백산 태산 계림 곡부 들을 다 들러 흑하까지 가 놓고 뭐가 있어 이곳에 다시 오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뭐 목적이야 다 있다. 그러나 그것이 설득력을 가질 수가 있는가 말이다.
그에게 지금 천하 명승지나 절경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이야 아무 때고 시간 여유가 있고 형편이 될 때에 찾으면 되는 것이고 보면 되는 것이다. 지금 그런 게 급한 것이고 당면한 일이냐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생각이고 행동은 그렇지가 않았다. 생각과 행동이 겉돌았다. 황산(黃山)에서 하룻밤을 자기 위해 몇 천리 몇 만 리를 달려온 것이다. 명산을 구경하기 위해서인지 또는 무슨 민족사를 찾고 무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 약속을 다 캔슬하고 무엇보다 목을 메고 있는 곳의 회의-2학기 개강 세미나-도 빠지고 낯선 천지를 헤매고 있는 것이다. 북에 가서 취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그래가지고 또 뭘 하자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허명무실한 것인지 그야말로 절대적인 것인지, 그 확실한 이유와 명분을 찾아야 하는 것이었다.
어떻든 그런 행각을 주저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밀어부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부탁해 놓고 있었던 것이다. 제자라면 제자이고 후배라면 후배이다. 여러 가지로 능력이 있었다. 실력도 있었다. 성의 한 변을 따서 나무라고 하자. 목녀(木女)라고 하자. 늘 한 번 초대를 하겠다고 하였었는데 칭화대에 나가기 시작한 그녀가 약속을 지킨 것이고 선뜻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기밀한 부탁을 해놓은 터에 전화로보다는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먼 거리가 아닌가, 적절한 행보인가, 판단이 안 섰다. 좌우간 천하제일 명산에 올라 그 쾌감과 감동 속에 많은 것을 깨닫고 그런 가운데에 생의 전기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우리는 너무 현실에만 머무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환상이 없다. 그렇게 자위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렸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든 황산은 너무나 감탄스러웠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감동의 덩어리였다. 아, 참 너무나 아름다운 산세에 취한 나머지 산 어귀에서부터 마구 소리를 질러대었다. 모두들 정신없이 사진을 찍어 대고 있었다. 서로 끌어안고 환호를 하기도 하였다. 등산은 아침에 하기로들 되어 있었으므로 해가 다 기울 때까지 산문에 기대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목녀와 같은 호텔에 들었다. 우려하던 것이 현실로 돌아왔다. 환상을 깨어야 했다.
“이러면 안 되지 않아요?”
“안 되지요?”
“불안해지기 시작하네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왜 선생님이 불안하시지요?”
“글쎄 말이에요. 그런데 외박증은 끊어 왔어요?”
“네. 그럼요. 일찍도 물어 보시네요. 외박증 없이 안 들어 갔다가는 다시 들어갈 수가 없지요.”
“쾌히?”
“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호호호호…… 상상을 해 보시지요.”
“하하하하……그런 것 같지 않아서요.”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감이 그랬어요.”
공항에서 잠깐 만났을 때의 얘기였다.
“그럴 리가 없었을 텐데요.”
“예.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되었어요.”
“불순하네요.”
“맞아요.”
“호호호호…… 저는 그이도 그렇고 선생님을 믿어요.”
“그래요?”
“호호호호……”
그녀는 계속 웃으며 방 2개를 달라고 한다. 옆에 나란히 붙은 방으로 정하였다.
그렇게 1막은 끝나고 저녁 식사를 하러 나갔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녀가 중국어로 한참 동안 이것저것 요리를 주문하였다. 값이 얼마인지 많은 요리가 회전식탁 가득 나왔다.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들이 다 올라왔다. 작은 민물고기를 튀긴 것도 있고 여러 가지 향내를 풍기는 채소가 들어간 요리 접시가 상을 꽉 채운 위에 자꾸 갖다 놓았다. 땅콩 호도 등 견과류가 들어간 것도 있었다. 술은 그가 선택을 하라고 하였다. 맥주와 노송 아래 신선이 누워 있는 그림이 붙은 고량주를 시켰다. 술이 약한 그녀에게는 맥주를 따랐다. 그도 첫 잔은 시원한 맥주로 하였다. 잔을 부딪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그와 가끔 술을 마신 목녀는 그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요. 고마워요.”
그러나 그녀는 술을 마시지 않고 들고 있다.
“그뿐이에요?”
“아니 그것 이상 또 뭐가 있나?”
“그래요. 맞아요.”
그녀가 웃으면서 술을 한 모금 마시는 것이었다. 비꼬는 듯한 웃음 같았다.
