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하늘로 오른 열정의 파랑새여
제3회 신일 스승상 수상자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교사 이상종
상을 받고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교사로서의 내 위치는 어디쯤일까. 주위의 격력에 자만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학생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을까. 내 안의 열정은 얼어붙지 않았을까. 내가 걸어온 발자취 속에 그 해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매 순간 제 자신을 뒤돌아보는 습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나름대로 동료 교사들에게 모범이 되고 후배 교사들을 잘 이끌어 주는 교사, 행복을 찾아 떠나는 기나긴 인생 여정에서 방황하는 학생에게 지혜의 샘물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교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실은 멋진 열매가 되어 있을는지요. 10회를 맞이한 신일 스승상의 역사에 제가 작으나마 흔적을 남겼기에 저의 작은 이야기보따리 하나를 풀어 여러분과 함께 나누어 보려 합니다. 새장 속에 갇혀 하늘을 잊어버린 파랑새도 저와 함께 동행 합니다. 이 글이 끝날 때쯤엔 저 드넓은 하늘로 꼭 날아올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입니다.
여러분은 왜 교사가 되셨습니까? 저는 왜 교사가 되었을까요. 까까머리 중학생. 부산에서도 말썽꾸러기가 많기로 소문난 부산진 중학교 1학년 교실. 다소 다부진 얼굴의 한 선생님께서 기초학습이 부족한 한 아이를 붙잡고 열심히 씨름하고 계십니다. 어둑어둑 땅거미가 깊어져가고 있는 밤이었지만 선생님 얼굴 어디에도 짜증이나 귀찮은 모습은 없습니다. 아이는 방금 가르쳐 준 것을 연신 틀려가면서도 그 부끄러운 미소는 잃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한 말씀. ‘모른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만 모르는 것을 놔둔 채 배우려 하지 않는 다면 그는 부끄러운 사람이다.’ 저의 은사님이신 천제인 선생님의 가르침을 옆에서 지켜본 후 저는 교사의 꿈을 꾸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선생님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학생에게 세상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파랑새는 어느 덧 제 가슴 속으로 들어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저에게도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에 따라 가세는 급격하게 기울어졌고, 학비를 못 내는 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장학금을 받으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부산전자공업고등학교로 진로를 정한 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과 다름 아니었습니다.
‘기술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라는 마크를 어깨에 달고서 자긍심과 뿌듯함으로 아침 보충 1시간과 방과 후 자격증 취득 보충수업 2시간을 할애하며 학업에 열을 올렸습니다. 2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던 박선국 선생님께서는 학비 면제 혜택뿐만 아니라 ‘기능 장학금’까지 받게 도와주시고 또 한편으로는 포항제철 장학생으로 선발되도록 도와주시면서 어려운 가운데서도 꿈을 잃지 않도록 많은 지원을 해 주셨습니다. 베풀어 주시는 사랑에 저는 보답이라도 하듯 우등상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또한 공부만이 아니라 다양한 특별활동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산을 좋아해 산악반 활동을 무척이나 왕성하게 하였고, 친구들과 조기 축구회를 만들어 아침마다 체력 단련도 빼놓지 않는 일과였습니다. 학교 응원단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일은 제 학창시절의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취업이냐 진학이냐를 놓고 고민하게 되는 고 3시절. 어려운 가정환경으로는 포항제철 장학생 취업을 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모릅니다. 안정된 대기업의 직장생활을 할 수 있고 집안에 경제적 보탬을 할 수 있다는 뿌리칠 수 없는 매력이 있긴 했지만 제 안의 파랑새를 잃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선생님들과 부모님을 설득하여 취업을 포기하고 ‘광운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을 결정하였습니다.
