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ed noir 는 어원은 확실치 않으나, 북아프리카로 가서 살다가, 그곳에서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다. 단어는 불어이지만, 굳이 프랑스에서만 아니라, 세계 어디서나 많이 쓰이고 있다.
아래는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프랑스사(콜린 존스 저, 방문숙 역, 시공사)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Pied Noir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프랑스 탈식민지화로 인하여 제2차 세계대전 중 중부와 동부 유럽에서 행해졌던 이민에 필적할 만한 인구의 이동이 북아프리카에서 이루어졌다. 1950년대 초에서 1960년대 초까지 약 130만명의 유럽인들이 모로코, 튀니지, 알제리로부터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가장 오랫동안 프랑스에 점령되었던 알제리로부터의 송환자들이 이들 중 대부분을 차지하였는데, 알제리 전쟁의 종전 즈음인 1961년에서 1963년 사이에 '피난민'의 3분의 2가 알제리를 떠났다.
본국에 귀화한 식민지 이주민들을 묘사하였던 피에 누아르('검은 발')라는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처음에는 알제리 사람이라고 불리었는데, - 아랍계 알제리 사람들은 처음에 '원주민', 그 후에는 '이슬람 교도'라고 불리었다 - 이 말은 1950년 대를 지나면서 의미가 모호해졌다. 1955년 이후에 그들은 자신들을 일컫던 '피에 누아르'라는 말을 받아들였다.
피에 누아르 인구 이동이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알제리에 살고 있던 대부분의 유럽인들은 프랑스에 정착하였는데, 이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느끼기에 이 보상의 정도는 그들이 응당 받아야 할 액수보다는 적었지만, 피에 누아르들은 그리 큰 어려움없이 본국 생활에 적응하여 스스로 즐겁게 새 삶을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대다수의 '본국 송환자'들은 보르도와 리옹 이남의 도시에 집중되었다. 이들은 젊고 매우 적극적인 사람들로서 이 지역을 활기차게 만들었고, 출생률을 증가시키고, 지역 경제를 발전시켰다. 또한 피에 누아르들의 유입은 프랑스 본토 국민들로부터 지속적인 적대감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았는데, 그 까닭은 이민 집단의 통합을 지원할 때 경제 환경의 중요성 - 활황기에 있던 - 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입장의 아랍계 동포들의 경우에는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운이 덜 따랐음이 증명되었다.
Pied noir 외에 색을 사용한 불어 표현도 몇 가지 들어보자.
être marron - "속았다" 란 뜻이다. Je suis marron. 하면 "나는 속았다" 란 뜻이 된다.
une peur bleue - '극심한 공포'를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