그는 다시 작은 잔에 따른 고량주 잔을 들고 그녀의 잔에 부딪었다.
“우리의 만남을 위하여!”
“예 그게 빠졌어요. 호호호호……”
술이 대단히 독하였다. 그러나 참으로 향기로웠다. 두 번 걸러서 만든 술이라고 하였다. 두 잔을 마시자 얼근해졌다. 그녀가 자꾸 첨작을 하였다.
“그동안 술을 한 번도 제대로 사 드리지 못하였는데 오늘 제가 한번 쏠게요.”
“하하하하…… 그래도 될까요?”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정말 그런가?”
“아니 그럼요. 아무 염려 마시고 실컷 맘껏 드세요.”
다시 첨작을 한다.
그녀의 말처럼 이 시간 아무 것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누가 간섭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것은 저 바다 건너에 있었다. 모든 것을 잊고 술을 마시고 내일 등산을 위하여 푹 자면 되는 것이다. 아침 일찍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기는 하지만 하루 밤 안 자도 안 될 것은 없었다. 뭘 쓸 때는 밤을 꼴딱 새웠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끝을 내려면 밤을 새우고 몸살을 하였다. 밤을 새우는 데는 이골이 나 있었다. 그러나 밤을 새워 술을 마실 것까지야 있겠는가. 그것도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껏 실컷 들라고 하였지만 정말 얼마나 코가 비틀어지게 술을 마실 것인지, 적당히 마시고 절도를 지킬 것인지 어쩔 것인지, 그들이 정하기에 달린 것이다. 그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아니 그녀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도 미리 정할 필요가 없다. 되는 대로 되어가는 대로 따르면 될 것이었다. 그런 것을 미리 정하고 계획하는 것은 어쩌면 순수하지 못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불순한 것이다. 어떻든 참으로 흐뭇한 자리였다. 술이야 먹어 봐야 얼마나 먹겠는가. 돈이 들면 얼마나 들겠는가. 다른 것은 몰라도 참 술은 원이 없었다. 안 먹어본 술이 없었다.
한 번은 뉴욕에서 파티에 갔을 때였다. 국제PEN세계대회에 참석했다가 끝날 무렵 여러 나라의 초대장 중에 마음에 드는 한 군데를 택한 것인데 다른 곳보다 유엔센터라고 하는 장소가 마음에 들어 그리로 갔었다. 거기서 뉴욕의 야경을 보고 싶기도 했다. 거기 얼굴이 익은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많이 참석을 하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있었다. 파티는 술부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술의 종류가 참으로 다양하였다. 보도 듣도 못한 것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옆에 있는 방 교수에게 물어 보았다. 가장 좋은 술이 어떤 것이냐고. 소설을 많이 번역하였고 가끔 술집에서 부딪치는 불문학자였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 것과 같이 그의 술을 시켜 주는 것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술이라고 하였다. 그 이름이 길고 생소하여 그는 수첩에 적어 달라고 하였다. 콜라를 넣어 칵테일을 한 것인데 그에게는 별로 신통하지가 않았다. 대략 값을 묻자 촌스럽게 뭐 그런 걸 따지느냐고 하여 멋쩍었다. 그날 파티는 기대 이하였다. 좌우간 양주도 그렇고 중국 술도 웬만한 것은 다 먹어 보았다. 그러나 그의 주량이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왜 자꾸 첨작을 해요?”
“술이 안 받으세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여.”
그는 자기의 잔을 주욱 들이키고 그녀에게 잔을 권하였다.
“첨작은 제사 지낼 때나 하는 거여.”
“아, 예.”
그녀는 웃으며 술을 조금 받아 마시고 그에게 반배를 한다.
서울에서도 몇 번 술을 같이 하며 주법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여기 주법은 그래요.”
“그래?”
“예.”
그녀는 다시 첨작을 하며 대답하였다.
“하하하하…… 그래?”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술맛이 어떠세요? 다른 것으로 해 보실까요?”
“아니야. 좋아요.”
“안주는요?”
“다 좋아요.”
“한국식으로 할까요?”
“아니요. 그냥 좋은 대로 해요.”
“예, 알았어요. 선생님.”
“아! 하하하하…… 정말 마음 놓고 마셔 볼까?”
“그러시라니까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정말 염려 마세요. 돈이 떨어지면 선생님이 내시면 되지요 뭐. 그러나 그러면 안 되지요.”
“헤헤헤헤…… 돈도 돈이지만……”
“뭐가 됐든 염려 마세요. 히히히히……”
그녀는 그의 괴상한 웃음까지 받아넘기며 또 첨작을 한다.
