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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남간> 寄谿谷机下/季秋晦 南磵 -계곡의 궤하에 부치다, 늦가을(9월) 그믐 남간
山河阻絶夢尋餘(산하조절몽심여)/산하는 막히고 끊겼는데 꿈속에서나마 그대 찾을 수 있을까 無期漫百書(일면무기만백서)/한번 만나는 것은 기약 없고 백통의 편지만 넘치는구나. 試向筒中還琢句(시향통중환탁구)/시험삼아 편지속의 시구를 다시 다듬으니 家人爭笑蚓投魚(가인쟁소인투어)/집사람들 지렁이를 낚시미끼로 물고기에게 던진다고 다투어 웃네.
3연은 이미 주고 받은 서찰의 시문을 다시 다듬는 것은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일인 줄 여겼는데 4연에서 집사람이 이를 보고 쓸모없는 미물로 대어를 낚는 미끼로 쓸 수 있다고, 즉 이미 주고받은 시구도 다시 다듬으면 이를 유용하게 쓸 수 있다는 충고를 以蚓投魚 사자성어를 인용하여 한 것이다.
夫唱婦隨의 모습을 본 듯하다.
4연의 蚓投魚는 以蚓投魚의 준말로 즉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다 쓸모가 있다는 뜻의 4자성어를 인용한 것임.
자강절구(茈薑絶句)/먹는 생강을 읊는 7언절구
- 남간이 계곡에게 생강을 보내면서 시문을 동봉한 것이다 -
贈辛非是贈甘意(증신비시증감의)/매움을 보냄이 단 것을 보낸 뜻과 다르지만 要在東家不撤中(요재동가불철중)/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은 오직 동가로 보냅니다. 可愛柔尖兒女指(가애유첨아녀지)/끝이 유연하여 아녀의 손가락 같아 사랑스럽습니다. 均粧猶帶淺深紅(균장유대천심홍)/고룬 화장 모습 그대로 얕고 짙은 분홍빛 같습니다
2연의 不撤은 《논어(論語)》 향당(鄕黨)에 “생강 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다.〔不撤薑食〕”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동가식 서가숙(東家食西家宿)이란 말이 있다. 동가에서는 먹고 서가에서는 잔다는 뜻으로 이 시의 동가는 아마 여기에서 차용한듯하다.
생강을 보낼 수 있었다면 계곡이 나주목사로 재임할 때라고 본다. 1629-1630년 사이의 일이라 여겨진다. 남간이 보내는 날이 9월인데, 차운한 답시는 10월10일 인 것이다.
<계곡>차운하여 나응서에게 수답하면서 생강을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다[次韻詶羅應瑞兼謝餉薑] 10월10일 -계곡집 제33권 / 칠언 절구(七言絶句)
才情衰歇頓無餘(재정쇠헐돈무여)/재주도 감정도 이제는 남김없이 쇠한 몸 抛却西窓滿架書(포각서창만가서)/서쪽 창가 가득 꽂힌 책들 내버려 두었소. 唯有故人能好事(유유고인능호사)/아직도 시 짓는 데 열심인 우리 벗님 每將佳什伴雙魚(매장가십반쌍어)/서신에다 멋진 시편 매번 부쳐 주는구려
新薑遠寄意重重(신강원기의중중)/멀리서 보낸 햇생강 어찌나 고마운지 知自溪莊露圃中(지자계장노포중)/시냇가 별장 채마밭에서 금방 캐낸 것 알고 있소. 忽憶錦江風味別(홀억금강풍미별)/홀연히 생각나는 영산강의 별난 풍미 金虀斫膾嫰芽紅(금제작회눈아홍)/불그스름 여린 싹들 금제작회의 맛이라니
8연의 금제작회(金虀斫膾)는 서리 내린 뒤 석 자 미만의 농어[鱸魚]를 잡아 회를 뜬 뒤 향기롭고 부드러운 화엽(花葉)을 잘게 썰어서 묻혀 먹는 것으로, 예로부터 가미(佳味)로 일컬어져 시 속에 많이 등장한다.
