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1:11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또 임합니다(11a). 예레미야에게
여호와께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습니다(11b). 이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상을 통하여 예레미야에게 보여주시면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상을 보여주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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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으시고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고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환상을 보여주신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았다는 대답에 잘
보았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살구나무가지를 보았는데 잘 보았다고 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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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살구나무라는 히브리어가 지켜 행한다는 말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히브리어가 처음 기록될 때에는 자음으로
만 기록되었습니다. 자음으로만 기록되었다는 것은 읽기위한 글이기 보다는 뜻
으로 보라는 것입니다. 모음은 후대의 서기관들이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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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라는 말과 '지키다'는 말의 자음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살구나무 가지를 본다는 대답에 하나님께서 잘 보았다고
하시면서 이는 내가 내 말을 지켜 그대로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살구나무는 잎이 나기 전에 꽃을 피우는데, 땅이 아직 얼어서 추울 때 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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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장래에 대한 기대와 약속의 꽃입니다. 살구나무
(샤케드)를 보라고 하신 하나님은 자신의 말이 성취되는 것을 지켜보십니다.
(쇼케드) 마치 살구꽃의 약속처럼 지금 예레미야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이
전부 이루어지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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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13a). 이번에도 묻습니다. 네가 무엇을 보느냐?
이번에는 끓는 가마를 봅니다(13b).그리고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져
있는 것입니다(13). 이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바로 앞의 살구나무를 보여주신
것과 연결을 해서 보아야 합니다. 살구나무를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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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신 것을 반드시 지켜서 행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의 내용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북방으로부터 재앙이 임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문장은 가장 강조하는 말이 제일 앞에 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
어순으로는 북방으로부터 재앙이 온다는 말입니다. 그 재앙이 이 땅의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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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에게 부어진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북쪽은 앗수르와 바벨론이 있는
곳입니다.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BC722년에 멸망시켰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가 약하여지면서 바벨론이 일어나는 중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하는
것은 장차 북방의 세력인 바벨론에 의하여 남쪽의 유다가 멸망할 것을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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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습니다. 끓는 가마가 남쪽으로 기울어진 것을 보았다는 것은 북방의
세력인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할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 북방 왕국의 모든
족속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십니다. 그들이 와서 예루살렘 성문 어귀에 각기
자리를 정하고 그 사방 모든 성벽과 유다 모든 성읍들을 칠 것이라고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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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니다. 바벨론을 통한 유다의 심판을 지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이것은 우연한 국가 간 군사적 대결이 아니고 악이 스스로
원하는 만큼 준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을
가지고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여 설교한 자들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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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11-16)
a.살구나무 환상:11-12
b.끓는 가마 환상:13-14
c.심판과 그 원인:15-16
예언자의 파견(17-19)
a.순종 권면:17
b.견고한 성:18
c.구원 약속: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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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이 일어난 것도 북쪽으로부터 발발되었기에 그렇게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북한의 도발을 그렇게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그렇게 보는 자들이 있습니다. 기도 많이 한다는 사람들이 몇 년 전
에도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언한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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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셨다는 식으로 피하여 갔습니다. 지금도 신
사도계열의 사람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일어날 일들을 수시로 계시
받았다고 예언을 합니다. 그래서 신사도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북한의 도발에 대하여도 그쪽의 사람들은 예언을 할 것입니다. 특히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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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 말씀 끓는 가마가 기울어진 것으로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이 시대
는 어떻게 말씀을 보고 적용을 해야 합니까? 오늘 이 시대는 모든 사건을 다
종말론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신 것이 약 2천 년 전입니다. 그 다 이루심을 통하여 부활승천하시고 성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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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이 모든 육체에 부어지는 것은 요엘서 2장의 예언대로
종말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오순절에 임하였기에 그 성령이
임한 사도들이 증거 한 것은 이 세상 역사의 발전이나 영광을 예언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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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구약을 보는 것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회개가 무엇인지
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에서 허리를 동이고 여호와께서 명령한 것을 다 그들
에게 말하라고 합니다. 이들에게 말할 것은 북방으로부터 임할 재앙을 말해야
합니다. 여기서 예레미야의 말을 들어야 할 자들은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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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18)입니다.
이들은 지금 거짓 선지자들에 의하여 거짓 평안의 말을 듣고 있습니다. 유다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예루살렘과 그 안의
성전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호하실 것이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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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선지자는 재앙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립니다.
그들에게 배척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
에게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두려움
을 당하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들 앞에서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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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이 되게 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너를 치지만 너를 이기지 못하리니 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전해야 할 당사자는 수많은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여
주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가 받을 고난을 피하게 하여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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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함께 하셔서 견고한 성읍과 쇠기둥과 놋 성벽이 되게 하셨다는 것은
모든 백성과 왕들과 지도자들과 제사장들이 다 반대하여도 여호와의 말씀인
재앙을 선포하게 하시고 결국 재앙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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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로 다 이루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인하여 종말을 예언한 것이 벌써
2천 년 전입니다. 그때로부터 종말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죽임을 당한 곳에서 우리가 무슨 발전과 희망과 영광을 보려고
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미움 받고 배척받은 것처럼 자기 백성도 미움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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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척받는 곳이 이 역사라는 공간입니다(요15:18~20). 그런데 왜 2천 년이나
지났는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지 않으셨는지 물으신다면 종말이 임하고부터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역사는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기까지 임시로
보존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땅 끝까지 증거가 되고 자기 백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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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찾아지면 눈에 보이는 이 하늘과 땅이 불에 살라지는 것입니다(벧전3장).
그러므로 우리가 신약시대에 구약을 보는 것은 구약의 예언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말씀하신 바를 얼마나 신실
하게 지켜내셨는지 살구나무 가지를 통하여 자기의 말씀을 지키신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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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살구나무를 보는데 여호와께서 그 살구
나무를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지키시는지를 말씀하시면서
북방에서 재앙이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남 유다는 북쪽의
나라인 바벨론에 의하여 BC586년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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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자를 돌이키시고 장차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아이 같은 선지자가 나공불락의 성읍, 쇠기둥, 놋 성벽이 될 만큼 무수한
폭력과 위협과 회유와 모욕의 공격을 감내해야 할 모질고 고달픈 소명입니다.
그러나 유다 전체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만이 아니라 아이 예레미야 한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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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장부로 삼기 위한 프로그램이었으니 다행이 아닙니까? 우리는 하나님
의 수단만이 아니라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일의 성취에 몰두하기보다
네가 놋 성벽이 되어가고 있는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반드시 말씀을 성취하심,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선지자를 만들어 가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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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암울하기만 한 시대를 살지만 그래도 이 모든 상황을 묵인하시고
끌고 가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내게는 소망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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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한 예레미야를 선지자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
살구나무가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보듯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
보시다가 마침내 이루어지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주님, 제가 하나님을
적으로 만들지 않게 하옵소서. 놋 가마를 쏟으시는 이유는 북방으로부터
온 제국들에게 유다를 내어 준 것은 우상숭배를 징계하시는 것이라
하였으니 주여, 부디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끓는 가마가 부어지지 않도록
돌이켜 회개하게 하옵소서. 그러나 주님, 이 모든 것 또한 거룩을 위한
조치이오니 허리를 동이고 말하게 하옵소서.
2017.9.13.wed. 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