참으로 넉넉하고 흐뭇한 저녁이었다. 그야말로 아무 걸리적거리는 것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이 소탈하고 평안한 자리였다.
술을 한 병 더 시키었다. 그만하면 술은 충분하였다. 벌써부터 속이 찌르르하였다. 그가 술을 좋아하긴 하였지만 그렇게 대주가는 아니었다. 들어가긴 얼마든지 들어갔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문제였다. 술을 먹고 추태를 부린 적도 많이 있는데 언젠가부터 자제력이 생기었다. 제동을 걸면 걸리었다. 절도를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면 지킬 수가 있었다. 최근의 경우 그랬다. 늙는 것인지.
그런데 좌우간 근래에 이렇게 마음에 드는 자리는 없었다. 둘 다 멀리 뚝 떨어져 나와 무엇 하나 신경 쓸 것이 없었다. 그녀의 경우 그와 같이 하는 이 밤이 불안할지 몰랐다. 푸둥 공항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던 그녀의 허스가 떠올랐다. 참으로 우연한 일치였지만 그녀의 캡이 달린 모자의 모양과 색깔이 그의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자격지심인가. 상하이 바다 위를 나르며 그가 그 얘기를 꺼내자 목녀는 마구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의 기우를 다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너무도 웃음소리가 커서 옆 사람까지 다 돌아다 볼 정도였다.
“그렇게 좁은 사람 아니에요. 좌우간 맴돌던 쳇바퀴를 벗어나니 참으로 홀가분하고 좋네요. 세상이 내 것 같애요.”
그녀는 계속 웃고 있었다. 그도 따라 웃었다.
그가 또 한 잔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이번에는 가득 따랐다. 그녀가 웃으면서 그를 바라본다. 안주가 추가로 자꾸 나왔다. 국물이 있는 탕채가 나오고 꽃빵과 만두가 나왔다.
그녀는 한 입 크기의 작은 만두를 그의 초장에 얹어 주며 말한다.
“디엔씬(點心)이에요. 우리 점심이라는 말이 여기서 간 것인지 모르겠어요.”
“딤섬이라고 하지 않아요?”
그가 만두를 안주로 들며 말하였다.
“그건 광동식 발음이고요.”
“괜히 아는 척을 하였네.”
“호호호호…… 선생님이 뭐 만물박사인가요? 전공이 따로 있잖아요.”
그녀도 전공이 같은 국문학이다. 그런데 잔뜩 중국 잡학을 늘어놓는다.
디엔씬은 200여 종류가 있지만 바오(包) 지아오(餃) 마이(賣) 3종류가 대표적이며 펀(粉)은 얇은 쌀가루 전병에 갖은 소를 넣어 돌돌 말아 부친 것이다. 속에 상어지느러미 새우 쇠고기 돼지고기 시금치 부추 등을 넣는데 고대 농경사회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둘러 앉아 차와 담소로 하루의 피로를 풀 때 곁들여 먹게 된 것이 유래이다.
“저녁은 안 먹어도 되겠네요.”
“왜요. 조금 드셔야지요. 볶은 밥이 나올 거예요. 선주후면이잖아요.”
“후면이면 면이 나와야지.”
“그러네요. 면도 가져 오라고 그러지요 뭐.”
혀가 꼬부라진다.
“그게 아니고 참, 이걸 어떻게 다 먹나? 하하하하……”
“호호호호…… 천천히 드세요.”
목녀는 다시 술을 따르며 말한다.
“여기서 주는 대로 드시면 돼요.”
술이 거나하게 올랐다.
그는 아주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 한 마디 던지었다.
“그래 어떻게 얘기가 잘 되고 있어요?”
그것이 무척 궁금하였던 것이다. 처음 만날 때부터 물어 보고 싶었다. 사실은 그것으로 하여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니 뭐가 그리 급하세요?”
그녀는 대답 대신 술을 따른다. 뭘 그리 깝치느냐고 면박을 주는 것 같다.
이 좋은 음식에 안주에 참으로 너무도 근사한 술자리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되었다.
“그런가?”
“그럼요.”
그녀는 웃으며 또 첨작을 한다.
“알았어요.”
어투도 바꾸었다.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잘 될지는 모르겠어요.”
그렇게 한 마디 의중을 비치기도 하였다.
그녀는 늘 말의 액면 이상을 보여 주었다. 그는 그것을 믿고 있었다.
“알았어요. 잘 되도록 해 봐요.”
