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벨라루스(벨로루시) 공화국(Republic of Belarus) 역사]
벨라루스는 인터넷 백과사전에 사용되는 국명이고, 벨로루시는 지도와 한글컴퓨터에서 사용되는 국명이다.
벨라루스는 이 나라어로 '하얀 루시'에서 왔기에 ‘백러시아’라고도 했으며, 선사시대 주거흔적이 있고, 6∼8세기
슬라브족들이 들어와 여러 작은 공국을 이루다가 9세기 중반에는 키예프 속국이 되었다.
1240년 몽골이 키예프를 전복시켰으며, 1386년 야기에우오 왕조 때 폴란드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가톨릭을
국교로 하는 지주계층이 성립했으나 대부분의 농민들은 동방정교회를 믿었고, 16세기 들어 농노화되었다.
1795년 폴란드 3차분할로 러시아가 점령했으며, 1918∼21년 독일과 러시아 그리고 재수립된 폴란드와
전쟁을 치렀고, 그 결과 서부지역이 러시아에 의해 폴란드로 양도되었다.
1919년 러시아혁명을 통해 벨로루시 사회주의 공화국이 건국되었으며, 1922년 소련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고,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인명과 재산손실을 입었다.
이 나라 서남쪽 끝에 있는 브레스트는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철도의 요지로 이곳에서부터 철도 궤도가 달라
표준궤에서 광궤로 바꾸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로 향한다.
이 도시 서쪽 끝에는 폴란드와 국경을 이루는 브레스트 요새(Brest Fortress)가 있으며, 이 요새는 부크 강과
무카베츠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고, 소련의 제일 서쪽 끝에 있는 도시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1941년 독일군의 공격을 받았으나 장기간 저항하여 영웅 요새 칭호를 받았고,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웅 요새는 1965년 소련에 존재했던 12개의 영웅 도시와 동등한 칭호로 유일한 요새이며, 12개 영웅 도시
중에 우리가 갈 도시는 민스크, 키예프, 오데사, 세바스토폴, 모스크바가 있다.
1986년 벨로루시 국경에 있는 우크라이나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터졌고, 마침 바람이 북쪽으로
불어 대량의 방사능오염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1990년 7월 독립국임을 선언했다.
1991년 8월 실질적 독립했으며, 1997년 5월 러시아와 합병조약을 체결해 '러시아-벨라루스 연방'이 되었다.
벨로루시는 서쪽으로는 폴란드, 북서쪽으로는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북쪽과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경계를 이루며, 지형은 대체로 평탄하며 낮은 언덕과 구릉으로 나뉜다.
가장 높은 지대는 제르진스카야로 해발 345m밖에 되지 않으며, 산림지대가 전체 면적의 1/3을 차지하며,
흰색을 뜻하는 벨라는 겨울의 눈, 자작나무, 여인의 머리색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기타: 가장 술 많이 먹는 나라: 벨로루시, 매년 1인당 4.6 갤론 소비, 백파이브처럼 생긴 전통악기 두다와
하프를 두드리는 것 같은 심발리가 있으며, 예술과 서커스의 나라이다.
인구: 1천만 명, 벨로루시인(81%), 러시아인(11%), 폴란드인, 면적: 20만 7천㎢, 호수는 1,000여 개
종교: 동방정교회(80%) 화폐: 벨라루스 루블(Br), 1루블→ 600원, GDP: 6천불
※철도궤간(鐵道軌間): 궤간은 철도의 최단 너비를 말하는데 철도가 시작된 영국마저 너비는 다양했으나
1846년 1,435mm 너비인 조지 스티븐스 궤간을 표준궤간으로 정했다.
조지 스티븐슨(1781∼1848)은 처음으로 증기기관차를 만든 사람이며, 1,435mm보다 좁으면 협궤, 크면
광궤로 예전 수인선이 762mm로 협궤이고, 경부선은 표준궤이다.
러시아는 광궤인데 기차바퀴를 바꾸는 것을 대차라고 하는데 차량 한 대에 5분 정도 소요가 된다고 한다.
※샤갈(1887~1985: 그는 프랑스인이지만 민스크 북서쪽 러시아의 국경과 가까운 비테프스크 출신으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며, 초대 대표작 ‘손가락이 7개인 자화상’이 유명하다.
