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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싱글 클럽(여행/산행/친목/만남) 원문보기 글쓴이: 오즈
사진 올려드린다고 약속은 했는데 여기저기 다니고 일도보다보니 사진정리가 늦었습니다.
블로그 통째로 링크 걸었으니 성의가 부족해 보여도 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쉬운것은 전에 갓을때 찍은 톤레샵호수와 다른 사원들의 사진들이 어디있는지 찾아봐도 안보이네요..
[에필로그]
신들이 사는 물의 도시라고 불리우는 앙코르 유적이 있는곳 캄보디아.
가난에 찌들대로 찌들은 캄보디아에 9세기에서 15세기 까지 인류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사실을 연상시키기엔 많은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 시기를 대입시킨다면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말기정도 되겠다.)
하지만 유적을 통해 증명되듯이 캄보디아인들, 아니 크메르인들은 이미 1000년전 고대문명을 이루며 주변 인도와 중국에 어깨를 견주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 우기와 건기에 한번씩 들른적이 있지만 제대로된 사진이 변변치 않았다 얼마전 다녀올 기회가 있어 몇몇 사진과 함께 크메르를 스케치 해 본다.
톤레샵호수를 비롯해 많은 필수 코스의 사진도 누락되었지만 나름 캄보디아의 자료를 원하는분들은 위해 정리 해본다.
한가지 추신을 하자면 캄보디아를 수십번을 다녀간 여행자가 있더라도 본것과 들은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할 것이다.
아직도 이곳 앙코를 유적은 발굴중이며 북쪽의 코케르쪽의 유적군은 접근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진행중인 개발을 마치면 시엡립 못지않은
관광지가 될것임이 분명하다.
유적은 평야에 사원과 도시로만 있는것은 아니다.
북쪽으로 강바닥에 시바의 닝가유적이 어마어마 하며 이는 사원만을 본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경이와 놀라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프랑스인들에 의해 그나마 이만큼 보존되고 복원이 진행중이지만,
이미 수 많은 유럽의 약탈자들이 최근까지도 총으로 중무장을 하고 현지인이 보는데서 유적의 기둥과 유물들을 뽑아가고들 있는 실정이다.
혹...
NGC나 사인언스 TV프로그램등에서 앙코르 유적을 다룬다면 반드시 시청하시길 바란다.
수많은 관광과 수 많은 관련 책자에서는 볼 수 없는 또다른 앙코르와 크메르를 만나게 될 것이다.
앙코르
- 9세기~15세기에 걸쳐 인도차이나 반도 중앙부에서 융성하여 형성된 왕조
- 동남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샵 호의 북쪽에 위치한 시엠립에 위치
- 크메르 제국을 다스렸던 자야바르만 2세에 의해 802년 북서부 '프놈클렌'에서 왕도 개막
- 13세기에 인도차이나 반도 대부분을 지배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
- 대규모 관개시설을 비롯한 철저한 계획하에 지어진 계획도시
씨엠립 / 캄보디아
해외여행지 동남아시아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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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전체가 약 70만 시엠립 시가 약 7만인 앙코르문화의 대표적인 유적 도시
개요
- 날씨 : 우기(5~11월), 건기 (12~4월)
- 여행 최적기 : 12~1월
- 최고기온 : 40도이상(4월)
- 화폐 : 리엘(Riel) / 4000리엘=1달러(US)
- 비자 : 도착해서 발급 받을수 있는 도착비자다. (경비 20불 소요)
Memo
- 툭툭이 : 오토바이뒤에 인력거를 매달은 형태로 공항에서 시엠립이동이나 기타 가까운거리 이동에 사용된다.
- 툭툭이 요금 : 가까운거리 이동 : 1불 / 반나절 렌트 : 5불 / 1일 렌트 : 10불
- 예방접종 : 말라리아를 비롯해 예방은 밀림을 들어가는 여행객을 제외하고는 걱정 안해도 된다.
- 식수 : 생수를 제외한 식수는 마시지 않는다. 생수도 신중히 구입을 해야할 정도다.
- 의료 : 의약품 및 의료시설이 낙후하여 건강및 부상에 특별히 조심해야 하며 안그러면 태국이나 싱가폴까지 실려갈 수도 있다.
- 자전거와 오토바이 렌트도 가능하다. (몇년전까진 도로가 않좋아서 비추천이었는데 이번 방문에서 느낀점은 도로시설이 엄청 좋아졌다.)
- 인근국가 여행 : 항공으로 태국 방콕까지 50분거리, 베트남까지 1시간 20분정도 거리에 있다.
- 경비 : 1달러 짜리 소액권을 제법 가져가는게 좋다. 음식점이나 팁으로 사용 할일이 생긴다. (하루 10불정도씩은 들고 다니는것이 좋다.)
- 화폐 : 달러를 주로 사용하고 태국 바트화도 사용할 수 있다. (리엘은 사용을 잘 안하고 크레딧은 거의 사용하기 힘들다.)
- 낡은 화폐 : 화페가 조금이라도 낡으면 사용할 수 없다. (낡은 달러들을 현지인들이 은행에서 바꿀려면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기 떄문이다.)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공항을 나오면 제일먼저 해야할 일은 입국수속전에 비자 발급 받는 일이다.
한국에서 미리 받아놓은 사람은 여권과 출입국신고서를 입국심사대에 밀어넣으면 되겠지만 캄보디아는 도착비자이기 떄문에 굳이 미리 받을 필요까지는 없다.
비행기 안에서 나누어준 비자신청서를 미리 작성을 한 다음 비자 발급비 20불(US)과 함께 제출하면 별다른 질문없이 비자를 내준다.
