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이 잠들지 못하는 밤, 나누고 싶은 마음 한 칸을 지켜낼 수 있을까
국가: 한국
감독: 김태훈
출연: 김영성, 최준우
우연일까 운명일까. 식품공장에서 근무하는 기영(김영성)과 집을 나온 가출청소년 길호(최준우)는 우연히 가족아닌 가족이 된다. 겨울, 집을 나와 거리를 떠돌아 다니며 잠을 자던 길호는 기영의 집앞에서 잠을 자다가 기영을 만나다. 기영은 길호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일까? 기영을 집으로 들이고 며칠 간 잠을 자도 된다고 한다. 기영은 길호에게 냄새난다며 자기 옷을 던져주고는 씻으라고 한다. 투박하고 불친절해 보이는 기영에게서 군더더기 없는 날것의 정과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고, 마음껏 씻을 수 있고,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진정한 쉼을 위한 최선의 공간이다. 혼자 사는 영성과 혼자가 되어버린 길호는 둘이 되어 가족을 이룬 것만 같다.
기영은 외롭고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 보이나 쉴 수 있는 집이 있고, 길호는 돌봄이 필요하나 집이 없다. 길호가 기영의 집에 들어와 살면서 조금씩 집의 공기가 달라진다. 혼자의 삶이 익숙했던 기영은 '나와 너'의 관계에 익숙해지고, '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생명처럼 두 사람의 관계에서 움트기 시작한다. 기영은 생명이 움트는 장소를 제공하고, 길호는 자신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을 키우며 집안을 사람사는 집으로 만들어준다.
길호의 거리밖 친구들이 찾아오면서 길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기영의 집은 그들이 잠을 자는 공간이 되었다. 대여섯 명의 청소년들이 거실에 널부러져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며 그들의 고단함과 피곤함이 느껴진다. 잠을 잘 때는 누구나 순수하고 온순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아침에 들어온 기영은 그 모습을 보고 크게 화를 내며 그들 모두를 좇아낸다. 길호의 친구는 잠을 잤을 뿐이라며 화를 낸다. 길호는 다시 친구들과 거리를 헤매고 비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기영은 화가 가라앉으며 길호가 걱정되어 밤거리를 찾아 헤매는데 그 모습이 마치 아들을 찾는 아버지같다. 어느새 기영과 길호는 가족이 되어있었다. 그 마음이 전해져서일까. 길호는 거리의 친구들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기영의 집으로 찾아간다. 영화는 두 사람이 거실에서 편한대로 널부러져 자는 장면으로 마친다.
영화는 흔하게 느껴지는 주변의 일상을 그려내는 듯하다. 혼자의 삶과 둘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뭔가를 보여주거나 장면이 화려하거나 긴장감이 있지는 않다. 그래서 더 커다란 종소리의 파동처럼 은근하면서 깊게 마음에 울림을 준다. 결코 가볍지 않지만 누구나가 갈망하는 마음 깊은 곳의 무언가를 묵직하고 힘있으면서도 부드럽게 지긋이 깨워주는 것만 같다.
청소년들이 들고 다니는 랜턴의 불빛과 머리띠 조명에서 나오는 불빛은 그들이 사회에 보내는 메시지 같기도 하다. 비록 내 삶이 어둡다고 느껴져도 희망을 가지고 싶은 청소년들의 마음같기도 하다. 기영은 빛 바랜 자신의 희망을 희미하지만 애절함을 담은 길호의 희망으로부터 느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위로와 돌봄이 필요하다. 편안한 단잠을 잘 수있는, 그렇게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공간은 누구나에게,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필요해 보인다. 잠을 잠으로 내일을 꿈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주변에서 다양한 피로와 지침을 본다. 현실을 살려면 필요한 돈을 벌어야 하니 일에 매진해야 하고, 집안일하느라 하루가 다 가고, 자녀들을 잘 키우고자하는 일념으로 나를 잊고 고군분투하며 사는 부모님들이 있다. 부모님의 기대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나는 누구인지 혼란스러워하며 바득바득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이 있다. 기댈 곳이 마땅치 않아 내 삶은 내가 살겠다며 일찌감치 사회로 나와 거리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희망'이 있다. 희망을 살아내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자기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지친다. 지친 몸과 마음을 쉬어갈 수 있다면 좀 더 여유있고 유연해진 몸과 마음이 되어 내 안의 '희망'을 마주하고, 타인의 '희망'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잠이 필요하다. 지금 내 삶이 어떠하든 '잠'을 자고 나면 새 날이 시작되고 새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