※루카첸코 대통령: 유럽에서의 독재국가라고 불리는 그는 1994년 대통령이 된 이후로 현재까지 대통령이다.
[6일] 18년 10월 22일 월요일 ●일정: 빌뉴스(170km)→ (4) 벨로루시 민스크 관광[1 눈물의 섬 2 삼위일체 마을
3 2차 대전기념관 4 성 시몬과 헬레나 교회 5 승리 기념탑 6 국립도서관 7 시청사 8 저울 조각
9 성령 대성당과 민스크 시청사 10 벨로루시 국립미술관→ VICTORIA OLYMPO 호텔
[민스크(Minsk) 역사] 인구: 180만 명
스비슬라치(스비슬러치, Svisloch) 강을 끼고 1067년 처음 기록에 나타나며 1101년 공국이 들어섰고, 14세기에
리투아니아 그 후 폴란드가 각각 차지했다가 1793년 제2차 폴란드 분할 때 러시아에게로 속했다.
1505년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에 의한 약탈했고, 1812년 프랑스 나폴레옹이 점령하여 파괴되었고, 1870년대
이곳을 경유하는 모스크바-바르샤바 철도와 리예파야-롬니 철도가 건설되면서 산업 중심지가 되었다.
1918년 독일군이 점령했으며, 1919~20년 폴란드의 점령 등을 겪었고, 1919년 벨라루스의 수도가 되었으며,
특히 1944년 소련군 침략과 제2차 세계대전 때 80%가 파괴되어 도시는 거의가 새로 건설되었다.
주요건축물 대부분은 소련 수립 초기에 규정된 육중한 건축양식에 따라 지어졌고, 과거의 유물로 마린스키
대성당과 베르나디네 수도원 교회가 남아 있다.
민스크는 소비에트공화국의 계획 도시 중에 가장 깨끗한 도시이며, 발레와 서커스로 유명하다.
안녕하세요?- 프리뱌탄네?, 얼마예요?- 콜키 게타 카쉬뚜엘?, 네-딱, 아니오-네, 고맙다-쟈쿠이
[민스크로 향발]
새벽산책은 전처럼 4명이 했지만 기록할 만한 것이 없었고, 민스크에서 온 차를 타고 아침 일찍 출발했는데
벨로루시는 여행 오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만 ‘백러시아는’ 학생시절에 들었다.
단지 서부 러시아인들이 동부의 몽골계통의 사람보다 희어서 그렇게 부르는 가보다 했는데 ‘흰 러시아’라는
뜻을 가진 나라가 있다는 것이 경이 서러웠으며, 빌니우스에서 30km 떨어진 국경을 7시쯤 도착했다.
2시간 동안 입국수속을 마치고 출발 직전 직원이 한 명의 여인을 데려와 민스크까지 동행을 요청했는데 여성
분이 어떤 사람인 인지도 모르는데 안 된다고 하여 같이 가지는 못했으나 태워주었으면 했다.
그러면 그는 한국에 대한 좋은 감정을 살아 있는 동안에 열심히 주위에 전파할 것을 생각하면 좋은 기회를
놓친 것 같았는데 2시간 정도를 달리면 민스크 도시들의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삼위일체 마을을 본 후에 다시 왔기에 중복되는 기록을 피하기 위해 같이 기록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좌측으로 스비슬러치 강 유역을 따라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스포츠 단지이며, 그리고
중국인들이 건설한 체조궁전? 그리고 스파 리비에라(Spa Riviera) 수영장? 건물도 보였다.
다음은 도로 좌우에 중국 사람들의 프로젝트(설계로 개발)되며, 중국인들이 건설한다는 지로이 코플렉스
라주리트(Zhiloy Kompleks Lazurit)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2번째 올 때는 이곳에서 돌아갔다.
다음은 쇼핑몰 건물인 아레나 시티(Arena City) 이고, 우측엔 최근에 지은 멋지고 둥근 민스크 아레나(Minsk
Arena)는 복합 스포츠(sports complex) 경기장으로 경기뿐 아니라 공연도 열린다.
이곳엔 아레나 건물뿐 아니라 아이스하키 경기장과 사이클 경기장도 같이 있으며, 좌측 베스니아스키 공원
(Vesnyanskiy Park) 옆에는 황금 돔을 가진 러시아 정교회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러시아식 건축양식의 러시아 정교회인데 민스크에는 30개의 러시아 정교회가 있고, 4개의 가톨릭
성당이 있으며, 벨로루시 국민의 50%로는 종교를 가지고 있고, 나머지는 종교가 없다고 한다.
