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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원지맥 3구간
2012.02.04 (토)
산길 : 원호리~화봉재
사람 : 조진대님부부 무심이님 조은산님
거리 : 37.1km
원호리~4.1~송호리~4.3~황산초등학교~8.9~옥매산~5.5~연자재~4.9~방죽제~1.0~일성산(-0.3)~2.4~77국도~5.0~화봉재 / 37.1km
Cartographic Length 38.5km Total Time: 10:13
산경표 玉梅山 日星峰 登山浦
원호마을에서 구등대까지 54km가 된다. 100리가 넘는 길을 이틀만에 조질 수 있나.
세 번은 해야 되는데, 하루 더 오자니 그렇고 월요일 연가내고 계속 하는것도 그렇다. 중간에 도로를 따라 가거나 도로와 인접한 산도 아니고 들도 아닌 논밭을 지나는 마루금은 눈대중으로 대충 이으며 차를 타고 퍼뜩 지나가면서 이틀만에 조지기로 작정을 하고, 조진고문님과 함께 잘 조졌다.
이렇게 조지는 일도 차가 세 대였으니 가능했다. 날머리인 종점에 한 대를 두고 중간 기착지에 한 대, 그리고 들머리까지 이동에 한 대가 필요하다. 나는 중간 기착지인 황산면 황산초등학교 교정에 주차를 하고 차박했다. 금요일 퇴근 후 8시 반쯤 집에서 출발했고 자정을 좀 넘어 황산초등학교에 도착했다. 한반도 동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횡단하는데 4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다 할 山도 없는 黃山面은 원래는 들판을 뜻하는 黃原面이었는데 山一面과 합하면서 황산이 되었단다. 지난 구간 성산(146m)이 동쪽 마산면과 접하고 서쪽으로는 옥매산(174m)이 문내면과 경계다. 그 안쪽으로는 지난번 국사봉(×174m)과 형제봉(143m)을 빼고, 오늘 구간 지맥 마루금상에는 원호리의 명당봉이라는 102봉이 최고봉으로 겨우 세자리 수를 채웠다.
이렇다 보니 지맥 마루금 상에는 50~60m 되는 봉우리가 혹은 이름이 있기도 하고(영진지도는 비교적 자세히 기재) 없기도 하고, 배추밭 아니면 길이라고는 흔적도 없는 잡목 덤불구덩이다. 찻길이라도 없는 외진 곳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국도변을 이리 지났다가 다시 되돌아 건너오고를 반복하므로 차편 유혹을 더 받게 된다.
마루금은 박성태님이나 선답자들이 그어놓은걸 다운 받았는데, 사실 진행을 하면서도 이게 마루금이 맞긴 맞는가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들판이다. 옥매산에서 내려다 봤을 때, 옥매산을 올랐다가 ㄷ자를 그리며 내려오는데 과연 그 가운데 부분 이목마을과 신흥마을의 물가름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로 확인이 되었는지, 옆에서 보고도 장담을 못하겠다.
목포구등대까지 반도는 이어진다. 즉 화원면이 섬이 아닌 바에야 어디로든 마루금은 이어지게 되어 있다. 옥매산에서 내려와 북쪽에 ‘원문’마을이 있는데 조선지형도(1917)를 보면 이 원문마을 아래 위로 바다가 인접해 육지의 폭이 불과 300m 정도 되는걸 볼 수 있다. 지금은 매립이 되어 전부 논이지만 전에는 바다였던 것이다.
‘원문’은 통영지맥에도 그 명칭이 있다. 고성군과 통영시 경계인 원문은 옛지도에도 ‘轅門’이다. 여기도 육지의 폭이 700m 정도인데 여기를 끊으면 통영섬이 되어 버리는 형국이다. 또 무안에서 해제면으로 들어가는 도로 양쪽도 바다가 지척이다.