그리고 그 부탁이나 되는 듯이 그녀에게 술을 부었다.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초청장을 받아 달라는 것이었다. 등산도 등산이지만 그것 때문에 이까지 온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의 힘으로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안 되었다. 연변을 갔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거기 조선민족사학회 한 회장을 만나서도 그 부탁을 하였다. 역사학자로서 또 중국의 공산당 당직자로서 자주 북을 왕래하였고 요로의 인사들과 독대를 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대종교 대표들이 단군릉-개건식 때-참배를 하게 하는 다리를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돌아와 감옥을 갔지만 민족사의 돌을 하나 놓았던 것이다. 한 회장을 만나서 부탁을 하고 그녀에게도 부탁한 것을 전화로 채근하는데 그리로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일이 잘 안 되어 구경이라도 시켜 주겠다는 것인지 그 반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여러 해 전의 일이었다. 그 뒤 개천절 민족공동행사 때 그리고 몇 번 평양을 다녀오고 여러 인사를 만났다.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지만. 그 때 참으로 많은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었던 것이다. 금전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금쪽 같은 시간이요 금덩이 같은 정열이었다.
참으로 세상은 넓고도 좁았다. 목녀가 그렇게 줄이 닿아 있을 줄이야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서울에서 같이 하숙을 하던 조선족 여성의 남편이 북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 대사관 직원이었다. 심야에 무슨 간첩 접선이라도 하듯이 교신을 하였다. 이메일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물론 그 친구에게만이었고 전화는 자기들 부부끼리도 되지 않았다. 좌우간 이 지구상에서 가장 멀고 갈 수 없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었다. 갈 수도 없고 올 수도 없고 편지 한 장 전화 한 통도 안 되었다. 이 세상에 돈 가지고 안 되는 것이 없고 인터넷으로 모든 나라의 울타리가 다 없어져 버렸는데 거기만은 철조망을 높이 치고 그것이 다 녹슬도록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친구를 통해 메일과 파일을 보낼 수가 있었던 것이다. 말은 않았지만 중간 간부쯤 되는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어떻게 할 수는 없었고 중간 역할을 할 수는 있었지만 생각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서울에서 목녀와 그 여성과 같이 만나 단단히 부탁을 하였던 것이다. 같은 전공 끼리 의기가 합쳐졌던 것이다.
그의 지도로 학위를 받은 목녀는 북의 자료를 여과 없이 사용하여 심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것을 그가 다 커버하였다. 사상적으로 논리적으로 엄호해 주었다. 여러 가지 오해를 받았지만 소신을 가지고 밀었다. <이기영의 남 북 작품 비교연구>였다. 1934년에 쓴 「고향」과 북에 가서 다시 쓴 「땅」을 비교하여 북의 문학의 단계를 논한 것이었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창작방법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문학에서 집체 창작 혁명적 문학으로의 전환 과정을 분석한 것으로 무엇보다 자료적 가치가 있었다. 그 친구를 통하여 어떤 학자도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자료를 빼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떻든 그랬는데 그는 그쪽 자료를 빼내자는 것이 아니고 집어넣자는 것이었다.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고 보내자는 것이었다. 그는 단군의 이야기 「뿌리 끝에서 만나리」에 이어 「신화인가 역사인가」를 쓰고 있었다. 단군의 실존을 역사 자료들을 엮어 입증하는 작업이었다. 픽션으로 쓴 「뿌리……」는 단군이라는 민족의 뿌리로 하여 서로 만나고 결국엔 하나가 되는 소망을 썼다. 남 북 단군 연구 학자들이 만나 서로 오가며 회의를 하고 발표를 하고 그 뿌리를 구심점으로 통일을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든다는 얘기이다. 한동안 화제가 되었고 여러 군데서 상도 받았다. 책도 많이 팔리었다. 그러나 그런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분위기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앉아서 상상을 하여 쓴 것이고 이쪽의 시각으로 쓴 것이었다. 남에서는 북의 단군릉 발굴과 단군 유골의 DNA 검사에 대하여 대체로 신뢰하지 않고 있으며 일제가 조작한 신화설에 매달려 있고, 단군을 실사로 기술하고 있는 북은 그런 주체성 없는 연구에 대하여 냉소하고 있었다.
하나의 현상 보고이며 진단인 것이었다. 이제 처방이 필요하였다.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답을 찾아 제시하려는 것이었다. 단군릉 숭령전 삼성사 등을 답사하고 그 쪽 역사학자들의 얘기를 듣고 사진도 찍어 오고 직접 취재를 하여 설득력을 추가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일부의 북한 주민 접촉 승인을 받았고 방북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북에 가기 위해서 초청장이 있어야 했다. 고위층이라야 되었다. 그녀에게 그것을 부탁한 것이었다. 그가 쓴 「뿌리……」와 취재 답사 계획 파일 등을 그 친구에게 메일로 보내었다. 그런데 그것을 잘 받았는지, 아니 어떻게 전달이 되었는지-요로에 말이다-그랬다면 반응이 어떤지, 소식을 주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답답하였지만 그는 그것을 다시 물어볼 수는 없고 연변에서 있었던 얘기를 하였다.
