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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수석[취미]배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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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 수석 스크랩 수석취미 탐석기행 책(저자오양환)
수석사랑배지식 추천 0 조회 184 09.10.16 23: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수석의 개념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자연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자연은 인공이 전연(全然) 가하여 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사람이 평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미를 찾는 예술로서 자연 속에서 자연의 심미안(審美眼)을 찾아야 한다.

  수석을 발견하는 것이나 감상하는 것은 우주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종합체로서 사람의 예술적인 감각과 시적인 정신세계의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 수석을 두고 신이 창조한 예술품이니 자연이 만든 조형물이니 하며 우리 인간이 인공으로 가공하거나 창조할 수 없는 신비하고 오묘한 조화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것이다.

  수석은 발견의 미학이지 수석 그 자체는 예술품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석을 발견해 내고 연출하여 미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하여야 한다. 그래서 수석은 동적인 면과 정적인 면에서 인간의 정신세계까지 들여다 볼 수 있는 경지에 도달하여야 한다.

  수석은 레저로써도 대중 속 깊이 파고들고 있다.

  과학이 발달하고 문화가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성인병․환경오염 등이 날로 심각해짐에 따라 자연의 향수(享受)를 달래려고 한다. 자연히 자연을 사랑하게 됨으로 정신건강과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탐석(探石)을 즐기게 된다. 또한 온 가족이 즐길 수 있기 때문에 가족의 화합과 화목을 위해서도 좋다. 온 가족이 간편한 복장과 음식을 준비하여 도시 근교 강가에 가서 즐길 수 있는 레저이다.

  수석은 찾는 것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수석에 깊은 지적인 학문이나 경험이 적은 초보자도 발견할 수 있으며 명석(明石)도 만날 수 있다. 또한 수석은 공간에 있어서 그렇게 큰 제약을 받지 않는다. 좁은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자연과 함께 생활할 수 있다. 가령 작은방 어느 곳에서나 수석 한 점을 진열해 놓고 대자연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자연과 더불어 생활할 수 있다.

  수석 취미는 다른 취미보다 남는 것이 있다.

  수석이라는 재산으로 후세에 가면 전래석으로써 가정의 가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가정의 화목과 건강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수양을 닦아 정신건강에 아주 좋은 취미다.






수석의 본질




  무수히 많은 돌 중에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수석으로서의 갖추어야 할 점이 있다.

  수석은 반드시 자연석이어야 한다.

  수석은 한 개의 자그마한 자연석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기고, 인간의 정신세계에 예술적인 감흥을 느끼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공으로 가공을 했거나 연마를 해서는 자연이 준 수석이라 할 수 없다. 수석은 한 개의 자연석에서 자연의 심미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수석은 형․질․색이 갖추어져야 한다.

  형태는 사람과 친숙한 것이어야 하고 질은 모오스경도계로 5도에서 7도 사이어야 되며 색은 친근감을 주는 색깔이어야 한다.

  수석의 크기는 실내에서 감상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당하여야 한다. 보통 20-30㎝이면 되지만 세분하면 소․중․대작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적어도 10㎝이상은 되어야 하며, 70㎝이하이어야 한다.



수석의 미적인 요소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며 인공이 전연 가하여 지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하겠지만 수석인들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평가기준을 3요소 3면법에 둔다. 이 평가기준은 앞으로도 더욱 연구하여야 할 수석인들의 과제이기도 하다.


◎ 3요소

   - 3요소는 형․질․색이다.

   ▶ 형(形)

       수석은 형태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질이 좋다 해도 형태가 없으면 몽돌에 불과하다. 돌이 수석으로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어떤 형태를 연상시켜야 한다. 수석은 어디까지나 자연의 조형미를 감상할 수 있는 형태가 이루어져서 자연과 인간의 조형미 속에서 심미안을 감상할 수 있어야 한다.


   ▶ 질(質)

        세상에서 단단하지 않은 돌이 어디 있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손으로 만지면 부서지는 것이 있다. 쉽게 부서지거나 너무 단단하여 정감이 안가는 돌은 안 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모오스경도계로 5도에서 7도 사이가 수석으로서는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다.


   ▶ 색(色)

  무수히 많은 자연의 색깔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수석으로서의 색깔은 사람에게 친근감을 주는 색깔로서 청․흙․녹 등 무게가 있고 차분하며 고풍이 풍기는 색깔로 사람의 심정에 어울리는 소박함, 정직함, 평온함, 간소함과 청결한 느낌이 풍기는 색으로서 물에 젖었을 때 더욱 아름답고 조화를 이루는 색깔이면 된다.



◎ 3면법

  - 수석에서 말하는 3면법은 산수경석에서 가장 뚜렷하지만 다른 돌들도 이 3면법이 갖추어지면 더욱 좋다. 간단히 3면법이란 돌의 앞면, 뒷면, 밑자리를 말한다.



◎ 부대요소

   ▶ 고태미(古態美)

        고태미란 오랜 세월동안 풍상을 겪은 듯한 아취와 차분함이 있어야만 수석미가 돋보인다. 즉 소장자의 애정이 오랜 세월동안 담겨 있음으로서 고태미가 생기는 것이지 돌에 이끼나 먼지가 묻어 있다고 해서 고태미는 아니다. 수석은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이나 물의 힘 등으로 자기의 자태를 지켜온 것같이 돌이 수석인을 만나서 소장자의 애정과 혼이 살아 숨쉬면서 양석(養石)이 되어서 고태미가 살아있어야 한다.

  

  ▶ 선(線)

       미술에서 선이 중요한 것과 같이 수석에서도 선이 매우 중요하다. 선은 부드럽고 뚜렷해야 하며 직선, 사선, 곡선 등으로 구분 할 수 있을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망정 정적인 선의 흐름이 있어야 할 것이다.


  ▶ 면(面)

       면의 구성과 대조도 미적 흥미를 끈다. 특히 추상미를 가진 수석의 경우 면의 역할이 중요하다. 두 개 이상으로 된 면의 변화와 조화에 포인트가 있는 것이다. 면이 미끈하건, 거칠건 간에 쾌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수석 감상법




◎ 산수경석

 - 산수경석의 감상은 산을 보면 된다. 즉 멀리 있는 산을 축소하여 가까운 곳에 놓고 연상하면서 보고 생각하고 감동을 느끼며 만족감을 얻는 것이다.

  그 예로 원산석(遠山石)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는 좌우에 주․부봉이 있고 중간 위치에 원봉이 있는 형을 놓고 생각해 보자.

   같은 거리 위에 있는 봉우리이지만 높은 주봉은 가깝게 느껴진다. 또한 한쪽에 처진 부봉은 멀리 가물가물한 원봉에 비해 중간 거리 정도임을 직감할 수 있다. 이때 돌의 형태에 따라 주봉과 부봉의 거리감은 바뀌어 보는 경우도 있다. 한자 안팎의 돌인 조그만 주․부봉과 원봉에서 몇 십리, 몇 백 리 아득한 원산을 실감할 때 마음속에는 시정적인 풍류와 대자연의 정서가 머무를 것이다.

   작은 돌에 축소된 아기자기한 형상을 바라보면서 광대한 자연의 경관을 확대시켜 상상하고 무아경에 몰입할 수 있는 경지는 원근의 거리를 자유로이 측정할 수 있는 심미안이 트여야만 가능하다.

   탐석을 다녀보면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는 근산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산의 가까운 곳까지 접근하면 적어도 큰바위나 노거목 몇 그루는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돌에서 이런 것을 찾아 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산수경석은 엄밀한 의미로 모두가 원산석인 것이다.


◎ 물형석

   - 사람, 나는 새 종류, 숲 속의 짐승들, 탑이나 초가집, 옛 유물 등 갖가지의 형태로 특색 있게 닮은 자연적인 돌들은 많다. 자연의 소산이니 만큼 꼭 같을 수는 없겠지만 보면 볼수록 안겨오는 영상에 정이 가는 돌이 물형석이다.

     물형이 사실과 너무 닮으면 싱겁다. 비슷하면서도 때에 따라 근사한 상징을 묘하게 느끼게 할 때가 아취(雅趣)가 있고 풍자적인 흥이 있다. 그리고 물형의 돌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한 짐이나 되는 돌덩이가 작은 곤충류의 어느 것을 닮았다고 하면 징그럽고도 어색하다. 인공이 가미되지 않는 한 똑같은 돌은 없겠지만 엇비슷한 것이 좋다.

     우스꽝스럽고 익살맞은 면이 곁들어져야 흥취(興趣)가 있으며 바르게 생긴 것보다 비스듬하고 기운 듯한 맛이 있어야 풍자적이다. 예로 새 짚으로 단장하지 않은, 짚이 썩어 골이 팬 지붕의 초가집이 말짱하게 정비한 똑바른 초가집보다 감칠맛이 있고 고태스럽다.

    이렇듯 물형석은 처음 수석을 시작할 때에 많이 찾고 매력을 느낀다.

    현실에서 잔존하지 않는 공룡과 같은 중생대의 동물을 닮은 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감상을 할 것인가?

     수석에는 형상과 추상이 다른 유형이 있기 마련이다. 형상의 무궁한 세계를 바로 보고 깨우치자면 현대 미술의 미학적인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물형석은 만인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돌을 가지고 홀로 고집하여 자기 도취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겠다. 어린이거나 노인이거나 한번에 보아도 과연 그렇구나하는 인상이 가는 돌이어야 한다. 때문에 제대로 형태를 갖춘 물형의 돌을 찾기란 멋들어진 산수경석을 얻기보다도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물형석은 형태미가 우선 있어야 하지만 돌의 피부와 질감과 색감도 중요한 것이다.

     물형석 감상의 요점을 간추리면, 근사하게 닮은 것, 작고 아기자기한 것, 밝고 아름다운 것을 닮은 돌이어야 한다. 또한 개성미가 뚜렷해야 하며, 충실하게 닮았으면서도 허술한 부분이 있어야 권태롭지 않다. 모자란 듯한 데에서 실제의 형상을 상상하면 더 멋있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수석을 즐겨 누리는 마음의 근본은 자연이 이루어 놓은 형상미의 신비감 때문이다. 자연은 말이 없지만 의도적으로 형상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자연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지칠 줄 모르고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요, 바로 수석을 하는 정신이다.

◎ 문양석

 - 돌 표면에 자연만상의 특별한 모양이 아로새겨진 것이 문양석이다. 문양은 아름답게 밝은 색이어야 하고 돌의 원색과 무늬의 색깔이 서로 뚜렷하게 달라 색감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검은 바탕에 흰무늬가 새겨진 것이 일반적으로 많은데 모쪼록 회화적이면서 우아한 색채를 띠어야 품위가 있다. 그리고 무늬 자체가 풍부한 시정을 담고 있어 자연 현상의 운치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한 무늬가 실제의 형상을 구체적으로 닮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생략된 부분의 아쉬움이 남으면 상상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풍정(風情)을 꾸밀 수 있을 때 매력의 애착을 더욱 느끼게 된다.

   다음으로 구도 상으로 볼 때, 무늬를 담고 있는 돌각 무늬의 윤곽이 안정감을 주어야 한다. 무늬가 돌의 정면에 자리잡고 유화처럼 그림에 입체감이 있다면 일품일 것이다.     이처럼 주문이 많은 문양석은 찾아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산수경석은 좌대나 수반 연출의 기교에 따라 안정성을 보조할 수 있다. 그러나 문양석은 무늬의 그림만을 드러내기 위하여 도려낼 수도 없기 때문에 더욱 희귀성을 인정해야 한다.

   문양석은 그 무늬의 모양에 따라 만상석(萬象石), 화문석, 문자적으로 편의상 구분하여 감상하기도 한다.

   문양을 감상하자면 형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 심미안이다. 문양에 상징적인 뜻이 내포되어 있고 회화적인 구도와 우아한 배색과 조화를 감상하자면 미술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따라서 문양석은 직감적으로 금방 어떤 정경이 떠오르지 않더라도 보고 또 보면서 감상의 안목을 키워 가야 할 것이다.


