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암 가는 길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문광섭
연분암은 모악산 북쪽 능선길 끝자락 매봉(494m)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우리 친구들은 매달 첫째 주 일요일, 중인동 가림식당 앞마당에 모여서 오른다. 정기산행으로 자리 잡은 지는 10년 정도 되는데, 직장에서들 퇴직한 뒤 동창산악회를 만들었고, 부부동반으로 모이지만 동반자는 반도 안 되어 20명을 넘지 않는다. 일요일이어서 교회나 결혼식, 자녀 만남, 가사 등으로 나오기가 어렵다. 또 무릎관절 등 건강 문제와 생업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나오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다. 가끔 뜨내기 친구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우리 내외는 고정 메버다. 나보다 아내가 더 열심이다. 둘 다 산을 좋아하지만 처음 시작 때부터 나가다 보니, 이제는 으레 배낭을 둘러메고 나서야 직성이 풀린다. 1년에 두 차례 정도는 차를 대절하여 먼 곳으로 산행을 다녀오기도 한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기본 코스인 연분암으로 오르는데, 한 달 동안 모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면서 산행의 즐거움과 만남의 의미를 찾는다. 금선암과의 갈림길에서 잠시 쉬는 동안, 기념촬영도 하고 쌍화차, 오미자 차 등 몸에 좋다는 음료로 갈증을 푼다. 가끔 이곳에는 연분암으로 올라 갈, 건축 자재나 식재료 자루 등이 자원 봉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친구들 중 서너 명은 이 일에 기꺼이 나서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두 번인가 경험한 중에 한 번은, 겨울인데 포대자루를 어깨에 메고 가다 눈길에 넘어져 크게 다칠 번한 적도 있다. 도중에 친구들이 만류할 때 포기해야 했는데 체면 때문에 그만두질 못했다. 우리는 일상 생활 중에 남자의 자존심 때문에, 한 번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중단하지 못해 사고를 자초하여, 어리석음을 경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갈림길부터 산길이 시작되고 소나무 숲 사이를 지나간다. 계곡의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시원스레 들리고 금선암에서 올라오는 독경과 목탁소리가 낭랑하게 골짜기를 메아리쳐 오면, 그제야 머리가 맑아져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이렇게 20여 분을 오르다 숨이 가빠질 때면, 하늘을 찌를 듯 줄지어 늘어선 편백나무 숲 쉼터에 도착하는데 우리는 언제나 이곳에 자리를 잡고 심신을 푼다. 편백나무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라는 향이 몸에 좋다는 소문이 난지도 꽤 오래다. 하지만 전주시에서 많은 사람이 쉬어 가도록 쉼터를 조성해 놓았기에 우리가 쉬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여기서 각자 가져 온 과일과 떡, 보양음료, 커피 등을 내놓고 서로 권하며 우리의 오랜 우정은 더 깊어진다. 여기에다 입심 좋은 친구의 구수한 입담으로 배꼽을 잡고 나면 일어 설 때가 된다.
편백쉼터에서 연분암까지 가는 길은 약간 힘이 든다. 오르막이기도 하지만 바위, 돌, 계단 등이 있어, 무릎이 좋지 않은 나로서는 다른 길로 돌아가기도 한다. 비자림숲도 있고, 땅죽 우거진 흙길을 밟고 가면 신발촉감이 너무 좋아서 성큼 오르기도 하는데, 동행자들이 없어 외로움을 타는 게 흠이라고나 할까! 연분암에 가까이 이르면 담백한 멸치국물 냄새가 코끝을 당기는데, 일요일 점심 때 등산객들에게 국수공양을 10여 년째 해주고 있다. 이곳을 지나는 길손만도 수백 명은 될 터이니 부처님의 보시라 하겠다. 점심공양에는 암자의 보살님과 재가불자들의 봉사로 이루어지는데, 이에 감사하여 자재운반 등에 등산객들이 서슴없이 하는 것이고, “중생들이여, 어서 오시오. 전생에서부터 연분이 있어 예까지 왔으니, 연분암에서 쉬었다 국수 한 그릇을 들고 가시오.”라는 공양염불 독경소리가 골짜기를 메아리치며 불러들이기도 한다.
처음 산행을 시작할 무렵에는 이집 저집을 맛 따라 옮겨 다녔는데, 어느 해 봄인가 지금의 가림(價林)식당이 단골로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입맛도 천차만별이어서 한 곳으로 정해지기까지는 까다로운 사람들의 입맛과 기분에 따라 옮겨 다니기 마련이다. 가림식당에 처음 왔을 때 옥호를 내 마음대로 아름다울 가(佳)로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가(價)였다. 작명가로부터 받은 이름이라는데, 돈이 숲처럼 무성하리라 하는 뜻이 들었다 한다. 우리는 가끔 제멋대로 생각하거나 행동하기 쉽다. 그래서 오해와 다툼이 생기는데, 특히 상대방의 처지나 입장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자기중심의 행동을 제멋대로 하는 현실을 자주 보면서, 국민소득 3만 불 시대를 향한 우리 문화수준의 하향성을 어떻게 바로 잡아야 할까 걱정할 때가 많다.
우리는 언제나 비슷한 시간에 식당에 도착하는데, 이에 맞추어 음식도 차려진다. 반찬도 깔끔하고 옻닭 요리도 무난한데다 오곡으로 지은 잡곡밥은 정말 일품이다. 산악회장의 건배 제의로 각자 좋아하는 술 한 잔에 닭살 한 점을 들면, 3시간의 피로감도 온 데 간 데 없어진다. 특히 잡곡밥을 씹는 맛이란 그만인데, 이는 밥을 잘 지었지만 반찬과 더불어 요리하는 주인아주머니의 솜씨가 있어서다.
누구나 오래했다는 것만으로 솜씨가 있다고 볼 수는 없고, 태어날 때부터 타고나거나, 좋은 스승에게서 배웠던지, 끊임없는 자기수련을 통해서 솜씨가 생긴다. 이렇게 솜씨 있는 가림식당과의 만남도 좋은 연분이라 생각한다. 소중한 연분은 또 있다. 우리 친구들과의 만남이다. 학교라는 연분으로 만났으며, 오늘도 연분암 산행을 통하여 건강과 우정을 다지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들이라 자부해도 좋을 것 같다.
(2013. 4. 28.)
첫댓글 건강을 지키며, 즐거운 모임 이군요.
좋은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정말 좋은 산악회 입니다. 친구분들로 구성이되었고 부부 동반 모임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모임입니다.
학교 연분으로 만났기때문에 연분암으로 가셨는가 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윤동현 올림.
읽어 주셔서 감사 합니다. 문광섭 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