7연의 영산강에서 갓 잡아 올린 농어며 숭어회를 계곡은 먹어보았던 것이다. 이 회에는 반드시 생강의 양념이 들어가야 제 맛인데, 금제작회로 비유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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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남간>得谿谷書仍吟寄呈 1634년 9월
남간집에 의하면 1634년 9월의 得谿谷書仍吟寄呈은 시 3수를 보낸 것으로 나타난다. 제1수는 이미 필자가 소개해 드린 相公書札適然來의 시문이다. 본란에서 소개하는 시문 2수는 사실은 得谿谷書仍吟寄呈 시 3수중에 제2수, 제3수에 해당한다. 아마 시찰이 각각의 종이에 써졌기 때문에 훗날 계곡이 차운한 시문을 보낼 때에 이를 혼동하였던지, 각각의 시문에 대하여 차운할 수 있는 것부터 詩作을 하여 보낸 것으로 여겨진다.
千里山河日字難(천리산하일자난)/천리산하 먼 곳에 있어 날짜 세는 것 어렵고 春宵坐久燭仍殘(춘소좌구촉잉잔)/봄날 밤 오래앉아 있으려니 촛불이 가물거린다. 兒孫晝立煩何有(아손주입번하유)/낮에는 어린 자손들이 어찌나 번거롭게 하는지 明日晴窓盡意看(명일청창진의간)/밝은 날 개인 창가에서 뜻을 다하여 보련다.
杳杳秦關阻己知(묘묘진관조기지)/아득한 진관이 나를 알아주는 것 막고 있으니 郵筒那得遞新詩(우통나득체신시)/우편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를 부치리요. 近來余髮無由變(근래여발무유변)/근래에 나의 머리 변할 수가 없겠지만 願使白間生黑絲(원사백간생흑사)/하얀 실낱 속의 검은 실낱 생기기를 바라노라.
제2수 1연은 杳杳秦關阻知己로 남간집은 인쇄되어 있는데, 차운의 내용으로 보면 杳杳秦關阻己知로 되어야 맞다. 知己(자기의 속마음을 지극하고 참되게 알아 줌)로 해설하면 문맥이 맞지 않고 오히려 앞뒤 문맥으로 보아 己知(나를 알아주는 것)로 표현해야 타당해진다.
진관은 중국 함곡관(函谷關)을 말한다. 함곡관은 지세가 험하여 지키는 병사 2명이면 오는 군사 100 명을 당할 수 있다 하여 일컬은데, 그러한 험한 지세 같은 진관이 가로막고 있으니 어찌 나를 알아주겠는가하는 은근한 표현이다. 이것은 오직 문학만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계곡>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하다[酬羅同年應瑞] 계곡집 제33권/ 칠언 절구(七言絶句)
나 동년 응서에게 수답하다[酬羅同年應瑞]
病裏吟詩也自難(병리음시야자난)/병중에 시 읊는 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려운 일 霜髭欲撚半凋殘(상자욕년반조잔)/흰 수염 비비 꼬려 해도 반쯤 골아지려 한다. 今朝作意聊拈筆(금조작의료념필)/오늘 아침 마음먹고 기운을 내어 붓을 들고 글을 써서 寄與情人仔細看(기여정인자세간)/그리운 그대에게 부치노니 잘 살펴보아 주오
書到殷勤意可知(서도은근의가지)/서찰이 와서 은근한 뜻은 잘 알겠소만 怪君偏愛病夫詩(괴군편애병부시)/아픈 이 사람의 시를 그대는 지나치게 좋아해 이상할 정도요. 自慙却老元無賴(자참각노원무뢰)/내 부끄럽소, 원래 염치도 없는 사람이 늙음을 막으려 하다니 鏡裡新添滿鬢絲(경리신첨만빈사)/거울 속의 새로 더한 흰머리 몰라보게 늘어났구려.