◎ 색채석

 - 색감의 우아한 아름다움에 오직 주안점을 두는 것이 색채석이다. 산수경석이나 물형석, 문양석에도 색감은 중요한 요인이지만 색채석은 어디까지나 선명하고 농도가 짙으며 배색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야 한다. 색깔이 불투명하거나 천박한 상태이면 색채석은 생명을 잃은 것과 같다. 그리고 색채석은 풍화작용에 의한 약한 석질이 떨어져 나가고 물씻김에 의해 자연적으로 색깔이 찬란하게 빛나면 이상적이다.


◎ 추상석

   - 추상석은 오랜 습관의 굳어진 고정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실상의 무엇을 닮지 않은 분야의 돌이다. 즉 축경미적인 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감과 충동을 마음속 깊은 곳에 느끼게 하는 돌이다. 따라서 추상석을 감상하는 자세는 형, 질, 색 등 수석의 전형적인 외형미의 추구만이 아니다. 돌이 지닌 심층의 내력을 마음속으로 끌어들여 동화시키는 또 다른 미적 요소를 탐구하는 데에서 비롯된다.

     멋진 추상석을 관찰하노라면 직감적인 감동과 마음속에 감추어진 미감이 함께 발동하고 공감한다. 추상석은 외형으로 감상하는 산수경석이나, 물형석의 테두리 안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미처 밝히지 못하고 있는 어느 미지의 형상을 축소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을 닮아 축소된 것인가를 가늠하지 못하기 때문에 추상석인 것이다. 어떤 사물이나 정경과 마주칠 때 일시에 구체적인 개념이 떠오르지 않고 막연한 순간이 지속되면서도 알 듯 모를 듯 감동이 치솟으면 추상적이란 말로써 표현하지 못한 부분을 대신한다.

     추상미의 느낌도 그렇다. 생소하고 막연한 듯하면서도 영감으로 가슴을 치는 아름다움이 있어 항시 심층에 잠재하고 있던 마음의 그림을 발견하듯 감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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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형태의 분류




◎ 산수경석

   - 산수경석은 수석의 이상이며 수려한 자연경이 돌에 나타나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의 일각만이라도 균형 있게 표출하고 있는 돌을 찾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자연의 미를 논할 때 산수의 풍치가 주축을 이루듯 수석의 주류는 산수경석에 있다.

   ① 원산석 : 멀리 보이는 산의 모습을 닮은 돌을 말한다.

               선이 유연해야 멋이 있다.

   ② 단봉형 : 한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의 형태를 말한

               다.

               외봉우리이지만 드높은 위용과 좌우 능선의 흐              름이 유연하고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③ 쌍봉형 : 산의 주봉과 부봉이 균형 있게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능선의 흐름은 유연한 맛이 있어야 한다.

   ④ 연산형 : 주봉을 중심으로 좌우 혹은 전후로 몇 개의 봉              우리가 균형 있는 연결된 돌을 말한다.

               산세가 박력이 있고 유연한 맛이 있어야 한다.

   ⑤ 평원형 : 수평으로 펼쳐진 평면이 있고 좌우의 한편 또

               는 후면에 봉우리가 있어 마치 드넓은 평야나              아득한 광야를 연상케 하는 돌을 말한다.

   ⑥ 단층형 : 몇 개의 층을 이루며 평면이 형성된 돌을 말한              다.

               계단식 천수답을 연상하듯 단층의 배열이 고르              고 평면간에 수평이 이루어져야 이상적이다.

   ⑦ 섬  형 : 바다 위에 떠있는 것처럼 보이는 수많은 섬을

               닮은 돌로 섬도 산임에는 틀림없으나 맥의 계              속성이 단절된 돌은 풍화나 파도에 씻기어 기              슭이 단절된 섬으로 연상하면 된다.

   ⑧ 수계석 : 자연미의 단편이면서도 물과 밀접한 관계에 있

               는 형태의 돌을 수계석으로 본다.

   ⑨ 호수형 : 물이 고일 수 있는 형태인데 파인 위치와 돌의

               형태에 따라 호수, 우물 등으로 구분된다.

               산정이 파였으면 백두산 천지처럼 산정호가 되              며, 산악의 중턱이 파였으면 산록호나 보기에              따라서는 우물도 될 것이며, 평원이 파였으면              평원호가 될 것이다.

   ⑩ 계류석 : 흔히 산수경석에서 볼 수 있는 돌로서 상류로

               부터 하류로 골짜기를 따라 물이 흘러내리듯               경사가 지거나 또는 평면으로 석영이나 방해석              이 박혀 있는 돌을 말한다.

               계류의 모습처럼 동적인 감흥을 주며 물의 흐

               름과 물소리가 들리는 듯 하여야 한다.

   ⑪ 동굴석 : 돌이 부분적으로 파여 어두운 동굴을 연상할

               수 있는 돌로 파인 내부가 조밀하고 입구가 복              잡한 것이 이상적이다.

   ⑫ 폭포석 : 산형을 갖춘 돌의 마땅한 장소에 석영이나 방

               해석이 박혀 마치 폭포가 힘차게 떨어지는 듯              한 모양을 한 돌을 말한다.

   ⑬ 수문형 : 독도나 흑산도의 실경을 연상하듯 돌이 양면으

               로 시원히 뚫려 있는 형태를 말한다.

               뚫린 속으로 멀리 원경을 감상한다면 신비로울              것이다.


◎ 물형석

   - 삼라만상의 어떤 개체나 그것의 일부분과 흡사하게 닮은 돌이 문자 그대로 물형석이다.

     사람이나 새, 짐승 등 움직이는 동물, 탑이나 초가집, 나룻배 등 고태 있는 옛모습, 기타 낯익은 존재가 무수히 많듯 물형석의 범위도 그만큼 넓다. 그런데 물형석은 그 닮은 상태가 너무 흡사한 것보다는 상징적인 것이 애착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실제의 물형 크기보다는 작을수록 감칠맛이 있다.

     또한 물형석은 정서와 추억에 얽힌 동경의 대사를 닮은 돌이어야 더욱 가치가 있고 아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아기자기하고 소담스런 아취가 있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뚜렷한 개성미를 지닌 형상을 갖춘 돌이며 이상적인 물형석이라 할 것이다.


◎ 문양석

   - 문양석이란 그 표면의 무늬가 자연만상의 어떤 모양을 아로새기고 있는 돌을 말한다. 이 문양석의 생명은 아름다운 색감의 조화에 있다. 그것은 회화적이고 사실적이며 우아하고 은은한 색채를 띠어 풍부한 시정이 떠오르는 것이어야 한다.

     문양석도 물형석과 마찬가지로 그 무늬에 나타날 수 있는 자연만상의 어떤 모양은 무수히 많으며 누구에게나 공감이 가는 무늬여야 하고 정서와 추억에 얽힌 밝은 그림으로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① 문자석 :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


◎ 색채석

- 글자 그대로 색깔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돌이다. 색감은 우리의 일상 생활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 그리고 기분에 크게 영향을 준다.

  색채석의 생명은 밝고 선명한 색의 발산에 있다. 따라서 석질이 강하고 질감이 좋은 돌이어야 하는데 경도가 5도 이하로 떨어지는 돌은 아무리 색채가 아름다워도 밝지 못하면 윤기가 없어 가치가 저하된다.


◎ 추상석

   - 어떤 사물을 대하고 얼른 이해가 안되면서도 그럴듯한 감동이 떠오를 때 무어라 표현할 수 없으면 추상적인 것이라고 얼버무리는 경우가 있다. 추상석의 개념도 마찬가지로 자연경이나 형상의 테두리 안에서 쉽게 알 수는 없으나 어떤 미지의 형상이 축소된 것이라는 마음이 끌리면 서두르지 말고 탐석한 돌에 대한 예지의 발동을 기다릴 것이다.

     추상석을 보는 관점은 그 유형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고전적인 풍조가 담긴 괴석류의 추상석과 또 하나는 현대미술에서 발생한 오브제풍의 추상석이다. 그러나 이것은 외형에 나타나는 구분일 뿐 그 내적인 의미는 둘 다 동일하다고 할 것이다.

   ① 만상석 : 온갖 사물의 모양이 그려져 있는 것, 사람,

               짐승, 조류, 곤충류, 풍경, 해, 달 등.

   ② 화문석 : 여러 가지 꽃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 매화,

               국화, 장미, 모란, 해바라기 등.


◎ 전래석

   - 옛 조상들이 애완(愛玩)하던 돌이 현재 후손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것을 전래석이라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돌과 함께 기록이 전해 내려오지 않아서 전래석의 연대나 근거가 확실치 않으나 현재 수석인들이 가족과 함께 후손들에게 물려줄 때 전래석은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할 것이다.



















탐석 자세




  수석인들에게 탐석을 가는 것은 기쁜 일이며 기대감에 부풀어 간혹 감정에 빠지게 마련인데 이성을 잃으면 수석인으로서 지켜야 할 도(道)와 예(禮)를 망각하여 마침내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격을 상실하게 되어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세상에는 모든 것이 법도가 있는데 자연의 창조물인 수석이 어찌 법도가 없겠는가?


◎ 탐석할 때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 사람은 대부분 욕심이 있게 마련인데 수석인이라고 수석 욕심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과욕은 금물이다. 과욕을 가지고 탐석에 임하면 쉬 피로해지고 명석도 얻지 못한다.


◎ 탐석할 때는 천천히 하라.

   - 급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갈려고 하면 돌도 보이지 않고 명석도 못 만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총을 사게 마련이다.


◎ 탐석할 때 돌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 수석에는 3요소3면법․구도를 채점해 볼 수 있지만 사람마다 개성, 성격, 느낌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싫은 돌이 상대에게는 감상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깨뜨리면 안 된다. 이 세상 남녀가 만나는 것과 같이 돌과의 만남도 인연이 있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


◎ 탐석할 때는 가까운데서 먼데로 먼데서 가까운 데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살펴라.

   - 이러한 방법으로 탐석을 하면 목운동에 좋으며 기(氣)를 살리는데도 도움이 된다.


◎ 탐석할 때 명석만 찾으려고 말고 마음에 끌리는 돌을 찾     아라.

- 명석만 찾으려고 하면 쉽게 피곤해지고 탐석을 하기가 어렵다. 마음에 드는 돌을 찾으려고 열심히 찾으면 명석이 안길 것이다.


◎ 작은 돌을 먼저 보아라.

   - 보통 사람들은 큰돌만 찾으려고 하는데 큰돌만 찾으면 작은 돌을 놓친다. 작은 돌을 찾으면 큰돌은 자연히 보일 것이다.


  위와 같은 점들은 필자가 체험한 것을 정리하였다.

  동호인들이나 수석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다소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석 연출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자연의 축경미를 감상하는 것이다. 수석 연출은 탐석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연출을 잘하면 자연미를 살리기도 하고 잘못하면 돌을 죽여버리는 수가 있을 것이다. 수석 연출은 수반․좌대 연출이 제일 많고 기타 다른 방법도 있을 수 있다.


◎ 수석 연출은 자연 그대로 연출하여야 한다.

   -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며 자연을 감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 연출하는 것이 편하고 좋을 것이다.


◎ 수석 연출은 무거운 부분을 밑자리로 하여야 한다.

   - 수석 연출은 무거운 부분을 밑자리로 하여야 안정감이 있을 것이다.

     물론 예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산수경석․섬형․평원석․형상석․물형석 등은 더욱 그럴 것이다.


◎ 수석 연출은 넓은 부분을 밑으로 하여야 한다.

- 자연의 이치는 이 지구상에 거의 모든 분야에 적용된다.

  넓은  부분이 밑으로 된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 수석 연출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연출해 보아야 한다.

- 한가지 돌에서 3가지 이상 연출이 나와야 된다고 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다. 될 수 있는 데로 여러 가지로 연출을 해보면 돌을 보는 안목이 넓혀지고 관찰력이 생겨날 것이다.


◎ 수반석은 특히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 수반석은 수반과 돌의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물론 다른 연출도 마찬가지이지만 수반석은 수반과의 균형․구도․조화를 잘 이루어져야 한다.













수석 취미는 왜 좋은가




  이 세상만은 사람들에게는 각자 자기 나름대로 취미가 있을 것이고 모든 취미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필자가 그 동안 탐석을 통하여 몸소 경험하고 애석 생활 속에서 느낀 수석 취미생활은 자기의 건강과 활기찬 기(氣), 건전한 정신함양에 좋다고 말하고 싶다.