“친서를 한 장 쓰라고 해서 써 주고 왔는데……”
“누구에게요?”
목녀가 다시 첨작을 하며 묻는 것이었다.
“한 회장 얘기를 했었지요.”
“예. 그러셨지요. 그런데……”
“아 그런데 도무지 이상한 생각이 들고……”
그는 술을 주욱 들이키며 말하였다.
“그래서…… 핫 참!”
“누군데 그래요?”
“누군 누구에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누구인가를 알아차리었다. 그리고 한 바탕 웃었다. 같이 웃었다.
“그래서요?”
그녀가 다시 물었다.
“그래서 선뜻 그러겠다고 하고 펜을 들었지만 문구가 떠오르지 않고 도무지 써지지가 않는 거예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나 경칭을 어떻게 써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자 한 회장은 내키지 않으면 쓰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그게 아니라고 하고 다시 썼다 지웠다 하며 몇 줄 썼다. 단군릉 개건은 참으로 장한 일이다. 단군릉으로 하여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이 앞당겨지기를 갈망한다. 나는 단군을 구심점으로 하여 남북이 서로 만나고 통일을 이루는 얘기를 썼다. 앞으로 그런 노력을 확대하고자 하며 단군릉을 참배하고 싶다. 그런 요지였다. 한 회장은 최경의를 표하라고 하였다. 남북을 북남으로 쓰라고도 하였다. 그리고 일러주는 대로 호칭도 쓰고 두 번 세 번 고쳐 쓰고 정서를 하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선 그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한 회장은, 그럼 다음에 잘 써 가지고 한 번 더 오라고 하였다. 우편으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이리로 오는 시간에 쫓기어 그냥 주고 왔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요. 그냥 가지고 올 걸 그랬지요?”
“글쎄요오.”
그건 그녀도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다만 그녀가 알아보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할 수는 있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그쪽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없었다.
“좌우간 말이지요. 선생님, 오늘 밤 실컷 드시고 적회를 풀어요. 진작 제가 한 번 모셔야 되는데, 산다는 게 무언지 그게 잘 안 되었어요.”
목녀는 그러며 다시 술을 따른다. 그리고 또 술을 시키었다.
“적회라?”
쌓인 회포라는 말이다. 뭐가 그렇게 쌓였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할 말이 많다고 했다. 그도 그랬다.
“생각이야 있지만 제가 언제 또 이런 데로 모시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여? 젊은 사람이.”
“따지고 보면 뭐, 그렇게 많은 차이도 아니지요 뭐.”
사실은 그랬다. 그녀는 만학이라고 할까, 작가로 데뷔를 하고 아이들도 다 키워 놓고 대학원을 다녔던 것이다. 그래서 학부에서 바로 올라온 젊은 학생들보다 몇 배 공부를 하였고 학위도 수료와 동시에 바로 통과가 되었던 것이다. 얘기만 하면 척척 알아서 대령을 하였으므로 가능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제 막 가자는 거지요? 하하하하……”
“호호호호…… 선생님도 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뭐 그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하하하……”
“호호호호…… 그러면 안 되지요. 호호호호……”
또 술을 따른다. 그의 잔도 그녀에게 건네었다.
“참 선생님 고마워요. 다른 교수님들 반대를 다 막아 주시고 선생님 시간을 떼어서 강의도 하게 해 주시고 또 여기 대학에도 선생님이 추천서를 써 주시고…… 선생님은 저의 큰 은인이고……”
“그리고?”
“너무나 많은 것을 일깨워 주셨어요.”
그녀는 이번에는 그런 뜻이 담긴 것인가, 잔을 주욱 들여 마시고 반배를 한다.
“그랬던가? 글쎄, 뭐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건 내가 준 것이 아니고 찾아간 거예요. 그런데 술 잘 하네!”
“아이구 아니에요. 저 많이 취했어요. 얼굴이 빨갛지요?”
“보기 좋은데 뭘.”
“아아이 선생님도 참! 호호호호……”
웃어 대자 그녀의 새빨간 얼굴이 홍당무가 된다. 혀도 다 꼬부라져 있었다. 그러나 하나도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어떻든 천천히 많이 드세요. 제가 대작을 잘 할게요. 아셨지요?”
