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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조례 폐지안, 자립생활조례 개악안’ 서울시의회 본회의 통과
본회의에서 유만희 의원 “유엔협약에 탈시설 용어 없다” 사실 왜곡
서울시의회 집결한 장애계 분노 “강경 대응 투쟁 이어 나간다”
25일 오후 4시경, 서울시의회 제324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의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은 재석의원 86명 중 61명이 찬성, 24명이 반대, 1명이 기권 표를 던져 가결됐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지원조례)가 결국 폐지됐다. 제정 2년 만의 일이다.
25일 오후 2시, 서울시의회 제324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이 통과됐다. 재석의원 86명 중 61명이 찬성, 24명이 반대, 1명이 기권 표를 던졌다. ‘탈시설’ 용어를 전면 부정한 ‘서울특별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아래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또한 가결됐다. 이 개정안에는 재석의원 83명 중 65명이 찬성, 9명이 반대, 9명이 기권했다.
이날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등이 본희의 시작 30분 전부터 피켓팅을 하며 두 조례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25일, 서울시의회 본관 앞에서는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등이 본희의 시작 30분 전부터 피켓팅을 하며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의 부결을 촉구했다. 사진 김소영
- 유만희 의원 “유엔협약에 탈시설 용어 없다” 사실 왜곡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 표결 전, 찬반 토론이 열렸다. 폐지 반대에는 오금란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찬성에는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한 유만희 의원(국민의힘)이 나섰다.
오금란 의원은 “탈시설지원조례는 장애인이 거주시설에서 벗어나 지역사회에서 자립해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부산 형제원, 성람재단, 인강원 등 크고 작은 시설들에서 장애인 학대 사건이 발생했다”며 “서울시 탈시설 정책은 2009년 석암재단 산하 요양원에서 거주했던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 자립생활을 하겠다’고 선언한 마로니에공원 농성 투쟁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그 시간이 무색하게 2년 만에 폐지의 기로에 서게 됐다”고 참담함을 표했다.
오 의원은 ‘탈시설 권리’를 명시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아래 협약)을 한국 정부가 비준한 사실을 이야기하며 탈시설지원조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협약 19조에는 “모든 장애인이 다른 이들과 동등한 선택을 통하여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동등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오 의원은 자폐성장애를 가진 28살 아들의 부모임을 밝히기도 했다. “아들이 다른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살고 싶은 곳을 스스로 결정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게 하고 싶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에 대해 ‘반대’ 표를 던져달라”고 호소했다.
서울시의회 제324회 정례회 본회의에서 유만희 의원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을 찬성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회 생중계 캡처
이에 대해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주장하는 유만희 의원은 “오금란 의원이 많은 오해를 갖고 계신 것 같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유 의원은 “협약은 ‘탈시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서 “‘탈시설’은 협약이 아닌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아래 위원회)가 발표한 해석지침인 ‘일반논평 5호’에서 사용된 용어다. 협약 19조에는 ‘지역사회 동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의원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다. 협약은 국제협약 특성상 일반적인 문장으로 쓰여 있어 당사국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협약의 특정 조항을 분석‧해석하는 ‘일반논평’을 통해 당사국의 구체적 의무와 역할을 담고 있다. 탈시설을 명시한 일반논평 5호는 협약 19조에 대한 일종의 해설서다. 즉, 협약에 ‘탈시설’이라는 용어는 없으나 이를 곧 ‘위원회가 탈시설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위원회는 이처럼 탈시설을 둘러싼 여러 이견이 일자 2022년에 ‘탈시설 가이드라인’을 발간해 탈시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유 의원은 이러한 맥락을 삭제한 채 “오해와 갈등을 가져온 ‘탈시설’ 용어를 대체하여 현재 정부에서도 사용하고 있는 보다 중립적인 용어인 ‘자립지원’을 사용하고자 한다”며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이유를 설명했다.
유 의원은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로 장애인들의 자립 근거가 없어졌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면서 “개정안에 탈시설지원조례의 주요 사업들을 이관하고 내용을 보완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당 개정안은 애초에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를 가정하고 발의된 것으로, 오히려 ‘자립지원’을 앞세워 ‘탈시설’ 용어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장애계는 ‘개악안’이라고 비판해 왔다.
각 13분, 5분씩 진행된 찬반토론을 들은 서울시의회 의원들은 결국 유 의원의 손을 들어줬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시설 거주자들, 탈시설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영영 시설에…”
서울시의회 앞에서 피켓팅을 하던 장애인단체들은 본회의 시작에 맞춰 탈시설지원조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이어 나갔다.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여전히 서울시에만 1900여 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에 살고 있다”면서 “서울시의원들은 ‘탈시설지원조례가 폐지되면 피해 보는 이가 누구냐’고 묻는다. 조례가 폐지되면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자신이 탈시설을 할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영영 시설에 살게 된다. 바로 그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설을 주거선택권으로 포장하지 말라. 시설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자립생활권리를 침해하는 구조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푸름 서울장차연 활동가는 지난 17일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 회의에서 정상훈 서울시 복지정책실장이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시설을 나간 장애인이 20% 이상이다. 본인 의사에 따라 시설을 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 발언을 지적했다.
민 활동가는 “정상훈 복지정책실장은 마치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을 강제로 탈시설시킨 것처럼 탈시설권리를 왜곡했다. 탈시설은 권리인데 ‘강제 탈시설’이 말이 되나”면서 “서울시는 언제까지 뒷짐 지고 시설 거주 장애인이 ‘탈시설하고 싶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그것은 ‘책임 방기’”라고 질타했다. 이어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에게 자립 정보를 제공하고 적극적으로 탈시설을 지원하는 것이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조례안과 자립생활지원조례 개정안 부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계는 두 조례가 복지위를 통과한 지난 17일부터 서울 지하철 곳곳에서 이를 규탄하는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진행해 왔다. 서울장차연은 “천문학적인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장애인 탈시설을 막아서는 서울시의 행보에 대응하는 투쟁을 앞으로도 이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오는 27일 ‘서울 약자동행포럼’이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앞에서 ‘장애인권리 약탈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종일 집회를 열 예정이다.
한편, 이날 폐지된 탈시설지원조례는 2022년 6월 21일 서울시의회에서 통과되어 제정됐다. 그러나 2023년 5월, 탈시설 반대 세력이 이를 폐지하는 주민조례를 청구하고, 올해 4월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이 수리하면서 탈시설지원조례는 위기에 처했다. 25일, 서울시의회 본회의에서 최종 통과되면서 장애인 탈시설 지원의 법적 근거가 서울시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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