직접 발급받으면 비자발급 수수료 20불과 비공식 수수료 1달러가 소요된다.
비공식 수수료 1달러는 말그대로 이친구들 삥땅이다.
입국 심사대에서도 1불을 내라고 하는데 안내고 버텨보면 어떨런지?
용기있는자 도전해 보아라. 필자는 책임 안진다. ^^
패키지로 여행 할 경우 급행료가 5불이 붙어서 25달러가 소요되는데 정 비자 신청서 쓰는데 자신이 없으면 어쩔수 없겠지만,
일찍 나온다 해도 어차피 수화물 찾는 시간이 있기 떄문에 한번 도전 해 보길 바란다.
비자 신청을 하면 한사람씩 발급 과정을 패스할떄까지 기다려야 한다.
모 잠시 멍한번 떄려보지 모....
잠시 시간이 지나면 비자가 여권에 붙고 한사람씩 호명된다.
영문이름을 부르는 현지 직원의 호명이 제법 웃긴다.
"낌 여엉~휘히~!"
"세옹 맹 쎄그~!"
이곳 직원들 웬만한 한국어들 제법 한다. ^^
씨엠립 국제공항 내부의 모습.
한눈에도 상당히 빈약한 시설임이 눈에 들어온다.
입국시에는 면세점이 편의점 수준으로 한곳인가 두곳이 있지만
출국때에는 선물을 사서 돌아가지고 갈만한 시설은 갖추어져 있다.
늦은시간임에도 우려와는 달리 마지막 비행기 시간까지 문들을 열고 있었다.
밤 비행기 대합실의 특징은 어느나라에 가더라도 흔히 볼수있는 광경이 아마도 널부러져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
국적기를 잘 안타는 내가 이번에는 아시아나를 이용하였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이 이곳에 직항으로 취항되어있다.
나는 보통 외국여행시 15불~40불의 방에서 잠을잔다.
때에 따라서는 5불짜리도 찾아보면 널려있다.
호텔이 비싸다면, 15~20불이면 웬만한 도시에서 시설 좋은 게스트 하우스를 충분히 잡을수가 있다.
이번 여행은 내몸이 호사한다. 아쉬운게 있다면 작년부터 3연속 넓은 호텔방을 혼자 쓰게 되었다는사실...
에고 아까워라....
일반적으로 캄보디아 씨엡립에 위치한 호텔들의 숙박비는 호텔은 1박에 3만원대~7만원대이다.
게스트 하우스도 있지만 캄보디아는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본적이 없다.
물론 리죠트가 끼어있는 비싼 호텔들은 20만원이 넘어가는곳도 있다.
이번 여행에서 머물런던 호텔
마제스틱 앙코르 호텔이다.
씨엡립 국제공항에서 툭툭이타고 10분거리이고 10분정도만 더 가면 씨엡립 다운타운이다.
마제스틱 앙코르 호텔의 야경
호텔로비.
원목과 부조들과 장식들이 내가 캄보디아에 있음을 제일먼저 알려준다.
캄보디아는 사실 같은 동남아권에서도 레벨이 떨어지는 관광시설이다.
하지만 이제 어느덧 세게의 모든 호텔들은 평준화 되어 가고 있는것 같다.
점점 비싼 호텔에서 잠을 자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부터 든다.
혼자 신났지 모....
이쪽 침대에서 저쪽침대를 널뛰기를 해가며 잠도 자보고...
홀라당 벗고 왔다리 갔다리... 흐흐흐
내 방의 창문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맑은 동남아의 하늘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카메라를 강요하였는데
서쪽창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었다.
일몰,,,, 너 나한테 오늘 주거쓰,,,.,
(하지만 일몰은 일행들과의 일정으로 인해 산산히 무너졌다.... ㅠㅠ)
창에 비친 바깥 하늘의 모습이 꼭 벽에 붙은 벽화같앗다.
캄보디아의 4월은 40도가 넘는 폭염이다.
4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면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낮에 휴식을 취한다.
캄보디아 인들은 새벽이면 일어나 아침에 일과를 많이 보는편이다.
아무리 게으름 뱅이라도 새벽 5시에는 일어난다고 하니...
낮에 2시간 정도는 쉬는게 이사람들의 일과이고,
관광객들이 가이드나 툭툭이나 택시를 대절 했을때 낮시간에 휴식없이 동행을 했다면 다소 약간의 팁을 더 주어야 하는것이 매너다.
이제부터 호텔방 창에서 찍은 캄보디아의 서쪽 하늘을 감상 하겠다.
앙코르 패스
외국인 여행자가 앙코르 유적을 여행하기 위해서는 '앙코르 패스'가 있어야 한다.
씨엠립에서 유적지로 가는길에 있는 매표소에서 구입하면된다.
1일권외에는 현지에서 즉석으로 찍은 사진을 이용해 증명사진이 붙어있는 패스를 발급해 주는데 관광기념으로도 가치가 있다.
이 '앙코르 패스'는 여행내내 제시를 요구하는데 분실하거나 사진이 훼손되기만 해도 제법 비싼 벌금과 재발급비용이 추가로 발생되기에 관리에 유념해야한다.
'앙코르 패스' 가격
- 1일권 : $20
- 3일권 : $40
- 7일권 : $60
택시 & 가이드 & 툭툭이 렌트요금
- 택시 & 가이드 : 가이드 포함 1일 $30
- 툭툭이 : 반나절 $5 / 1일 $10
매표소에서 패스발급을 기다리다 찍은 하늘.
이 동남아의 하늘은 어디를 가더라도 렌즈질을 강요한다는...
3일짜리 앙코르패스
매표소의 전경
매표소의 전경
왼쪽 창구의 마이크처럼 늘어진게 카메라다.
