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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처럼 에스라처럼
느헤미야 8장 8절 ~ 12절.
은광교회 담임목사님이신 조성모 목사님의 ‘설교 준비 이렇게 하라’에 대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지난 40년 목회의 시간 동안 그 분께서 어떻게 설교 준비를 했는지에 대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번 세미나에서 목사님은 ‘설교 준비 이렇게’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시는 서두에
‘저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저희 교회가 특별나게 하는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저 역시 50후반까지는 제자훈련도 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고 이 프로그램이 잘 된다면 이 프로그램도 시도해 보았고, 저 프로그램이 잘 된다면 저 프로그램도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게는 그 모든 것이 제 몸에 맞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방언도 하지 못합니다. 저희 교회에서도 방언하시는 분들 있는데 저는 아직까지 방언도 하지 못합니다. 제가 이런 성향의 사람입니다. 똑같은 감나무여도 지역에 따라서 감나무가 열리는 곳이 있고, 열리지 않는 곳이 있지 않습니까? 굳이 내 토양이 아닌데 굳이 감나무를 이식해서 심을 필요가 있는가? 깨달아 진 이후에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잘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가 은광교회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가지고 있던 시 건방과 버릇없는 생각을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은광교회는 은광교회만이 가야 하는 길을 잘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목사님의 말마따나 이 프로그램이 좋다면 이리 우하고, 저 프로그램이 좋다면 저리 우하지 않고, 누가 보기에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 같고, 너무 조용하지만 은광교회가 가야 하는 길에 묵묵히 그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어머님이 가장 좋아하셨던 우리나라 대통령은 노무현 대통령이셨습니다. 저희 어머님께서 노무현대통령을 좋아하셨던 이유 중에 하나가 그 분의 걸음걸이 때문이었습니다. 노무현대통령의 걸음걸이를 저희 어머니는 두꺼비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두꺼비가 뚜벅뚜벅 걷지 않습니까? 꼭 그 모습이 노무현대통령의 걸음걸이와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명의 사람은 그렇게 묵묵히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가야 하는 길이 있기에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걷는 것입니다. 은광교회의 조성모 목사님 역시 그냥 그렇게 뚜벅뚜벅 두꺼비처럼 자신이 가야 하는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은퇴를 얼마 남겨 놓지 않았지만 우리가 보기에 밋밋하고, 조용하고, 재미없는 것 같지만 조목사님이나 은광교회는 그렇게 사명의 길을 걸었습니다. 사명의 길이라고 다 흥분되는 길이겠습니까? 다 시끄럽고, 다 방방 뛰어다니는 길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러한 사명의 길도 있지만 조용하고, 차분하고, 밋밋한 사명의 길도 있다는 것을 이 번 모임을 통해서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사명이 성벽 재건을 통해서 우리의 가슴을 흥분하게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하는 그래서 외향적인 사명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다면, 에스라의 사명은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재건해서 우리의 가슴을 조용히 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하는 내향적인 사명자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우리는 지난 4주에 걸쳐서 나의 사랑하는 책에 대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우리 평생에 나의 사랑하는 책 한 권은 그래서 나의 자녀들에게 유산으로 남겨 줄 수 있는 그런 한 권의 책, 성경책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또한 그 말씀이 나의 전인격인 지성과 감성과 의지를 자극하는 말씀으로 받자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8, 9절에서 우리가 또 하나 살펴볼 것은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관계입니다.
오늘 느헤미야 8장을 시작했던 4주 전에 만약 느헤미야가 없었다면 에스라는 없었을 것이고, 에스라가 없었다면 느헤미야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의 사명을 52일 만에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에스라의 전폭적인 지원과 에스라의 전폭적인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라는 느헤미야보다 이미 13년 전에 예루살렘으로 올라왔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냥 올라왔던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에스라 7장 11절입니다. 그리고 25, 26절입니다.
