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동산에 제일 먼저 봄이 오는 소식을 알려주는 진달래꽃. 이 진달래꽃이 춘의동원미산 북쪽 능선(부천종합운동장 남쪽) 일대를 짙은 분홍색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면 부천 일대의 봄꽃 향연이 막이 오른다. 특히 언제나 따뜻한 봄옷을 입는다는 춘의동(春衣洞)의 꽃 향연은 관광객들에게는 이미 오래 전부터 입소문이 났다. 이처럼 요즘 사람들은 춘의동을 해마다 아름다운 꽃 축제를 여는 양지바른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마을 어른들의 기억에 자리 잡은 춘의동은 옛 행정구역 명칭인 ‘표절리’에 더 가깝다.
춘의동은 1973년 부천시가 승격할 때 원미구 춘의동에 속해 있다가 1977년 원미구 춘의동이 중앙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82년 중앙동에서 원미동과 춘의동으로 분동하였으며 1988년 잠시 중구에 편입되었다가 1993년 행정구역의 개편에 따라서 중구 춘의동에서 원미구 춘의동으로 변경되었다.
이렇듯 춘의동은 여러 행정구역의 변화를 보이면서 춘의산의 서남쪽 겉저리와 동남쪽 양지마을이 합쳐져 춘의동이라는 하나의 동네로 합쳐졌다. 현재 춘의동은 그 행정구역이 더 넓어져 춘의산 서남쪽 겉저리부터 동남쪽의 양지마을, 동쪽 끝의 서울의 경계 지역을 춘의동에 속한다고 본다.
본래 겉저리는 표절 1리만을 지칭하였다. 그리고 양지마을을 포함한 당아래마을이 표절 2리로 불리웠다. 즉, 양지마을과 겉저리를 포함하는 표절리가 춘의동인 것. 이 때 양지마을은 부천종합운동장의 사거리 서쪽 지역, 즉 춘의산의 남동쪽 일대를 일컫는다.
표절리는 ‘절(節)’자에 경의를 ‘표(表)’한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즉 예전에 춘의로 초입에 풍산홍씨가 받은 정려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정려문을 지날 때마다 마을사람들은 홍씨부인의 절개에 경의를 나타냈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표절리(表節里) 명명하였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겉저리의 어원이 가장자리를 뜻하는 ‘겉’과 ‘들’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펼치고 있다. 이 말대로 라면 중동 들판 끝자리에 있는 마을이란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를 반영하듯 조마루 뒷골에서 내려온 물이 마을 앞에서 합류를 해서 중동벌로 흘러내리고 있는데 특히 마을 앞 개울물은 너무 맑고 깨끗해서 한때 게나 가재가 무더기로 잡혔다고 한다.
하지만 겉저리의 뜻이 어떠하든 마을 사람들이 이해하는 춘의동은 춘의산 서남쪽 자락의 겉저리와 남동쪽 자락의 양지마을을 합친 동네로 춘의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으로 여기고 있다.
춘의산은 와우산이라고 일컫는데 산세가 마치 큰 소가 누워있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봄내음이 가득한 4월이 되면 이곳은 향기 가득한 ‘꽃의 궁전’으로 탈바꿈한다. 진달래꽃 축제와 도당산 벚꽃 축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튤립을 감상할 수 있는 전시회까지 꽃 나들이객을 유혹할 낭만적인 꽃 축제들이 릴레이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진달래꽃 축제를 맞이하는 춘의산은 춘의봉을 포함하여 아름다운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지고 있다. 춘의동 쪽에 있는 봉우리인 촌지봉과 도당동 쪽의 봉우리인 매봉[도당산]도 아름다운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봄꽃을 피우는 봉우리답게 춘지봉의 뜻은 ‘봄 터’를 의미한다. 춘지봉의 정상은 평평한 초원으로 되어 있어 해마다 꽃피는 봄이 되면 인근의 선비 유생들이 모여 시회를 열었다고 한다. 부평과 김포벌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면서 풍류를 즐겼을 선비들이 내심 부럽기만 하다. 또 당아래 아낙네들은 손수 음식까지 제공해 주었다니 가히 신선놀음이 따로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현재 춘의산 정상은 한국전쟁 당시 영국군이 주둔하면서 뾰족하던 정상을 평평하게 깎아 옛 모습을 찾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