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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봉제일교회가 올해로 56주년을 맞았단다.
그러니 53년 우리 교단과 통합측이 분열될 때
나눠졌음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운봉은 통합측이 원뿌리가 되고
우리 교단이 나눠져 나온셈이다.
하지만 아영면은 우리 교회가 원뿌리가 된다.
그리고 한 마을에 있는 서부갈계교회가 통합측으로 나눠졌다.
낮예배를 마친 뒤
전주화평교회에 시무하시는 이영재목사님이
신앙강좌 강사로 오신다기에 운봉제일교회를 가 봤다.
일반적으로 부흥회라는 말을 사용할텐데
이번엔 "신앙강좌"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 인상적이였다.
한남호목사님과 이영재목사님의 생각이 있기에
개인적으로 미뤄 짐작하건데, 부흥회라는 단어에 대한 식상함
역사적으로 고찰하자면 부흥회가 가져다 준 긍정의 부분이 분명코 있지만
그럼에도 많은 부정적인 것이 있기에 부흥회라는 단어보다는
"신앙강좌"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붙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5개 국어에 능통하고 영국에서 공부해서
구약학 박사학위를 가진 이영재목사님의 말씀은
기독교의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현실의 구체적인 여러가지 부분들을
다뤄졌기에 속이 시원하고 개인적으로 내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한국교계가 문제가 많음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내 삶의 현장에서부터 대안을 실제로 만들어 나가야 하는 지점에
내 스스로가 봉착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게 되는 시간이였다.
신앙강좌를 마치고
교우들과 헤어진 뒤 좋아하는 두 분의 선배님을 모시고
내 개인차로 한남호선배목사님과 가끔씩 만나면 종종 가는
지리산 서북능선(일명 태극종주능선)자락 바래봉 입구에 새롭게
만들어진 허브공원으로 갔다.
1시간 조금 넘게
셋이서 이런 저런 대화들을 하게 되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어
주변 경관이 참 좋았다.
주변 분위기뿐만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이 좋기에 대화들도 아주 풍성했다.
이영재목사님은 지교회에서
60 에 조기은퇴를 공식선언했단다.
그리고 계속적인 관심사는 중세이전의 수도원운동을
한국사회에 만들어 내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관심때문에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서
진안에 자주 답사를 하고 있단다.
이번 강좌와 한남호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지리산쪽에도 답사를 한 번 와 보겠다는 말을 하셨다.
이영재목사님의 또 다른 관심사는
후학을 키우는 일이다.
선배님이 언어에 능통하시기에 언어를 잘 할 수 있는 후배를 키우고 싶단다.
그래서 한국기독교계에 외국의 좋은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하고 싶어하셨다.
이 대목에서 석천교회에 있는 후배인
안재학목사가 올려준 아래 동영상이 생각났다.
일본의 번역문화가 발달되었음은 익히 알고 있는 터다.
하지만 역사적인 내력은 모르고 있었는데, 안재학목사가 올려준 5분 20초짜리
동영상으로 인해 일본의 번역문화의 발달원인 제공자를 알게되어 감사했었다.
아래부터는 기장농목 카페에 안재학목사가 올려준 자료에 내가 댓글을 단 것을 그대로 이곳에 올려둔다.
농목카페 / 자유발언방 136번 / 안재학목사님이 올려주신 자료
http://cafe.daum.net/prokfm/6XKm/136
한남호목사님을
알고지내게 된 것이 만 3년이 안될 것이다.
농목활동을 하면서부터 알게 되었다.
선배목사님을 처음 뵌 것은 예수병원에서였다.
그때가 추석명절 어간이였던 것 같다.
농목때문에 모임을 마친 뒤
김제 들녘교회에 있는 이세우목사님이
어디 함께 갈 때가 있다면서 나를 데리고 갔었다.
그때 한목사님이 예수병원에 입원 중이셨다.
성묘준비로 벌초를 하다가 벌에 쏘여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후송되어 입원 중이셨다.
첫만남이 참 평안했다.
선배목사님은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인상이고
실제 삶이 그러신 것을 옆에서 보고 있다.
전주에 있는 한일장신대 신학과를 졸업하셨다.
한일장신대에서 의식적인 운동의 흐름의 1세대나 다름없는 분이다.
학부시절부터 농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이것저것 해보지 않은 것이 없으시다.
녹차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다.