"여호와의 계명의 말씀과 이스라엘에게 주신 율례 학자요 학자 겸 제사장인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내린 조서의 초본은 아래와 같으니라. …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를 법관과 재판관을 삼아 강 건너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중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귀양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
아닥사스다 왕의 초본에 이와 같은 명령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라에게 아닥사스다 왕은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하거나 귀양을 보내거나 가산을 몰수 할 수 있는 사법권도 부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미 느헤미야가 오기 전에 13년 전에 이러한 일을 감당했던 에스라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의 거룩한 사명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자 자신의 그 자리, 자신의 그 위치를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손에 들려있는 권력이 얼마나 달콤한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권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권력 앞에 우리는 아내도 아이들도 없습니다. 인사청문회를 여러분께서 보셨을 것입니다. 죄송 청문회, 사과 청문회라고 불리는 청문회였습니다. 저도 그 청문회 실황을 보았는데 분명 자신들의 잘못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났음에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 아내가 실수해서 그랬다…… 등등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화가 났습니다. 자신의 그 명예와 권력을 앞세우기 위해서 30평생 함께 해 온 아내를 버리고, 자신의 자녀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와 망신을 주었습니다. 그 만큼 권력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권력이 주는 달콤한 유혹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에스라 역시 자신의 권력을 느헤미야와 대립의 각을 세우면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 때문에 자신의 권력이 침해를 받고 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권력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느헤미야 7장의 그 시간까지 단 한 번도 등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 2장 10절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보십시오. 에스라와 전혀 다른 권력욕에 휩싸였던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그 때부터 근심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들이 가진 권력과 기득권이 무너질까 근심하고 두려워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가 고백하는 것처럼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는 사람 느헤미야를 더 반겼을 것이고, 더 기뻐했을 것이고, 더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이루었던 7장까지의 기록은 전폭적인 에스라의 도움과 에스라의 응원이었다는 것입니다. 에스라뿐이었겠습니까?
8장 4절입니다.
"그 때에 학사 에스라가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서고 그의 곁 오른쪽에 선 자는 맛디댜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요 그의 왼쪽에 선 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라."
지금 에스라는 성벽 재건이 끝나고 그 축제의 현장에서 특별히 지은 나무 강단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의 좌우에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여기 좌우에 일곱 사람은 당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누가 또 세워져야 합니까? 당연히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의 그 영광을 다 이룬 사람 아닙니까? 당연히 느헤미야의 자리도 하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그런 자리는 없었습니다. 느헤미야에게 그 자리는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는 에스라를 비롯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의 자리여야 하지 자신의 자리는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정말 근사한 사람 느헤미야 아닙니까? 이 일이 쉽습니까? 어렵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는 자리인데 느헤미야는 그 자리가 자신의 자리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느헤미야가 어찌 하나님의 사명 자가 아닐 수 있었겠습니까? 이런 에스라가 어찌 하나님의 사명 자가 아닐 수 있었겠습니까? 느헤미야의 다름 책은 에스더서입니다. 에스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에스더에게 삼촌 모르드개가 없었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에스더는 없었을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에 에스더의 이야기가 더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하관예배를 보았습니다. 안성에 있는 사랑의 교회 수양 관에서 3천 여 명이 넘는 사랑의 교회 교우들과 옥 목사님에게 영향을 받으신 분들께서 참석하셔서 하관예배를 드렸습니다. 원래는 3일 장이지만 교회장이라 5일장으로 치러졌습니다. 별세하신 지난 9월 2일부터 마지막 하관예배가 이루어진 6일까지 몇 번의 예배가 집전이 되었습니다. 제가 거의 모든 집전된 예배를 인터넷을 통해 보았습니다. 그 때 마다 예배의 설교를 맡으셨던 분들은 옥 목사님과 함께 8, 90년대를 이끌었던 분들이셨습니다.
그 중에 이동원 목사님의 입관 예배 때의 설교와 마지막 하관예배 때 드려진 그 분의 조사는 듣는 사람들의 심금을 얼마나 울렸는지 모릅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이동원 목사님께서 옥 목사님을 향해서 ‘형님, 옥 형님’하면서 울부짖는 그 마지막은 더욱 더 사람들을 울게 만들었습니다. 소그룹 운동과 설교로 유명한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 한국교회에 문화 마인드와 선교로 유명한 온누리 교회 하용조 목사님 그리고 소외된 장애우와 북한선교의 소임을 감당하는 남서울 은혜교회 홍정길 목사님에게 옥한흠 목사님은 목사님이기 이전에 그들의 형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네 분이 사적인 자리에서 만나면 ‘형, 동생’하면서 한국교회에 대한 염려와 자신들의 사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님은 입관예배 때 그 네 사람을 ‘수레의 네 바퀴’라 이야기를 했고, 그 바퀴 중에 ‘가장 큰 바퀴 하나가 빠져 나갔다’고 애석해 하셨습니다.