원호마을에서 황산면까지 걷고, 차를 타고 옥매산 아래 옥동리까지 갔다가 옥매산 다녀오고, 차로 방죽재까지 이동한 다음 화봉재까지 걸었다. 전체 37km를 21.5km는 걸어가고 15.5km는 타고 갔다. 이런 산행도 아무렇게나 나오는게 아니다. 치밀한 소프트웨어와 빵빵한 하드웨어가 결합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두발로)
원호~황산면 8.8km
옥매산 왕복 2.4km
방죽재에서 화봉재 10.3km..........21.5km
(네발로)
황산면~옥동리 6.8km
옥동리~방죽재 8.7km.........15.5km (계 37km)
07:15 드릿재(원호리)
07:43 △100.2 (화원24)
08:08 명당봉
08:54 송호리 18번국도
10:02 우항리 18번국도
10:29 황산면사무소
10:55 이목마을
11:22 옥매산
11:46 초원식당 점심
12:38 방죽재
13:22 일성산
14:05 ×292
14:46 ×154
15:00 77번국도
16:00 ×178
16:47 △270.5
17:27 화봉재
원호마을 드릿재
드릿재 (20m)
해남군 황산면 송호리. 왼쪽으로 저만치 원호마을이고, 주변 일대가 전부 논밭인 고개 같지도 않은 고개다. 지명유래를 찾아보니, '18번국도 일신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드릿재라 한다'인데, 새도로가 아닌 옛길로 치면 일신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여기뿐이지 싶다.
드릿-재(삼티)【고개】원호에서 사거리로 넘어가는 고개.
길가 공터를 찾아 차를 대놓고 배추밭을 가로질러 산을 향해 간다. 배추는 수확을 다 한건지 포기한건지 포기가 언채로 마른채로 그대로 남아있다. 7시 반이나 되었는데도 카메라 후레쉬가 터진다.
국사봉 위로 일출.
화원24
100.2m (△화원24)
밭 끝까지 가로질러 산자락에 붙었으나 들어간 흔적도 구멍도 보이지 않는다. 만만한데를 골라 헤집고 올라가다가 원호마을쪽에서 올라온 묵은 길자국을 만났다. 볼품없는 정상이나 삼각점은 2등급이다. 동쪽 국사봉 너머로 붉은 해가 떠오르는데 능선 위로 솟는게 아니라 구름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따라 왜 이리 날이 늦게 밝는가 했더니 잔뜩 흐린 날씨다.
진행방향은 서쪽이나, 능선은 북쪽으로 잠깐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바꾼다. 길 흔적이 뚜렷한 명당치를 지나 다시 오르면 명당봉이다. 지리원 고시지명은 아니고 영진지도에 표기되어 있다. 일대 주변의 낮은 다른 산에도 영진지도는 여러지명들을 표기했는데 현지에서 불리는 지명이 맞는지 모르겠다.
×102m (명당봉)
바위덩어리 하나 있는 정상부에 준희님의 [명당봉102m] 푯말이 걸려있다. 明堂이라하면 좋은 터라는 얘긴데 흔한 묘 하나 없고 바로 옆봉에 송전철탑이 있다. [산불조심] 빨간리본이 걸려있고 철탑 전후로 길이 뚜렷하다.
76봉(송전탑)
북쪽 음지에는 눈길이다. 비틀거리며 내려오면 뚜렷한 고갯길이고 올라가면 ×71봉이나 생략하고 왼쪽조은길따라 마을로 내려간다. 고갯길에는 성황당 흔적인지 낙엽에 덮힌 돌무더기가 있다.
성황당
18번국도
남양홍공묘 옆길로 내려가고 수렛길따라 우측으로 꺾어 ×71봉 자락을 따라 돌면 마루금을 만나고 왼쪽으로 내려가면 민가 한 채 있는데 아무도 살지 않는거 같다. 냄새나는 거름무더기가 산처럼 쌓여있는데 이거도 말캉 돈이다 생각하니 냄새가 구수해진다.
견공들이 요란한 축사를 지나 큰길로 나가니 좌우로 넓은 잔디밭이다. 호화묘지를 만드나 싶었는데 [송호잔디] 간판이 걸려있다. 잔디공장이네.
송호리 18번국도
1시간40분 걸려 명당봉 올랐다가 다시 국도로 떨어졌다. 동네는 여전히 송호리다. 원호마을에서 18번 국도 북쪽으로 한 바퀴 돌았고, 이제 18번국도 남쪽으로 한 바퀴 돌 차례다. 국도를 가운데 두고 S코스로 도는 그림이라.
신설 18번국도 송호육교. - 왼쪽으로 돌아 저 끝에서 다시 건너간다
들머리 안내해 주는 송호마을 원주민
[송호마을] 표석 앞으로 들어가면 신설 18번국도가 지나가는 송호육교를 건너간다. 4차선의 일직선 아스팔트 서쪽 멀리 보이는 고개로 다시 이 국도를 건너가야 된다. 왼쪽 송호마을에서 내려 오는 마루금을 염탐하는데 전기모터로 움직이는 4발 전동차를 탄 아저씨가 내려오더니 뭐 찾냐 물으신다.
