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기氣가서린 정갈한 도량道場 -진산을 업은 상원사와 월정사를 탐방하고-
가을 산행은 언제나 마음이 설렌다. 특히 이번 가을의 옛적 직장동료들이었었고 산행의 도반들인 예우산악회원들과 월정사와 상원사를 업은 오대산 산행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가을에 접어들어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계절로 울긋불긋 오색영롱한 색깔의 나뭇잎들로 온산이 물들어가는 시기다. 아름다운 옷을 입어 산 꾼들을 유혹하고 그에 묻힌 산 꾼들도 자연의 한 무리가 되어 산을 더욱 아름답게 옷을 입힌다. 더욱이 오대산의 월정사를 에워싼 주위엔 온통 전나무 숲으로 이뤄져 청초하고 신선함을 선사하는 원시림 속을 걷는 기분으로 월정사를 찾았다. 이에 앞서 상원사에 먼저 차로 들려 탐방을 마치고 상원사에서 길 따라, 계곡물 따라, 오솔길 따라 월정사까지 내려오는 가을 경치란 거의 환상적일 만큼 단풍이 화려하게 물들어 가을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다. 그 길이 자그마치 10.5Km나 됐다.
월정사와 상원사와의 길은 요즘 선재善財길이라고 부른다. 이 이름은 상원사와 월정사를 잇는 찻길을 내면서 바뀐 길 이름으로 불교의 성지답게 화엄경에 나오는 선재동자善財童子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월정사는 오대산에 안겨 있는데 선재동자는 오대산을 상징하는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진리 세계로 들어갔다는 구도자求道者이다. 아직은 대부분 예전에 부르던 이름 ‘오대산 천년의 숲길’이나 ‘옛길’이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 나도 이렇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은 불자拂子들에겐 순례길이며, 벌목꾼에겐 산판 길‘이었고, 화전민에겐 삶의 터전을 일구는 길이었으며 관광객에겐 탐방의 길이다. 그리고 우리 같은 등산객들에겐 이 길은 좋은 자연의 안내자 역을 하고 있지 않은가.
며칠 전 가을태풍이 지나면서 대지를 적신 비가 촉촉이 내려앉아 배시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이 절들의 단아한 모습이 곱게 물든 단풍과 어울려 또 하나의 자연으로 다가온다. 우리 일행은 달려오는 가을 냄새에 끌려 오대산의 풍광이 마중을 나서고 있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로 오르는 비포장 길은 흙의 숨소리를 내며 코로 전해지는 흙냄새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그 어떤 생명도 거부하지 않고, 고이 품어 경이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흙의 기운에 내 몸이 흡수되어 고요와 평화 속으로 빠져 들게 한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만끽 할 수 있도록 하면서 자연향이 그리운 나그네들을 위한 이 절의 배려가 곳곳에 숨어 있다.
이 오대산 적멸보궁 상원사는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학과 같이 고고했던 한암 선사의 수행이 설화처럼 전해지고 있었다. 그 한암 선사는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鶴이 될지언정 삼촌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다”하면서 조실자리를 팽개친 지금도 올곧은 수행자로 추앙받고 있었다. 특히 6.25 동란 때에 절을 불태우려는 괴뢰 병사의 위협에 맞서 상원사를 소신燒身공양의 결의로 자신의 몸을 던져 지켜낸 수호자로 잘 알려진 참 수행자가 아니더냐. 좌탈입망으로 스스로 일생의 수행을 점검한 선지식이며, 중생들에게 수행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준 한국불교의 자존심이라고 잠시 만났던 스님의 설명을 듣고서야 이 절의 명성을 더욱 실감할 수가 있었다.