◎ 수석은 인간의 평등성이다

   - 사람들은 재물 명예 지위 학벌 신분 등을 저울질하듯 하지만 수석은 자연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명석은 누가 보아도 명석이다.


◎ 수석 취미생활은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 탐석 갈 때는 특별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경비가 많이 드는 것도 아니다.


◎ 수석은 관리에 어려움이 별로 없다

   - 수석도 엄격히 말하면 생명력이 있는 광물이지만 난․화초․분재보다는 관리가 쉽다.

◎ 수석은 볼수록 정감이 간다

- 물론 사람마다 개성․성격․취미가 다르겠지만 인간은 태고부터 돌과는 가장 먼저 가까워졌기 때문에 돌을 볼 때 싫증나지 않고 볼수록 정감이 갈 것이다.


◎ 수석 취미생활은 정신통일의 지름길이다

- 잔잔한 강변 자갈밭이나 시원한 바닷가 자갈밭을 걷고 있을 때 무슨 잡념이 생기겠는가?


◎ 수석 취미생활은 건강에 아주 좋다

   - ‘재물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요, 건강을 잃은 것은 아주 잃은 것이다.’

     이 말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생에 있어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탐석 활동은 현대 의학으로도 퇴치하기 어렵다는 성인병(디스크․요통․신경통․고혈압․당뇨 등)을 예방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돌밭에 가서 하루종일 걸으면 운동이 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 수석 취미생활은 인생에 활력을 준다

   - 사람에게 희망이 없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희망이 없이 삶의 의욕을 느낄 수 있을까?

     탐석행은 희망을 불어넣어 주며 기대감을 갖게 한다.

◎ 수석 취미생활은 기(氣)의 원동력이 된다

   - 사람이 모든 잡념을 버리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여 체력을 연마하면 기는 왕성해 질 것이다.


  백만 수석동호인들의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다르며 견해가 다르겠지만 이 글이 수석동호인들의 애석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수석인의 마음




  날로 급변하는 물질문명 속에서 애석인의 마음은 어떠하여야 될까?

  작년 하반기에 충주 새한미디어 정원에 서 있는 코끼리상과 수안보온천 입구에 있는 소망석이 10억대 상당의 수석이라고 매스컴에 등장하면서 수석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모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금년 7월 롯데백화점에 전시된 쵸코렛 색인 남한강 거북이형이 15억 원에도 안 판다는 신문보도 때문에 수석과 돈이 불가분의 관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탐석을 가거나, 전시장에 가보면 전과 다른 느낌을 받을 수가 있었다. 전에는 오가는 대화가

  “명석하셨습니까?”

  “좋은 돌 하셨어요?”

  “볼만한 것도 못했습니다.”

  이었는데 요즘은

  “얼마 짜리 했어요?”

  “얼마 줘도 안 팔아요.”

하는 말이 오가는 것을 들을 수가 있다. 물론 애석인의 말은 아닐 것이다.

  존경하는 애석인 여러분!

  ‘수석에 왜 취미를 가졌습니까?’

  ‘무엇 때문에 애석 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고 반문하고 싶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필자의 경우에는 건강을 얻고 자연의 섭리, 조화 속에서 인생을 배우고 자신을 반성하며 수석의 심미안에 심취되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돌같이 자신의 정직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오늘도 쉬지 않고 탐석을 다니고 애석 생활을 하고 있다. 물론 수석도 시대의 흐름과 전연 무관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애석인 만큼은 수석을 돈으로 논하지 말자. 수석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써 탐석에서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인간의 마음이 혼연일체가 되어 살아 움직일 때 인생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Ⅱ.수석수기(手記)












탑 돌 이




            그대의 이름은 탑돌이

            그대의 출생지는 충청도 수작골

            그대가 내곁을 떠난 지 이십팔 년


            그대는 잘 있을까?

            그대는 어디에 있을까?

            그대는 누구의 사랑을 받고 있을까?


            그대는 나를 잊으셨나요?

            나는 그대를 잊지 않았다오

            그대는 나의 영원한 탑돌이여!









그  대



            나는 가련다

            오늘도

            금강 돌밭으로

            그대를 보고 싶어서


            나는 가련다

            내일도

            농암천 돌밭으로

            그대를 찾고 싶어서


            나는 가련다

            모래도

            한탄강 돌밭으로

            그대를 만나고 싶어서


            나는 가련다

            영원히

            남한강 돌밭으로

            그대와 같이 살고 싶어서

<招待>

石友여


                                 김홍두


            석우여 지난 밤 꿈속에서

            쪽빛 스카이라인을 등에 지고

            봉우리 연이어 솟은 원산경을 보았을 때

            골 깊고 검푸른 산세는

            작렬하는 태양 볕 아랑곳없이

            빛 짙음 자랑하며 우거진 숲

            돌돌 흐르는 계곡 물

            향기로 화답하는 여름 꽃

            이 모두를

            영혼으로 감싸안은 그런 산이었다오.


            석우여

            꿈속에 비친 평야 멀리로

            한 켠에 펼쳐진 바다 멀리로

            모두 다

            왜 그리도 멀고 아물거리는

            접점의 야산들만 품었는지

            그래도 크고 작은 봉우리 있어

            마음으론 흡족했다오.


            석우여

            천 길 낭떠러지의 단애는

            현기증 나는 아찔함으로

            침 삼키게 하고

            벽면에 새겨진 두 글자

            “石情”은

            조였던 가슴을 활짝 열고

            넓은 세상을 재조명하게 했다오.


            석우여

            짭짤한 갯내음 싫지 않고

            굴이랑, 파래랑, 미역귀가

            덕지덕지 붙어 있음직한

            갯바위의 순순한 멋스러움은

            또 얼마나

            우리 영혼을 맑게 씻어 주는가.


           석우여

            큰바위 얼굴에 새겨진

            러슈모어 산의 석벽은 못될지라도

            한 자(尺)를 오가는 석면에

            신이 휘필한 노송 한 그루를 보고

            나의 詩心은

            나약한 인간의 여린 마음이었음을

            알았다오.


            석우여

            로댕이 조각한 생각하는 사람의 피부는

            신의 호흡이 멎었으나

            우리가 간직한 달마석은

            돌갗이 살아 숨쉬고

            신의 생기를 발하고 있나니

            배운 바 石心 안에서

            우정과 사랑, 희망과 평화를

            詩와 그림과 노래로 엮어야 하오.









기쁜 날 좋은 날




  우리 인생에 기쁜 날이나 좋은 날이 많이 있지만 일생 일대에 있어서 가장 기뻤던 날이 언제냐고 물으면 대부분 장가가던 날이라고들 한다. 우리 수석인들에게 좋은 날이 언제냐고 물으면 탐석을 가서 명석을 하였을 때는 물론이고 선물이든 구입이든 자기에게 명석이 주어졌을 때를 좋은 날이라고 한다. 전시회나 다른 사람의 명석을 감상했을 때도 좋은 날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강수석회 오장희 회원은 문양석 위주의 수석을 선호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지난 91년 5월 13일 남한강 용대리에서 탐석한 산수 문양석을 가장 아끼고 소중히 간직해 왔었다. 비회원 윤만갑 동호인도 자기의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미사리 호피산수경석을 소중히 간직하여 오던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은 서로의 석실을 방문하여 수석을 감상하며 석담을 나누었는데 오장희 회원은 윤만갑 동호인이 소장하고 있는 호피석이 어찌나 욕심이 났던지 그 돌 때문에 윤만갑씨 집을 방문하였고 윤만갑씨 역시 산수문양석 때문에 오장희씨 댁을 방문하였다 한다.

  총각 처녀가 연애라도 하는 듯 설레임, 망설임, 갈등, 흥분 등 인간의 갖가지 감정이 마치 결혼 전날과 같았다고 한다. 그래서 한달 전부터 각자의 전술에 돌입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최선은 교환의 방법일 것 같아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상대의 돌을 선보면서 심지어는 자연수석 방덕상씨에게 상대의 돌과 자기의 돌에 대한 의견을 떠보기도 했다고 한다. 오장희씨는 보람수석회 엄재춘씨에게 돌을 서로 교환한다면 어떻겠느냐는 자문을 구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서로가 선뜻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파트 승강기 속에서 용기를 내어 오장희씨가 윤만갑씨에게 제안하여 둘이서 합의를 보았다.

  서로 가장 아끼던 소장석을 교환하고는 기분이 너무 좋아 자축전을 갖겠다며 고기와 술을 사 가지고 수석가게로 와 그 동안의 사연을 털어놓았는데 오장희씨는

  “왜, 큰돌을 주고 작은 돌을 가져왔느냐”

  고 어머니께서 크게 화를 내셨단다.

  그래서 오장희씨가 겨우 이해시켜드렸더니

  “네 돌이니 내 뭐라고 말 않겠다.”

  하시더라는 것이다. 그 동안 사연도 많고 의미도 있었다.

 소유자가 바뀐 지 불과 몇 시간밖에 안되었는데 자기 돌이 더 좋다고 자랑을 하는데 정말 ‘기쁜 날 좋은 날’이라는 것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음 또한 기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두 사람은 이젠 돌 사돈이 되어 두 점의 명석을 감상하며 지금의 자신의 돌을 보면서 과거의 자기 돌을 영원히 생각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인가?




















애석인의 마음




  오늘은 7월 7일. 우리 남강수석회 회원들은 정기 탐석일을 맞이하여 강원도 홍천강으로 아침 6시에 상계동을 출발했다. 양평에서 아침 해장국을 먹고 9시 30분 경에 홍천강에 도착하였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우리 회원들이 내리자마자 장마를 알리는 듯 소나기로 변했다. 우리 회원들은 탐석 복장으로 갈아입고 강을 건너 돌밭으로 갔다. 비에 젖은 돌들은 저마다 자기의 멋을 자랑이나 하는 듯 뽐내고 있었다. 우리 회원들은 비를 맞으며 오후 1시까지 탐석을 계속했지만 저마다 마음에 드는 돌은커녕 볼만한 돌도 줍지 못했다. 어느새 회원들의 생각은 기념돌이라도 가지고 가자는 쪽으로 바꿔졌다.

  그러나 기념돌도 돌 나름이지 수석생활을 몇 년씩 해온 회원들인데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 시간이 흐르자 회원들은 배낭에 한 점씩 집어넣고 신진성 회원은 정원석, 단봉석을 밧줄로 묶어 강을 건너고 있었다. 강을 건너갈 때는 허리까지밖에 물이 차지 않았는데 벌써 물은 목까지 찾다. 그 무거운 돌을 등에 지고 동료회원 최낙성씨의 부축을 받으면서 강을 건너고서는 신진성 회원은 돌이 물 속에서는 가볍더라고 했다.

  비가 너무 많이 오기 때문에 아쉽지만 탐석을 마치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쉽기가 한이 없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는데 언제 홍천강에 또 올까? 홍천강 고유의 돌 한 점 못 가지고 가는 미련이 남아서 차창 밖으로 강바닥에 깔려있는 돌만 쳐다보면서 비만 그치면 탐석을 또 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들은 점심도 못 먹어서 점심 먹을 장소를 물색하였지만 다리를 3개나 지나도록 장소를 찾지 못하여 4번째 다리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나는 점심을 먹기 전에 정성이 부족하여 돌 한 점 얻지 못한 것 같아서 음식을 동서남북에 고시래하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언제 올지 모르는데 기념돌이라도 찾아보자고 마음먹고 둘레를 쳐다보았는데 25센티미터 정도 되는 바위형으로써 돌의 질은 좀 떨어지지만 홈파짐과 물씻김이 잘 되어있는 홍천강 고유의 기념돌을 주웠다.

  우리 회원들은 점심을 먹고 서울까지 오면서 이구동성으로 나눈 말이 탐석하기 정말 힘들다는 것이다. 무사히 상계동에 도착하여 명석은 아니지만 힘들게 얻은 신진성 회원의 돌에 술상을 차려놓고 정원석이라도 영원한 소장석이 되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아마 이 모두가 수석인의 마음이 아닐까?





봉사와 앉은뱅이




  지난 10월은 문화의 달이어서 그런지 전국방방곡곡에서 수석전시회가 연일 열렸다.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었다. 수석계에 부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아닌가 싶다.

  나도 단위수석회 회원전과 전시판매장을 여러 곳에 다녀보았다. 그러면서 취미생활을 목적으로 하는 수석인과 수석상인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를 통하여 서로를 이해함으로써 수석문화 발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해를 바탕으로 화합을 이룬 우화 한 토막을 소개해 보겠다.