이곳에 서서 잠시 똥폼 한번 잡아주면 만사 오케이~!
자전거를 렌트해서 여행중인 외국인 여자.
유적지 입구에서 앙코르 패스의 확인을 위해 멈춰선다.
유적지를 가려는 한 외국인을 태운 툭툭이역시 앙코르 패스의 확인을 받는다.
툭툭이 앞좌석에 앉은 남자 왼쪽어깨에 견장은 이곳 공식 유적지의 가이드를 표시하는 마크이다.
'쁘레아 꼬' 사원
양쪽에 연못이 있는 '쁘레아 꼬'사원은 바꽁과 롤레이의 중간에 위치해 있으며 원래 500m X 500m의 큰 대지 안에 건립되었다.
다양한 목재로 지어진 최초의 건축물은 전효 남아있지 않고 석조건물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사원의 명칭은 힌두교의 <성스러운 '소'>에서 유래하며 현대 크메르어로는 '쁘레아 꼬'라고 불려진다.
'쁘레아 꼬' 사원은 879년 '인드바르만 1세'에 의해 축조되었다.
직사각형으로 되어있는 기단 위에는 6개의 탑이 2줄로 서 있는데, 이는 모두 '인드바르만 1세'가 그의 선조들을 위해 봉헌한 사당으로,
당시에는 역대 선조들의 조각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특히 앞쪽의 중앙사당에는 크메르 민족을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시킨 '자야바르만 2세'의 상이 모셔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쁘레아 꼬'사원의 원래명칭은 '자야바르만 2세'의 사후 존명인 '바럼머 에이 쏘 (산스크리트어 바러메아스와라)' 이며,
이후 대대로 앙코르 제국의 왕들은 이 전통에 준하여 사워너의 건립을 반복하였다.
왕이 자신이 신봉하는 종파를 위해 사원을 건립하게 된 것은 훨씬 후대의 일이다.
6개의 탑은 창건 당초에는 가늘고 새하얀 치장벽토로 덮여 있었으며 훌륭한 장식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현재에도 부분적으로는 이 조각이 남아 있어 예전의 조작이 얼마나 섬세하게 이루어졌었는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입구를 들어서면 멀리 사원의 3개의 탑이 보이고 그뒤로 3개의 탑이 더 있다.
가운데 보이는 탑이 앙코르왕조의 시조라 할수있는 자야바르만 2세의 상이 모셔져 있는 탑이다.
중앙탑 앞에 위치한 '난딘'의 상.
'난딘'은 시바신만 사용하던 탈것으로 '소(牛)' 신으로 숭배받는다.
힌두교에서는 지금도 소를 신의 탈것으로 여겨 쇠고기를 먹지 않는것으로 유명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것을 많이 볼 수 있다.
탑안을 들여다 보면 별반 없다.
모셔졌다는 상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프놈펜의 박물관 아니면 서양인들의 약탈에 의해 어디에선가 있기는 한것인지....
크메르인들의 화려함은 우리나라 통일신라시대의 그것보다도 더 화려해 보인다.
탑 외부 벽면에 조각된 부조.
앙코르문명에서는 이 부조들을 빼놓고서는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부조들의 사원들마다 곳곳에 조각되어있다.
산스크리트어.
참으로 어려운 문자라고들 하는데 내게는 그것을 구별할 눈도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건지 아닌지...
탑의 내부를 받치고 있는 기둥 안쪽으로 빼곡히 쓰여진 산스크리트어를 보며 이것이 1000년전의 앙코르인들을 생각해본다.
정면에 3개의 탑 뒤편으로 건축된 또 다른 3개의 탑
불교까지도 일부로 만들어 버린 힌두교의 그 광대함은 책이나 공부를 할수록 실로 놀라울 정도로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신화는 쨉도 안된다.
탑 입구의 기둥상부에 조각된것은 나쁜자들과 올바르지 못한자를 비롯해 그 무엇이든지 먹어버릴수 있다는 신인데...
이름이 기억나지를 않는다. ㅠㅠ
외국인 한명이 앙코르문명의 위대함에 빠져 버렸나보다.
'바꽁' 사원
캄보디아 종교 건축사에서 '바꽁'사원은 확실한 층 단 형식으로 건립된 최초의 피라미드형 사원이다.
그 형상 때문에 건축사학에서 '산형사원(山型寺院)' 이라고도 불려진다.
'바꽁'사원은 '쁘레아 꼬' 건립으로부터 2년 후인 881년, '인드라바르만 1세'가
스스로 신봉하는 힌두교의 신들에게 봉헌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한다.
이 사원은 400m X 300m에 이르는 라테라이트 벽과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해자의 바깥쪽은 900m X 700m에 이르는 또 다른 외벽으로 둘러쌓여 있다.
토벽과 석벽 사이에는 22개의 벽돌로 지은 탑이 있는데, 대부분은 식물과 가옥에 의해 가려져 있다.
이들 벽돌탑 중 일부는 건립 당시의 목제 상인방 창건 이래 오랜 세월을 견디며 잘 보존되어 잇다.
해자를 빠져 나오면 5단으로 되어 있는 큰 중앙 사원 주위에 위치한 여러 종류의 건축물들을 볼 수 있는데,
중앙입구로 향하는 길 양쪽에는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나가>난간이 설치되어 잇다.
앙코르에서는 이 길이 난간에다 '나가'의 모습을 장식한 최초의 건축 구조물이다.
피라미드형 중앙사원의 상부기단 벽에는 설화에서 따온 장면들의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본래에는 전면에 새겨져 있었으나 현재는 남쪽의 중앙 계단 근처 한 군데에서만 아수라의 일군을 묘사한 장면을 겨우 볼 수 있다.
