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버스의 맛있는 이야기, 추억의 자장면(편)
대한민국 남녀노소라면 누구나 즐긴다는 자장면이 하루 평균 720만 그릇 정도가 팔린다고 하니 이보다 더 한국인의 입맛을 강하게 사로잡은 음식은 없는 것 같다.
아귀찜의 역사가 40년 정도이고, 부대찌개(존슨 탕 : 부대찌개를 개발한 미군 부대 출신, 존슨에서 유래)가 50여년에 비해 최초의 자장면을 팔기 시작한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이 1905년에 문을 열었으니 100살도 넘은 셈이다. 속모를 사정으로 문을 닫았지만, 부앤부, 신승반점, 주경루, 복래춘, 자금성, 북경루 등 십 여 개의 결코 작지 않은 중국집들이 그 명성을 잇고 있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중국집은 1945년에 문을 연 을지로 4가에 위치한 안동장이다. 원래 자장면은 볶은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는 음식으로 중국의 하류층들이 즐기던 것이었다. 1883년 인천항을 개항하자 산둥반도 지방의 만 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인천항으로 모여 들기 시작하여 인천시 중구 북성동과 선린동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을 형성한다. 그 때 모여든 노동자들이 야식으로 즐기던 볶은 춘장 면에 고기와 야채를 고루 집어넣게 되면서 지금의, 최초의 자장면이 비로소 탄생한다. 바야흐로 중국 서민의 음식이 한국으로 귀화하여 대변신의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사건이 된 것이다.
어렸을 적 중국집에 가면 모든 중국집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것들이 있었다. 가령 테이블위에 어김없이 이쑤시개(그 시절의 그것은 요지라는 고상한 말보다는 이쑤시개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가 쓰고 남은 야쿠르트 통의 반을 자른 것에 꽂혀 있다든가, 삼각형의 뚜껑을 가진 간장병, 팔각형의 성냥통, 손님들에게는 멀쩡히 한국말로 음식을 주문받고, 주방에다가는 알 수 없는 중국말로 쏼라쏼라 떠들어 댄다.
전화로 자장면을 시킬 때면 으레 “다꽝(?) 많이 보내 주세요.”라고 말하지만 두, 세 조각 이상은 더 보내지 않아 귀가 많이 간지러웠을 주인장. 지금 겨우 면을 뽑으면서 재촉의 전화가 오면 “지금 막 갔는데요.”라고 뻔한 거짓말을 늘어 놓는 주인아저씨. 이 거짓말은 중국집 영업 연수가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강력해져 “아니 간 지 한참 됐는데 아직도 도착 안 했다구요? 이 녀석 무슨 사고라도 났나?”라고 하면 오히려 전화한 쪽이 미안해지고 무안해져 혹시 우리 집 배달 오다 사고 났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마져 들어 “네. 설마 사고야 났겠어요. 기다려 보지요.” 하며 위로의 작은 목소리로 수화기를 내린다.
자장면은 3분의 예술이라고 한단다. 삼 분 안에 자장면을 만들고 삼 분 안에 자장면을 먹어야 제대로의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어느 중국 요리사의 강연을 통한 지론을 들은 적이 있었다.
구수하게 볶아낸 자장을 면에 비빌 때면 어김없이 입안에 침이 고인다. 비비는 것도 나무젓가락을 이용해 양 손으로 비벼야지 한 손으로 깨작깨작하며 비빈다거나 스뎅(스테인리스) 젓가락을 사용한다는 것은 자장면에 대한 결례이다. 가끔가다 씹히는 돼지고기 조각도 얼마나 맛있는지 모른다. 유미 자장처럼 가끔 갈은 고기를 사용하는 중국집도 있는데 필자는 사각형으로 썬, 약간은 좀 단단한 식감을 느끼게 해주는 조각 고기를 더 선호한다. 자장면에 올려 주는 고명도 시대를 따라 많이 변했다.
짬뽕이나 우동 위에 길게 썬 돼지고기를 얹어 주던 시절의 자장면 위에는 냉면의 고명처럼 삶은 달걀 반개가 있었고 그 후로는 메추리알과 오이채가 있었다. 세월이 흐르자 삶은 완두콩 몇 알을 올려 주더니 요즘은 아예 행방을 감췄다. 고명은 첫 날 밤을 맞이하는 새색시의 족두리 같은 것이다. 돌아 온 탕자처럼 그 옛날의 고명들이 다시 찾아와 자장면을 즐기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를 바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어느 고아원에서 여름 성경 학교 선생을 하고 있을 때였다. 반 아이들을 데리고 다른 반 몰래 중국집을 찾았다. 주머니 사정이 결코 좋을 리 없는 학생 신분이었지만 큰맘을 먹고 아이들에게 자장면을 사주고 싶었다. 데리고 간 아이들 중 유난히 한 아이가 음식을 아주 늦게 먹는 아이가 있었다. 그 이유로 원내 선배들에게 꾸지람도 많이 받건만 좀 체 고치질 못하는 아이였다. 그런 까닭에 공동의 몫으로 준비된 음식은 몇 젓가락 집어 보지도 못하고 접시 바닥이 드러나는 경우가 일상 다반사였다. 그 친구를 고려해서 인지 아니면 넉넉지 못한 주머니 사정을 그런 식의 명분을 만들어 탕수육을 시키지 않았는지 지금으로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자장면만을 주문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도 “다꽝”이 공동으로 나눠 먹어야 할 반찬이었다.