대학에 진학 후 꿈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도움을 주신 지도 교수님의 말씀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교직은 천직이다. 열정과 사랑으로 가르쳐야 한다. 학생이 다소 잘못된 일을 할지라도 바람직하게 이끌어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 한다.’ 허정섭, 조하희 교수님의 매섭지만 따뜻한 가르침을 받으며 교사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하나씩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서울에서 최초로 사립학교 중등교사 임용시험이 시행되었습니다. 공립 사범대생은 모두 교사로 임용되던 그 때 사립대학 교직 이수 출신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제1회 서울 사립학교 중등교사 임용시험에서 영광의 합격증을 받아 든 순간 제가 꾼 꿈이 드디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설익은 정책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단 한 번의 임용 면접도 보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서운하기도 하고 포기할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기술연구소에 들어가 직장 생활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 긴 세월 가져온 꿈을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울음을 그쳐버린 파랑새를 다독이며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중에 대학 선배이자 모교 교사이셨던 선배님 두 분의 추천으로 경남의 작은 학교에서 교사로서의 첫 출발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학교였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열과 성을 다하여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학창 시절 경험을 살려 산악반 지도교사로 활동하면서, 국가기술자격증 취득 지도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담임 반 학생들과 일심동체 되어 체육대회 종합우승과 응원상을 동시에 수상하게 되면서 학생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대학 선배님의 소개로 광운대학교 법인 산하의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전자교육의 요람인 광운전자공고는 전자공학과 출신인 저에게는 제 뜻을 펼칠 수 있는 넓은 바다와도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전환점이기도 합니다.
1990년 이곳에 부임하여 생활하던 중 우리 학교 축구부가 ‘전국 중․고교 축구대회’에 출전하게 되어 준결승전을 치르게 됩니다. 전교생이 모두 모여 응원하는 것을 보면서 과거 고교 시절 제가 응원단장으로 활동하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방과 후 활동으로 응원 동아리를 만들어서 좀 더 체계적이고 멋있는 응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2년 후반기에 2명의 학생과 함께 창단 준비하여 93년도 전자특성화 학교라는 이미지를 최대한 살려 ‘일렉응원단(electron-전자를 줄인 단어)’을 창단하였습니다.
96년도부터 조금씩 외부 활동을 하면서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98년도에는 청소년의 달 기념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유치 기원 등반대회’에서 응원단 복장으로 산을 타고 넘은 후 공연을 하는 모습이 특별하였는지 단체상을 수상하게 되었고, 그 인기가 널리 퍼지면서 다양한 공연 출연 요청이 쇄도하였습니다.
98년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와 함께 ‘내일을 여는 청소년 문화제’를 공동 주관, 서울특별시교육청의 서울학생동아리한마당에서 6년간 개․폐막식 공연 전문 동아리로서 교육감 표창 5회 수상 등 많은 기록들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2000년도부터는 인근 중학교 축제 및 체육대회 축하공연을 무료로 지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 청소년 응원문화를 보급․발전시키고자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영원한 이벤트 응원단 일렉트(ELECT)’를 창단하여 대한민국 최초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들에 의한, 청소년 응원페스티벌인 ‘응원사랑!’(2000~2005년)을 직접 재학생과 졸업생들을 주축으로 모든 것을 기획하고 준비하여 공연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은 또 한 번 응원단이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먼저 2월20일 한․일 월드컵 D-100일 기념행사인 KBS 특별 생방송에 일렉트+일렉 연합팀(졸업생, 재학생 포함 50여명)을 지도하여 출연하였으며, 5월1일 월드컵 경기장 앞에서 실시한 D-30일 행사인 KBS 특별생방송인 ‘함께 뛰는 월드컵 이제는 성공이다!’에 본교의 일렉 응원단이 단독으로 출연하여 약 5분간 전국에 생방송되었습니다. 5월 18일은 한강 청소년동아리문화축제에 참여하여 유명 연예인, 인기 가수들과 함께 m-net 방송에 참여하여 응원공연을 하였습니다.