  옛날에 봉사와 앉은뱅이가 같은 목적지에 갈 일이 있었다. 그러나 봉사는 볼 수가 없어 앞이 캄캄했고, 앉은뱅이는 걸을 수가 없어 걱정만 하고 있었다. 고심하던 봉사가 앉은뱅이에게 말했다.

  “여보 노형, 우리 서로 힘을 합칩시다.”

  그러자 앉은뱅이가,

  “제가 무슨 힘이 있기래 힘을 합친다는 말이오?”

  반문했다.

  그 말을 들은 봉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앞을 못보고 노형은 걸을 수가 없지 않소.

  그러니 노형이 내 등에 업혀 내 눈이 되어주고,

  내가 노형의 발이 되어주면

  우린 서로의 목적지까지 쉽게 갈 수가 있지 않소.”

  그래서 봉사와 앉은뱅이 두 사람은 서로의 힘을 모아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렇다.

  인생의 목적에는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궁극적으로는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수석계도 서로를 이해하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서로 고쳐주며 수석문화 발전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할 것이다.

  감추기보다는 알려주고, 헐뜯기보다는 깨우쳐주면서 우리 애석인들 모두 힘을 모아 수석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돌이 그 돌이다.’ 어디에서인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요즈음 우리 수석계가 탐석은 힘들고 좋은 돌은 안 나오는 반면에, 수석문화 발전을 위한 수석전시회나 지상전은 성시를 이루는 것 같다. 물론 수석문화 창달을 위해서 수석인의 긍지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일이다.

  탐석이 어려운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너무 명석에만 집착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며, 골재 채취장의 영향도 크거니와 현지 수석상인의 힘도 무시 못할 것이다. 백만이나 되는 수석인이 존재하기 때문에 더욱 어렵지 않은가 생각을 한다.

  그러나 왜 그 돌이 그 돌이어야 하는가?

  백만이라는 수석인구는 수적으로나 양적으로 상당한 숫자임에 틀림없다. 백만 수석인이 돌 한 점씩 소장하고 있다면 백만 점이요, 열 점씩 소장하고 있다면 천만 점이다.

  자기가 아끼고 사랑하는 돌이기 때문에 남에게 자랑도 해보고 싶고 과시도 해보고 싶으며 평가도 받고 싶을 것이다. 수석의 평가 기준이 좀 모호하다 해도 가치 기준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같은 돌을 이곳 저곳에 출품한다든지, 이 책 저 책에 여러 번 수록한다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닙니까?

  요즘은 수석지상전이나 전시회를 통하여 수석인들이 힘들이지 않고 많은 수석을 감상할 수 있으며, 자기의 소장석과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만약 지상전에 소개는 하고 실물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한번쯤은 전시회에 출품을 해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 백만 수석인들이 서로가 참여의식을 가지고 지금까지 출품하지 않은 돌을 지상전이나 전시회에 출품한다면 천만 수석도 감상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수석은 우리 인간에게 준 자연의 선물이므로 수석인 모두가 같이 감상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연의 혜택을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길이 아닙니까?

  백만 수석인들이여! 우리 다함께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우리 수석문화를 발전시키는 일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인가를......









임자를 만나시오




  다사다난했던 신미년 마지막날 종무식을 마치고 일찍 퇴근을 하였다. 마침 아내가 도봉산에라도 갔다 오자며 마누라가 살찌면 오래 못 산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 동안 아내의 건강에 신경 쓰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또 산바람도 생각이나 산행 길에 올랐다.

  창동역에서 의정부행 전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도봉산으로 향하는데 눈에 익은 돌이 모 화원 앞에 턱하니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아! 저돌. 우리 돌이다!” 하며 놀란 토끼처럼 걸음을 멈추었다. 아내는 옆에서 세상은 넓고도 좁다면서 신기한 듯 돌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었다.

  내가 창동교 옆에 정원석인 오석 덩어리를 버렸는데, 아니 그 돌이 이곳에 있지 않은가. 신기하여 자세히 보고 또 보았지만 틀림없이 그 돌이었다. 아파트에서 살 때 정원석을 소장하기가 곤란하여 내가 출퇴근 때마다 보려고 했는데, 갖다 놓은지 며칠만에 돌이 없어졌다. 돌이 없어져 좀 서운했지만 할 수 없었다.

  탐석 갈 때 회원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오석인데 누가 가져가도 가져가지 그냥 두겠느냐.”

  고 반문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나에게는 필요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꼭 필요한 물건이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다.

  우리 인간과 돌과는 원시시대부터 인연을 맺고 있다. 원시시대에는 돌을 도구로 사용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피라미드, 만리장성, 석탑, 불상, 건축물 등을 보듯이 인류의 문화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밀접한 관계를 갖게되어 돌의 용도는 다양하게 쓰여졌으며 지금도 쓰여지고 있다. 이제 돌은 예술의 한 분야를 차지하여 우리 나라 수석인구가 백만을 헤아린다는 것을 봐도 돌과 인간의 관계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 오석 덩어리는 꼭 필요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화원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화원명과 전화번호만 쓰여있고 사람은 없었다. 전화를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전화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화원 주인에게 무슨 말을 할 수가 있겠는가? 그 돌에 대하여 나는 할 말이 없다.

  좋을 때는 언제고 버릴 때는 언제인가?

  좋아서 가져왔으면 애정을 주었어야지. 버리려면 가져오기는 왜 가져왔는가?

  버리려면 제자리에 갔다 놓았어야지. 왜 아무 데나 마음 내키는 데로 놓았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할 말이 없고 죄스러운 마음만 들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그 오석 덩어리는 돌무더기 속에서 자기가 최고인양 우뚝 솟아 있었다. 뚜렷하게 색깔도 검게 말이다. 하지만 아직도 임자를 만나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어서 좋은 임자를 만나 자기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기를 빌고 싶었다.


  어서 빨리 임자를 만나시오. 오석이여!

















한국의 미(美)




  지난 5월 31일 오전 8시.

  제일방송에서 “한국의 미”란 프로그램에 수석에 대하여 상세히 방송되었다. 이것은 우리 수석인들에게는 더 없는 기쁨이요, 수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수석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그 동안 제작에서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수고하신 방송국 관계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더욱 이러한 일을 위해서 수고하신 수석문화 김교식 사장님과 관계 임직원 그리고 선배 수석인 여러분께 수석인의 한사람으로서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러나 전국에 계신 백만 수석동호인들은 다 아시는 바이지만 수석인구는 늘고 수석산지는 고갈되어 가니 이 어찌할 일인가?

  필자는 수석 초년생에 불과한데 지상을 통하여「수석 취미는 왜 좋은가?」를 발표하고 무척 고민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탐석을 갈만한 장소가 점점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 탐석 갈 만한 장소가 있습니까?

  우리 나라 수석의 고보지라 할 수 있는 남한강(천서리․강천․부론․솔뫼 등) 산지를 가보신 수석동호인 여러분들은 똑같은 생각일 것입니다. 골재 채취 장에서 무자비하게 없어지는 수석들을 보고 있을 때 답답하기 한이 없습니다. 물론 탐석을 한다는 것은 자연보호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각 있는 수석인들은 오래 전부터 자연을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였으며 요사이 소품(길이 15㎝)을 위주로 탐석을 하고 있고, 또한 돌 한 두개 가지고 오는 수석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즘 우리 수석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확실한 증거 제시는 어렵지만 옛날에 자기가 탐석한 돌 중에서 많은 세월동안 감상했기 때문에 이제는 동료 수석인을 위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돌을 옛 탐석지에 다시 갔다놓는 수석인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얼마나 바람직하고 좋은 일입니까? 그러나 백만 수석동호인들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충족되어야 수석계가 발전할 수 있는데 지금의 우리 수석계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물론 어떤 분은 탐석지가 없어지고 돌이 나오지 않으니 수석이 빛보는 것이 아니냐고 할 것이며, 수석 값이 올라 갈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길일 까요?

  그리고 탐석지가 없어지면 수석인구가 늘 수 있는지 의문이다. 또 수석 취미가 사장 안 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수석을 예술의 한 분야가 아닌 종합예술로까지 확대하여 한국의 미를 찾고, 국민건강과 연관시켜 보자고 노력하는 분이 얼마나 많으며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동호인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미를 자자손손 계승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백만 수석동호인 모두 심기일전하여 한국의 미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볼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음바위 전설




  세상은 양과 음으로 이루어 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남과 여가 있고 해와 달이 있듯이, 수석에도 음바위가 있다.

  수석은 어느 곳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천보산 기슭에 자연이 만든 음바위는 누가 보아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으며, 수석으로서도 값어치가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천보산에는 음바위 말고도 사랑바위, 말바위, 용바위, 눈바위 등의 자연이 사람들에게 준 가장 신비한 선물일 것이다. 학도암에 있는 거대한 바위에 새겨져 있는 관세음 보살은 서울 장안의 뭇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천보산의 바위들에 얽힌 전설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고을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한해 때 눈바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면 비가 왔고, 사랑바위는 남녀가 사랑을 속삭일 수 있는 좋은 장소라 한다. 그리고 음바위에 돌이 끼어 있으면 이 마을 남자가 바람이 나서 과부가 생겼다고 한다.

  고인이 되신 김모씨께서는 음바위에 돌이 끼이는 것을 항상 감시하였다는 말이 전해 오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사이 음바위에 돌을 끼워놓는 사람은 없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의 행복을 깨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였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자연의 혜택을 맛보았으면서도 자연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아쉬운 하프돔




  샌프란시스코 콩코드 힐튼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캘리포니아 대평원을 지나가는데 가이드가 하는 이야기가, 캘리포니아 대평원의 크기는 한국 남한 크기와 같다고 했다. 이 곳에서는 쌀이 제일 많이 생산되며 포도, 오렌지, 아몬드 순서로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농산물이 생산되며, 딸기는 1년에 5번 생산된다고 하였다. 깔린 것이 메론이고 이곳을 통과하는 기관차가 250량이나 되니까 얼마나 넓은 평야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였다.

  건포도를 어떻게 만드느냐고 하는 질문을 하더니 건포도 유래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포도 농장 주인이 오랫동안 여행을 하고 농장에 돌아와 보니 포도가 다 말라버려서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바로 건포도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디를 가나 산이요, 강이니 산과 강에 대한 향수가 적지만 지평선만 보이는 캘리포니아 평원에서는 산과 강이 언제쯤이나 보일련지 그리워졌다.

  생각에 잠겨서 차창가로 밖을 바라보는 순간 산과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강을 바라보는데 우리 나라 남한강 석질 같은 검은 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골석이 수마가 잘 되어 보였다. 나는 흥분이 되어 가슴이 울렁거렸다. 차에서 내려 기념석 한 점을 가져오고 싶은 마음이 충동거렸다. 그래서 큰소리로 볼 일 좀 보게 정차 좀 하라고 소리쳤다. 차안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웃음이 그치고 나니 가이드가 하는 말이 대단히 죄송합니다. 미국에서는 갓길에 차를 세울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아쉬운 생각이 한없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버스가 어느새 요새미티국립공원에 도착하여 하프돔을 보게 되었다. 높이 900m의 돌과 730m의 폭포를 보는 순간 웅장함을 느꼈다. 가이드가 여기서 30분 동안 자유시간을 줄 태니 기념사진 등 각자의 시간을 갖고 13:00시에 이곳으로 집합하라는 것이다. 나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이곳에서 기념석을 한 점 주우려고 열심히 계곡을 돌아다녀 봤지만 마음에 드는 기념석은 얻지 못하고 말았다.

  다음에 이곳에 꼭 오고 싶은 마음을 간직하면서 하프돔을 떴다.









구인방(九人房)




  ‘구인방(九人房)’이란 이름은 상계동에 9명이 수석가게를 운영하면서 영리목적보다는 수석의 심미안에 심취되어 탐석에서부터 연출에 이르기까지 수석동호인들에게 수석에 대한 이론과 조언을 하는 모임이다.