“알긴 알았는데 이제 그만 해요. 너무 취하면 안 되지.”
그는 두 잔을 가지고 조금씩 마시었다. 그러며 일부러 잔을 비우지 않았다. 정말 그 마저 취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도 꽤 취하였다. 자꾸만 첨작을 하여 많이 마신 것이었다. 독주였다.
“선생님도 참! 선생님 아니랄까봐. 지금 초저녁인데 왜 자꾸 그러세요. 헉슬리의 「연애대위법」에 보면 말이지요. 밤에 술 먹는 시간을 학년별로 말하고 있지요. 지금은 아직 유치원 생이에요.”
그녀의 기억은 정확하지 않았지만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었다. 계속 마시자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건가?”
“얘기가 그렇게 되나요? 호호호호……”
그녀는 그러면서 술을 좀 바꿔 볼까 묻고 어디 2차를 가자고도 했다.
그는 이제 그만 하자고 하였지만 그건 안 된다고 하였다. 산책이나 하자고 했지만 그것도 안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조금만 더 하기로 하였다. 배가 잔뜩 불러 고량주로 계속 했다.
그가 조금씩 마시자 이번에는 목녀가 먼저 마시고 잔을 준다.
“이제부터는 한국식으로 해요.”
“그러면 안 될 텐데……”
“안 될 게 뭐가 있어요? 뭐가 겁날 게 있어요?”
“겁날 거야 없지.”
“그러면 됐지 뭘 그러세요. 아무 염려 말고 맘껏 드시고 그리고 어디 가서 춤이나 추지요, 뭐. 괜찮지요, 선생님?”
“너무 취하면 춤을 출 수 없지.”
“아 참 선생님도! 발동이 걸려야 춤을 추든가 뭘 하든가 하지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난 아까부터 걸렸는데.”
발동이 걸렸는지 모르지만 술은 많이 취하였다. 어떻든 말끝마다 선생님 선생님 하는 목녀 앞에서 그가 자제력을 잃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지금으로서는 그럴 자신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를 가만 두지 않았다.
“뭘 하세요? 선생님! 안경을 벗으셔야지요.”
“허허… 참 내!”
그는 하는 수 없이 잔을 하나 비워서 궐녀(厥女)에게 술을 가득 따랐다. 조그만 사기잔이다.
“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시나요? 선생님의 통일론은 어떤 거예요?”
이번에는 방향을 180도로 바꾸어 말하는 것이었다.
“아니 갑자기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는 거지.”
“그게 아니지요. 선생님은 그것 때문에 지금 불철주야 노심초사하고 계시는 것 아니에요?”
그녀는 호기 있게 선생님과 대결을 한다. 새롭게 대작을 하는 것이다.
그는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마음에 든다. 오늘 이 술자리의 무엇보다도 솔깃하고 마음에 드는 언사였다.
“그건 그렇지!”
“마음을 톽 터놓고 말씀을 해 보세요. 왜 거기에 목을 매고 계신 건지. 제가 대꾸를 해 드릴 게요. 저도 아주 맹탕은 아닙니다.”
그녀는 팔을 걷어부치며 말하는 것이었다. 술이 확 깨었다.
“맹탕이라니! 쪽보다 더 푸르지.”
얼마 전 보내 준 「단향형(檀香刑)」을 읽고 감탄을 하며 그렇게 전한 적이 있었다. 그녀가 번역한 모옌의 소설이었다. 원색적인 사랑과 민족의 비극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그러며 그의 민족 통일론을 늘어놓았다.
“우리 민족의 키 워드는 단군이야. 북에서는 인사를 ‘단군!’이라고 한다는데, 우리가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아야지. 흉만 보지 말고. 이쪽에서는 꼭두각시놀음이라고 하고 그쪽에서는 개판이라고 하고 있으니 자꾸 멀어만 가는 거여. 뭐가 됐든 자꾸 만나고 얘기하고 술도 마시고 잠도 같이 자고…… 그런 것이 통일인 거여.”
“뿌리 끝에서 우리 다시 만나리!”
“그래 말이여.”
“그런데 뭐 제사 지내시는 거예요?”
“뭐여?”
그는 앞의 잔을 비우고 또 그녀에게 가득 따랐다.
“「술의 나라」 보셨어요?”
그것도 모옌의 소설이었다.
“봤지. 그런데 이제 번역만 하는 거여?”
“쓰고 있어요. 선생님!”