한편, 사원 꼭대기에 축조된 창건 당시의 중앙 탑은 전부 소실 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은 12세기 이후의 건물이다.
캄보디아 최초의 피라미드 형식의 건축물인 바꽁사원이 보인다.
사원을 감싸고 있는 해자
중앙사원의 모습
중앙사원의 입구.
현지인 꼬마녀석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잇따.
꽃반지를 내게 난대없이 끼워주려고 하길래 도망가느라 용썼다.
중앙사원 정상으로 올라가는 중앙계단
중앙사원 위에서 바라본 입구쪽 모습
앙코르유적의 많은곳에서 볼수 있는 사자 조각상들.
대부분 중앙사원이나 입구쪽에서 사원들을 지키고 잇었다.
중앙사원 정상에 위치한 중앙탑.
창건당시의 탑은 소실되고 지금의 중앙탑은 12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란다.
유적지에서 놀고 있던 현지인 꼬마가 눈에 띈다.
<나가>난간이 설치된 앙코르 최초의 유적지.
뱀의 머리에 수에 따라 그 지위를 추측할 수 있다는데 7개의 머리라면 거의 최상급이란다.
본래 '나가'는 불교에서는 부처의 수호신으로 여겨지고 있고,
인도에서는 힌두교 탄생 이전부터 절대 죽지 않는 뱀심(용신)으로 숭배되었었다.
천게와 하계를 잇는 무지개 다리 역활을 하기 떄문에 참배도로등의 난간등에 많이 새겨져있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지 유독 바꽁사워너에는 가방을 맨 현지 아이들이 많이 보였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아이들
롤레이 사원
롤레이 사원은 현재 4기의 탑이 남아있을 뿐이지만, 창건 당시에는 훨씬 복잡한 구성이었다.
서기 896년, '예아싸오바르만 1세'는 왕의 선조, 특히 부왕에게 공양함을 목적으로 이 롤레이 사원을 건립하여 봉헌하였다.
이 사원은 '예아싸오바르만 1세'의 부왕인 '인드라바르만'에 의해 건조되기 시작한 '인더라따까 호수'의 중앙에 위치한 인공섬이다.
이 거대한 호수는 면적이 3,800m X 800m에 달하며,
건조를 명한 '인드라바르만'의 이름을 빌어와 '인더라따까'로 불리어지게 되었는데 당시에는 그 크기를 견줄만한 호수가 없었다.
탑의 문설주 4군데에 새겨진 고대 크메르어는 서체 자체가 아름답고 극히 에술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은 이 사원의 봉헌이 결정된 경위, 각 탑에 봉헌된 선조의 이름, 작업을 분담해 탑 제작에 수고한 신하 수백 명의 이름과
작업 내용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귀중한 문헌사료로 간주되고 있다.
사원명인 '롤레이'는 '하레하라 + 알라이' 라는 두 단어가 하나로 합쳐진 말이다.
'하레하랄라이'는 9세기경, 현재의 '로루어'지역에 건설된 앙코르제국 최초의 수도 명칭이었다.
'예아싸오바르만 1세'는 왕도에 인공섬으로 된 이 사원을 준공한 후, 거기에서 북서쪽에 위치한 '프놈 바켕'산(山)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하였다.
이 천도에 의해 탄생한 도성이 '예아싸오테아라(현재-우치은엉꼬 지역)' 이다.
롤레이를 건설함과 동시에 천도를 도모한다는 왕의 계획은 일견 의아스럽게 여겨질지 모르나 반대로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다.
즉, 천도에 앞서 선조의 땅에 대한 숭배를 잊지않고, '인더라따까'의 중앙에 롤레이 건설을 결단 한 것이다.
부왕을 애도하기 위한 공물로서의 롤레이 사원을 부왕 '인드라바르만 1세'에 의해 건조된 '인더라따까'의 중앙에 봉헌함으로써,
이 곳이 가지는 의미 및 상징성이 더욱 깊어졌다고 할 수 있다.
롤레이 사원
타일바닥이 앙코르유적과는 어쩐지 어울리리 못하고 있었다
내부모습
천정벽화
반띠아이 쓰레이 사원
'라젠드라바르만 2세'가 다스리던 시절에 제사의식을 담당하던 브라만 고승이 세운 힌두교사원이며,
성지 '프놈쿨렌'의 산 기슭을 흐르는 씨엠립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반띠아이 쓰레이' 는 '여자의 성채'라는 뜻으로 다른사원에서는 사용되지 않던 붉은색사암을 사용해 석양이 질때면 사원전체가 붉은 광채를 내뿜는다.
힌두교 신화를 바탕으로한 부조 장식은 앙코르 예술의 최고 작품으로, 앙코르의 보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중앙사원의 북쪽(정면 오른쪽)에 위치한 테바다(여신)상의 부조장식은 '동양의 모나리자'라고 유럽에서 극찬을 했던 작품이 있다.
1923년 프랑스 문화부장관 출신이자 작가이기도 한 앙드레 말로는 앙코르 유적 방문시 이 여신상을 훔쳐 귀국하다 걸렸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여러 앙코르 유적지중 장식들의 섬세함과 화려함은 가히 최고중에 최고라 할 수 있겠다.
프놈바켕 - 최고의 일몰 감상지
신들의 세계와 가까운 언덕 '프놈바켕'은 앙코르와트와 앙코르톰 사이에 있다.
높이 60M의 작은언덕위의 이곳은 신성한 산중 하나로 손꼽히며 이곳 사람들의 두터운 신앙의 대상지이다.