상원사에서 걸어 내려오는 오솔길은 일품이었지만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와 바위와 나무와 풀잎들의 향연은 우리나라 어느 산야에서도 보기두문 풍경이며 참으로 일품이다. 그리고 이 오대산자락의 월정사에 드는 길은 월정사 금강교서 일주문까지 늘어선 전나무가 치솟아 있어 그 사이로 흐르는 청량淸凉한 맑은 햇빛은 찬란한 줄무늬를 그린다. 그 얼비치는 햇살을 머금은 청량한 공기를 마시니 가슴이 시원히 뻥 뚫리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백여 년 가까이 자란 이 전나무군 길은 완만한 흙길이어서 걷는 맛이 일품이요 흐르는 계곡 물소리와 어울려 어느 절에 드는 길 보다도 단연 신비스럽고 청량淸亮한 천혜의 절 들머리길이라 여긴다. 이 월정사는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동쪽 계곡 속의 사철 푸른 침엽수림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절 이름의 유래는 진산인 만월산과 서대 장령산 아래 세워진 수정암에서 각 한 자씩을 따와 월정사로 명명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한 스님을 만나 절에 대한 내력과 절의 아름다움을 설명 받았는데 왈, 절의 앉은 자리가 달의 형국인데다 이 절의 건립 동기가 되는 문수보살의 지혜와 빈 밤을 밝게 비추는 밝은 달의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져 월정사란 이름을 더 빛나게 한다며 절에 와서 템플스테이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월정사의 보름달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달밤의 극치라고 한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렇게 하겠노라고 답은 했지만 그런 기회가 주어질지는 아직 오래된 미래의 계획일 뿐이다.
달빛 푸른 기운이 드는 월정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달(月)자가 들어간 낱말이나 산 이름과 절 이름이 많고 사악한 뜻을 가진 것은 하나도 없다. 달을 지칭하는 월자가 들어간 현상과 물체나 고유이름들엔 모두가 낭만스럽다. 달에 대한 그 이미지는 맑고 신선하며 아름다움으로 치장하였으며 옛 우리조상들은 달에 아름다운 미녀가 산다고 비유하고 많은 시와 글들을 남기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월출산, 간월산, 함월산, 월명산이란 산 등 월자 이름을 가진 산들은 아름답고, 농월정, 매월정이란 정자와 월광소나타, 월야 등 이름만 들어도 자신이 지닌 것보다 월자 덕에 대상이 훨씬 돋보임은 바로 그 달의 이미지 덕분이 아니겠는가. 지현스님이 절에 살면서 절에 비추이는 푸른 달을 두고 예찬하기를 “봄에 나타나는 달은 진달래에 이어 핀 철쭉 향기에 젖고, 여름 달은 무성한 숲을 흔들고, 가을 달은 앙상한 가지들 위에서 떨고, 겨울 달은 온 산천을 뒤덮은 흰 눈을 고고하게 반사한다. 청량사의 달, 특히 보름달은 청량한 맑은 산 공기와 어우러져 높고 신선하다. 암벽위에 높이 뜬 둥근 달이 산 전체를 비추면 밝음과 그늘이 교차하는 광경이 절경을 이룬다”고 했다. 이렇게 사철 두둥실 달이 떠오르면 비록 산사山寺는 아닐지라도 자기 집 근처에서 이런 밤엘랑 일찍 잠들려 하지 말고 혼자라도 고요히 달을 올려다보면서 한 번쯤 거닐며 감상함이 어떠할까.
술을 마시는 것도 달과 낭만적으로 만나고 있다. 이태백이 달 아래 홀로 술을 따라 마신다(月下獨酌)는 시에도 잔을 들어 맑은 달을 맞이하니 그림자를 대하여 세 사람 이룬다하였고, 내가 노래하면 달은 배회하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 만들어 어지럽게 흔들리게 한다하였다. 이렇듯 달을 빌어 노래하고 달을 위인화하며 예찬한 인간의 심성은 달은 인간이 나고 죽는 것, 세상이 나고 지는 것에 상관없이 항상 그 자리에서 삶의 자태와 역사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어느 누구에게서든 달은 무성한 인간 세상에서 생사를 초월하여 영원히 의지할 수 있는 벗으로 삼을 수 있고, 영원한 자연의 섭리를 향한 동경은 더욱 달을 보고서는 절실해지는 법이다. 옛날의 내 어머니가, 내 할머니가, 내 가족의 모든 분들이 이 달에 맹서하고 소원과 안녕을 빌고 우러러 예찬하며 그 허망한 인생의 생애와 세파에 좌초하지 않고 희로애락에 넘치는 인생의 바다를 무한히 사랑하지 않았던가.
