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이야기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절을 보겠습니다.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서,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였다.
2 그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사람을 두고서,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마태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세례 요한의 사역을 예언의 성취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40장 3~5절을 보겠습니다.
3 한 소리가 외친다. "광야에 주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길을 곧게 내어라.
4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5 주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마태는 이렇게 예수님의 탄생과 생애와 활동 전반을 구약성서에서 예언한 메시아의 성취로 이해했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구약성서 전체에서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은 처녀잉태설에서 보듯이,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성취라면서 신약성서 기자들이 구약성서에서 인용한 본문들 중에는 무리하게 연결된 구절이 많다고 지적합니다. 이 문제는 해당되는 본문이 나올 때마다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세례 요한이 민중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5~6절을 보겠습니다.
5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사람들이 다 그에게로 나아가서,
6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런데 이 본문과 거의 같은 내용이 마가복음 1장 5절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해당 본문을 보겠습니다.
5 그래서 온 유대 지방 사람들과 온 예루살렘 주민들이 그에게로 나아가서,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단어의 순서만 조금 바뀌었을 뿐 두 복음서의 기록이 거의 같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마태가 마가복음의 자료를 가져와서 거의 그대로 담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는 마가복음 본문의 90% 이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마태복음이 마가복음의 복사판은 아닙니다. 마태복음에는 마가복음에는 없는 자료들도 많고, 마태만의 독특한 신학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을 보겠습니다. 7~10절입니다.
7 요한은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이 많이들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세례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만 회개하고 삶을 돌이키지 않는 것을 세례 요한이 꾸짖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본문은 누가복음 3장 7~9절의 본문과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해당 본문을 보겠습니다.
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는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은 우리의 조상이다' 하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였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함께 담겨있는 이 기록은 마가복음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두 복음서의 기록이 너무나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거의 같은 시기에 쓰여지고 유통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참조했다고 보는 건 적절치 않습니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두 복음서 기자가 공통적으로 참조한 어떤 자료, 즉 Q자료가 있었다고 상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본문의 앞부분에서, 마태는 ‘요한은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이 많이들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라고 말했는데, 누가는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말하였다.’ 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마태와 누가가 공통의 어떤 자료를 참고하면서도 자기들의 신학에 따라 주관적인 해석을 가한 부분이 있다는 점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주로 유대인들을 염두에 두고 쓴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 쓴 복음서입니다. 그래서 굳이 유다 분파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11~12절을 보겠습니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신 분이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그는 손에 키를 들었으니, 자기의 타작 마당을 깨끗이 하여,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무리에게 한 말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 뒤에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거랍니다. 스스로를 낮추면서 상대적으로 예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을 ‘내 뒤에 오시는 이’라고 말함으로써, 자기의 사명을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데까지라고 스스로 선언합니다.
그러나 현대 신학자들 중에 이 본문을 정말로 세례 요한이 한 말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현대 신학자들이 해석하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 그리고 그들의 제자들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이 예수님보다 먼저 이루어졌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 또한 예수님의 제자들 못지않게 많았는데, 성격이 비슷한 두 세력이 공존하면서 제자들이 서로 경쟁의식을 느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스승의 제자들은 스승이 죽은 후에도 한동안 경쟁과 갈등관계에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그러나 결국 요한의 제자들이 이룩한 공동체는 사라졌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룩한 공동체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렇게 복음서를 기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보기에, 이제는 성격이 엇비슷한 세례 요한의 세력이 사라져야 복음이 힘차게 전파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세례 요한 지우기에 나섰고 그 흔적이 본문에 이렇게 나타나 있는 것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서의 순수성과 절대성을 흔드는 이런 해석을 처음 접하는 신자들은 대부분 거부감을 갖게 마련입니다. 신자들만이 아니라 목회자나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생들도 마찬가지구요.
제가 장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1980년의 일이니 오래 전이긴 하지만, 동료 신학생들 중에는 이런 해석을 하는 교수를 거의 악마 취급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 중에 목사 안수를 받은 다음에도 생각이 변하지 않은 친구들이 전혀 없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은 그때의 추억을 웃어넘길 정도로 이 정도의 본문 해석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면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목회자들이 현대신학의 해석을 받아들이면서도 강단에서는 소신대로 말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이유는 간단하고 단순합니다. 조직에 속한 사람은 조직이 싫어하는 말을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조직에 맞설 수 없는 목회자들을 저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제가 속해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교단을 떠나기 전인 2004년까지는 저 역시 그들과 똑같이 조직의 눈치를 보느라 할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이해하는 측면에서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들에게는 딸린 가족이 있습니다. 그들이 소신껏 말하는 대가로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들을 쉽게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신껏 말하지 못하는 목회자들을 비난하기보다 이렇게 성서와 관련된 진실을 직접 밝히기로 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13~17절을 보겠습니다.
13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1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그에게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는데, 그때 하늘 문이 열리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하늘의 소리가 들려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실제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았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의 제자로 시작했지만 곧 두 세력이 엇비슷해졌고, 어느 시점부터는 세례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의 갈등과 세력다툼이 완전히 정리되어 예수님이 복음의 주인공으로 뚜렷이 부상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본문으로 복음서에 기록된 것이라고 대부분의 현대 신학자들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