프놈바켕의 가파르면서도 위험한 돌게단을 걸어올라가면 북쪽으로는 앙코르톰의 바이욘이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앙코르와트가 보이고 멀리 서쪽으로는 서 바라이 호수가 보인다.
11세기 말 동서 약 8Km, 남북 약 2.2Km의 대규모로 조성된 이 인공호수위로 지는 석양은 앙코르 유적지에서 볼 수 있는 최고의 낙조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해질 무렵이면 서서히 몰려드는 전 세게의 많은 관광객들로 가득하고,
저물어가는 낙조를 바라보며 여행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여유로운 모습은 바로 여행의 달콤한 참맛이 아닐까 싶다.
언덕을 15분정도 걸어서 올라가면 앙코르 유적지중 최고의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프놈바켕이 나온다.
일몰을 보기위해 일찍 올라온 사람들. (나 역시 그중 한사람)
이곳은 해발 60M
이곳의 돌게단은 아주 가파르고 폭이 아주 짧아서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동양인들은 제법 잘 올라오는데, 사이드 스텝이 잘 안되는 서양인들은 거의 네발로 기어서 오르내린다. ^^
프놈바켕 위에서 바라본 아래의 모습
멀리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게 인공호수인 바라이 호수.
왼쪽에 노란색의 조그만 공이 '앙코르 벌룬' 이 보인다.
앙코르 벌룬은 30인승 곤도라를 약 200m높이에서 앙코르 유적지를 내려볼 수 있는 여행상품이다.
프놈바켕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
프놈바켕에서 바라본 동쪽하늘
일몰시간이 다가오자 서서히 관광객들이 불어나기 시작한다.
언덕 아래에서 프놈바켕까지 관광객들을 실어주는 코끼리.
오른편에 보이는 망루는 관광객들이 코끼리를 쉽게 타고 내릴수있게 만든 시설이다.
석양을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친구.
뒷모습도 아름다웠지만 앞모습은 더 아름다웠다.
(나 역시 남자 맞나봐.... ㅡ,.ㅡㅋ)
작년부터 느낀건데 이제 외국 여행지에서 외국인들도 젊은사람들을 중심으로 손에 DSRL이 들려지기 시작하는듯 하다.
프놈바켕의 일몰이 시작된다.
시간별로 해의 각도에 따라 변화하는 일몰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단지 아쉬움이 있다면 마지막 10분만 더 찍었으면 하는 마음이 내내 아쉬웠다.
기다리는 버스도 그렇고, 내려가는 길이 비록 15분거리지만 조명시설이 없기에 해가 있을때 하산을 해야하는 아쉬움이 내내 아쉽다.
신들의 세계 - 앙코르 와트
앙코르 유적을 가르켜 사람들은 종종 신들이 사는 물의 도시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주의 바다를 의미하는 해자로 둘러쌓여있으며,
히말리아를 상징하는 성벽과, 세계의 중심인 메루산(수미산)을 상징하는 사원등 이 3가지는 바로 앙코르 유적의 핵심이다.
어느 사원을 보더라도 이 3가지를 모티브로 건축되고 조각되어있는게 앙코르 유적들이다.
앙코르 유적군중에 최고로 손꼽는 앙코르와트는 3만여 명의 장인들이 30년 걸려 완성되었으며,
그 동안 대대로 게승되어 온 앙코르 건축과 예술의 집대성임과 동시에 당시 인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때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 규모의 석조 건축물이다.
앙코르와트는 다른 앙코르 유적지들과 달리 정문이 서쪽으로 나 있다.
크메르인의 풍습중 죽은자는 반드시 머리를 서쪽으로 두는 법이 있는데 '수르야바르만 2세'왕의 묘로 지어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유력하다고 한다.
사원 입구에서 540M의 참배도로를 건너가면 일곱개의 머리를 가진 뱀신인 '나가'를 볼 수 있다.
우기시에는 최대 200M너비의 거대한 해자는 참배도로를 걷는동안 관광객들에게 그 무엇이든지간의 생각을 요구한다.
앙코르 예술의 중심인 벽에 묘사된 부조 세공의 회랑들은 앙코르와트를 3겹으로 둘러져있고,
2009년 현재는 공사문제로 인해 부분 통제와 중앙사원은 아예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제1랑의 서쪽면은 '마야나'와 '마하바라타'의 이야기가 부조로 묘사되어있고,
남쪽면에는 '수르야바르만 2세'의 행군과 '천국과 지옥'의 부조가 묘사되어있다.
동쪽면의 일부에는 힌두교의 천지창조에 얽힌 신화인 '유해교반'의 마지막 장면이 한쪽벽면을 메우고 있지만,
나머지면과 북쪽면은 밑그림 상태로 방치된채 완공되었다가 앙코르왕조 붕괴후인 16세기에 이르러 중국인 장인을 시켜 완성시켰으나,
다른 벽화와 비교해 예술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제2회랑에는 곳곳에 놓여있는 불상들을 볼수있다.
이 불상들은 앙코르왕조 멸망후에 들여온 불상들인데 머리와 팔부분이 없는 불상들이 많다.
이유는 오래된 내전을 틈타 도굴된 흔적들이다.
제2회랑 안쪽으로는 1560개나 되는 여신상을 볼 수있는데 섬세한 표정과 장신구의 하나하나 어느 한가지도 같은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제3회랑(중앙사당)으로 가는 엄청나게 가파를 마지막 계단들을 올라가 중앙에 도착하면 22M의 커다란 동굴이 있는데,
그 안에는 '수르야바르만 2세'의 유골이 안치되어있다고 한다.
중앙사당은 지상에서 해발 65M에 이르며 해가 질때 정면 서쪽으로 지는 저녁일몰을 볼 수 있다면 낙조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행운을 맞이할 것이다.