종교인 중에 70%는 러시아 정교회이고, 20%로는 가톨릭, 10%는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이라고 하며, 이제는
오늘 우리가 묵을 멋진 빅토리아 올림프(Victoria Olimp) 호텔은 민스크 아레나 경기장과 가깝다.
아레나 옆에 있는 아이스하키 경기장에서는 2014년 동계 세계 아이스하키가 이곳에서 열렸고, 그 때에 세계
선수들의 숙소로 이 호텔이 조성되었다고 하며, 이 때 벨로루시 팀이 챔피언이 되었다고 한다.
좌측엔 공연장과 영화관이 있는 매 클럽(Falcon Club) 건물 앞의 축구공 같은 조형물은 밤에 화려한 조명을
갖추었으며, 다음은 대통령 궁(독립궁전)의 부속건물 국기 광장(National Flag Square)도 지나갔다.
국기 광장의 깃대 높이는 72m이며, 1995년 제정된 국기는 가로세로 비율은 2:1인데 이 국기의 세로는 12m,
가로 24m, 국기 위의 붉은 색과 아래의 초록색도 비율이 2:1로 붉은 색은 8m, 초록색은 4m라고 한다,
붉은 색은 이 나라 역사의 영광을 의미하며, 초록색은 이 나라 자연과 희망을 의미하고, 깃대 쪽의 무늬는
이 나라 문화유산의 계승을 의미이며, 다음은 전시회와 박람회가 열리는 전시관 및 무역센터이다.
정식명칭은 ‘National exhibition center BelExpo’이며, 그 뒤에 보이는 것은 대통령 궁전 즉 독립 궁전(Palace
of Independence)이고, 다음은 우측에 있다는 빅토리아 체리 카지노(Kazino Viktoriya Cherri)를 지나갔다.
카지노는 러시아 시절엔 불법이지만 지금은 민스크에 14개가 있는데 벨로루시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며, 주로 러시아 사람들이 이용하기에 ‘민스크는 러시아의 라스베가스’라는 별명을 가졌다고 한다.
다음은 좌측에 있는 벨로루시 국립 대 애국전쟁사 박물관(Belarusian State Museum of the History of the
Great Patriotic War’으로 이 건물은 1944년에 세워졌고, 붉은 깃발이 있는 유리 돔이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 안에 2차 대전을 기념하는 24개의 전시관이 있고, 소련제품인 총기와 무기와 장비들을 실물로 볼
수 있으며, 러시아 관점으로 본 2차 대전과 벨로루시의 아픈 역사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1847년 지어진 ‘성 마리아 막달레나 교회’를 지나 ‘눈물의 섬’에 도착하여 25살의 가이드를 만났는데
발트 3국과 특히 벨로루시는 미인이 많다고 했으나 예쁜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좀 예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사람은 유일하게 이 가이드인데 예쁘기보다는 ‘백러시아’를 보여준다.
눈물의 섬 옆에 있는 스포츠 단지에 있는 스포츠 궁전(Sport Palace)은 삼위일체 마을 떠나면서 처음 만났던
곳으로 다시 올 때도 이곳을 통과하였으며, 이제는 구시가지에 있는 독립 광장으로 향했다.
민스크의 청사들 중에는 궁전(Palace)이라는 이름들이 많은 것이 의아했지만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눈물의 섬(Island of Tears)]
가이드를 따라 눈물의 섬으로 향했으며, 섬은 스비슬라치 강 안에 있고, 짧은 다리로 연결되었으며, 이 섬엔
조국기념물의 아들들(Sons of the Fatherland monument)이라는 기념비가 있다.
1979~89년까지 벨로루시 군인 1만5천 명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으나 구소련의 해체로 아무런 보상도
대우도 받지 못한 전사자들의 어머니와 미망인들이 있었다.
이들이 중심이 되어 기념비 건립을 위해 노력하였고, 그분들을 기념하고 위로하기 위해 정부의 지원으로
만들었으며, 기념비를 쌓고 있는 여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눈물의 천사동상‘도 있고, 그 앞에는 흘린 눈물이 고여 있는데 여름이면 정말로 눈물이
나온다고 해서 웃었으며,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은 넓고 커다란 사각 판이 있었다.