  구인방은 우리 수석동호인들에게 수석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를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 수락수석회 임갑진 고문은 불암수석가게를 운영한다. 이 분은 항상 수석의 정도와 수석인의 자세를 강조하며 애석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탐석을 가면 회갑을 넘으신 분답지 않게 탐석에 심혈을 기울이며 항상 최선을 다하는 수석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과 같이 구인방 모두가 열심이지만 특히 자연수석 김종수 사장님은 돌에 미친 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가게는 뒷전이고 탐석에 열심인 김사장은 탐석을 갈 때마다 음식을 손수 만들어 수석동호인들에게 대접하는데, 나는 같은 회원은 아니지만 보기 드문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탐석도 남한테 뒤질세라 열심히 하는 모습을 탐석 장소에서 종종 본 일이 있는데,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지만 김사장은 노력에 비해 대가가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있듯이 씨앗은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이 분에게 1991년 10월 1일 뿌린 씨앗이 솔뫼에서 거두어진 것이다. 동호인들 모두 경탄할만하게 질, 색, 형, 물씻김, 홈파짐이 근래 탐석에서 보기 드문 물형으로 27㎝×13㎝×12㎝(추정)의 명석을 한 것을 보았다.

  요즈음 탐석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상계동의 행운이요, 우리 수석계에 기쁜 일이다. 구인방 모두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하면서......














‘수락수석회’ 회원전을 보고




  지난 11월 2일부터 4일까지 노원구민회관 전시실에서 ‘제1회 수락수석회 회원전’이 성황리에 끝났다. 이 지역 수석인들에게 기쁨과 무한의 가능성을 보여 준데 대하여 수락수석회 회원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수락산, 불암산의 정기를 이어받아 조상대대로 마들 평야를 지켜온 상계동의 토박이들이 85년에 ‘수락수석회’를 창립하였다. 현재까지 애석 생활을 해오면서 정천득 회장을 위시하여 회원 모두가 열과 성의를 다하여 제1회 수락수석회 회원전을 가진 것은 이 지역 수석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하여 큰 일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애석인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 더더욱 다른 지역에서는 수석회가 많이 있고 전시회도 종종 열리는데, 노원구 지역에서는 처음 수석전시회가 열렸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출품된 수석도 회원들이 7년 동안 탐석하여 귀중히 간직한 소장석 65점을 전시하여 모두가 소장자의 애정이 깃들이어 보였다. 전시회 장소가 좀 좁은 감은 있지만 그런 데로 회원들이 정성을 모아 연출했고, 화대, 지판, 첨가물 등 성의를 다하였다는 인상을 받았다. 회원 사모님들도 참여하여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준비하였으며 이곳저곳에서 애를 쓰는 모습을 볼 때 수락수석회는 날로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출품석 또한 남한강을 비롯하여 임진강․한탄강․문경․농암천․지리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유명산지의 돌들이 골고루 전시되어 남한강 돌만 전시된 어느 전시회보다도 그야말로 한국의 산하를 대변해 주었으며, 그 동안 수락수석회가 전국을 누볐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전시회에 참관했었던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볼만한 돌도 여러 점이 있었다.

  특히 ‘남한강 산수경석’으로 형․질․색은 물론 홈파짐과 물씻김이 잘되어 보는 이들을 즐겁게 하였다.

  임진강 돌의 변화 또한 무시 못하였으며 호피석(虎皮石)도 형이 빼어났다. 한탄강 돌의 ‘백두산 천지’는 빨리 통일의 그날이 오면 옷을 벗고 들어가 물장난 치고 싶은 마음 들었고 ‘한라산 백록담’과 같은 돌은 자기의 자태를 침묵으로 말하는 듯 넘실거렸다.

  관통석(貫通石)을 들여다 볼 때 인간의 좁은 마음을 버리고 석심불심을 깨닫게 해 주었으며 지리산의 돌 또한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이제는 산지에 갈 수도 없는 그곳의 토중석(土中石)이 출품되어 아쉬움을 달래 주었으며, 해가 중천에 떠있는 일석은 아마도 수락수석회를 말해 주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랑할 만한 것은 이 지역에 있는 6개 수석회가 찬조 출품을 하여 의미가 있었다. 이번을 계기로 노원구 합동전시회가 빨리 열리어 전국에 있는 애석인들에게 기쁨을 주기 바란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살아 숨쉬는 그날까지 수락수석회를 비롯하여 이 지역 6개 수석회가 날로 발전하기를 빌며 애석인 모두에게 석복이 내려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招待>

자연과 수석 그리고 인간


                                              한  호


  자연은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최대의 선물이자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무언의 스승이다.

  변해 가는  순리의 움직임 속에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는 대자연. 바다와 육지를 갈라놓은 처음과 끝이 없는 선율, 그 선율과 더불어 웅장하고 다양하게 버티고 있는 산들, 무언의 강직함을 간직한 바위, 계절에 따라 순리의 변화를 내포한 수많은 나무와 숲, 그 틈새를 비집고 수줍음을 머금으며 조용히 내뿜는 샘물, 한마디로 움직이는 동물들의 낙원이다.

  샘물이 골짜기를 이루고 냇가를 이룬다. 어느덧 냇가는 강의 줄기를 만들어 만남의 끝을 향해 흐른다.

  이루어지는 과정 속에 세월을 알 수 없는 갖가지 돌들의 향연, 골짜기를 지나 냇가의 흐름 속에 넓은 강을 지날 때 굽이마다 모여 쉼터를 마련하였고, 그도 모자라 굽이의 강 끝 바다로 이어 파도와 여정을 함께 한 돌들 또한 자연의 한쪽을 연출하였구나.

  그 중 하나가 어느 인간이 눈에 들어 감상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것을 이름하여 수석이라 일컫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스스로를 시간에 갈아 모난 돌을 너그럽게 또는 행운을 전해주려는 듯 구멍을 내고 스스럼없이 움푹움푹 패어진 모습에서 축소된 자연의 미가 어우러진 순수함을 느낄 때 바람 불듯 교차되어 부끄럼을 자아낸다. 산수의 첩경, 일출의 비경, 달밤의 정경, 동물들의 모든 행위가 스며 있고 형태를 이루었다.

  숨김없는 표현 속에 아쉬움을 간직한 무한의 가능성이 우리들 마음속에 가득히 채워질 때 세태 속에 더러워진 삶의 욕된 마음을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다면 하늘에 대한 용서를 대신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것이 수석의 정도라 한다면 무한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자연이란 곧 진리요, 진리란 순수함이니 거짓이란 있을 수 없어야 할 것이다.

  수석을 먼저 알았다고 해서 자만해서도 안될 것이며 항상 겸손으로서 사람을 대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초심자의 입장 또한 도의 입문이라 생각하고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될 것으로 본다. 그러나 현실을 볼 때 수석의 순수한 의미가 수석인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자리잡고 있는지 의심이 생길 때가 있으니 수석인의 한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고 파는 행위를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수석보다 돈에 대한 애착이 더해 속고 속여가며 스스로를 멸하여 순수한 수석인 이기를 거부하는 행동들, 안타까운 마음에 말리고 싶다.

  우선 수석을 알기 전에 자연을 알아야 될 것이다. 돌을 돌로 보기보다 자연의 한 일부로 보아야 할 것이며, 관념의 대상으로 생각을 이끌어야 한다. 그로 인해 인성을 다스리는 목적이 되어 삼라만상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얻어야 할 것이나 이는 누구의 가르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그냥 얻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연인의 한사람으로서 더불어 사는 생활 속에 순수함이 함께 한다면 비워지는 마음속에 행복이 가득할 것으로 믿는다.
















마들 수석연합전을 마치고




  풍요롭고 맑은 하늘!

  하늘을 우러러 나 자신을 본다.

  ‘제1회 마들 수석연합전’을 무사히 마치게 되어 전국에 계신 수석동호인 여러분과 노원구민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이번 전시회를 개최하기까지에는 어려 어려운 점들이 있었지만 동참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무사히 마쳤다.

  지면을 통하여 그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1992년 8월 19일 노원구 수석연합회를 창립하여 미도파 상계 백화점에서 92년 11월 13일부터 17일까지 창립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12월 21일날 ‘수석인의 밤’을 개최하여 회의 결속을 다졌다. 93년 5월 합동 탐석을 하여 수석문화창달에 일익을 해보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노원구 수석연합회가 해체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는 청천 벽력이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러나 사연이 어떻게 되었건 창립당시 사무국장이었던 나는 책임을 느꼈고 반성하면서, 회원들한테 앞으로 어떻게 고개를 들 수 있으며, 수석동호인들에게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으며, 수석계 원로들께 무슨 낯으로 대할 것인가?

  수석문화창달에 앞장서겠다고 한 약속은 어떻게 책임을 져야 되는지 고통의 나날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한탄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한가락  희망을 가지고 기회를 기다리면서 노력을 하였다.

  1996년 6월 23일 한국경제신문 ‘동고동락’난에 남강수석회를 소개하면서 노원구 수석연합회 사무국장으로 글을 썼더니 노원구청 문화공보실에서 마들 축제로 수석전시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1996년 7월 25일 정식으로 노원구청 문화공보실에 문화 예술 자생단체 신청을 접수하고, 수석인들에게 회장을 맡아주면 뒤에서 열심히 보좌하겠다고 권유를 하였으나 모두 사양을 하였다. 조직도 안되어 있고 회비도 없는데 누가 회장이라는 고통과 번뇌의 길을 선택할까?

  그 동안의 진행 과정을 다 일일이 말할 수 없고 아무튼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 세월은 자꾸 갔다.

  수석인들에게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 주어야 된다는 일념으로 이곳 저곳을 뛰어 다니면서 팜플렛 광고를 부탁하고, 수석 수록을 회원들한테 부탁하는 모습을 보고 가람수석 최성순 사장이

  “오양환씨 혼자 노력하고 고생을 하는데 우리가 힘을 합쳐      돕겠소.”

  하고 제안을 하면서 정경문 형님과 김원태를 만나 보라고 하였다.

  ‘이젠 됐구나!’ 생각하고 일일이 만나서 이야기했더니 쾌히 승낙하여 네 명이 의논하여, 각 단위수석회장단과 구체적으로 논의한 결과. 노원구, 도봉구, 중량구에 모여 있는 수석인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위해서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전시를 하여야 된다고 결론을 짓고 노원구민회관에서 마들축제로 연합전을 마치게 되었다.

  이것은 오로지 수석동호인들의 자연에 대한 열정과 수석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 낸 결과라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회에 회원 모두 정말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회원 모두 화합하고 노력한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솟구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석연으로 맺은 우정 변하지 말고 오래오래 가슴속까지 간직하여 영원히 잊지 맙시다.

  그 동안 수고하신 회원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1996년 10월 11일

                                                  오 양 환











Ⅲ.탐석기(探石記)














건강을 줍는 마음으로 탐석(探石)을



  복잡 다양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문제 중에 하나가 성인병일 것이다. 성인병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운동 부족에서 온다고 본다.

  나는 스트레스 해소와 건강을 위해서 수석에 대하여 취미를 갖게 되어 요즘도 탐석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탐석을 갔다올 때면 누구나 느끼는 점이지만 교통체증으로 인하여 탐석을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건강을 위해서 탐석을 일요일마다 간다.

  오늘도 7명이 봉고차를 타고 38교 아래에 도착하여 탐석을 하였지만 마음에 드는 돌이 없었다. 나는 우리 집 큰아이의 곤충채집을 하고 나서 동료들이 점심을 먹자고 했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개천 한가운데 큰돌 3개가 바위같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생각에 잠기다가 발로 모래를 헤쳐보았다. 검푸른 돌이 조금 보여 모래를 헤치고 건져보았더니 수석에서 말하는 ‘3요소 3면법’을 갖춘 63㎝×28㎝×23㎝의 귀암 절벽과 같은 돌이 홈파짐과 수마가 잘되어 있었다. 일생에 수석다운 돌을 얻은 것 같았다.

  동료 수석인들에게 고마움을 드리며, 탐석은 항상 건강을 줍는 마음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돌 찾아 동고동락 石緣으로 속마음까지 연 ‘호형호제’



  즐거워 함성을 지르면서 축하한다고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고 돌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이 사람과의 인연이라 생각되어 남강수석회를 만들었다.

  일요일이면 회원들과 같이 남한강 천서리, 세월리, 삼합리, 조치골 등지로 돌을 주우러 다니면서 가정이야기 사업이야기 서로 다른 환경과 일터에서 살아온 인생의 삶과 산 경험, 느낀 점들을 이야기한다.