우주의 바다를 상징하는 해자위의 참배도로를 따라 걸어서 앙코르와트의 내부로...
해자를 건너면 뱀신 '나가'의 난간들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서탑문을 지나게 된다.
서탑문 오른쪽에 있는곳에 모셔진 ???신
소원한가지 정도는 들어준다는 맘 좋은 신이라는데 누구였드라?
서탑문을 지나 사원 으로 들어왔다.
서탑문 안쪽에 조각된 부조들의 모습
뱀신 나가의 긴 난간을 따라 걸어서 중앙사원으로~~!
힌두교에서 뱀신은 워낙 짱짱한 신이라 모라하기엔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뱀은 진짜 싫다. ㅡ,.ㅡㅋ
아뭏튼 서탑문에서 중앙사원까지 이어지 이 길을 따라 오는중에는 경과 사원이 있다.
중앙사당 앞을 중심으로 양 옆에 위치한 두개의 연못은 '성지'로 불리운다.
제1회랑은 복도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다.
회랑 가득한 부조들을 보면서 힌두교와 크메르인들을 생각해본다.
'라마야나' 이야기
캄보디아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는 대표적 신화인 라마왕자가 원숭이 왕인 하누마트의 원군을 얻어 마왕을 물리치고 아내 시타 왕비를 구해낸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도올선생께서 이벽면에서만 3시간을 보면서 감탄을 하셨다는 부조.
당시 안내 하던 가이드는 밥먹고 와서 다시 안내를 햇다고 한다.
남쪽 동편에 있는 천국과 지옥을 묘사한 부조.
염라대왕을 중심으로 쟈판받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지는데 그 위는 천국이, 아래쪽에는 지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십자회랑 사방에 있는 네개의 커다란 웅덩이다.
빗물을 받아 두었다가 신에게 다가가기 전에 다시 한번 몸을 정결히 하기위한 신성한 목욕지로 사용했다는 추측을 한다.
앙코르와트를 나와 해자를 건너는중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기에 내리는 스콜이다.
하늘은 맑은데 비는 내린다.
해자에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할지를 몰랐다.
외국에 나오면 이게 좋다.
아무 생각없이 다닐수 있다는게 너무 좋다.... ^^
툼레이더의 추억이 있는곳 '따프롬'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영화 툼레이더의 촬영지로 더 유명해진 '따프롬'
13세기 후반부터 이어진 씨암(태국)군의 침략과 내분등으로 방치되었는데 용수(열대 아시아에 분포하는 뽕나무과의 상록 교목)등의 자연환경에 의해
유적 전체가 침식되고 붕괴되어 자연에게 먹혀버린 사원이라고도 한다.
이 사원은 오늘날 '따프롬' 즉 '브라마옹'으로 알려져 있지만 창건초에는 '왕실의 승원'으로 불리워졌다.
1186년에 자야바르만 7세는 이 사원 건립시, 몇 개의 불상을 봉헌하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불상은 왕이 그의 어머니로 상징한, '지헤의 완성'을구현한 여존 '쁘랏냐바라미타(반야바라밀다)'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몇 년후 자신의 종교적 이념을 한층 명확히 구현하기 위하여
그의 아버지를 상징한 로케스와라(관세음보살)를 모시는 또 하나의 사원인 '쁘레아 칸'을 건립하였다.
왕의 종교관은 광의로 볼 때 분명 대승불교의 범주에 드나,
엄밀히 말하면 자야바르만 7세 대의 특이한 크메르 불교의 이념으로 해석하는데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위하라(승원)라는 당시의 용어를 근대의 테라바타(상좌부불교,소승불교의 한종파)의 이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사방 1km x 700m의 석벽으로 둘러쌓인 넓은 경내는 근세 이후의 승원인 왓(상좌부불교사원)에 가까운 성격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외벽의 내부에서는 다양한 지위를 지닌 많은 승려 등이 모여 하나의 교단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편, 보통의 경우 방문자들은 사워너의 서쪽에서 들어와서 사원의 중앙으로 향하게 되는데,
정식 입구는 동쪽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따프롬의 서쪽에 있는 출입구.
하지만 사ㅏ실 실제 주 출입구는 동쪽에 있다.
사원집입부근에 있는 다리.
우기시가 되면 지금은 메말라있는 당이 물에 잠긴다.
용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원의 내부로 들어가는 관광객들.
제법 큰 규모의 사원이다.
용수들에 의해 붕괴위험이 있는 건축물들 떄문에 위험을 알리는 표시가 보인다.
동탑부근의 용수.
사진찍기에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사워너 내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있는 여행객.
고무나무 옹이부분을 들여다보면 액체가 고여있는것을 볼 수 있다.
기억나는가? 영화속에서 나무자루에 헝겁을 두루고 횃불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바로 헝겁부분에 이 액체를 바르고 불을 붙히면 횃불이 된다.
고무나무
사원내부에 현지인이 좌판을 펼쳐놓고있다.
왼편에 보이는 야자수를 조각하여 팔고있는 상품이 눈에 띈다.
앙코르 톰
3km나 되는 성벽으로 둘러쌓인 앙코르 톰은 앙코르유적에 반복되어 나타나는 '유해교반'이 새겨진 난간을 따라 신들의 문인 남대문을 통해 들어갈수 있다.
세계의 중심을 의미하는 중심부의 바이욘사원을 비롯해 파퓨온, 피미야나까스, 쁘리아빨리라이, 데프프라남, 라이왕의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남크리안, 북크리안, 프리야피투등의 유적지가 있다.