×58봉 올라가는 길이 있냐 여쭈었더니 따라오라며 전동차를 몰고 앞장선다. 쪼맨한 바퀴를 우습게 봤더니 오프로드 흉내를 내며 논길을 잘도 달린다 싶더니, 약간의 경사에 힘이 부치는지 빌빌대네. 별수 있나 뒤에서 밀어주며 도강김씨 숭조원까지 안내를 받았다. 납골묘 뒤로 올라가니 ×58봉에 조금 못 미친 지점이다.
58m도 봉우리다
×58봉은 잔솔 무성한 평평한 봉우리다. 남쪽으로 나가 솔밭지대를 지나고 빽빽한 덤불을 빠져나가니 배추밭이고, 아래 세멘길이 있다. 영진지도에 ‘민산’이라는 앞봉 오름길이 지저분해 길 따라 가려고 북쪽으로 내려가니 왼쪽으로 묘터 오르는 길이 있어 올라갔다. 원주이공인데 이 동네 묘터는 한결같이 받듯하게 잘 관리되고 있다. 조상님 잘 모시는 후손들이다.
송호육교에서 보이던 고개
국도 절개지
오른쪽 비탈에 치마바위라는 거대한 바위지대를 지나 끝까지 나가면 정면은 18번국도. 아찔한 절개지라 건너편 ×68봉으로 건널 수가 없다. 왼쪽으로 내려가니 국도 아래를 지나는 굴다리가 있고, 길을 따라 황산중앙교회를 지나 관두마을로 나갔다.
관두리
황산면사무소
황산면사무소
관두마을에서 국도변을 따라 걷고 황산면 사무소 앞에 세워둔 고문님 차로, 원호마을에 대놓은 내 차를 회수해서 옥매산으로 직행한다. 원호마을에서 면사무소까지 8.8km에 3시간14분. 1차 산행을 마무리하고 황산면에서 옥매산 아래 옥동리까지 6.8km를 차로 이동한다.
18번국도 북쪽 연당리로 돌아가는 마루금을 따라 옥동리까지 가면 10km 가량 되는데, 길이 있을거 같지도 않고, 제대로 한다면 아마도 옥동마을 들어가면 오늘 해 떨어지지 않을까 싶다. 해발고도 5~60m 정도의 산이랄수도 없는 밭이나 둔덕이고 주위에 저수지가 수없이 널려있다. 두 발 대신 두 눈으로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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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목마을 (10m)
황산면사무소에서 옥매산 아래 옥동초등학교까지 자동차로 순간 이동했다. 황산면 옥동리 옥동초등학교앞 이목마을. 우리말로 배나무 마을이다.
이목마을 배나뭇-골〔이목리〕【마을】신흥 남쪽에 있는 마을. 배나무가 많았다.
옥매교회로 들어가다가 동네 아줌니에게 옥매산 등산로를 물어봤다. 알고보니 이목마을 이장 사모님이시라, 가리켜주는게 아니라 아예 따라오란다. 골목길을 안내 해주고, 신호회관 밥맛이 좋다며 자기이름을 대면 잘 해줄거라나.
국도변 [이목마을] 표석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 마을 뒤 밭에서 시멘길은 끝나고 등산로는 계속 이어진다. 모르면 물어야 하느니라. 이리 조은길 놔두고 가시덤불 헤치고 다니면 이장 사모님이 이해를 할까.
옥매산 (하나로 보이지만 두개로 나눠졌다)
국도에서 17분 오르니 아주 매끈한 돌탑이 나오고 돌탑 뒤쪽에는 동쪽 옥동마을에서 올라온 듯한 등산로와 만난다. 더 올라가면 왼쪽 아래로 깊은 골이 파져있고 옥매산 봉우리가 둘로 나누어진걸 알 수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원래지형도 연봉으로 이어지는 두 개 봉우리인데 봉우리 사이의 안부를 깊게 파내고 玉을 채굴했는지 현재는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다.