“젊을 때 많이 써야지. 그런데 말이야. 남북의 정상이 만나 합의한 소위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거, 너무 추상적이잖아? 어디까지가 낮고 어디까지가 높다는 거여. 말이 안 되잖아?”
그는 일어서서 두 손바닥을 엎어서 펴 들고 올렸다 내렸다 하며 마치 목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그래서요?”
그녀는 술을 주욱 들이키며 되물었다.
“그래서 말이여. 이건 어떨까? 북에서 한 발 물러서고 남에서 한 발 진보한 아나키즘의 논리로 통일을 하자는 거여. 울타리도 없는 자유사회인 거여. 지금 당장 통일이 돼도 이데올로기 극복을 못하면 도로 반납을 해야 돼. 사상의 레벨을 같이 하자는 거여. 어때?”
“소설은 되겠네요. 용도 폐기된 사상의 먼지를 털어 지금 다시 사용을 한다, 거꾸로 가는 시계네요.”
혀가 다 꼬부라져 있었지만 말은 조리가 있었다. 그녀는 프롤레타리아 아나키즘의 문학을 주로 발표하였었다. 또 그에게 잔을 내밀고 따른다.
“참 오늘 너무 마음에 드네.”
“너무 짜가 들어가면 안 되지요. 다 좋은데 말이지요. 그건 안 돼요. 그러다 다 잡혀 가요.”
“잡혀 가면 어떤가? 나는 감옥에 가도 좋아. 목숨이 그렇게 아까운가?”
이제야 발동이 걸린 것이다.
“그건 소설이에요. 현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소설은 현실을 뛰어넘는 거여.”
“선생님은 넘지 못해요.”
“뭐여?”
“안경이나 벗으세요.”
“지금 안경이 문젠가?”
그는 식탁을 탁 쳤다.
통일론은 더 진전을 보지 못하였다. 현실을 뛰어넘지 못해서였다. 계속 그의 안경을 벗기느라고 목녀는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혀가 완전히 꼬부라져서 흐느적거리던 그녀는 코를 박고 엎드린 채 맥을 못 추었다.
그도 너무 취하여 비틀비틀 하였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업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부축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계산도 그가 하여야 했다. 꽤 되었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고, 실컷 맘껏 들라고 이것 저것 다 시켜 놓고, 참 우스웠다.
호텔에 가서도 궐녀는 여전했다. 인사불성이었다. 핸드백 속에서 전자 키를 꺼내어 두 방 중 하나를 열고 들어가 침대에 눕히었다.
옆방으로 온 그도 옷을 입은 채 곯아 떨어졌다. 춤이고 소설이고 다 뜬 구름 같은 얘기였다.
그러느라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였다. 그래도 그녀가 먼저 일어나 노크를 하였다. 말끔히 머리까지 감아 빗고였다.
“어서 차비를 하세요. 늦었어요.”
“그냥 자면 안 될까요?”
그가 일어나지 않고 말하자 그녀는 안 된다고 하였다. 아주 단호하였다. 빨리 일어나라고 하였다. 그래도 말을 안 듣자 그의 볼에 살짝 키스를 해 주며 달래는 것이었다. 이까지 와서 황산을 안 보고 가면 말이 되느냐고 하였다.
“어제 밤 춤 잘 추었어요.”
그가 일어나며 어떡하나 볼려고 한 마디 하였다.
“오늘 저녁이 또 있잖아요.”
엎드려 절 받기였다.
“호호호호…… 죄송해요.”
그리고 한 마디 더 하였다.
“제가 잘 맞혔지요?”
무슨 이야기인가. 현실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되물을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많은 비경을 보여주려는 듯이 그녀가 깝치는 대로 황산 입구에서 전용버스를 타고 케이블카 타는 곳까지 서둘러 갔다.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서 표를 사 가지고 기다리고 있는 친구가 있었다.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다. 같이 올라가기로 예약이 되었던 것이다. 케이블카를 타자 금방 절경 속으로 치달았다. 히야! 감탄이 절로 나왔다. 무아지경을 숨 막히게 달려 올라가 옥병루에 내렸다. 완전히 별천지였다. 황산을 보고 나면 그 어떤 곳도 눈에 차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 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옥으로 병풍을 둘러 친 누각-玉屛樓-전망대 풍광구에서 일단 눈으로 등산을 다 하였다. 옆에 천도봉(天都峰, 1810)이 있고 앞에는 연화봉(蓮花峰, 1864) 그 뒤로 광명정(光明頂, 1860)이 기다리고 있다. 72개 봉우리 중의 삼대 주봉이었다. 그는 산에 오르면 꼭대기 끝까지 가야 했다. 그것을 아는 목녀가 연화봉은 오를 수가 없다고 하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름처럼 연꽃 모양의 봉우리였다. 중국 제일의 명산, 황산 제1봉이 다가왔다. 보기만 해도 신이 들렸다.