이때쯤의 계곡은 매우 병약한 상태인 것 같다. 남간보다 3살 더 어리지만 더 늙어 보이고, 흰머리도 많이 나고, 붓을 들기가 귀찮을 정도로 허약해진 듯하다. 그래도 남간의 시찰이 오면 어찌어찌 노력하여 답시를 보내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문제는 초벌번역에서 도무지 두 분의 속셈, 진심을 전혀 읽을 수 없는 조잡한 번역이라는 것이다. 초벌번역을 대외에 공포한 것은 두 분의 시심에 누를 끼치는 것 같은 심정이다.
직역과 의역을 조화롭게 하면서 문학적 영감을 녹여 넣어야 하는데, 초벌번역은 도저히 두 분의 진심을 읽어 내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제8연은 보내온 시에 “흰머리 사이로 흑발이 나게 하였으면[願使白間生黑絲]”이라는 구절이 있었으므로 그 뜻에 답한 것인데, 이는 대체로 자소(自笑)하면서 동시에 자탄(自嘆)한 것이었다. |
14. <남간> 奉謝谿谷惠和(봉사계곡혜화)/계곡의 화답에 사례하다
日長槐夏坐胡床(일장괴하좌호상)/해가 긴 巳月 槐夏에 의자에 앉았는데 好事南風吹報章(호사남풍취보장)/남풍이 바람에 실어 답글을 보내 주니 좋은 일이다. 昨夜江湖虹貫月(작야강호홍관월)/어젯밤 강호에 무지개가 달을 꿰기에 知公文吐爇天光(지공문토설천광)/그대 문장이 토한 불사르는 하늘 빛인줄 알았다.
此生何幸拜龐床(차생하행배방상)/이 생애에 방덕공을 뵙는 것이 얼마나행운일까. 每歎風林虎豹章(매탄풍림호표장)/매양 눈에 띠는 풍림속의 호랑이, 표범 무늬인 것을 탄식하다가 忽得新詩寒竪髮(홀득신시한수발)/홀연 새 시를 지어 머리끝이 쭈빗 섰는데 還慙夜燎比朝光(환참야료비조광)/밤 모닥불 아침 햇빛에 비하니 오히려 부끄럽구나.
제1수 1연의 괴하는 달을 나타내는 낱말로 4월(巳月)은 건월(乾月), 괴하(槐夏), 괴훈(槐薰), 맥량(麥凉), 맥추(麥秋), 맹하(孟夏), 사월(巳月), 수요절(秀葽節), 시하(始夏), 앵하(鶯夏), 여월(余月), 유하(維夏), 입하(立夏), 정양(正陽), 중려(仲呂), 청화절(淸和節), 초하(初夏) 로 나타낸다. 胡床은 중국식 접이 의자를 말한다. 제2수 1연의 龐은 龐德公을 지칭한다. 한나라 말기의 방덕공은 녹문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면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隱者를 비유하기도 한다. 3연은 아마 꿈 이야기인 것 같다. 밤에 뜨는 무지개는 없다. 하지만 꿈은 가능한 것이다. 꿈속에서 무지개가 달을 꿰는 그 뜻이 4연에서 그대 문장이 토해내는 태양 빛으로 보았다는 것은 계곡의 문장을 극찬한 것이다.
제2수 1연은 隱者의 대명사격인 방덕공을 뵌다는 것은 이 생애 최대 행운이 있는 자만 가능하다는 표현은 방덕공을 만날 수 없다는 비유법이다.
방덕공처럼 개인 색깔과 무늬가 뚜렷하면 아무리 풍림에 숨어 있어도 호랑이, 표범이 무늬 때문에 발견되듯 그것을 탄식한다는 된다는 것이요.
시인들은 시상이 떠오르면 머리가 갑자기 쭈빗 해지는데, 그러한 영감으로 시를 지어 봤지만 그 시를 다시 보니 저녁 모닥불 빛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침 햇살과 비교하니 오히려 부끄럽다는 의미이다.
필자가 이렇게 두 분의 시문을 번역하고 있지만, 더 높은 식견의 가진 자에 비하면 항상 부끄러워하는 것과 같다.
<계곡>나 동년 응서에게 화답하여 주다[和贈羅同年應瑞] /추석 계곡집 제33권/ 칠언 절구(七言絶句)
상은 곧 평상 床인데, 계곡은 똑같은 의미의 평상 牀으로 차운하여 글을 지었다.