옥매산정의 광산터 (정상부가 둘로 나누어졌다)
옥매산(×168)
지형도에는 이쪽(동) 봉우리는 ‘×168’이고 서쪽 봉우리에 ‘玉埋山 △174.4’ 표기가 되어 있다. 168봉에도 묵은 삼각점이 하나 있긴 하다. 건너편 정상으로 가려면 정면(서쪽)으로 꺼졌다가 다시 올라야 되고 서쪽 신흥마을로 떨어져야 하는데 신흥마을쪽은 급비탈 너덜이다.
건너편 봉우리가 정상
이목마을을 통해 올라온 길 (왼쪽)
여기서 옥동마을 넓게 내려다보고 발길을 돌려 내려간다. 예전에는 옥을 많이 캐냈으나 현재는 채굴작업은 하지 않는다는데 아직도 옥동리에 玉제품 판매점이 여러곳 보이고 가공공장도 있다.
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玉梅로 표기되었고, 조선지형도에는 매화 매(梅)가 묻을 매(埋)로 바뀌었다.
전체가 암산이고 지명유래에도 칼바위 공알바우 송곳바우 등 여러바위가 나온다.
옥매-산 (玉埋山)산】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77m. 옥석광산이 있다.
맛도 없는기 값만 비싸더라...
초원식당
이목마을로 내려와 국도변에 있는 초원식당에 들어갔다. 그나마 이런 시골에 장사하는 식당이 있는게 다행이다. 4명이서 된장찌개2, 김치찌개2을 시켰다. 돈은 7천원을 받으면서 맛은 3천원짜리다. (~12:22)
점심을 먹고 다시 차로 이동하는데, 원문을 지나 문내동초등학교까지는 도로와 마루금이 일치하고, 석교리에서 방죽재까지 7km 가량은 또 비산비야라 이 역시 생략하고 방죽제로 바로 간다. 옥매산을 지나면서 황산면에서 문내면이 된다.
‘원문’은 지금은 넓게 매립이 되었지만 옛지도를 보면 좌우가 바다와 인접한 그 폭이 불과 300m 정도의 아주 좁은 목이다. 조선시대에는 전남 우수영으로 가던 길목으로 여기에서 막히면 우수영이나 진도로 가는 육로는 단절이 되는 셈이라.
원문-터(轅門)【터】원문복판길목, 곧 용암리64 번지에 있는 우수영 영문의 터.
조선지형도 (1917) : 원문은 우수영의 길목. 폭이 300m정도로 화원반도가 이어진다
현재는 남쪽 점선까지 매립이 된 상태
문내동초등학교 동쪽에 있는 독서산(×55)과 연자재 등에 대한 유래를 모아봤다.
독서-산〔독수산〕【산】삼덕 서남쪽에 있는 산.
왼장-재〔연정재, 연정치, 연장재〕【고개】원동 서북쪽, 석교리 경계에 있는 고개.
석교리 호암산(△131.8)은 범바우, 충평리의 ×89봉 동쪽 고개는 목장재다.
호-암(虎岩)【바위】→ 범바우
쑥-고개〔숙고갯재, 쑥구갯재, 수구고개〕【고개】석교리와 충평리 경계에 있는고개.
목장-재【고개】가루개 서북쪽에서 화원면 장춘리로 넘어가는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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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잣재 (36m)
문내면 고당리(古棠里). 팥배나무 당(棠)을 쓴다. 작은 저수지 방죽제 바로 옆이라 ‘방죽재’라 하는모양으로 준희님표 하얀팻말 [여기가 방죽재입니다] 나무에 걸려있다. 이 도로따라 문내면과 화원면계가 갈라지므로, 이제 일성산으로 오르면 화원반도의 끝면인 화원면으로 들어간다.
문내면 고당리 지명유래에 ‘가잣재’로 나오는걸 보면 방죽재가 아니라 가잣재라해야 되겠다.
가자짓-재〔가잣재〕【고개】고전 서북쪽, 화원면 장춘리로 넘어가는 고개.
정면 일성산을 향해 갈라..하다가,
방죽제(저수지) 옆에 차를 두 대 대놓고 올라가다가 밭에 아저씨한테 또 물었다. 일성산 올라가는 길이 있냐고... 동쪽을 가리키며 저쭈 저리 올라가면 아주 조은길이 있다는데 마다할 우리가 아니지.
동쪽 800m 지점 고당리 고당교회 옆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일성산 335m] 큰 표석이 있다. 기왕 차를 탄 김에 계속 올라가 일성제 옆에 차를 대놓고 널찍한 수렛길 따라 올라간다.
