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사제 첫해에 잡지에 썼던 글을 잊고 있었는데, 어느 교우분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작년에 보고 오랫만에 제글을 보고 웃었습니다. 이 마음 변치 말기를 제 자신에게 되뇌이며...
- 미쳤다는 소문이 나서 -
오늘 복음말씀을 읽으면서 1년간 우리 본당에 계시다 다른 본당으로 가신 보좌신부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신부님께서 본당신자들에게 첫인사로 하셨던 글을 옮겨 봅니다. 글에서 느끼는 감동이상으로 열심한 모습을 저희에게 심어주고 가신 분이셨습니다.
글 / 한영기 바오로 신부님
예수께서 집에 돌아오시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의 일행 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의 친척들은 예수를 붙들러 나섰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3, 20-21) 2001년 1월 19일, 주님의 제단 앞에 엎드려 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평생을 주님의 정배로 살기로 서약한 그 순간은 내 생애에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니 앞으로 잊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지난 10년 간의 신학생 생활, 나아가서 지난 30년의 삶을 주님께서는 모두 받아주시고 비천한 나를 당신의 사제로 축성하셨다. 서품식 다음날, 그러니까 1월 20일 나는 집에 가서 가족들과 내가 20년 이상을 속해서 살아온 구역의 식구들을 모시고 사실상 첫미사를 봉헌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해서 예전부터 나를 보아온 같은 구역 신자분들이 과연 나를 거룩한 새 사제로 생각할까 하는 두려움과 떨림도 있었지만, 막상 미사를 시작하면서부터 나를 빼놓고는 모두가 감격으로 훌쩍훌쩍, 눈물을 훔치며 정성을 다해서 미사에 참례함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복음을 읽고 강론을 하였다. 복음은 1년의 복음 중 가장 짧은 마르코 복음 3장 20-21절이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도 돌보지 않고 정신 없이 뛰어다니시는 모습이 가족들에게는 마치 미친 것으로 보였던 것 같다. 사실 그랬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버지 요셉으로부터 목수라는 기술을 전수 받아서 직업정신을 잘 발휘하면 생계에는 그나마 지장을 받지 않을 터인데 집도 없이 끼니도 챙기지 못할 때가 많았고, 한 무리의 제자라는 사람들(제자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하층민들, 즉 어부, 세리, 열혈당원 등)을 이끌고 다니며 당시의 높은 지도층들(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율법학자 등)에게 사사건건 시비나 걸면서 미움을 사고 다니는 예수님의 모습이 그분의 가족들에게는 너무나도 불안하게만 보였고 심지어는 미쳤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을 것이다.
이러한 나름대로의 복음묵상을 이야기하면서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마음도 이야기하였다. “저도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 발탁이 되어 첫 부임 지로 가게 되었는데 심적으로 많이 부담되는 곳으 로 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내세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고 몸으로 때울 만큼 건강 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이러한 저에 대해 부 모님과 친지들은 많은 걱정을 하실 것 입니 다. 어머니께 ‘약한 내 아들이 분당에서 그 런 대로 편안히 잘 지내는구나.’라고 안심하 실 그런 소식이 들려오게 된다면 나는 분명 히 사제로 잘 못사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반면에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 몸도 약한 놈이 뭘 믿고 그렇게 몸 생각도 안하고 고 생을 한다냐. 미쳤네, 미쳤어. 아이 속상해라.’라 고 불안 해 하시며 가족들과 당장 저를 찾아 나서 고 싶어하신다면 저는 예수님의 제자답게 훌륭하 게 사는 사제일 것입니다. 그러니 어머님은 이제 세상적인 생각으로 저를 걱정하지 마시고 더욱더 주님께 미친 삶을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동안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줌마!” 마지막 내가 어머니를 부른 호칭에서 모두가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이며 우셨다. 다음날 본당에서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봉헌하고 축하식이 진행되는 동안 나는 눈물을 보이기 쑥스러워서 속으로는 내내 울면서도 신자들을 계속 웃기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전날 가정미사를 봉헌하면서 강론한 내용과 나의 결심을 이야기하고 부모님을 소개하는 순서에서 이제 나는 집을 완전히 떠났으니 부모님이 없다고 하면서 대신 그동안 나를 키워주신 아저씨, 아줌마는 소개해 드리겠다고 하고 “요셉 형제님과 데레사 자매님을 소개합니다.” 라고 소개해서 신자들의 웃음과 눈물과 박수를 받았다.
교육관에서 식사가 끝나고 밖으로 나와 친지들과 신자분들께 인사를 드리는 중에 아버지가 “한신부님, 잘 먹었어요. 아줌마 데리고 먼저 집에 갈게요.” 라고 말씀하시고는 동생 차를 타고 가셨다. 사람들이 다 떠난 성당에 들어갔다.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눈물이 흘렀다. 서품식 때도 흐르지 않았던 눈물이었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미친 듯이 살아보자.’ 그동안 얼마나 많은 방황과 참회를 반복하였던가. 그래도 늘 하느님은 아무 말씀 없이 돌아온 탕자를 맞아주셨듯이 나를 품에 안아 주셨다.