  돌을 줍고 귀가할 때에는 그날 장원한 회원 집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때로는 술도 한잔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회원 가족들과 같이 저녁식사를 하며 친목을 돈독히 한다. 그리고 회원 가정에 애․경사가 있으면 내일 같이 생각하고 달려가서 기쁜 일은 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도 같이 걱정하면서 동고동락한 세월이 칠년이 넘었다. 우리 남강수석회는 그 동안 회원들 서로가 친목을 다져 지금은 형제간이나 다름이 없을 정도다.

  강가에서 대화를 나누고 전시회에서 돌을 감상하고 회원들간에 서로 애장석을 바꾸기도 하며 그 동안에 있는 정 없는 정 미련 없이 주고받아 이제는 한가족이 되었다.

  돌을 줍는 것이 아니라 사람다운 수석인을 찾아 인연을 맺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자연을 보호하고 골재 채취장에서 아깝게도 골재로 실려나가는 수석을 찾아 보호하여 종합예술로서 승화시키기도 한다.

  우리는 자연의 심미안을 찾으며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고동락의 수석회가 되고자 회원 모두는 오늘도 최선을 다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3일자>
















수석인구는 늘고 탐석 갈 곳은 없고




  요사이 매스컴에서 수석에 대하여 여러 번 거론되어서 그런지 국민소득이 늘어나서 그런지는 몰라도 수석인구는 늘고 있다. 반면에 탐석 갈 만한 장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장단점이 있으며, 긍정적인 측면에서 볼 때 좋은 현상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가지 문제점이 있다면 탐석 갈 만한 장소가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남강수석회 회원들은 92년 6월 7일 새벽 5시 서울 상계동을 출발하여 강천으로 탐석을 갔다. 수석인의 마음은 거의 대동소이하겠지만 탐석 갈 때는 기대감, 부풀음, 설레임 등이 가득하지만 막상 탐석을 마치고 나면 허무감, 탐욕심, 인연 등으로 마음을 달래며 석담을 나눈다.

  우리 남강수석회도 탐석 갈 때는 마냥 즐겁기만 하고 회원들 상호간에 그 동안의 건강, 사업 등을 이야기하며 또 수석에 얽힌 이야기, 전시회 등을 이야기하며 탐석을 가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아무런 말들이 없이 탐석 장소인 강천까지 갔다. 필자도 오늘은 아무런 생각 없이 정기 탐석이니 회원들하고 시골 공기나 흠뻑 마시고 올 심상으로 탐석을 갔다.

  탐석 장소에 도착하여 각자 나름대로 열심히 자기의 마음에 드는 돌들을 찾았지만 인연이 없었던지 탐석 수확은 평년작도 못되었다. 이러한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그래도 어느 날 갑자기 명석을 주울지 모르기 때문에 탐석의 묘미를 느끼고 탐석을 가는 것이 아닌가?

  수석인들은 모두 느끼고 있는 일이지만 탐석 갈 곳 정말 없다. 명석은 고사하고 탐석 갈만한 장소라도 많았으면 이 얼마나 행복할까?

  요사이 남한강일대 탐석 갈만한 장소를 살펴보면 목계는 이미 바닥이 났고 조치골․천서리․부론․솔뫼 등도 골재 채취로 얼마 안가면 탐석하기 곤란하게 될 것 같다.

  물론 전국에 있은 많은 산지가 있고, 어떤 사람들은 외국으로 탐석을 나간다고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돌의 질․색깔을 볼 때, 우리 한국의 수석이 으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탐석 갈 곳이 문제이다. 현시점에서 수석인구는 늘고 있지만 탐석 갈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될까? 수석인의 한사람으로서 안타깝기만 하다.







쌍  투




  저물어 가는 임신년을 아쉬워하면서 92년 12월 6일 오전6시 남강수석회 회원들은 상계동을 출발하여 강천으로 탐석을 갔다.

  안효준 회원은 탐석 날짜만 정해지면 기대감에 부풀지만 막상 탐석 장소에 도착하면 마음을 비우고 열심히 탐석을 하는 것을 탐석의 신조로 삼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안효준 회원한테 애석 생활이다. 오석에 쌍투를 주웠으니 말이다.

  쌍투를 처음 보았을 때는 흙이 끼어있어 그저 투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였는데 물가에 가서 돌을 닦아보았더니 쌍투가 아닌가. 더군다나 투와 투 사이에 있는 실금 같은 경계는 더한층 묘미가 있어 ‘돌없어, 돌없다’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다녔으니 회원들은 정말 돌 못 주운 줄 알고 언제는 돌 있었나! 돌은 많지만 가져갈 돌이 없다하면서 갈수록 태산이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다면서 그래도 탐석은 열심히 다녀야 된다고 하였다. 필자도 오랜만에 온 탐석이기 때문에 열심히 돌을 주웠지만 소득은 소품 골석단석과 실청석에 여인이 춤을 추는 문양석을 얻었다.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여야 되겠다고 생각을 하고 오후2시경에 차 있는 곳으로 갔더니 회원들이 하나 둘 모여서 품평회를 하였다.

  안효준 회원이 17㎝정도의 오석 쌍투를 내놓으면서 나한테는 대작이라면서 싱글벙글 하였다. 이재득 회원은 가뭄에 홍수를 만났다고 하였고 추창호 회원은 끝내기 안타를 쳤다면서 임신년에도 헛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정자 동호인은 나는 안 볼란다 하여 돌을 자세히 보니 쌍투 아래에 음석에 양석이 끼어있어 회원들은 여자가 보는게 다르다고 한바탕 웃었다.

  우리 회원들은 탐석의 피로를 잊고 오후 2시 30분 경에 강천을 떠나 간매리 마을 삿갓봉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상계동에 오후5시에 도착하였다. 보람수석회 이동진 회장을 비롯하여 회원들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명석 좀 봅시다. 우리 보람수석회도 내일 탐석을 가는데 명    석을 봐야지”

  하면서 족집게같이 말을 하여 안효준 회원이 주운 쌍투를 보여주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돌이 왜 없어 석복이 있는 사람은 명석을    한다니까”

  하고 흐뭇해하면서

  “쌍투만이 아닌데 음석에 박힌 양석 참 잘 박혔다.”

  하니까 옆에 있던 회원이 양석을 빼는 것이 좋겠다고 하니까    “꽉 물었는데 왜 빼? 뺄 것을 빼야지!”



<招待>

명석으로 소꿉놀이를 했던

어린 시절

                                                 안효준


  수석인 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고장. 지곡괴곡으로부터 옥순봉, 구담봉으로 이어지는 수석의 보고가 충주댐으로 인하여 수몰된 지금도 탐석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단양이다.

  신단양 대교를 건너 고수 동굴을 끼고 고습재에 오르면 눈 아래 펼쳐진 남한강의 강줄기가 여기저기 돌밭을 안고 굽이친다. 고습재를 내려 영춘쪽으로 수분거리에 대대리가 자리한다. 소백산맥의 등산 입구가 되기도 하는 새말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이 대대리가 내가 소년기를 거치며 성장한 내 고향이다.

  집마당 바로 앞이 개천이요, 다리를 건너 조금만 뛰어 내려가면 강이다. 개천엔 지금도 그렇지만 맑은 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물아래엔 예쁜 돌들이 수북하였다. 나는 밭이랑을 건너 강으로 내려가 놀았다. 감변에서 모래 쌓기도 하고 돌을 주워 탑쌓기도 했다. 강변은 놀이터였고 모래와 돌멩이는 놀이기구였다. 지금 생각하면 갖고 놀며 탑을 쌓던 돌들이 모두 버릴 수 없는 수석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런걸 전혀 알지 못했다. 마치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다이아몬드로 공기놀이를 하는 것과 같았다.

  온종일 돌과 함께 놀다 지친 나는 가지고 놀던 돌 하나씩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 왔다. 손에 든 돌이 수석이어서가 아니라 놀던 끝에 그저 심심하여 괜히 하나씩 들고 왔을 뿐이다. 그런데 그게 모두 나중에 알고 보니 명석이었다.

  충주 목행리, 당시 충주 비료 공장 건너편으로 소풍을 갔었다. 지금은 충주댐으로 인하여 자갈밭이 거의 묻혔지만 그때만 해도 목행리, 용대리 일대의 강바닥은 온통 자갈밭이었다. 목행리 돌밭은 내가 사는 동네와는 또 달랐다. 그날 난 정말로 예쁘고 두리 뭉실한 까만 돌 하나를 안고 돌아 왔다. 물론 그것을 수석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첫 탐석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소년기를 보낸 내게는 돌에 대한 정감이 남달랐다. 어른이 된 뒤에도 이따금씩 돌을 가지러 고향에 갔다. 군대시절에도 그랬지만 내 고향이 단양이란 걸 아는 사람들은 내게 돌 한 점 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내가 돌을 가지러 간 것은 탐석이 아니라 동네의 강가에 널려 있는 돌 하나를 가져다 선물로 주려는 것이었다. 개업집, 집들이, 문병, 생일 초대 등의 경우에 난 언제나 돌을 들고 찾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그 돌들이 모두 명석이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관장으로 사범으로 관원들을 지도하면서 운동이 주는 거센 인상을 중화시킬 수 있는 정서적 분위기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래서 난 수석 취미를 선택했다. 마침 같은 동네에 수석회가 있어 거기에 입회하여 수석회 회원이 되었다. 그것은 내가 본격적으로 수석 취미생활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드디어 첫 탐석행에 올랐다. 내가 입회한 수석회의 정기 탐석이었다. 탐석지는 충주 조정지댐이 있는 금사리 강변이었다. 어릴 때부터 돌밭에 익숙한 나였지만 막상 정식적인 탐석이다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랬다. 처음엔 선험자들의 뒤를 따라 다니며, 석질․색깔․수마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익혔다. 선험자의 한 마디면 난 그간에 익힌 돌에 대한 경험으로 돌을 알아보는 듯했다. 난 조금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수석이란 별 것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난 나만의 독특한 돌을 골라 보리라 내심 작정을 했다. 그럼으로써 선험자들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난 몰래몰래 돌을 주워 쌓아놓았다. 그러나 잔뜩 모아 놓은 돌 중에 어느 것 하나 쓸만한 것이 없다는 선험자들의 판정이었다. 난 슬그머니 화가 났지만 선험자의 설명을 듣고 보니 그 말이 옳았다. 난 다시 돌을 줍기 시작했다. 나만 좋으면 그만 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생각으로 탐석을 하다 보면 결국에 가서는 좋은 수석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내가 첫 탐석에서 얻은 교훈이다.

  어느 취미나 그러하겠지만 특히 수석은 돌을 매개로 하는 취미이므로 돌이 수석이 될 수 있는 돌을 가릴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런 걸 무시하고 자기가 좋은 대로 탐석한다면 머지 않아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비록 첫 탐석에서 손가락 만한 촌석(寸石) 한 점을 가져 왔지만 수석이 될 수 있는 요건을 갖춘 돌이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이따금 초심자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면 공연히 아는 척 하다가 하루 종일  주워 모은 돌을 모두 버리고 돌아온 나의 초보시절의 생각이 들어 멋쩍은 웃음이 나온다.

  이제껏 수석 생활을 하면서 스스로 익힌 수석의 즐거움은 이렇다.


  첫째가 탐석을 준비하여 기다리는 기쁨이다.

  탐석일이 정해지면 며칠 전부터 손을 꼽으며 기다린다. 그러면서 탐석에 필요한 장갑, 배낭, 모자, 갈고리 등을 챙긴다.


  둘째가 탐석하는 즐거움이다.

  돌밭에 서면 무수히 많은 돌 속에서 내게 올 수석을 찾는 일은 마치 숨바꼭질하는 것과 같다. 때로는 땅을 파기도 하고 수없이 많은 돌을 하나씩 헤집어 보기도 하는 재미는 스릴 이상의 짜릿한 감흥을 안겨 준다.


  셋째는 명석(明石)을 하는 즐거움이다.

  좋은 수석 감을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만큼 좋은 수석 감을 만났을 때의 쾌감이란 형용키 어렵다. 아마도 그런 즐거움이 없다면 탐석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날은 허탕을 쳤다하더라도 명석에 대한 기대가 우리를 돌밭으로 유인한다.


