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일류 문명국들(4)
(8)융프라우
10월 9일(목)
날씨가 좋지 않다. 여행시작 전부터 오늘 하루만은 맑은 날이 되기를 기도하고 어제 오후의 상황으로 보아 그다지 나쁘지는 않겠다고 예측하였는데 빗나갔다.
어제와 오늘이 바뀌었으면 좋았을 걸...융프라우 등정이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이기 때문이다.
스위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알프스 등정인데, 케블카 또는 등산열차를 이용한 관광 코스가 수없이 많다. 융프라우는 등산열차를 이용하는 최고의 인기 코스이다.
융프라우(4,158m)는 베른알프스의 최고봉으로, 해발 570m에 있는 인터라켄市에서 융프라우요흐까지 표고약 2,900m를 등산열차로 올라간다. 최대경사 25도, 총 소요시간 2시간 30분.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하여 25분 후 라우트브루넨역 하차, 열차를 갈아 타고 50분후 산 중턱의 카이넨 샤이덱역(2,061m)에 하차, 다시 톱니바퀴기차(2량 연결)로 갈아 타고 9.3km를 50분간 바위 터널로 아이거봉과 묀히봉을 관통하여 융프라우요흐(3,453m)에 도착한다.
아이거봉과 묀히봉을 통과할 때에 각각 전망대(창)가 있는데 첫 번째 아이거 전망대창문으로는 아이거북면 그린델발트계곡을, 두 번째 묀히전망대 창문으로는 아이스메르(얼음바다)빙하를 각각 5분씩 구경하게 된다. 장관이다.
종점 융프라우요흐에는 멀리 독일의 검은 숲까지 볼수 있는 대 파노라마가 펼쳐진다고 하는데 오늘은 눈보라가 치는 흐린 날이라 아무것도 볼 수 없다. 바위속 기차역에서 통로를 따라 나가면 전망창문, 각종식당, 선물가게등 홀이 있고, 엘리베이트로 2층을 올라 가서 얼음궁전을 구경하고, 노천으로 나가서 정상쪽을 구경한다. 홀에서 반대쪽 방향에는 스핑크스전망대(3,571m)가 있는데 통로로 약간 걸어가서 다시 엘리베이트를 타고 100m올라 간다. 이곳이 제일 높은 실내전망대인데 사진 설명등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인터라켄市에서부터 여기까지 철도와 바위굴과 시설물을 어떻게 건설하였을까? 카이넨 샤이덱역까지는 기존 철도이고, 이 역에서 종점까지의 융프라우철도(9.3km)는 아돌프 구에르첼르라는 철도기술자의 설계로 1896년부터 16년간 공사끝에 1912년에 완공되었는데 당시 1,500만 스위스프랑(약 8,000억원)이 일본과 합작으로 투입되었다고 한다. 난공사로 17명의 인명피해를 보았다고도 한다.
이번 융프라우 관광은 자연경관을 구경하기 보다 인공의 등산철도를 보고 감상하는데 그쳤지만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흥분과 경탄의 연속이었다.
하산은 그린덴발트역을 경유하였는데 눈 녹은 물이 구정물같이 시커멓게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걸 보니 설악산의 옥류가 생각난다. 인터라켄 시내로 와서, 한국사람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을 먹고 잠시 쇼핑시간을 가진 후 이태리로 출발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궁금하고 관심을 끄는 것은 스위스의 경제생활이다. 국토가 좁고 산이 많으며, 농경지가 적고 이렇다 할 지하자원도 없는 인구 700만에 불과한 나라가 농업, 공업, 상업,금융,서비스업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니 무슨 이유일까? 유럽선진국들 중에서도 제일이다. 전국민이 각자 자기분야에서 세계적인 전문가가 아니고서는 안될 일이다.
높은 생산력은 근면한 국민성, 합리적인 생활방식, 높은 기술수준, 금융.무역에서 볼 수 있는 약소국의 생활지혜, 중립정책에 따른 인력낭비의 배제, 그리고 풍부한 관광자원이 그 원천이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라면 쳐다 보지도 않을 경사 30도이상 되는 산중턱 또는 좁다란 호수가에도 집을 짖고 산다. 스위스에 비하면 한국의 자연환경은 너무나 좋다. 한국의 심심산골이 스위스의 평지보다 낫다. 기후도 좋고, 물도 좋고 지하자원도 있다. 조금만 나가면 해양으로도 뻗어 나갈 수 있다.