이것은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했는데 공항 활주로인지, 장벽인지는 모르겠으나 TC는
전쟁의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위해 전시했다고 했으나 경각심을 일깨워 주기엔 너무 의미가 적었다.
무게만은 무척 많이 나아갈 것 같았고, 이 무거운 것을 그 먼 곳에서 가져 온 이유도 궁금했는데 우리는 알 수
없으나 그래도 가져올 만한 이유가 있었기에 그 많은 고생을 하면서 가져왔지 않았을 가? 하는 생각을 했다.
[삼위일체 마을(Trinity Suburb)]
이제는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유명하다는 삼위일체 마을로 이동했으며 이 마을은 18세기 조성했고, 당시엔
많은 목조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18세기에는 번지도 없었다고 한다.
대신 집들의 색깔을 다르게 해서 집배원들이 집을 찾을 수 있게 했다고 하는데 중미에서는 어느 나라인지는
기억에 없으나 번지가 없어 특징 있는 나무나 건물을 대신한다고 하는 것이 생각났다.
2차 대전 때 많이 파괴 된 것을 1962년 흐루시초프가 방문하면서 복원이 되었다고 하며, 기념품 가게를 잠시
들렸는데 간판에는 ‘기념품. 갤러리(Сувениры. Галерея)’라고 적혀 있는데 읽을 수가 없었다.
카드도 달러도 유로도 안 되고 단지 이 나라 돈만 사용되는데 1달러에 이 나라 돈 2루불이라고 하며, 이제는
이 가게 앞에는 야제프 드로즈도비치 기념비(Monument to Jazep Drazdovic, 1888~1954년)가 있다.
이 기념비는 1993년 건립된 것으로 아제프 드로즈도비치의 ‘영원한 방랑자’ 모습을 표현했으며, 그는 농부들의
옷을 입고 벨로루시 곳곳을 다니며, 길을 걷고 있는데 그가 선생으로 있었던 이곳에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려 다니다가 죽었다고 하며, 재능도 다양하여 조각가, 민속학자, 예술가 고고학자, 작가라고
했고, 이제는 차를 타고 신도시를 가기 위해 민스크를 올 때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독립 광장(Independence Square)]
독립광장으로 향하면서 처음 만난 건물은 커피,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있는 고스티니 드보르(Gostinyy Dvor)
건물과 자유 광장은 역사적인 곳이라 다시 오겠다고 했고, 성령 대성당(Holy Spirit Cathedral)이 멀리 보였다.
시청광장 길 건너엔 유럽풍으로 지었다는 유럽(D' EUROPE) 호텔이 있었고, 그 옆에 벨로루시 주립 음악원
(Belarusian State Academy of Music) 이 있으며, 맥도날드((Mcdonal's) 가게도 보인다.
맥도날드 길 건너 TGI Friday’s 가게 건물도 보이는데 이 건물에는 우리나라 LG 상호가 있어 반가웠는데 미국의
레스토랑 체인인 ‘TGI Friday’s‘는 Thank God It's Friday’s 요리를 파는 회사 이름의 약자이다.
이제는 ‘독립 로(길)’로 들어섰는데 이 길이 첫 번째 길이고, 조금 전에 갔다 온 길이 두 번째 길이라고 했으며,
2차 세계대전 후에 조성된 17km의 독립 길 중에 4km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독립 광장의 붉은 건물인 ‘성 시몬과 헬렌 성당’(Saint Simon and Saint Helena Church)은 민스크귀족인
시몬과 헬렌이 전염병으로 2자녀를 잃고 그를 추모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헌납하여 1905~10년에 세워졌다.
이 가톨릭성당은 소비에트 공산당 시절에 영화관으로 사용되다가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된 이후는 성당으로
돌아 왔으며, 멀리 국회의사당과 정부청사(House of Government)로 쓰이는 건물도 보인다.
1930년 민스크에서 가장 큰 청사를 만들 때 기계는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인력으로 만들었다고 해서
놀랐으며, ‘레닌 동상(Lenin Monument)’은 건물 중앙 가장 좋은 자리에 있다.
가이드를 처음 만날 때 여성분들이 신발이 예쁘다며 살 수 있는 곳에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그녀가 산 가게는
공교롭게도 독립 광장 지하에 있는 ‘스딸리짜 쇼핑몰’에 있었다.