2002년도 2월23일부터 10월26일까지는 2, 4주 토요일에 노원역과 이수역에서 ‘월드컵 성공기원 및 한국축구의 16강 진출기원’ 응원퍼레이드 공연을 봉사활동 차원에서 꾸준히 활동하였습니다. 2003년도부터는 노원역과 이수역에서 공연을 하였던 응원동아리 몇 개 팀을 주축으로 ‘서울공연문화예술단’을 만들어 노원역 무대에서 매월 1, 3, 5주 토요일 ‘도시철도 5678 공연문화마당’이라는 타이틀로 봉사공연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웃음을 찾아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항들이 서서히 알려져서 광운전자공업고등학교 일렉 응원단이 2003년 3월 10일 EBS의 ‘사제부 일체’라는 프로그램에 밀착 취재되어 교사와 학생이 함께 어우러지는 교육현장의 모범사례로 방송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동아리를 이끄는 13년 동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잦은 결석과 비행으로 힘들었던 응원반 학생을 곁에서 보듬어주며 돌봐주기도 여러 차례. 학교 업무로 지칠 때면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열심히 땀 흘리며 고생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저 또한 늦게까지 남아 그들의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려 노력하였습니다. 그 결실이었는지는 몰라도 학생들의 인성이 조금씩 발전하는 것을 느꼈고, 2001년도부터는 응원 동아리 활동만으로 학생들의 소질과 적성을 살린 대학진학에 성공할 수 있도록 입시 실기지도를 하며 이끌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서울특별시 교육청의 ‘특기․적성을 살린 진로지도 우수사례’로 교육청 홈페이지에 탑재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2004년 3월 말경 신일학원에서 수여하는 신일 스승상에 ‘당신 같이 학생과 함께 호흡하는 교사가 추천되어야 한다.’는 우리 학교 예윤수 교감 선생님의 추천으로 그 동안의 자료들을 정리하여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 내가 실천하려 애썼던 교육철학이 틀리지 않았다는 검증이기도 했습니다. 교직생활을 되돌아보고 정리를 해본다는 생각으로 응모서류를 작성하였고 신일 스승상 후보자로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수상을 바라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뜻밖에도 신일 스승상 최종 수상자로 확정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나니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통보를 받던 그 날도 광운학원 창립 70주년 기념 광운 예술제 준비로 바쁘게 보내고 있던 때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그 순간은 잊히지 않는 영광 그 자체였습니다. 수상한 것만으로도 교사로서 최고의 명예를 얻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자리를 빌어 상을 받게 도와주신 조인성 교장 선생님, 예윤수 교장 선생님 및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신 많은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부터 일렉 응원단을 꿋꿋하게 이끌어주었으며 지금도 만남을 잇고 있는 모든 일렉 응원단 학생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신일 스승상은 제가 아닌 저를 믿고 묵묵히 따라와 준 제 제자들의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0주년이라는 짧지 않은 생일을 맞은 신일 스승상은 어느 덧 명실상부 교사들의 큰 잔치로 자리매김하였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교사들에게 용기와 격려, 희망과 찬사를 주는 이 상이야말로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더욱 더 많은 교사들에게 현장에서 훌륭한 교육 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제 자신도 기꺼이 작은 힘이나마 함께 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그동안 신일 스승상을 수여하신 모든 교사들이 함께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보고자합니다. 수상자의 친목 도모뿐만 아니라 그간의 교육 경험과 활동자료 등을 집대성하여 후배 교사들의 멘토로서 이 나라의 교육 발전과 미래 교육 연구를 함께 해보고 싶습니다. 그것이 만약 어렵다면 가끔씩이라도 만나 교육 현안에 대한 토의․토론의 장(가칭 ‘교육광장’)을 열어보는 것은 어떨는지요.
해마다 5월이 되면 신일 스승상 수상식에 참석하면서 수상자 축하와 함께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짐하는 좋은 기회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직을 퇴직하는 순간까지 바람직하고 바른 성장을 위하여 학생들과 함께 호흡할 것임을 약속해 봅니다.
끝으로 어제보다는 나은 내일을 위하여 오늘도 현장에서 묵묵히 후학들을 가르치는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드넓은 하늘로 오른 열정의 파랑새에게도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칩니다.
2011년 3월 15일
일본 대지진 희생자에 애도를 표하며
광운전자고등학교 창조관에서
교사 이상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