1950년대 말까지 한국은 초가집에서 핫바지 입고 호미로 농사지으며 원시생활을 해 왔다. 오랜 역사는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다.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가운데 버스는 어제 묵었던 마을을 지나 남쪽으로 알프스 계곡을 파고 든다. 드디어 알프스에서 가장 길다는 17km의 고타아르(Gotthard base) 터널이다. 1994.5월에 개통되었다고 하며 통과하는데 꼭 14분이 걸렸다. 터널을 지나서는 알프스 남쪽 산악지역이 지루하게 계속되다가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다. 산악지역을 벗어 나면서 딴 세상이다. 알프스북쪽의 흐린 날씨와 눈보라는 어디로 갔는지 새파란 하늘과 넓은 평야가 나타나고 가슴이 탁 트인다. 기름진 롬바르디아평원, 나폴레옹이 “나의 사전에 불가능이라는 단어는 없다”고 하면서 병사들을 독려하여 험준한 알프스를 넘을 때 탐내던 곳, 동경의 땅이었다.
(9)밀라노(밀란)
롬바르디아 의 州都, 패션과 유행의 도시 밀라노에 도착한 것은 땅거미가 앉기 시작한 저녁무렵이었다.
밀라노는 로마의 콘스탄티누스대제가 막센티우스와의 전쟁에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고 승리한 후 AD313년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선포한 곳, 즉 박해 받던 기독교가 처음으로 공인된, 중요한 세계사의 현장이다.
인구 130만의 밀라노는 화학, 섬유,기계공업의 중심지이며, 나폴레옹에 의해 완성된 고딕 양식의 두오모 대성당,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벽화 <최후의 만찬>이 그려져 있는 성.마리아성당, 세계3대 오페라극장의 하나인 스칼라 극장, 그리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회랑 등이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면적 30만 평방km에 인구 5,800만명으로 좋은 자연환경을 가진 나라이지만 1인당 GNP는 20,170불(1999년)로서 비교적 낮은 편이다. 로마제국과 르네상스의 유적이 많고 기후 풍토가 좋아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이번 여행중 이탈리아에서 5박을 한다.
여행일정상 오늘은 밀라노에서 잠만 자고 여행 마지막 날에 다시 와서 시내 관광을 하기로 되어 있다.
중앙역에서 가까운 Cristallo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 후에 역을 구경하였다. 거대한 회랑과 높은 천장, 웅장한 대리석 역청사는 놀랍다. 열차표는 자동 판매기에서 사서 개찰 없이 바로 승차하도록 되어 있다.
이탈리아여행에서 특히 불편을 느끼는 것은 목욕시설과 화장실이다. 호텔시설은 독일과 같이 욕조가 없고 비좁은 샤워시설만 있어 불편하고, 화장실은 가는 곳마다 비좁고 0.5유로(약700원)의 비싼 요금을 치러야 한다. 음료수를 사서 마시는 것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여기서는 식당에서까지 별도로 요금을 내야 하니 물 인심이 아주 나쁘다. 이 세가지는 인간 생활의 기본인데 이런 점에서 보면 어디에서나 손쉽게 마음 껏 물 마시고 소변보고 몸을 씻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바로 천국이다.
거리의 자동차는 중형차를 찾아 볼 수 없고 전부 소형차인데 심지어 2인승차도 눈에 뜨인다. 덩치 큰 두사람이 우산 펴듯이 접었던 몸을 펴면서 내리는 걸 보면 두사람의 부피가 자동차보다 커 보이고, 둘이서 자동차를 들고 갈 것 같다.
(10)베네치아(베니스)
이탈리아의 지명.명소들이 우리에게는 영어로 알려진 것이 많아 혼란스럽다. 이탈리아-이태리, 밀라노-밀란. 베네치아-베니스, 피렌체-플로렌스, 제노바-제노아, 바티카노-바티칸, 피에트로성당-베드로성당, 콜로세오-콜로세움, 시칠리아섬-시실리 섬, 베스비오 화산-베스비우스 화산, 폼페이-봄베이등이다.