신발 때문에 온 것인지 독립 광장을 보러 온 것인지는 몰라도 신발만 사고 이곳을 떠났는데 그 사이에 빨리
찍어둔 사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졌고, 이곳에서 산 신발을 신을 때마다 민스크가 생각난다.
[벨로루시 국립 도서관(Vellarus National Library)]
국립 도서관으로 향하면서 보이는 건물 중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우측에 있는 시청인 민스크시 집행위원회
(Minsk City Executive Committee)이고, 다음은 중앙 우체국(Central Post Office)이다.
우체국 바로 앞 건물은 민스크 호텔이며, 같은 방향으로 KGB가 있었던 벨로루시공화국의 국가 안보 위원회
(State Security Committee of the Republic of Belarus) 건물은 아직도 KGB 건물로 불린다.
10월 광장엔 무역센터와 주정부사무소로 쓰인다는 공화국 궁전(Palace of Republic)이 있고, 같은 방향으로
좌측으로 문화센터인 노동조합 문화궁전(Labour Union Palace of Culture)이 있다.
문화 궁전은 코린트 식 기둥과 희고 큰 건물은 오페라와 각종 공연이 열리며, 벨로루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물로 500루블 지폐에 도안되어 있는데 벨로루시는 동전이 없다고 한다.
우측엔 벨로루시 국립서커스극장이 있고, 그 앞이 잔키 쿠팔리 공원(Janki Kupaly Park) 이며, 스비슬라치
강을 건너면 1954년에 만들어진 승리 광장(Victory Square)과 승리기념탑(Victory Column)이 나온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통과 했는데 광장 양쪽 건물위에 쓰여 있는 글씨는 2차전 때 전사한 용사들에게 벨로루시
언어로 ‘그대의 공훈은 영원하리!’라는 뜻이라고 하며,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꺼지지 않는 불’도 있다.
이곳부터는 1960년대 지어진 건물이며, 우측으로 현대적인 과학 아카데미 박물관도 보였고, 조금 더 가면
좌측으로 소련공산당 지도자 미하일 칼리닌 동상(Monument Of Kalinin)도 보인다.
그의 이름으로 바뀐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 서해안에 있고, 지금도 러시아가 지배하는 섬 같은 지역으로
1990년 독일 통일 될 때 칼리닌그라드와 옛 프로이센 땅들을 완전 포기 선언하여 러시아가 통일을 승인했다.
그리고 도리아양식으로 건축된 파르테논신전을 연상케 하는 건물들은 이목을 끌었지만 용도를 알 수 없었다.
이제는 벨로루시 국립도서관(belorusi national library)에 도착했으며, 이 건물은 지식의 다이아몬드를 형상화
건물은 2006년도에 개관했고, 3개 층으로 된 20개의 자료실에는 천만권의 책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으로 선정되었고, 승리 광장 북서쪽 6km 지점에 있으며, 건물 높이 72.6m,
연면적 112,600㎡에 독서실, 열람실, 전망대, 식당, 기념품가게, 박물관까지도 갖추고 있다.
우리는 잠시 내려 사진만 찌었는데 눈에 띤 다나 센터(Dana Center) 영화관, 식료품 점, 가정용품, 의류, 약국
등이 있는 쇼핑센터이며, 벽에 그림이 있는 건물은 아파트라고 한다.
벽의 그림은 성서에 나오는 사건을 그린 것이며, 베롤리나 자오(Berolina ZAO)라는 약국도 있다.
[벨로루시의 간략한 역사]
이제는 다시 오겠다고 말한 자유 광장으로 향했고, 벨로루시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나라는 동서로
나뉘어 있다가 13세기에 리투아니아 왕국으로 통일되었으며, 민스크가 수도였다고 했다.
당시 벨로루시는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속국이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는데 가이드는 아마도 자기나라 중심으로
이야기했지만 모두가 야기에우오 왕조의 역사이어서 앞에서 여러 번 얘기 했기에 생략한다.
러시아 지배시절인 50년 동안은 이 나라말을 사용하지 못했으나 독립된 지금에는 공용어가 벨로루시어 이지만
잘 사용하지 않고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며, 자기들을 지배한 것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나라는 2차 대전 전까지 절반은 폴란드, 나머지 절반은 러시아에 속했다고 하며, 2차 대전 때 이 나라 사람들
200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하는데 지금 인구 천만에 비해 엄청난 숫자다.