다른 앙코르 유적과 다른점이 있다면 동서남북 네곳의 문이외에 승리의문이라는 또다른 출입구가 동쪽에 하나가 더 있어 총 다섯곳의 문이 있는데,
이는 1177년 참파군의 침략을 받아 참족의 지배를 받았던데 교훈을 얻어
동쪽편의 문을 죽은자의 문으로 정하고 그 위쪽에 승리의 문을 한곳을 더 만들었던게 이유다.
남대문에는 동서남북 방향으로 향한 얼굴의 조각이 있는데 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을 불교의 자비심으로 에워싸는 듯한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어,
사람들로부터 '크메르의 미소'라고 불리우고 있다.
- 바이욘
바이욘사원의 참배도로는 아침해를 받을 수 있는 동쪽으로 나있다.
제1회랑과 제2회랑으로 둘러쌓여있는 중앙에는 높이 42m의 본전이 솟아있고 사면체 관세음보살상이 사원안에 총 49체가 있다.
그 밖에 각 다섯 성문에 1체씩이 있어 왕국안에는 총 54체가 있는데 이는 당시 왕국 안에 있던 주(州)의 개수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푸온
11세기 중엽 앙코르 톰 이전에 도성에 지어진 힌두교 사원이다.
정문 입구에서 동탑문쪽으로 이어진 참배도로는 앙코르와트의 참배도로나 앙코를톰의 해자에 걸쳐있는 다리등에 계승되어 발전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씨암의 왕과 크메르의 왕은 형제였는데 씨암의 왕이 자신의 왕자를 크메르왕에게 맡기자,
크메르 신하들은 이를 모략으로 여기고 왕자를 살해한다.
화가 난 씨암의 왕은 크메르 정벌에 나서고 크메르 왕비가 이 사원에 그들의 왕자를 숨겼다고 해서 '숨긴아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왕조의 전성기였던 13세기에 워너나라 쿠빌라이 시절이 기록한 <진랍풍토기>에서는
'금탑(바이욘)의 북쪽에 있는 동탑'이라고 불렸으며 당시에는 바이욘보다 더 높았던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피미야나까스
앙코르톰이 건설되기 전인 11세기 초반에 세워진 힌두교 사원으로 '천상의 궁전' 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건립당시에는 피라미드형이었지만 지금은 중앙사당의 대부분이 붕괴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과거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신의 정령이 살았는데,
국왕은 매일 밤 하루고 거르지않고 이 정령과 밤을 보내야만 했다고 한다.
만약 하룻밤이라도 지나치면 반드시 재앙이 닥쳤다고 한다.- 코끼리 테라스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가 조성한 열병식등에 쓰일 중후하면서도 대규모의 테라스.
벽면에 코끼리 부조가 연달아 새겨지고 곳곳에 머리가 세 개달린 코끼리신인 에라완이 긴 코로 연꽃을 들어올리는 모습까지 조각되어 있어 코끼리 테라스라 불린다.- 라이 왕의 테라스
크메르 신화인 '라이왕의 전설'에 등장하는 라이왕의 조각상이 있다.
옛날 어느 왕이 밀림에서 독사와 싸우다 그 뱀을 죽일때 피가 튀어나와 나병(라이)에 걸렸다는 내용의 신화다.
현재 테라스에 있는 조각상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프놈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안쪽에서 바라본 남대문
남대문 상부에는 크메르의 미소로 불리우는 사면상이 조각되어 있다.
크메르의 미소.... 이번엔 좀 자세히 보자.
서편으로 길게 뻗어있는 남대문 앞의 해자.
끝이 안보인다.
남문 성벽위에서 바라본 남대문 입구앞의 모습.
해자를 건너는 다리와 양편에 놓여진 신과 악마들의 상이 보인다.
세상의중심을 의미하는 바이욘 사원의 모습이 보인다.
바이욘 사원에는 49개의 관세음보살상이 조각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상
바이욘 중앙에 있는 중앙사원
코끼리 테라스로 나가는곳에 위치한 문의 상부를 보면 무엇이든지 먹을수 있다는 ???신의 조각이 보인다.
전설에 따르면 악한자들은 이 신이 다 잡아먹는단다.
죄지은자들이여...이 문으로 지나지 말고 옆에 다른문으로 나갈지어다! ^^
코끼리 테라스의 모습
힌두교에서는 빠질수 없는 모티브인 링가다.
많은 건축물들에서 볼 수 있는 이 링가는 시바 신이 화신한 하나의 형태로,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남자 생식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본존으로 모실경우에는 '요니'라는 여성생식기의 모습을 한 대자위에 놓인 경우가 많다.
바라이 호수
본래 바라이 호수는 동쪽과 서쪽에 하나씩 두개가 조성되었었지만 동쪽 바라이호수는 아주 오래전에 메말라 버리고 지금은 서쪽에 있는 바라이 호수만 남아있다.
외국 관광객들은 서바라이 호수로 불려지는 이 인공호수는 수리야바르만 1세에 의해 건조가 시작된 후,
2대 왕조에 걸쳐 공사가 진행되다가 11세기 중반 우다야디트야바르만 2세에 의해 완성되었다.
이 호수는 남북 2.2km, 동서 8km에 이르는 크메르제국 역대 왕조에 의해 건설된 인공호수중 가장 큰 호수로 알려져있다.
호수의 중앙에는 '서메본'이라는 인공섬이 있으며,
이 섬에서 현재 프놈펜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동 조각상인 '옆으로 누운 비쉬누 신상'이 발견되었다.