언제까지인가 나는 내 힘만으로 이 지상생활을, 특히 신학생 생활을 하는 줄만 알았다. 하느님의 부르심 속에 내가 혼자 응답하고, 혼자 노력하고, 혼자 이 길을 걸어온 줄만 알았다. 부제가 되어서도 그런 생각 속에서 생활했으며, 좀더 재능 있고 실력 있는 신부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 머리 속에 집어넣으려 노력했고, 인기 있는 신부가 되기 위해 외적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쓰며 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즉 내 능력에만 의지하고 외적인 모습에만 정성을 쏟으며 살면 살수록 더욱더 불안하기만 했고, 무능력한 내 모습에 실망만 더해갈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토요일, 각 반마다 미사를 따로 봉헌하는 날이어서 우리 부제반은 학교에 거주하시면서 식당에서 일하시는 자매님들(그분들의 방과 소성당은 지하에 있었다)과 함께 지하층에서 미사를 참례하였다. 미사전에 묵상을 하기 위해 미리 낯설은(신학교에서 7년을 살면서 처음 들어가본 곳이기에) 기숙사 지하 소성당에 들어갔다.
이미 자매님들은 앉아서 묵상을 하고 있었는데 내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은 것은 잠시 후였다. 미사 시간이 되자 자매님들 가운데 선창자가 신호를 하자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문을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 기도문의 내용을 들으면서 나는 가슴 한가운데가 저려옴을 느꼈다. 그동안 내가 가져왔던 마음들이 얼마나 교만했고, 이기적이었는지 절감하게 되면서 두 눈에는 부끄러움과 통회의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기도문은 사제들과 신학생들을 위한 기도였는데 특히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신학생들을 위한 기도문 내용은 정말 아름다웠고 간절했으며 그 기도를 바치는 자매님들의 표정 또한 간절했다.
내가 10년 전, 내 실력을 믿으며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와서,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며 입학식을 치르고 이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리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피곤함에 인상을 찌푸리며 2층 대성당에서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던 바로 그 시간에도 지하 1층에서는 자매님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우리 신학생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동안 입으로만 은인을 위한 기도를 읊조렸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내가 입학할 때, 학교 생활할 때, 군에 있을 때, 부제품을 받을 때, 부제로 생활하는 동안 어디선가 끝없이 기도하고 있었던가! 나는 절대 내 힘으로 이 세상을 살아온 것이 아니었다. 내가 하느님만을 믿고 내 힘만을 믿고 살았을 때는 어려움과 시련이 찾아오면 쉽게 흔들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느님을 원망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내 힘만으로, 내 능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내 부모님이 사시고, 내 안에 나를 보고 계시는 수많은 은인들이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그동안 얼마나 교만했는가 하는 부끄러움과 함께, 늦게나마 커다란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 드렸다.
이제 나는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기로 서약했고,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누가 내 형제들이냐? 바로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다.” 라고 섭섭하리 만치 단호하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나에게는 이곳 분당 요한성당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의 할머니 할아버지요, 이곳의 형제 자매님들이 나의 어머니 아버지요, 이곳의 청년들이 나의 형제들이며, 이곳의 청소년들이 나의 동생이요, 이곳의 어린이들이 나의 조카들인 것이다. 하느님을 뵙고 싶어 추운 날씨에도 옷깃을 여미며 성당을 찾아와 나와 한마음으로 미사를 봉헌하는 이분들이 바로 나와 한가족이다.
올 한해, 이분들을 위해 한가족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뛸 것이다. “저 신부 미친거 아냐? 뭘 저렇게 열심히 하지? 능력도 안되면서….” 라는 염려를 듣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희생하시는 수많은 은인들이 내 안에 함께 한다는 커다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닮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한신부가 집에 돌아오자 힘들어 하는 신자들이 다시 모여들어서 한신부는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한신부의 가족과 친척들은 한신부를 붙들러 나섰다. 한신부가 미쳤다 소문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속에 살되
그 쾌락을 탐하지 않는 자
매 가정의 한식구로되
아무 가정에도 매이지 않는 자
모든 이와 고통을 함께 하고
모든 비밀을 꿰뚫으며
온갖 상처를 아물게 하는 자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다리 놓는 중재자로서
모든 이의 기도를 하느님께 바치고
용서와 희망을
하느님한테서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
나의 하느님이시여
이 어떠한 삶이오니까
그대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여
이것이 바로
그대의 삶이로세.
주님! 저희 서판교 성당 가족들을 위해 부족하지만 꼭 이렇게 살게 저를 이끄시고 지켜 주소서. 아멘.
첫댓글 글을 읽으면서~ 요셉아버님,어머니 데레사님의 마음이 전달되는듯해서~ 세상 어느곳에서 사제들을 위해 기도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고마워서~예수님과 함께 미친 제자가 되기위해 매일 기도하시는 신부님 마음이 감사해서요~ 글을 읽으니 눈물이 나네요~ 주님께서 맨땅의 서판교에 오신 신부님을 축복하시고~서판교 성당 가족들에게도 축복하시길 기도합니다~~
우리 신부님... 정말 너무 소중한 우리 신부님 :) 주님이 꼭 지켜주실거에요.
주님께 영광 드립니다.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소서 신부님 그냥 불러 봤어용 너무나 미약해서 신부님 힘들게 해 드려 송구합니다. 부족한대로 하느님께 기쁘게 찬미드립니다. 아마 늘 실수할 겁니다. ^^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좋아용
주님께 미친 신부님 옆에서 뵈오며...우리도 주님께 미칠 것 같습니다.
주님의 은총 충만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