옥한흠, 이동원, 하용조, 홍정길 목사님은 서로 호형호제하면서 그렇게 그들의 사역 더 나아가 한국교회를 영향력 있게 이끌어 가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동원 목사님의 말에 따라 서로가 수레의 바퀴가 되어서 한국교회라는 수레를 이끌어 가셨던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동원 목사님도 그렇고, 홍정길 목사님도 그렇고 하용조 목사님도 그렇게 형을 잃어버린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장례 설교와 조사 가운데 드러냈습니다. 그렇게 한 시대를 함께 할 수 있었던 그 네 분은 꼭 다니엘과 세 친구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제 개인적으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에게 누구입니까? 정말 나를 통해 한 사람의 에스더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나를 통해 한 사람의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옥한흠 목사님과 그 세 명의 동생들처럼 한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 느헤미야와 에스라를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를 격려해 주고, 서로에게 힘을 북돋아 주는 그런 느헤미야와 에스라의 모습입니다. 성벽을 재건하고, 우리의 심령을 재건하는 그 일이 가능했던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그러한 느헤미야와 에스더의 모습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10절입니다.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느헤미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이 날은 근심의 날이 아니라 기쁨의 날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날이 어떤 날입니까? 초막절입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광야 40년 동안 초막을 짓고, 장막을 짓고 광야의 삶을 보냈던 그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이 날은 주님께서 특별히 절기로 지키라고 하신 성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준비하지 못했다면 나누어주면서 함께 기뻐하라고 느헤미야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이 마지막 말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힘’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정말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입술은 복이 있는 입술일 것입니다. 평생 살아오면서 그 분 만이 내가 기뻐할 수 있는 나의 힘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레미야 31장 12절부터 14절입니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약속된 기쁨의 복이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여호와로 인해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누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 분으로 우리가 만족하며,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다시는 근심이 없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눈물이나 다시는 아픔이나 상처가 없기를 바랍니다. 아니 근심이 있을 것이고, 눈물이나 아픔이나 상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우리가 고백하는 것은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나의 힘이라고 선언하시고, 선포하십시다.
어느 교회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토요일 오후에 주보를 맡겼던 인쇄소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주신 내용 중에 설교 제목이 빠졌습니다.’ ‘그렇습니까? 설교 제목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입니다.’ 평소에 설교 제목을 길게 쓰시는 목사님 때문에 한 번 더 인쇄소 직원이 ‘그것뿐입니까?’라고 묻자, 목사님은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다음 날 주일 아침 목사님은 강대상에 올라서기 시작하려는데, 설교 본문은 시편 23편 1절부터 6절까지 인쇄가 잘 되어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보니까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목사님은 순간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니, 이 양반이 제목을 이렇게 써 놓으면 어쩌나’라면서 화가 났습니다. 그런데 다시 읽고 다시 읽었습니다. 그러자 그 제목이 너무나 근사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맞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날마다 기도하는 것, 시도 때도 없이 저의 생각을 맴도는 것은 부흥입니다. 이건 거의 저를 피 말리게 합니다.
솔직히 지난주일 몇 분이 예배를 빠지셨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숫자에서 한 두 사람이 빠지면 얼마나 보기가 안 좋습니까?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아도 제 마음 속에 솔직한 마음으로 정말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그렇게 빈자리가 크게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소소하게 몇 사람이 모이면 정말 그 빈자리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적인 마음으로 그 날 예배를 드렸던 분들에게도 제가 미안하고, 죄송했습니다. ‘이건 아니잖아’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저의 이 마음 헤아릴 수 있습니까? 저는 압니다. 제가 그런 마음 가졌던 것처럼 그 날 예배를 드리지 못하신 분들도 마음이 불편하셨을 것이고, 또 제게 미안했을 것이라고 저는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예배 드렸어야 하는 데’라는 그 마음이 분명 그 주일 저녁에 들었을 것이라고 저는 충분히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시 부탁하십시다. 어차피 예배 빠지면 그런 마음 들 거니까 힘들지만 그래도 예배는 빠지지 마십시다.
그런데 지난 한 주일 동안 제가 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 준비하면서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제 마음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박국의 고백처럼 ‘무화과나무에 잎이 마르고, 외양간에 송아지 없고, 감람나무 열매 그치고, 논밭에 소출과 식물이 없어도 난 여호와 즐거워하리, 난 여호와로 인해 기뻐하리.’라고 노래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집사님들이 빠진 그 빈자리를 보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내지 말고, 분노하지 말고 기뻐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 고백이 오늘 저와 여러분의 동일한 고백이기를 소망합니다. 아니 어쩌면 제게는 평생 제가 이 자리를 은퇴하는 그 날까지 변함없이 따라 다녀야 할 말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11절입니다.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다시 느헤미야만이 아니라 레위 사람들 역시 모든 백성들에게 오늘은 하나님의 성일, 특별히 구별한 초막절의 성일이기에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날은 기쁨의 날입니다. 근심하는 날이 아니라 기쁨과 영광의 날입니다. 굳이 초막절이 아니라 우리가 일주일 드려지는 예배의 시간 시간이 그런 기쁨과 영광의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내려놓는 시간이 바로 주님의 날, 구별된 날, 성일인 것입니다.