직접 재배할 뿐만아니라, 녹차제조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염색에 대해서도 상당한 경지에 올라있다.
특히 흙집건축에서는 탁월한 전문적인 수준을 가지고 있음을 본다.
석천교회 말목재 사랑방, 죽림교회 흙집, 거창 갈릴리교회 새 예배당를 건축해 주셨다.
부임하는 곳곳마다 건축을 한가지씩 해 놓고 떠나 오시게 되었단다.
운봉에 오시기 전엔 폐교된 학교를 매입해서
예빛수련원을 몇년간 운영하셨다.
한남호목사님은 일반교회보다는
특화된 교회에서 목회를 하는 것이 훨씬 잘 어울릴 것 같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뜻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길로 인도하시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재는 전형적인 일반교회인 운봉제일교회에 부임해 있으니 말이다.
1시간이 넘게 대화를 했다.
이영재목사님에 대해서는
익히 많은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꼭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싶었었다.
그 소망이 이번 봄
농목에서 교육대회를 할 때 이뤄졌다.
전주 코아교회에서 교육대회를 했었다.
그때 이영재목사님이 "農의 신학"이란 주제로
강의를 하셨었다.
그리고 이번이 두번째 만남이다.
개인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무엇보다 감사한 시간이였다.
대학시절부터 나는
뒷풀이를 참 좋아해 버리게 되었다.
또한 뒷풀이를 통해 교실에서 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뒷풀이가 언제나 좋다.
뒷풀이는 자유로운 시간이지 않는가?
공식적이지 않기에 편안하게 허심탄회하게
상황만 되면 속얘기까지를 할 수 있어서 좋다.
또한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객관적인 말들만을 많이 한다.
하지만 뒷풀이에서는 객관적인 말이 왜 나오게 되었는지
그 구체적인 상황까지도 말할 수 있고, 질문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에
실제적인 것을 많이 익힐 수 있는 중요한 시간으로 나는 생각하고 있다.
정면으로는 운봉읍, 운봉평야
백두대간인 여원재와 고남산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다.
뒤로 지리산 서북능선(일명 지리산 태극종주능선)과 그 능선 중에 있는
덕두봉, 바래봉, 팔랑재, 부인치, 고리봉, 세걸산이 거의 보이는 곳이다.
이곳에서 보는 운봉은 천혜의 요새형국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백두대간이 있고, 뒤로는 지리산 서북능선에 감싸힌 분지형국이다.
평야도 아주 발달되어 있다.
그래서 옛날부터 현으로 지역중심의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88고속도로가 생기면서 그 중심역할이 인월로
바뀌는 형국을 지금 경험하고 있다.
바래봉에서 바라보는 운봉
고남산에서 바라보는 운봉은 참 아름답다.
운봉제일교회와 한남호목사님을 통해
운봉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운봉의 옛 명성을 회복하는 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꿈을 가지고 일궈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나는 본다.
그 지역이 어디든지 간에 말이다.
아쉽지만 이젠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이영재목사님은 전주까지 먼 길을 가야하고
나는 저녁예배를 준비해야하고....
헤어져야 하는데
아쉬움이 남아 못다한 얘기를
서서도 나눴다.
50대 초반을 달리고 있는 이영재목사님은 참 풋풋하시다.
경북 예천이 고향이라는 말을 첫 만남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내 고향 안동 풍산 바로 옆이 아닌가?
집안이 쟁쟁했다.
아버님은 성공회쪽에서 영어선생님을 하셨단다.
이영재목사님이 언어에 능통할 수 있는 것도 집안배경의 영향이 있는 듯하다.
큰 형님이 아마 서울대 의대를 나왔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선배님들과
허심탄회하게 자유롭게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였다.
이 만남을 통해 또 무슨 역사가 일어날까?
앞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나중에 이영재목사님을 교회로 한번 초대해야겠다.
교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집으로 가야할 시간이다.
가면서도 선배님들이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졌다.
차를 타기 전에도
한참동안 서서 대화를 나눴다.
서산으로 해는 넘어가고...
멀리 백두대간 주능선인
고남산이 나무 사이로 보인다.
여원재를 넘어 있는 산이다.
해질녘 모습도 아름답다.
이렇게 좋은 곳인데 사람들이 자꾸만 떠나가고 있으니....
이 현장을 살려내야 한다.
그 중심에 운봉제일교회와 한남호목사님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