일성산 등산로를 찾았다
고당리와 호암산
수렛길은 왼편으로 넘어가고, 곧장 올라가는 길도 뚜렷하다.
바위손이 더덕더덕 붙은 조망바위에 오르면 금호호에 담긴 바닷물이 보이고, 고당리 고평리 호암산도 보이는데 날씨가 흐려 뿌옇다. 일성산을 쳐다보니 정상에 철탑이 있다.
좌-지맥, 우-일성산 정상
지맥 갈림길
길 따라 도열한 편백나무 숲을 지나 10분 더 오르면 돌담이 나오고, 돌담 위쪽이 갈림봉이다. 다른건 몰라도 일성산를 빼먹을쏘냐. 내려오는 사람이 있어 방죽제에서 올라오는 길을 물었더니 잘 모르는거 같다.
일성산
아랫쪽에 쳐박힌 삼각점
일성산 (日星山 335.1m △화원308 2002재설)
봉수대 흔적인 축대위로 올라서면 감시카메라가 걸린 철탑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다. 기반번호도 없는 오래된 삼각점은 반듯하게 살아있고, 제대로 된 새삼각점은 아래쪽에 내동댕이 쳐진채 처박혀있다. 어느 무식한 인사가 공사를 하면서 뽑아버린 듯하다. 기반 위에 돌출부 대리석도 날아간 채다. 조망이 조은곳이나 오늘은 뿌옇게 잘 안보인다. 북으로 화원면 소재지도 희미하게 보인다.
일성-산(日星山)【산】화원면 성산리와 장춘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320m. 일성산 봉수지가 있다.
갈림길로 내려와 서쪽으로 내려가는데 아주 급한 비탈에 가시잡목이 마구 긁어댄다. 잔설도 깔려있어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고도 150정도 낮췄다가 다시 오르면 아주 그럴듯한 바위가 있다. 고문님 딱 보시더니, 부부가 뽀뽀하는 모습이란다. ×292 직전봉이다
마주보고 입맞추는 부부상
×292
정상부는 억새밭이고 조금 더 나가면 암반이 있어 멋진 조망대가 된다. 엄청 큰 낭초저수지(朗草) 옆으로 77번 국도가 달린다. 국도따라 왼쪽 멀리로 우수영과 진도까지 보일 장면인데 시야는 허옇기만 하다. 아래쪽 암봉에서는 화원면이 더 가깝게 보인다. 정면은 절벽이라 우측으로 돌아 내려간다.
낭초저수지
임도 (108m)
잔자갈이 깔린 깨끗한 임도. 장춘리 개초마을에서 척북으로 넘어간다. 의자를 꺼내 앉아 제대로 휴식했다. 건너편에도 한전의 [산불감시] 리본이 안내하는 뚜렷한 길이다. 오늘 군데군데서 철탑 덕을 본다.
154봉 철탑
×154
5분 올라가면 문인석이 지키는 김해김공이고, 바로 위에 154봉 팻말이 걸려있다. 정점은 지저분하나 서쪽 송전철탑 아래는 잔디밭이다. 화원면이 바로 아래라 타잔처럼 송전탑에 걸린 전깃줄을 타고 내려가면 바로 화원면 한복판에 안착이 되겠다.
철탑을 내면서 돌 축대를 쌓았다. 우측으로 공사용 길이었던지 넓은 공간이 있어 그리로 내려간다. 공사용 길을 복원한다고 한 모양으로 흉내만 냈지 제대로 된 복원이 아니다. 듬성듬성 심어놓은 소나무가 어설프기 짝이 없다.
그렇거나 말거나 잡목 덤불보다야 낫다. 끝까지 내려가면 밭이 나오고 임도다. 왼편으로 내려가면 개사육장을 지나 77번국도다. 아래 청용주유소가 보인다.
전깃줄 타고 내려가면 화원면 직행
77번 국도 (해남~목포)
77국도 (32m)
해남에서 목포로 가는 77번국도. 4차선 아스팔트도로. 남쪽 아랫마을이 어둠골이고 북쪽 아래는 화원면소재지다.
횡단보도나 굴다리 같은게 보이지 않아 높은 중앙분리대를 타 넘었다.