半生穿盡管寧牀(반생천진관녕상)/반평생 앉아서 닳고 구멍 뚫린 管寧의 의자 餘事奚囊錦繡章(여사해낭금수장)/비단을 수놓은 시 보따리는 여가의 취미로다 休恨風塵少知己(휴한풍진소지기)/풍진 세상 나를 아는 자 적다고 무엇을 한하랴만 斗間應有識龍光(두간응유식룡광)/두간모옥에 있는 용의 빛 알아 볼 이 있으리다
狂吟拍碎讀書牀(광음박쇄독서상)/독서 의자가 떠나갈 정도로 미친 듯이 읊조리고 每得君詩怯和章(매득군시겁화장)/그대의 시 받고 나면 화답하기 겁이 나오 翻訝向來遭按劍(번아향내조안검)/지금껏 안검 당하신 게 도리어 괴이하오. 暗中珠玉自生光(암중주옥자생광)/어둠 속에 주옥이 절로 빛을 발하는 걸
제1수는 계곡이 남간을 비유하여 쓴 글이다. 반평생 앉아 있다는 것은 隱者를 말하며, 숨어 살면서 시를 써서 보따리에 저장하듯 많다는 비유인 것이다.
이 풍진 세상에 나를 아는 자 적다고 한하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두간모옥에 사는 남간을 알아본다고 비유하였다.
1연의 관녕(管寧)은 후한의 명사로 , 화흠 등과 동문수학한 사이로서 요동의 공손도 밑에서 30여년동안 은둔 생활을 계속했다. 조조, 문제, 명제 등이 초청했으나 모두 거절했다. 난을 피하여 요동에 가서도 항상 흰 두건을 쓰고 이층에 거처하여 땅을 걷지 않았으며 위(魏)에서 벼슬하려 하지 않았다. 진(晉) 나라 황보밀(皇甫謐)의 《고사전(高士傳)》 관영조(管寧條)에 의하면, 관영이 55년 동안 나무로 만든 탑상(榻牀)에 앉아 있었는데, 단정한 자세를 한번도 잃은 적이 없었으므로, 무릎 닿는 곳에 모두 구멍이 뚫렸다[榻上當膝皆穿]고 한다.
2연의 해낭(奚囊)은 시 보따리의 뜻이다. 당(唐) 나라 이상은(李商隱)의 ‘이장길 소전(李長吉小傳)’에 의하면, 장길이 제공(諸公)과 놀러 나갈 때마다, 어린 종복[奚奴]이 오래되고 허름한 금낭[古破錦囊]을 등에 지고 그 뒤를 따라다녔는데, 장길이 새로운 시를 짓고 나면 곧장 그 금낭 속으로 던져 넣었다고 한다.
4연은 斗間은 斗間茅屋 즉 발을 뻗으면 벽이 닿는 오종종한 작은 방을 의미하는 것에서 인용한 것이다.
溪亭은 마치 두간모옥 같다. 두간모옥에 사는 용으로 남간을 비유한 것이다.
남간집 초벌 번역을 보면 斗間은 두성(斗星)과 우성(牛星) 또는 북두성(北斗星)과 견우성(牽牛星)을 말하고 용광의 빛으로 땅속에 묻힌 보검을 찾는다는 고사를 인용하였지만, 남간의 계정을 두간모옥으로 보면 필자의 해설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제2수는 3연의 안검은 남간의 시문이 세상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노중련(魯仲連)의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명월주(明月珠)와 야광벽(夜光璧)을 어둠 속에서 길가에 내던지면 칼자루를 잡고서[按劍] 노려보지 않는 자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뜻은 길거리에 떨어진 것들이 잘 갈아진 칼날처럼 빛나고 있어서 혹여 칼을 빼들고 달려든다는 뜻이다.
남간의 시문이 명월주 같은데 어느 누구도 칼을 빼들고 명월주를 바라보는데, 명월주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즉 세상이 남간의 시문을 제대로 평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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