옥한흠 목사님의 마지막 하관예배를 앞두고 사모님과 옥 목사님의 세 아들이 옥 목사님의 영정 사진을 좌우에 서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기념촬영도 아니고 그 곳에 있던 분들이 조금은 의아해 하셨습니다. 하관예배의 마지막 인사말씀을 옥 목사님의 둘째 아드님께서 하셨습니다. 이 둘째 아들은 옥 목사님께서 「예수 믿는 가정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내셨을 때, ‘아빠는 그런 책을 쓸 자격이 없다’고 했던 그 아들입니다. 그 둘째 아들이 설명하기를 ‘아버님 생전에 제자훈련과 교회 사역으로 너무 바쁘게 살아 오셔서 가족들과 한 번도 가족사진을 찍은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마지막 이제 땅에 묻히면 더 이상 뵐 수 없는 아버지와 함께 가족사진 한 장 남기기 위해서 예의가 없지만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곳에 모인 분들이 통곡을 하셨습니다.
일흔 두 해의 삶을 마감하는 그 자리는 정말 슬픔과 애통의 자리입니다. 남은 자들에게 주는 슬픔 특별히 그의 가족들에게 주는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런 자리였습니다. 어느 분의 그 날의 조사처럼 가장 많이 위로를 받을 분은 옥 목사님의 사모님입니다. 그 분께서 그 날 관을 부여잡고 우시는 그 모습이 또한 그 곳에 함께 했던 분들을 오열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우리가 아는 것은 무엇입니까? 부활의 날에 다시 살아나 함께 볼 수 있다는 소망입니다. 그래서 죽음이 끝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부활의 시작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슬픔과 애통이 더 이상 슬픔일 수 없고, 애통일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 날에 얼굴과 얼굴을 서로 맛 대어 다시 볼 수 있다는 분명한 부활의 사실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옥한흠 목사님의 장례식은 이 땅의 사람들에게 슬픔이었고, 애통이었고, 오열이었고, 통곡이었지만 그 장례식의 이름을 장례예배가 아니라 천국환송예배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드려지는 예배가 지난 일주일의 곤고와 근심과 염려와 상처가 치유되고 회복하는 예배, 그러기에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드려지는 이 거룩한 성일이 일주일의 아픔 속에서 애통과 오열과 통곡을 멈추어 다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뀌는 그런 예배의 성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그러한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다시 크게 즐거워하는 인생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드리는 이 한 번의 예배는 절대로 허투로 드려질 수 있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냥 낭비해서 드려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그래야 ‘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야 다시 한 번 새 힘을 얻고 두꺼비처럼 뚜벅뚜벅 사명의 길을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을 마치면서 이동원 목사님께서 옥한흠 목사님의 입관예배를 집전하시면서 옥 목사님에 대해 세 가지로 비유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하나는 양 떼의 목자, 두 번째는 동굴의 우두머리,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등대지기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마지막 그 등대지기라는 그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습니다. 등대지기라는 노래가 있는데 원래 이 등대지기는 17세기의 영국의 찬송가였다는 것입니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자고
한 겨울에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모질게도 비바람이 저 바다를 덮고
산을 이룬 거센 파도 천지를 흔든다.
이 밤에도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한 손 정성 이어 바다를 비친다.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이동원 목사님은 이 부분을 옥한흠 목사님에게 비유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등대지기로 거룩하고 아름다운 그 사랑의 마음으로 목회의 사역을 등대처럼 마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역시 사명자로 살아가야 할 사람입니다. 사명의 부름에 따라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사명의 길을 가지 않겠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을 때에는 사명자로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마지막 등대지기의 노래처럼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에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 재건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 사명 감당하였듯이 에스라가 무너지고 훼파되어진 영적 재건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그 사명 감당하였듯이 우리 역시 느헤미야처럼 에스라처럼 그렇게 그 사명 감당하는 등대지기가 되십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