또 이 섬의 중앙을 주의깊게 보면 우묵하거나 뒤집어진 남근상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남근상에서 솟아나는 호수의 물이 풍부한 수원이 되어 모든 농경지와 목초지를 기름지게 함으로써 풍성한 결실을 맺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서메본 탑은 동시대에 같은 양식으로 건조된 바푸온 사원과 비슷하며,
메본의 서쪽 회랑 입구 벽면의 부조에는 나란히 들어선 사각형의 틀 안에 설화의 줄거리에 따라 여러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우기때면 국토의 상당부분이 물에 잠기는 캄보디아에게는 유수나 빗물을 자유로이 조절하고 벼농사 이모작이 가능하게 해준 이 바라이호수는
한없이 고마운 존재로 여겨질 것이다.
무슨놈의 인공호수가 이다지 크다냐...
호수는 현지인들에게 소중한 휴식처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호수 주변으로는 마켓이 형성되어 있다.
메뚜기는 아니고 귀뚜라미같았는데 고소한게 꽤나 맛있었다.
캄보디아 씨엡립과 앙코르유적들을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방법은 두가지다.
앙코르와트 서쪽에서 열기구와 헬기를 타는게 그것이다.
기구는 30인승 곤돌라를 약 200m높이까지 띄워주는데 관람시간은 10분정도에 요금은 10불정도다.
헬기도 약 15분정도 관람에 80~100불정도 한다
열기구와 헬기는 나란히 위치해 있다.
얼핏보니 한 회사에서 운영하는듯하다.
이녀석이 오늘 내가 탈 헬기다.
귀엽다..... ^^
잘생긴 우리 파일럿 Phil.
함께 사진 못찍은게 못내 아쉽다.
조정석은 우측에 있고 조정기기들도 간략하다.
하늘에서 본앙코르와트.
우주의바다를 뜻하는 해자와 히말리아를 상징하는 성벽과 세상의 중심이자 수미산을 뜻하는 중앙사워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게 앙코르의 유적이고 힌두의 사상이다.
마을의 모습.
우리의 시골과는 다르게 집앞에 농경지가 함께 있다.
왕과 왕비의 목욕탕이었다는 쓰랑쓰랑 인공호수.
이곳에서의 일몰도 아름답다.
참 넓은 평야다.
우기면 그래서 엄청난 면적이 물에 잠긴단다.
집앞에서 그냥 물고기를 줏는단다.
재미있는 곳이다. ^^
캄보디아 여행의 마지막 글이다.
씨엡립 다운타운도...
톤레샵호수도...
부족하고 미비한 사진이지만 이만 캄보디아를 마칠까 한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유적지 곳곳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단순한 구걸을 하기보다는 무엇인가를 들고나와 관광객들에게 판매를 하는 모습이 옛날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다.
어디를 가도 들리는 아이들의 "1달러~1달러~!" "오빠! 멋쟁이~!!!"
이 소리들은 귓가에 환청이 되어 들릴정도로 자주 듣는다.
앙코르문명 유적지마다 만날수 있는 간이 매점이다.
그래도 캄보디아에서 음식 고생은 안한다.
현지 음식도 먹을만 하고 한국식당도 제법 많고.....
캄보디아....많이 좋아졌다. ^^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보러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태워주는 코끼리 투어다.
여기 코끼리는 좀 까무잡잡하다.
피부도 유독 더 까칠한것 같다.
씨엡립에 있는 조그마한 재래시장을 들러보았다.
힌두국가라 생선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를 보고도 잡지를 않는다.
단지 손으로 휘이 휘이 쫓아내기만 할 뿐...
닭은 우리나라 닭이 보기도 좋고 힘도 있어 보인다.
애네들....좀 비실대 보인다. ^^
이 녀석 왜 포장위에 올라가 있는건지....
재래시장 모습
어느나라든 아이들은 이쁘기만 하다.
얼마전까지 내전을 겪었던 불운한 나라다.
상이군인들이 유적지 곳곳에서 연주를 하며 기부금을 요구한다.
여행 성수기떄는 돈이 제법 큰돈이 모여 경찰들이 옆에서 가드도 해준단다.
사실은 상이군인 이외에도 경찰이나 여러 사람들의 이궈너이 커넥션으로 묶여있기 떄문이다.
갑자기 옆에서 폭포수 소리가 나길래 보았더니 이녀석 엄청 싼다.
냄새 또한 어질어질하다..... ㅠㅠ
씨엡립 다운타운에 있는 레드피아노라는 곳이다.
이곳은 영화 툼레이더를 찍을 당시 안젤리나 졸리가 즐겨와서 쉬었다는 곳이다.
레드피아노의 내부
여행객들을 위한 책방도 있다.
씨엡립 다운타운에 있는 은행
늦은시간 은행을 지키고 있는 가드도 보인다.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원숭이.
앙코르와트에는 유독 원숭이들이 뛰어놀고들 있었다.
툭툭이.
원래 태국에서 시작되었던 교통수단이 캄보디아까지 전해져 들어온 것이다.
정작 태국은 사라져간 문화가 아직도 캄보디아에서는 툭툭이가 존재한다.
왜 이름이 툭툭이?
처음 나왔을때 오토바이 기어를 바꿀때 툭툭 소리가 난다고 해서 툭툭이 였다고 한다.
인근 농가를 찾아갓다.
물론 양해를 구하고....
살림공간은 2층에 형서오디어 있는데 사진은 이층 거실이라 생각하면 된다.
침실이다.
대개의 캄보디아 현지인들의 생활 수준과 집들은 이정도다.
이녀석 더운나라 고양이라 그러나?
자는 모습이 거의 사망상태다.
이 나라 소들은 살찐놈이 없다.
전부 밴텀급이다. ^^
저녁식사후 캄보디아 전통공연을 관람했다.
힌두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부터 여러 공연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