24년 동안 독재를 하고 있는 루카첸코 대통령은 나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며, 젊은 사람들은 반반이라고 했고,
이제는 자유 광장에 도착하여 관광을 먼저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자유 광장(Liberty Square, Svobody square)]
자유 광장은 성당 광장(Cathedral Square)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은 성령 대성당 외에 2개의 성당과 하나의
수도원 있기 때문이며, 광장에서 맨 처음 만난 건물은 입구에 있는 민스크 시청사이다.
시청사 앞 길 건너 서남쪽엔 가톨릭 대주교인 성 마리아 또는 성 메리 성당(ST. Marii Cathedral)과 가톨릭 대학
(Catholic University)이라고 하며, 우측 붉은 벽돌의 건물은 프랑스 대사관이다.
이제는 민스크 시장이었던 동상 앞에 섰으며, 그는 17~18세기 민스크 설계지도 위에 도시의 상징인 키를 쥐고
있고, 왼손에 쥔 문서는 1499년 민스크 왕실이 수령한 마그데부르크 법(Magdeburg Law)이다.
이법은 신성로마 제국의 오토 1세 황제가 제정한 도시법으로 도시의 자치권을 승인하는 상법, 형법, 절차법
등을 제정한 것으로 도시의 발전을 촉진시킨 회기적인 법률로 이 도시가 모델이었기에 유래된 이름이다.
동상 동남쪽에 있는 건물은 민스크 시청(Minsk City Hall)으로 15세기 때 건축했으나 파괴와 건축을 반복했고,
2004년 재건축한 이 건물은 18세기 때 시청의 모습이라고 한다.
시청 앞 서북쪽에는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레스토랑과 기념품을 파는 건물이 있으며, 앞 은 고스티니 드보르
(Gostinyy Dvor)라고 하고, 뒤는 하시니 드보르(Hasciny dvor)라고 한다.
광장에는 16~17세기에 사용한 모형으로 만들어진 마차 동상이 이었으며, 성령 교회(Holy Spirit Church)는
16세기 지어진 바실리안(Basilian) 교회 인데 바실리안은 유서 깊은 성당을 가리킨다.
지금은 콘서트 홀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제는 광장 중앙에 있는 저울 조각이 있는 곳에서 설명을 들었는데
이곳은 16~18세기 때 시장이어서 상인들이 거래를 하던 모습을 기념으로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조각대 벽면에는 옛날 민스크 문장이 있었는데 새로운 문장은 시청에 가면 볼 수 있다고 했으며, 문장 중앙엔
기도하는 사람은 성모 마리아이고, 좌우에 날개가 있는 2사람은 천사라고 한다.
바닥엔 당시에 사용했던 동전을 음각(파서 새김)해 놓았으며, 1624년 건축된 성 요셉 가톨릭 성당은 바로크
건축이며, 1992년부터 문학미술관과 과학기술문서와 예술문학을 보관하는 국가 기록원이다.
이젠 성령 대성당(Holy Spirit Cathedral)인데 이 성당은 남자는 우측, 여자는 좌측을 사용하며, 17세기까지는
가톨릭 성당이었고, 지금은 러시아 정교회인데 조금 전 저울조각 벽에서 본 민스크 문장이 있다고 한다.
이 문장에 대한 전설을 얘기를 했는데 타타르 몽골의 침공 때 키예프에 있었던 문장을 몽골 사람이 드니프르
(드네프르) 강에 던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민스크의 스비슬로(스비슬라치) 강에 나타났다고 한다.
이 성모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로 민스크 수호자로 이 성당 금빛 찬란한 곳에 모시고 있다고 하여 안에 들어
갔으나 안내하는 사람이 없어 보지 못한 같으며, 사진도 찍지 못하게 하여 아무 기억도 없다.
다만 밖에서 입구를 통해 겨우 사진 한 장을 찍었고, 교회 정면은 너무 높아 사진 찍기를 포기했는데 정교회
중앙 3층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과 좌측에 있는 신부 사제관을 보고 식당으로 향했다.
[벨로루시 국립미술관(Belarusian National Arts Museum)]
이제는 이 나라에서 마지막 관광인 벨로루시 국립미술관으로 향했으며, 오전에 본 유럽 호텔을 지나면 바로
국립미술관이고, 안으로 입장해서 미술해설사인 도슨트를 만나기 위해 기다렸다.