  넷째는 보여 주는 즐거움이다.

  혼자서의 감상이 즐거움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남과 함께 감상하며 의견을 주고받는 것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인간애마저 느끼게 한다.


  다섯째는 소장하는 즐거움이다.

  수석을 정리 정돈하여 말끔히 진열해 놓으면 집안 분위기는 물론 아이들의 정서 교육에도 큰 보탬이 된다. 무엇보다 수석을 통해 자연을 배우고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어서 좋다.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건강의 즐거움이다.

  산지가 수려한 강변을 거닐며 맑은 공기를 한껏 호흡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명석은 물이 깨끗하고 경치가 좋은 곳에서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런 곳에서 걷고, 돌을 들어올리고, 대화도 나누는 일들이 우리의 심신을 더욱 살찌게 하여 준다.


  난 지금도 탐석을 갈 때는 첫 탐석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는다. 「겸손하자」.「배우자」. 이 두 가지는 아마 내가 탐석 생활을 하는 동안 영원히 잊지 않을 좌우명이다.

대 보름달




  계유년 새해 첫 탐석을 남강수석회는 93년 1월 10일 아침 6시에 회원 전원이 참석하여 상계동을 출발하여 강천으로 탐석을 갔다.

  회원들의 새해에 거는 기대감은 대단했다.

  모두가 새 출발하는 각오로 마음을 가다듬고 정성껏 석신제를 지내고 탐석에 임했다. 회원들은 돌무더기 속에서 흙더미 속에서 한 점을 얻어서 금년에는 남보다 더 좋은 돌을 전시하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히 보였다.

  겨울철인데도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동호인들은 상당히 많아 골재 채취장 경비가 위험하니 밖으로 나가라고 하자 어느 동호인이 말하기를

  “여기에 돌을 주우려고 온 사람들의 품삯을 한 번 따져보라     면서 조심할 테니 염려 마십시오.”

  라고 말하니 경비도 이해가 가는지

  “그럼 조심들 하십시오.”

  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다.

  우리 회원들은 저마다 열심히 탐석을 하면서 한 점 주웠느냐고 물어 보면

  “돌이 있어야지 참 힘들어. 오늘은 건강을 주웠다고 생각해야     지, 명석이 흔한가.”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는 모습들이었다.

  나도 열심히 새로운 각오로 탐석을 하였지만 돌 한 점 찾지 못하고 시계를 보니 11시가 넘어 오늘은 방향을 전환해보자고 생각을 하고 문양석으로 눈을 돌리고 열심히 탐석을 했지만, 문양석도 눈에 띄지 않아서 이젠 마음을 비우자.  욕심을 가지면 오히려 돌이 안 보인다고 생각을 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탐석을 하면서 어제 저녁 꿈을 생각해보았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어렴풋이 나타나시었다가 말없이 살며시 자취를 감추시는데

  인생이란 무엇인가? 돌을 왜 줍는가?

  천하 명석도 내 목숨 없어지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돌과의 만남도 중요하지만 사람과의 만남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데

  내 자신도 내 것이 아닌 것을

  명석도 영원한 내 것이 아닐진대

  왜? 명석타령을 할까?

명상에 잠기면서 탐석을 하였지만 돌다운 돌을 줍지 못했다.

  오늘도 탐석을 마쳐야 할 시간이 다가와 마음을 가다듬고 열심히 돌무더기 속에 있는 돌을 뒤지는데 월석이 눈에 띄었다. 월을 보니 컴퍼스로 그린 것 같이 동그랗게 튀어나와 배낭에 집어넣고 오늘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으로 탐석을 하는데 탐석을 마치자는 소리가 들리어 봉고차가 있는 곳으로 갔다. 배낭을 내려놓자 이재득 회장이 품평회를 하자고 하자 이시종 회원이 오석 인상석을 내놓고서 품평회를 하였다. 나는 이시종 회원이 주운 인상석이 장원이라고 하였다. 추창호 회원은 월석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으며 한 호 회원은 월석이 장원이라고 말했다. 이재득 회장이 3점 모두 장원이라고 판정을 내리면서 남강 첫 탐석에 크나큰 수확이라면서 올해에는 남강수석회에 석복이 터지겠다고 말했다.

  강천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2시경에 출발하여 차안에서 금년에는 무엇인가 이루어지겠다며 첫 탐석에 3점의 명석을 주웠으며, 회원들도 100% 참석하였으니 서광이 비친다고들 말했다.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사이에 차는 서울 이시종 회원 집에 도착하여 돌도 구경하고 커피를 나누면서 석담을 나누고 나서 상계동에 왔다.

  주워온 20㎝×13㎝×8㎝의 월석을 집에 와서 연출하여 놓고 감상을 하는데 보면 볼수록 심취되어 감을 알 수 있었다. 양각으로 튀어나온 월 사람이 컴퍼스로 그려도 저렇게 동그랗게 그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돌과 월의 크기며 월의 위치 또한 적당한 곳에 있어 구도가 잘 맞았다. 산에 구름에 별에 은하수까지 펼쳐져 있어 자연의 신비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신비의 돌무덤




  제석산에 있는 신비의 돌무덤을 알게 되었다.

  서울 남강수석회 회원 중에 최낙성 동호인은 제석산 밑 구룡리에서 태어나 돌과는 남다른 인연이 있는 사람이다. 애석 생활은 물론 직업도 석재공장 공장장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그는 체격이 우람하게 생겼으며 성격 또한 남자중의 남자다. 탐석을 가보아도 소품에는 관심이 없고 대작만을 선호한다. 우리회원 중에 대작을 하면 제일 먼저 운반을 하고 탐석 역시 가장 열심히 하고 탐석이 끝나면 어렵게 주운 돌을 회원들한테 나누어주기도 하며 노원구 지역 수석동호인들의 애경사 시에는 언제나 솔선수범이다.

  모든 일에 모범적인 그는 또 특이한 면이 있기도 하다. 그러니까 1991년 3월 3일 강천리로 탐석을 가는데 팔당댐 아래에서 갑자기 차를 세우고 내렸다. 회원들은

  “최가 어제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셨나 봐. 그러니까 어떻게 참    아 별수 없지.”

  하면서 큰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볼일을 보는 것이 아니었다. 강과 산을 바라보면서 땅을 들여다보고 나서 승차하는 것이었다. 회원인 추창호가 뭔가 알겠다는 듯이 ‘아! 그렇다’하고는 여운을 남겼다.

  영문을 모르는 오장희 회원은 ,

  “명석을 주우려고 기도 했나봐.”

  하였지만 차안은 좀 침울했다.

  차는 어느덧 팔당댐을 지나고 있을 무렵 장태상 원로 회원이 영구차를 가리키며 “오늘은 명석하겠어” 하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탐석 갈 때 영구차를 보면 명석한다고 했다.

  차안의 분위기는 좀 달라지기 시작하여 이야기를 하면서 가는 도중 어느덧 강천리에 도착했다. 탐석을 열심히 하였지만 수확은 별로 없었다.

  탐석을 마치고 아쉬움 속에서 서울로 돌아가려는 순간 최낙성 회원은 호주머니 속에서 화장지를 꺼내면서

  “쫌생이 쓰것나 봐.”

  하면서 소품 한 점을 내놓았을 때, 우리 회원들은

  “야!”

  하고 소리쳤다.

  안효준 회원은

  “야! 그것 참 재미있다.”

  며 그 소품에 관심을 보였다. 이재득 회원은 음큼하게 이제서야 돌을 보여 준다면서 장원주살 각오하라고 했고 이태환 회장은

  “최낙성 회원은 소품은 안 어울리잖아.”

  하고 크게 웃었다.


  한참동안 말이 없던 최낙성 회원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내가 1972년도에 서울에 상경하여 1980년대부터 수석에     입문하여 애석 생활을 해오면서 말못하고 있는 사연이 하나    있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계속 이었다.

  “제석산에 신비의 돌무덤이 있는데 말이요, 그건 우리 외삼촌    께서 1985년 8월 15일 우리 집에 오셔서 내 돌을 보시더니    알려주신 것이오. 하시는 말씀이 돌들이 오리 주둥이 같이     생겼는데 서로 엉켜있어 돌이 빠지지가 않더라. 제석산 돌도    괜찮으냐?”

  수석을 좋아하는 사람은 같은 생각이겠지만 이 말을 들은 최낙성 회원은 어떤 돌일까 하는 궁금증에 가슴이 떨리고 좀이 쑤셔서 잠을 못 자고 다음날 바로 외삼촌과 같이 제석산에 갔다는 것이다.

  제선산에 가보니 산사태로 인하여 신비의 돌무덤은 흙으로 쌓여있었다. 그러나 돌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냥 돌아올 수가 없어서 파보려고 했지만 바위가 신비의 돌무덤을 꼭 덮고 있어 도저히 파볼 수가 없었으며 더욱이 외삼촌께서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냥 돌아가자 하여 돌아왔다.

  그 곳은 옛날 일본 사람들이 집단 거주했으며 그들의 공동묘지인데 함부로 건드리면 큰 화를 입는다고 한다. 이 곳을 아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니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전설 같은 돌무덤이야기 여간 신비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떤 기괴한 돌이 묻혀 있을까?



















구인방 탐석




  서울 상계동 구인방수석회는 1993년 2월 15일 새벽 4시에 상계동을 출발하여 용대리로 정기탐석을 떠났다. 수석인들의 마음은 대동소이하지만 상계동 구인방수석회 회원들은 계유년에는 수석인 가정에 안녕과 석복이 내려지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에서 석신제를 올렸다.

  상계동에 8개의 단위수석회가 있지만 구인방수석회는 수석상인들로 구성되어 탐석은 물론 친목 또한 대단하며 노원구 수석연합회를 구성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지난해 미도파 백화점에서 개최한 전시회에 크나큰 기여를 했다.

  상계동은 옛 마들 평야가 동양 최대의 아파트 단지로 변모되었지만 수석인들의 마음만은 인정이 넘치고 있으며 단합 또한 대단하다. 그럴만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작년에 합동 탐석을 가다가 교통사고로 아홉 명 모두가 생명을 잃을 뻔했던 그 끔직한 일을 생각하면 평생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회원 모두는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그 못난 놈을 하나 주워 금년 전시회에 출품하여 보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땅을 파보고 힘이 들면 돌밭을 거닐면서 찾아보았지만 「그 못난 놈이 나와야 말이지」힘에 지친 임갑진 고문이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이달우 회원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못난 놈 하나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니 난 이젠 땅 안 팔란    다.”

  “잘 들 파보거라.”

  하며 소쇠랑을 내던졌다.

  회원들은 이상해서 왜 그러는지 궁금히 여겼는데 알고 보니 골석 단봉석 명석을 주운 것이었다. 회원들은 열을 올리어 힘든 줄도 모르고 땅을 두더지 같이 파고 힘들 때면 담배 한 대 피우고 나서 또 파고 찾고 하였지만 「그 못난 놈이 나와야 말이지」, 지친 윤재춘 회장은

  “힘들 그만 빼, 다 인연이 있어야 명석을 얻는 것이지 욕심     대로되나.”

  하면서 탐석을 마치자고 하자 김성일 회원이

  “못난 놈이 이제야 나한테 오는구먼.”

  하면서 한 점을 들어 보이자 회원들은

  “그놈 참 못생겼네, 진작 좀 나타나지 이제야 나타날게 무엇    인고”

  하면서 석복이 있는 사람은 따로 있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구인방 회원들은 김성일 회원이 주운 골석과 이달우 회원이 주운 골석을 비교하면서 이놈이 잘 생겼다. 저놈이 못 생겼다 하면서 “돌이 잘 생기면 되느냐 못생겨야 인기”라고 김종수 회원이 말하자 박노수 회원은

  “요새는 사람도 못 생겨야 인기가 더 많더라”

  고 하니까 방덕상 회원이

  “돌하고 사람하고 같으냐? 돌은 돌이고 사람은 사람이다.”

  라고 말하면서 탐석 그만하고 가자고 소리를 질러 탐석을 끝내고 용대리를 출발하여 서울로 돌아왔다.

  금년 11월에 가질 제2회 노원구 수석연합전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하면서 뜻깊은 정기 탐색을 마쳤다.
