그곳 월정사가 업고 있는 산이 높아 계곡이 깊었다. 햇빛·달빛 기氣가서린 정갈한 도량道場임엔 틀림없다. 이 깊은 계곡은 생명의 원천源泉이었으며, 그 생명生命들은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순환하는 절대성絶對性이었으며 시간을 초월하는 무한성無限性이었다. 내가 거닐었던 길섶 풀잎에 맺혔던 이슬방울 하나가 태초太初에 이 우주를 생성生成시킨 모태母胎일 수 있는 이치를 깨닫게 해준다. 또한 돌돌돌 여울지며 흐르는 상원사에서 월정사 앞을 지나 세속으로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며 나도 저렇게 물처럼 흐를 수 있을까? 모든 집착과 탐용貪慾을 내려놓고 더 낮은 곳으로 낮춰 갈 수 없을까하고 흐르는 물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반조返照하고 있었다. 도대체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고 그때서야 나를 발가벗긴 나신裸身인체 자문해보고 이번 그곳을 찾은 화두話頭로 삼았던 나. 그리고 나의 생명의 원천도 생각해 보았으며 이 소박한 인연因緣의 시간들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겠다고 마음에 다짐도 해 보곤 한다. 내가 이 절을 찾은 시간들은 나를 관조觀照할 명상의 화두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아직도 그곳 주승이 부처 앞에 결가부좌 하고 삼계三戒의 고해苦海에 길을 밝히기 위해 기도하는 모습과 비어飛魚의 풍경소리가 가을바람에 휘날리어 옷 깃 과 무릎을 스치면서 자비의 물결 출렁이는 것 같고 이 모든 것들이 진정 순정純正한 영혼의 울림이요 나고 죽음이 흐르는 강을 건너는 계戒요 뗏목이 아닐까 싶다. 그 맑은 풍경소리는 내 모든 욕망을 부수어 버리는 맑은 피의 소리였으며 모든 번뇌의 불을 꺼주고 있었다. 그리고 자비의 성정에 흠뻑 젖은 채 산사를 내려 왔다. 월정사에서 써가지고 온 내 시 한수를 여기 토해 놓는다.
월정사 가는 길
靑岩/鄭日相
안개 자욱한 숲, 청량감으로 촉촉이 젖어 바위들의 등줄기가 아직 푸른데 나무들은 한 결 같이 뿌리 쪽으로 몸을 누이고 계곡마다 하얗게 풀어놓은 무욕無慾의 옷고름 때 묻은 내 몸에 날개 돋는 줄 모르고 살다가 문득 가벼운 날개조차 훌쩍 벗어버리려는 듯 물소리 마음 띠 푸는 숲속 길드는 순간에 억겁을 다듬은 목탁소리에 치솟는 소름아 바람도 지쳐 길을 내려놓는 전나무그늘아래 서서 나그네 드는 길목 스치는 뜬 구름 한 점 일 때에 고요 속 고즈넉이 앉아있는 산사를 찾아 나선다.
<월정사 본전 앞에 선 나. 2013.10.10> |
출처: 북소리 죽비소리 철부지소리 원문보기 글쓴이: 청암/정일상
첫댓글 이 글, 수필로서 지난 10월 10일 상원사와 월정사를 탐방하고
등산을 겸해 무려 10.5Km를 걸어서 상원사에서 월정사로,
특히 산길 등사코스를 걸었는데 매우 힘이 들었었지요.
그래도 탐방하는 재미로 견디었지요.ㅎㅎㅎ
읽어 주시어 감사합니다.
에세이를 읽고 갑니다.
참으로 수궁이 가면서 폭넓은 지식을 담아 공부많이 합니다.
솔직히 이런 글을 아무곳에서나 읽을 수 잇는 글이 아니라 여기면서
청암선생의 그 내면을 피추이고 있다 생각됩니다.
좋은 곳, 좋은 구경하시고 옛세이
감명깊게 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
달을 빗대어 글을 쓴 대목들이 연상되면서
그곳의 그림이 그려집니다.
글의 힘이란 것이 참 묘하여서
내가 마치 월정사의 경내에서 감상하고 있는 것 같아집니다.
사원사와 월정사에 다녀 온적이 있는데 다시 함게한 것 같아
감사하며 읽고 그 내력들을 머리에 넣엇다고 다음 방문시
새겨보고 탐발할가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