“고마워요. 이런 곳 구경을 하게 해 줘서.”
그는 숨을 고르며 목녀에게 인사를 차렸다.
“어제는 죄송했어요.”
“정말 멋있는 밤이었어요.”
“호호호호……”
좁은 계단을 돌아 영객송(迎客松)의 마중을 받고 안개와 운무 그리고 오락가락하는 비와 운해(雲海)에 묻힌 연화봉을 향하였다. 기암(奇巖) 기송(奇松) 나무와 돌의 천국이었다. 돌이 없으면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가 없으면 기이하지가 않았다. 연화봉 허리를 끼고 돌아서 허공을 이어놓은 허공다리 보선교(步仙橋)로 가다가 만나는 천해(天海)에서의 운해는 봉우리들을 섬으로 만들며 신비의 파노라마를 펼쳐 놓는다. 신선이 노니는 하늘의 바다였다.
연화봉은 출입을 시키지 않아 아쉬운 대로 광명정으로 향하였다. 목녀는 연화정(蓮花亭)에 주저앉았다. 몇 번 와보기도 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는 학생과 함께 빠른 행보로 단숨에 제2봉 정상까지 강행군을 하여 천군만마를 다 꿇어앉히었다. 그리고 심장 밑바닥까지 뒤집어 괴성을 질러대다가 내려왔다. 뭔가를 근원적으로 깨달은 것 같기도 하고 원점으로 되돌려 놓은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백보-백보운제를 거쳤다-천보 내달은 것 같기도 했다. 그래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또 땅을 파는 것이다.
전산(前山) 서해 쪽으로 올라 왔었는데 후산(後山) 동해 쪽으로 가서 새벽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것이 등산 코스였지만 저녁 늦게 돌아가는 비행기 예약이 되어 있었다.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내일로도 예약을 하였지만. 그래 연화정에서 목녀와 만나 온 길을 되짚어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하산을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배탈이 나서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디엔씬 타령도 할 수가 없었다. 어제 저녁 오버페이스를 하였다고 할까, 최선을 다 하였던 것이다. 그녀를 위하여 술 대신 자스민 차를 마시었다. 거듭거듭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녀의 얼굴에도 그렇게 씌어 있었다.
“술도 좋지만 차도 좋네요.”
“그래도 선생님은 하세요. 제가 조금 대작을 해 드릴게요.”
“말만 들어도 취하는데요.”
그러자 그녀는 한 가지 더 제안을 하는 것이었다. 온천이었다. 황산의 사절(四節)이 기암 기송 운해 온천이라고 하였다. 그 시간은 되었다.
“하나는 빼 놓지요 뭐. 그래야 아쉬움이 있지 않겠어요?”
“아쉬움이요? 참으로 고상하시네요. 호호호호……”
“하하하하…… 왜 그래요?”
“호호호호……”
그녀는 웃기만 했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잊어버리기라도 했던 듯이 들려주는 것이었다. 얼마 전 그 조선족 여성 내외와 그녀의 내외가 같이 여기 황산에 왔었다고. 그녀가 초대한 것이었다. 온천에도 같이 갔었다고 하였다.
그는 너무나 고마워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을 참고 말하였다.
“내 통일론이 어땠어요?”
“죽을 쒔지요 뭐. 호호호호……”
그녀는 계속 웃는 것이었다.
노트-소설 1편 올린다. 이번 <PEN문학>여름호에 넘길 원고이다. '신과의 약속'으로 시작되는 여섯번째 연작으로 여기 저기 발표하였다. 한 두 회 더 써서 책으로 내려는 것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아직 이 테마에 대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방황이 끝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슨 글이 되었든 끝을 내기 위해서는 밤을 새고 몸살을 앓는다. 이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46년째 쓰고 있지만 갈 수록 어려워진다. 삶이 점점 쉬워지지 않고 어려워진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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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왜 이러는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누구를 위해서 도대체 어디를 가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꼬리를 물면, 저는 신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신과의 약속을 기억하며 순수함을 회복하곤 합니다.........교수님께서는 그만큼의 연륜 앞에서도 글의 완성을 위하여 몸살을 앓으시네요....교수님 소설의 아름다운 결론을 위하여
글을 쓸수록 어려워진다는 말씀이 몸에 닿습니다. 동화랍시고 쓰면서도 그런 것을 느끼는데 소설이야 더 어렵겠지요. 그러나 교수님은 넉넉히 해내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