철가방까지 주는 눈치를 감수하며 추가의 또 추가의 단무지를 얼마나 많이 시켰는지 모른다. 다른 아이들이 모두 젓가락을 놓는 순간까지 그 아이의 자장면은 아직 반도 못 먹은 상황이었다. 물론 단무지는 떨어 졌고, 알량하게 자장면만 시키고 이미 몇 번의 단무지에 대한 추가 주문에 궁색해져 더 시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쯤 되면 주인아저씨의 동정심에 호소할 수밖에. 주인아저씨 들으라고 좀 큰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아직 자장면 반도 못 먹었는데 단무지는 다 떨어져서 어떡하니? 좀 빨리 먹지. 단무지 없이 먹다간 잘못하면 체할 수도 있어.” 좀 위협도 가하며... 이럴 경우엔 아주 안타깝고 애절한 저음의 목소리가 키포인트다.
그러자 이 녀석 “선생님 괜찮아요. 충분해요.” 하며 테이블 밑으로 내리고 있던 왼 손을 꺼내 보인다. 왼 손 안에는 다섯 개도 넘는 단무지가 쥐어져 있었다. 약간의 식초를 뚝뚝 흘리며. 누구나 살 궁리는 다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 자장면을 한 번 만들어 볼까? 먼저 깊은 팬에 올리브유(올리브유도 등급이 있는데 Pure olive oil 이 적당)를 충분히 두르고 마늘과 생강을 넣어 볶아 주면서 향을 우려낸다. 다음, 생강과 마늘을 건져내고 그 기름에 춘장을 넣어 볶아준다. 많이 볶을수록 구수해지는데 잘못하면 타버리니 적정한 시간을 고려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탕을 넣는데, 흰 설탕보다는 흑설탕 혹은 꿀을 넣는 것이 좋다. 돼지고기는 후추와 참기름으로 밑간을 해두고, 두툼하게 썰어 놓은 감자(감자의 크기가 클수록 옛날 자장에 가까이 간다.)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전분을 빼준다. 볶은 춘장에 크게 썬 양파와 밑간해둔 돼지고기와 감자를 물과 함께 달달하게 볶다가 썬 양배추와 애호박을 넣어 함께 볶는다. 양파가 숨이 좀 죽는다 싶으면 물 녹말을 풀어 걸쭉하게 될 때까지 끓여 주면 자장 완성. 간 자장 맛을 즐기려면 양파를 좀 덜 익히면 되고, 삼선 자장을 원하면 해물(갑오징어나 새우 등)을 함께 넣어 볶아 주면 된다. 가정집에서 면을 직접 뽑기는 힘드니 시중의 칼국수 면을 사용하는데, 생면도 좋고 건면도 괜찮다.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을 뿐. 생면이나 건면 모두 끓여낸 후 얼른 찬 물에 씻어 주어 면이 부는 것을 방지. 얇고 길게 썬 오이와 메추리알을 고명으로 올려 보자.
예전에 연인들이 중국집에 가면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쪼개며 이런 놀이도 많이 했다. 오른 쪽, 왼 쪽에 자신과 상대를 정해 놓고 쪼갰을 때 어느 쪽에 살이 더 많이 붙어 나갔나에 따라 애정의 정도를 더 두었다.
“뭐야. 내가 훨씬 더 많이 사랑하고 있는 거네.” 하며 토라지기 까지 하는 닭살 커플들을 보면 목으로 역류하려는 면을 단무지로 달래 다시 밑으로 내려 보내기도 했다.
노란 색을 띈 양조 식초가 등장하기 까지 하얀 색의 빙초산으로 우리의 위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좀 짠 맛에 익숙한 사람들을 위해 생 춘장도 서빙 되었고 그 춘장에 찍어 먹는 생양파로 인해 타인과의 대화 시 불쾌한 냄새를 풍기기도 했다. 이 자장면에 정말 특이한 토핑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누가 뭐래도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이들이다. 어느 영화에서 엽기적인 장치를 구성하는 데에 있어서도 자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장면이 한 몫을 한다. 그런데 이 고추 가루를 뿌려 먹는 것은 사실 미식가적인 행동일 수도 있다. 그 시절 몸에도 안 좋은 쇼트닝 기름에 춘장을 볶아댔으니 고춧가루가 느끼한 맛을 제거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자장면을 먹을 때는 누구나 평등해 지는 것 같다. 기업의 회장이 먹는 자장면이나 노숙자가 먹는 자장면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맛과 가격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재료를 구성하는 것은 거의 비슷하다. 중국의 하류층 노동자들이 먹었다던 자장면을 먹으며 당신이 오늘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그 옛날 초심으로 돌아가 순수했던 당신을 만나 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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