밀라노에서 동쪽으로 약 300km가면 아드리아해의 수상도시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일부 구간은 왕복 4차선 고속도로가 2개 나란히 달리고 있다.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는 어쩐지 친근감이 가는데 알고보니 가드레일의 모양, 도로변 풍경, 공법등이 한국 고속도로의 모델이라고 한다.
베네치아는 인구 27만의 수상도시이다. 베네치아灣 안쪽의 석호(潟湖:짠물이 괴어 있는 호수)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들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다. 시가지는 본래 석호의 砂洲였던 곳에 들어섰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침하중이고 석호의 오염도 심하다. AD567년 훈족에 쫒긴 롬바르디아인들이 해안기슭에 살다가 6세기말에 12개의 모래섬에 취락을 형성하였다. 개펄에 나무를 박고 바다 밑을 북돋아서 땅을 만들고 건물을 짓고 다리를 놓아 사상유례가 없는 수상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그 후 해상무역으로 번창하여 13세기에는 현재와 같은 도시구조가 완성되어 독립적 공화제 도시국가로 발전하였다.
시내에는 자동차가 있을 수 없고 배가 대신하며. 건물들은 낡고 물위에 지어져 있어 모든 것이 불편하겠지만, 관광객은 수없이 몰려 온다. 바다위에 5층의 육중한 건물들이 바로 세워져 있다. 조수 간만의 차이도 심해서 밀물때에는 마르코광장이 잠긴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베네치아는 <동방견문록>의 저자 마르코.폴로와 <4계>의 작곡가이면서 산.마르코성당의 바이올린연주자였던 비발디의 고향이다.
관광명물로는 산.마르코 성당과 광장, 두칼레궁전, 코레르 박물관, 시계탑, 종루, 탄식의 다리, 해양역사 박물관, 미술관, 어시장, 교회등이 있다.
육지에서 4km떨어진 섬의 서쪽 끝에 기차와 자동차 종점이 있고 시간절약상 여기서 배를 타고 大運河로 시내중심까지 갔다. 대운하는 역S자형으로 시내를 동남쪽으로 관통하면서 메인스트리트역할을 하는 바닷길인데, 길이 3.8km이고 폭이 한강의 2배이상 되어 보인다.
대운하 중간쯤의 선착장에 내리면 인산인해로 온갖 기념품과 먹거리를 팔고 있다.
중심부 산.마르코광장에 들어서면, 산.마르코대성당, 두칼레궁전, 박물관등이 둘러 싸고 있다.
베네치아의 상징인 산마르코대성당은 AD828년 베네치아의 성인 마르코(San Marco: 마가복음의 마가 St.Mark)의 유해를 모시기 위하여 창건되었는데 967년에 전소되었다가 1063년부터 10년의 공사를 하여 현재의 건물이 완성되었다.바깥둘레 330m, 내부황금제단과 제단의 십자가는 온갖 보석으로 장식되어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옆의 두칼레 궁전은 조형미가 빼어난 고딕양식의 건물로 총독궁 겸 사법부가 있었던 곳이다. 이 곳 법정에서 최종 판결을 받은 중죄인은 뒷 건물인 감옥으로 가는데, 두 건물을 잇는 다리를 “탄식의 다리”라고 하며 그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못 나온다고 한다.
중국식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이 곳의 명물인 유리공예장에 들려서 명품유리제품의 제작과정과 전시품을 관람한 후, 콘돌라 선착장으로 가서 약 10분간 콘돌라를 타고 시내 한 부럭을 돌았다. 다시 산.마르코광장으로 나와서 역코스를 밟아서 버스에 승차하는 것으로 베네치아 관광을 마쳤다.
오늘의 여행은 남쪽으로 다시 300km를 달려 아펜니이노 산맥을 넘어서 피렌체에서 여장을 푸는 것 까지로 되어 있다. 밤이 되어 경치를 볼 수 없고 피곤하니 잠을 자는 수 밖에...
밤 늦게 피렌체의 Granducato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