그 사이 우리는 이 나라 비테프스크가 고향이지만 프랑스로 망명한 화가 샤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TC가
가이드에게 대해 물었더니 샤갈은 프랑스에서 활동했기에 이 나라에는 작품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의 스승이 그린 그림이 이 미술관에 있다고 했으나 스승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도 샤갈에 대한
지식이 적어 보였는데 스승이 없다던 샤갈에겐 고향인 비테프스크가 스승이었다고 한다.
TC는 동시대 사람인 피카소와 샤갈 같은 입체파가 탄생한 배경을 설명했는데 사진기가 나오기 전에는 자연을
자세히 그리는 것을 최고로 삼았으나 사진기를 딸아 갈 수 없는 작가의 상상력을 표현하였다.
이래서 사진가 딸아 오지 못하는 상상력을 표현한 입체파가 탄생했다는 것은 미술사에서 본 것이며, 입체파
그림은 그린 사람만 알 수 있었는데 피카소는 평론가들이 설명하면 비웃었다고 한다.
입체파는 보는 사람이 느끼는 데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했는데 미술뿐 아니라 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영어를 하지 못하는 도슨트를 만나 그가 러시아어로 설명하면 가이드는 영어로 번역을 해 주고, 그것을
우리 TC가 다시 우리말로 통역하는 여행역사에 처음 격은 일이다.
그녀를 따라 처음 들어간 방에는 러시아 귀족들의 초상화가 있었으며, 여인은 예카테리나라고 했으나 1세인지
아니면 2세인지 또 어느 여인을 말하지도 모르겠고, 그림은 성경이야기거나 전설을 소재로 그렸다고 한다.
러시아 화가들은 18세기에는 이탈리아 쪽에서 공부를 했고, 19세기는 러시아에서 자체적으로 배웠다고 했으나
우리에게 별로 도움 되는 이야기가 아니어서 생략하고 중요한 그리만 소개하기로 한다.
제목이 ‘불평등한 결혼’ 가난한 여인이 나이 많은 부자에게 시집가는 모습으로 맨 우측에서 신랑을 째려보는
사람이 작가 자신인데 초청받아서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울 것 같은 신부를 오만한 눈으로 내려다보는 신랑을 속으로 ‘도적놈’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으며, ‘3 여인’의
그림은 3가지 보물을 나타내는데 맨 좌측은 황금, 중앙은 다이아몬드, 맨 우측의 검은 여인은 석유라고 한다.
‘불가리아 여인과 아기’의 그림은 터키에서 불가리아를 독립시키기 위해 투르크 전쟁(1877~78) 때 모습으로
성당 안으로 숨은 여인들을 터키 군사들이 찾아내 저지른 모습을 고발하는 그림이라고 한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드르 2세를 불가리아는 '건국의 아버지'로 예우하고 있으며, 전쟁에서 희생된 20만
명의 러시아 군사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 수도 소피아에 있는 성 알렉산더 네프스키 교회이다.
‘숲과 이끼’는 19세기 일상생활상을 솔직하고 섬세하게 그리는 사실주위 미술의 대표작이라고 하며, ‘화가 난
악마‘의 두상이 있는 곳까지는 러시아 화가들의 작품이라고 한다.
지금부터는 벨로루시 화가들의 작품으로 아주 오래된 16세기 작품으로 러시아 정교회의 아이콘으로 나무 위에
그린 것도 있고, 밀짚 위에 그린 것은 처음에는 색칠을 안 해도 금색이 난다고 했다.
17세기 벨로루시의 귀족들 초상화 앞에서 설명을 들었는데 초상화를 그릴 때 여성은 젊게 남성은 용맹스럽고
잘 생기게 그리고 옷은 섬세하게 그리며 돈에 따라 섬세함의 차이가 나는 것이 기본 화법이라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관도 있었고, 16세기 네덜란드 모습과 1944년 독일로부터 탈환한 민스크의 성 메리 성당이
있는 자유 광장 그림을 본 것으로 민스크 관광을 마쳤는데 미술에 조예가 없으니 아까운 시간이었다.
호텔로 들어가기에는 좀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민스크에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으나 딱히 보고
싶은 곳이 떠오르지 않았고, 문화센터 코너에 있는 탱크 기념비(Tank Monument)가 내겐 마지막 관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