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원고는 2008년 서초중앙교회(조세제목사)에서 열린 북미 인디언 선교대회에서 선교 보고용으로 작성한 원고입니다.
2008년 북미 인디언 선교대회 선교 보고 원고
본문 : 고린도후서 4장1-2절
오늘 북미 인디언 선교대회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선교에의 사명과 열정으로 충만한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호피 인디언들을 섬기고 있는 임태일선교사입니다. 지난 2월에 출국해서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선교사 훈련을 위해서 지금 잠시 한국에 들어와 있고, 선교대회를 마치고 다시 미국 애리조나 호피 마을로 나갈 예정입니다.
방금 보신 영상에서처럼 이상혁, 한명수 그리고 저 임태일선교사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이라고 굳게 믿고 일하고 있습니다. 아니 조금 더 나가서 그저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이 아니라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한국 교회에게 “간절히 소망하시는 일”이라 믿습니다.
그것은 그저 입바른 소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인디언 선교지는 초대 선교사님이셨던 고 장두훈선교사님이 순교의 피를 흘린 곳이고, 피뿐만 아니라 뼈와 살이 그 광막한 땅에 처연히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가 장례식 때도 설교하지만, 피와 뼈와 살이 흙 속에 묻힌다는 것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겸손하고도 숭고한 행위이기 때문에, 인디언 선교는 거창한 구호로 시작된 것이 아니고, 섣부른 열정 하나만 가지고 시작된 것도 아니라, 열매를 보기 위해 뿌리를 보듬는 것처럼, 튼실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를 잘 다지는 것처럼, 그리고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밑그림을 정확하고도 정성스럽게 그리는 것처럼, 시작된 거룩한 하나님의 사역임을 믿습니다.
고국을 떠나 이억만리 머나 먼 타국에 나가서 선교하셨던 일 자체도 숭고한 일이었겠지만, 그의 시신이 고국이 아니라 선교지 가장 중심에 묻혀 있는 것은 후배 선교사들로 하여금 매 순간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없고, 실망할 겨를이 없으며, 손놓고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오늘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들처럼, 열정과 비전을 가지고 선교사들과 선교사역을 위해서 기도하며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이 사역을 통해서 이루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를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뛰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골똘하게 됩니다.
현재 인디언 선교는 성공적으로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상혁선교사와 제가 맡고 있는 호피 인디언 선교와 한명수선교사가 맡고 있는 나바호 인디언 선교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 따라 순조롭게 작게나마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인디언 선교에 있어서 가장 절실한 것은 눈앞의 열매를 보려하는 것 보다는 인디언들이 복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하는 것입니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복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이라기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향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도 모두 아시다시피 인디언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학대를 받았을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500년 ‘한’恨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은 “복음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향해” 닫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백인들이 와서 인디언 선교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도 짓고, 백인 목사도 파송하고, 재정적으로나 인적 자원을 아낌없이 지원해왔습니다만, 현재 인디언 보호구역에는 텅 빈 교회당만 남아있고, 500년 선교의 역사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하고도 메마른 선교적 토양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무리 선하고 좋은 백인 목사들이 와도, 그들은 모두 실패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선교사들이 하는 사역 중에 가장 크고도 중요한 사역은, 그들의 궁핍함이나 알콜중독, 마약중독 등과 같은 표면적인 상처를 복음으로 치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층 깊은 곳에 깔린 내면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친구로 인정받는 일이야 말로 우리 선교사들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근본적인 선교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세 사람의 선교사들은 작은 실가지 하나라도 뻗어 그곳을 보기 좋은 풍경으로, 머물고 싶은 풍경으로, 그리고 살맛나는 풍경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선교지에 돌아가면, 저는 호피 마을 제1 메사에 있는 폴라카교회를 담임하게 됩니다. 이 교회는 제가 선교지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가서 함께 예배드리며 설교해왔던 교회입니다. 이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실지 사뭇 기대도 되지만, 무엇보다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이 앞섭니다.
그것은 지금껏 인디언들만 살아왔던 그 마을이, 머나 먼 타국에서 온 이방인으로 인해서 어떤 영향을 주고받게 될 것인지, 무지한 저로서는 아직 감도 제대로 잡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의 기도가 있고, 기도와 더불어 물질적으로도 아낌없이 후원해 주시는 교회와 여러 목사님들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러한 기도를 결코 헛되이 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특별히 선교사의 소속 문제를 해결해주셨고, 많은 후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수표교교회 김고광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좌충우돌할 때마다 모진 소리 한 번 해 주실 만 했는데도, 김고광목사님께서는 이 부족한 사람을 주님의 마음으로 따뜻하게 안아주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부족한 사람을 계속 격려해주시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훨씬 가볍게 해 주신 선교회 회장이신 조세제목사님과 궁정교회 권종호목사님, 그리고 송은교회 김진혁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메마른 사막을 횡단하며 동분서주 하는 때에라도 선교사들이 외롭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잘 하지 못하더라도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불안 불안하고 염려가 되는 마음도 있으시겠지만, 오늘 성경 말씀에서처럼 “너는 그리스도의 일꾼이야." "너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사람이야." "그저 충성을 다하면 돼”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도리어 축복으로 바꾸어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신 까닭입니다.
그 마음을 가슴 깊이 새겨 넣고, 선교지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일어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이상혁선교사와 한명수선교사에게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사역지에서 날마다 좋고도 선한 소식을 천천히 일구어, 그 구수한 선교의 향기를 다시 돌아와 뵐 때 전혀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이를 위해서 더욱 기도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영성가 마이스터 엑하르트는, 하나님에게 이름을 붙일 수 있다면 “자비의 하나님”이라 부르겠다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옛날의 영성가가 하나님의 이름을 이와 같이 이름 붙인 것에는,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침마다 새롭게 하시는 분이시고, 메마른 채로 속절없이 무너지는 우리들의 일상의 괴로움을 희락과 소망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이 세상 모든 연약한 피조물들의 낱낱이 드러나는 죄악 속에서도 끝까지 참으시며 자비의 길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자비의 하나님, 오늘 우리가 모인 것은, 저 이억만리 땅 너머에 갖가지 이유로 총체적 삶의 핍절과 절망을 맛보고 살아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을 똑똑히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오늘 함께 기도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안팎으로 환하게 열린 하나님의 자비의 창문을 통해 바라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셔서, 우리가 기대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섭리가 소조히 살아가는 연약한 그 땅의 거민들에게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들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보내신 세 명의 선교사들에게 더욱 힘주시고, 우리들의 어깨가 무겁고, 갖은 선교지의 문제로 인해 낙망할 때에라도, “주님은 약한 자를 들어 강한자를 이기게 하시는 분”이심을 날마다 체험할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