건너편 시멘트길로 올라가니 벌건 황토흙이 드러난 배추밭이고 언덕을 깎다가 만건지 좁은 방벽이 아슬하게 남아있다. 절개지 끝에서 숲으로 들어가는데 길이라고는 없다. 마구잡이로 뚫고 용감무쌍하게 들이밀어 5분간 허우적거리고는 묵은 임도에 떨어진다. 왼쪽 끝까지 나가니 아래는 멧돼지 사육장이다. 코끼리만한 멧돼지들이 뛰어 다닌다
다행히 산으로 오르는 넓은 길이 있어 올라가니 왼편에 오래된 묘비석은 절충장군이다. 조선시대 절충장군은 정3품으로 요즘도 만만한 높이가 아니다. 110쯤 되는 봉우리에서 좌틀해 내려가면 이목재에서 신덕저수지로 넘어가는 짤록 안부 고갯길인데 산돼지도 못 다니겠다.
×178봉을 오르다 너무 힘들어 앉아 쉰다. 밀감 까먹고 빵도 먹고, 여기서는 몰랐는데 나중에 고문님 카메라가 없어진걸 알았는데 아마 여기 전후 어디서 흘리신 모양이다.
×178
쉬었다가 올라서면 178봉이고 이후 30여분 거의 평탄한 능선길로 ×213봉까지 널널하게 휫파람 불며 간다.
능선길이다
×213봉을 지나 내려서는데 앞쪽에 솟은 봉우리가 엄청 높아만 보인다. 지도를 보니 △270.5봉이라, ‘아이구 죽었구나~’ 소리를 냈더니 고문님, 산행 첨하냐 하신다.
안부에 떨어지고 한동안 이어지는데 주변에 오래된 나무들 전부가 넝쿨식물에 감싸였다. 한겨울에도 이파리가 파란 넝쿨이 나무를 휘감으며 꼭대기까지 올라가 덮었다. 완전히 뒤덮힌 나무는 고사해 쓰러졌고 지금도 칭칭 감으며 올라간다. 보기에 너무 얄미워 전지가위로 잘라주지만 한계가 있다. 넝쿨 줄기 아랫도리에는 털이 북실하게 나 징그럽기도 하다.
왔던길 복습차 돌아가는 조진고문님
△270.5 (누에머리산)
넝쿨줄기 잘라대며 낑낑거리며 올랐다. 지형도에 삼각점 표기가 있는데 아무리 뒤져도 삼각점은 보이지 않고, 나무에 걸린 준희님표 팻말을 찍고 있는데 고문님 비로소 카메라가 없어진걸 알았다.
뉘-머리〔뉘에머리〕【산】산수 북서쪽에 있는 산. 지형이 누에머리처럼 생겼다.
잠시 논의하다가 돌아가 찾아보기로 했다. 화봉재는 거의 다 왔고 쉽게 포기하기에는 아까운지라 가는데까지 가보겠노라 하시니 사모님도 함께 가신단다. 우리집 거시기 같으면 “니는 가등가 말등가~” 할 장면이다만...
화봉재가 보인다
270.5봉에서 화봉재쪽 능선은 남쪽이 높은 벼랑을 이루고 있어 조망이 훤히 열린다. 일정 간격으로 노송이 한그루씩 서 있어 더 운치가 있다.
능선끝까지 나가면 화봉재 고개가 보이고 내려오면 수렛길을 만나고 이어 석호마을에서 올라 온 임도를 만난다. 앞에 쳐다보이는 170쯤 되는 봉우리는 올랐다가 바로 우측 화봉재로 떨어지는 마루금이고, 발 아래 임도는 화봉재로 직행이다. 누가 말리랴.
화봉재로 직행하는 임도 (앞 봉우리 빼묵고...)
임도타고 화봉재로 간다.
비포장이지만 양호한 임도는 자동차도 넘겠다. 납골묘를 지나 점잖게 화봉재에 안착하니 무심한 차가 기다리고 있다.
화봉재
화봉재 (83m)
멀리서 보기에는 꽤 높아 보였는데 해발은 100도 안된다. 왼쪽은 화봉리로 내려가고, 우측은 해남화원관광단지와 파인비치골프장을 표시했다. 건너편 방벽 오를만한데가 어딘가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77번 국도로 넘어가 고문님을 회수했다. 카메라는 회수하지 못하셨단다. 방죽재에 있는 차를 회수하고 내일의 날머리인 목포구등대로 넘어간다.
10시간에 53키로... 거의 철인수준이다.
목포구등대
조진표 움막
움막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