첫눈과 함께한 조치골 탐석




  고요한 새벽 4시 첫 눈이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겨울을 알리는 첫눈을 바라보면서 나의 인생과 수석생활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난 10월 11일 제1회 ‘마들수석연합전’을 성공리에 마치고 회원의 단합을 더욱 굳히고자, 회원 40여명이 5시 20분에 상계동을 출발하여 조치골로 합동 탐석을 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첫눈이 내리고 첫 탐석이라 그런지 회원들은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어느덧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김원태 사무총장의 사회로 간단한 행사가 진행되었다. ’97 동계 유니버시아드대회기념 수석대전 출품 안내와 서울지하철공사 수석전에 대한 공지사항 등 그 동안의 이런 저런 사항을 이야기하는 동안 버스는 목적지인 조치골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좀 쌀쌀했지만 좋은 돌을 하나 얻겠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각자가 기다리는 돌님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한 호 회윈과 같이 물가를 거닐면서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면서 돌을 찾았지만 안기는 돌님이 없었다. 그래서 방향을 바꾸어 돌무더기가 있는 곳으로 가서 돌과 흙을 파헤쳐 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소득이 없었다. 세상 살아가는 것이나 돌 줍는 것이나 거의 비슷해서 억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밭을 거닐었다. 오늘 첫 합동 탐석에서 한두 사람이라도 괜찮은 돌을 얻어야 할텐데 하면서 ‘인연이 있으면 주어지겠지. 석복이 있어야지 억지로 되나’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묵석(墨石) 하나가 손짓을 했다. 묵석을 집어들고 갈고리로 톡톡 때려보았더니 구멍이 뚫리어 물 속에 가서 닦아보니 장원은 못 되어도 준장원은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12시가 가까워지자 회원들이 하나둘씩 버스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어 나도 허겁지겁 버스가 있는 곳으로 갔다. 벌써 품평회를 하겠다고 주운 돌들을 일렬로 늘어놓고 있었다. 나는

  “명석을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엄재춘 회원이 내 돌을 내보이라고 하여 나는 묵석투를 내놓았더니

  “역시 회장이 다르네. 오늘 장원은 오회장 돌이구먼”

  하는 말에 재치 있는 정경문 운영위원장이

  “회장돌은 제외해야 돼”

  라고 말했다.

  정천득 고문과 이달우 부회장이 내 돌은 제외시키고 장원, 준장원, 아차상을 선정하였다.

  출발에 앞서, 지난 제1회 수석전에 여러 회원들이 고생을 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노고가 많은 정경문 운영위원장과 길명천 전시위원에게 공로패를 수여하고 시상을 한 후 버스 안에서 점심도시락을 먹고 12시 20분 경에 귀경하기 시작했다.

  피곤함도 잊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신진성 회원이 마이크를 잡고는 지금부터 서울까지 즐겁게 가자고 하면서 버스 앞좌석에 앉은 사람부터 노래를 시키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노래가 끝나고 두 번째로 한 호 회원이 노래를 마치더니 오늘 장원한 자신의 돌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어떤 분이 돌을 주어놓고 그냥 가기에

  “왜 안 가져가세요? 괜찮은 돌인데요.”

  하니까

  “마음에 들면 가지세요”

  하기에 배낭에 넣었는데 장원이 되어 그 분(박수암 회원)께 트로피를 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박수암 회원은 주고 싶어서 주었을 뿐이라고 말해서 회원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돌을 사랑하는 애석인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이라는 것을 느꼈다. 이런저런 노래와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즐기는 동안에 벌써 버스는 서울에 도착하였다.

  마들수석연합회가 이번 기회를 통하여 더욱 발전하기를 빌면서......




































Ⅳ.수석(壽石) 용어












수석 용어




골석(骨石)          골이 파져 수마가 되어 속돌만 남아

                        앙상하게 마른 돌.

곰보돌                돌 표면이 벌집처럼 패인 돌.

                        제주도, 한탄강의 현무암에서 볼 수 있음.

괴석(怪石)          괴상하게 생긴 돌.

교환석(交煥石)      서로 바꾸는 돌.

구입석(購入石)      돈을 주고 산 돌.

굴림돌              수마가 덜 된 돌을 자갈이나 모래와 함께

                        굴려서 연마시킨 돌.

                        굴림돌은 수석의 범주에 넣지 않음.

기석(奇石)          기묘하게 생긴 돌.

깨돌                   깨 같은 까막까막한 미립점이

                        박혀 있는 돌.

꼬임돌                 제주도 화산석 같이 꼬여 있는 돌.



난석(蘭石)          난을 붙인 돌.

노자공(路子工)       백제 사람.

                        석가산을 최초로 일본에 전수시킨 사람.



따로돌               ① 造石. ② 사람이 손을 대서 만든 돌.

때깔                   수석의 빛깔.



먹돌                   검은 돌. 묵석(墨石).

명석(明石)          뛰어난 돌.

몽돌                   쓸모 없으면서 크지 않은 둥글둥글한 돌.

몽중석(夢中石)      꿈속에서 본 돌.

묵석(墨石)          검은 돌.

물돌                   수반에 연출할 수 있는 돌.

미석(美石)          색채석(色彩石). 미석의 조건에는

                        ① 색감이 선명하고 생기가 있어야 함.

                        ② 줄무늬가 있을 때는 규칙적이어야 함.

                        ③ 수마상태가 양호해야 함.

                        ④ 파가 없어야 함.



바가지돌             바가지처럼 물을 담을 수 있다는 돌.

배석도                미원장의 괴석 그림. 미원장은 관아에 있는

                        괴석에 옷(도포)을 입히고 절하며

                        석문(돌어르신네)이라 하였음.

변성암(變成岩)      변성작용으로 그 성질이나 조직이 변한

                        암석을 통틀어 이르는 말.

부봉(副峰)          산수경석에서 주봉 다음으로 높은 봉.

뼈돌                   단단하고 앙상하며 생긴 모습이

                        동물의 뼈처럼 보이는 돌.



산지(産地)          수석을 탐석한 곳. 탐석지(探石地).

색감(色感)          어떤 색에서 받는 느낌. 수석의 색감은

                        생기가 있고 선명할수록 좋음.

색채석(色彩石)      색깔을 띠고 있는 돌.

석감(石感)          돌에 대한 감정을 말하는 것으로

                        수석을 봤을 때의 느낌.

석록(石錄)          돌에 대한 기록과 사진 등을 엮어 만든 책.

석명(石名)          수석에 붙인 고유한 이름.

석보(石譜)          돌의 계통에 따라 기록한 책으로

                        돌의 출처와 소장자 등을 기록함.

석정(石精)          돌에 대한 애정을 말하는 것으로

                        돌을 사랑한다는 뜻보다는 돌에 사랑이 담겨

                        있다는 뜻.

석질(石質)          돌의 본 바탕. 돌의 품질.

                        모오스 경도 4이상의 경도, 정감 어린 질감,

                        입자 응결의 치밀도가 높을수록

                        좋은 석질이다.

섭취돌               변변하지 못한 돌.

소장(所藏)          자기 것으로 간직함.

소품석(小品石)      작은 수석. 보통은 15㎝ 이하인 돌.

속돌                   겉이 물씻김으로 떨어져 나가고

                        속만 남은 돌.

손질                   돌 자체를 변형시키지 않고 때를 씻어

                        내거나 흙따위를 털어 내는 일.

수림석(樹林石)      여러 개의 나무가 늘어서 있는

                        모양의 문양석.

수마(水磨)          물씻김. 물결에 씻기어 서슬이 닳음.

수반(水盤)          꽃을 꽂거나 수석 따위를 올려놓는데 쓰이는

                        바닥이 평평하고 운두가 낮은 그릇.

수반석(水盤石)      수반에 연출할 수 있는 돌.

수석(水石)          ① 물과 돌.

                        ② 물과 돌로 이루어진 경치.

                        ③ 물 속에 있는 돌. 수석(壽石)과 혼용.

수석(壽石)          ① 자연의 아름다움을 축소시켰거나

                        물건의 형태 또는 무늬를 지니어 장식용으로

                        쓰이는 작은 자연석.

                        ② 삼라만상의 형상을 닮은 축소된 돌로

                        실내에 놓고 그 미를 감상하는 자연석.

수석전(壽石展)      수석 전시회.

수택(手澤)          ① 자주 손이 닿아서 남아있는 손때나 윤택.

                        ② 수석을 손으로 자주 만지고 문질러 생긴

                        윤택.

썩돌                   침식되어 패인 모습이 썩은 듯이 보이는 돌.



알돌                   둥근 돌.

알수반                모래를 깔지 않은 수반.

애석(愛石)          오랫동안 소장하여 애착이 가는 돌.

양석(良石)          좋은 돌.

                        양석의 일반 조건은 형태미와 개성, 질감이

                        좋은 돌, 색감과 농도, 고태미, 자연미.

양석(養石)          생경한 느낌이 나는 수석을 성숙되고

                        고태미가 나는 수석이 되도록 함.

                        양석 방법은 햇볕에 쬐고 손으로 자주

                        문지르며 일정한 간격으로 물을 준다.

양화소록(養花小錄)  강희안(姜希顔)이 지은 책.

                        괴석 및 양태법 등이 실림.

연마석(硏磨石)      인위적으로 갈아서 겉을 반들반들하게

                        만든 돌.

엇갈림돌              돌이 깨어졌다가 엇갈려 붙은 돌을 말함.

연출(演出)          수석을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방향과 위치를 잡는 작업.

                        좌대 연출, 수반 연출.

영산석(靈山石)      백제 사람이 일본에 전해준

                        일본 최초의 수석.

예석기(禮石記)       조선 김영이 지은 책. 애석 정신을 설파.

오석(烏石)            검은 돌.

운두                    ① 그릇이나 신 따위 둘레의 높이.

                         ② 수반 둘레의 높이.

운림석보(雲林石譜)   宋代 사관이 지은 책.

                         돌산지를 소개했는데 각종 괴석을

                         130여 항(項)으로 분류함.

일생일석(一生一石)   평생동안 명석은 한 점밖에 구할 수 없다는

                         뜻으로 그만큼 명석을 얻기가 어렵다는 말.



자국돌                 움푹움푹 패어 들어간 자국이 있는 돌.

자탐석(自探石)      자기가 직접 탐석한 돌.

장석(長石)          길이가 유난히 긴 수석.

전래석(傳來石)      조상이나 선조로부터 대대로

                        물려 내려온 돌.

정원석(庭園石)      정원에 조경으로 놓은 큰 돌.

조석(造石)          깎거나 구멍을 뚫는 등 인위적으로 만든 돌.

좌대(座臺)          수석을 바로 놓기 위해

                        나무로 깎아 만든 받침. 돌받침.

좌대석(座臺石)      좌대에 연출하는 돌.

주름돌                 움푹움푹 패인 자국이 줄을 이루고 있는 돌.

中國三代怪石家      미원장, 백낙천, 소동파.

지판(地板)          수석 밑에 까는 널빤지.

진묵석                짙은 먹물 색의 돌.

진오석                가장 검은 돌.

질감(質感)          재질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독특한 느낌.

                        수석의 질감은 중량감, 경감, 수마상태와

                        관련이 있다.

쪼코석                초코렛석. 초코렛 색깔을 가진 돌.



촌석(寸石)          아주 작은 돌. 대체로 10㎝ 이하인 돌.

축경(縮景)          자연경을 축소시킨 경치.

                        수석은 자연의 축경임.



탐석(探石)          강가나 바닷가 혹은 산 등지에서

                        돌을 줍는 것.

탐석지(探石地)      ① 탐석 한 곳. ② 산지(産地).

토중석(土中石)      특정 지역의 산이나 들의 땅속에서 파낸 돌.

                        (일반적으로 강, 바다에서 탐석하는 것과는

                        다름)

투(透)              구멍.



해석(海石)          바닷돌.

화대(花臺)          화분이나 꽃꽂이 등을 올려놓는 상(床).

화문석(花紋席)      땅 속의 마그마가 분출하여 식어서 굳어진

                        돌.

희귀석(稀貴石)      드물고 진귀한 돌.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지은이 오양환

 

발행일 :1999년 11월 26일

지은이 소개

국립서울산업대학교 컴퓨터공학과 4년 졸업

서울특별시공무원

노원수석연합회장

마들수석연합회장

수석평론가

수필가

연락처 : 010-5567-2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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