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눈을 의심했다. 사막의 어두움을 깨우는 마른 하늘에 번쩍이는 번개라니. 이런 번개로는 비가 올리 없다며 그저 마른 하늘에 퍼지는 번갯불을
깜짝 놀라며 바라보기만 했다
사막에 비가 오겠어? 하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 밤사이 소낙비같은 비가 샤워기 소리처럼 쏟아졌다.
아침에 일어나니 베두윈이 밤새 비가 와서 와디에 물이 흘렀다며 호들갑이다. 그리 많이 온것 같지 않은데 밤사이 와디를 흠뻑 적셨나보다 .
간밤에 물도 나오지 않는 화장실과 전혀 빨지 않는 홑이불을 깔고 , 한번도 빨지 않은것 같은 담요를 덮고 잔다는 건 하룻밤 조차도 불편한, 광야 여행길에서 하고 싶은 난코스 중 난코스였다.. 다행히 전기가 있어 전기 방석을 깔고 ,가지고 다니는 베개를 베고 외투를 덮고 잤다. 전혀 게의치 않고 담요를 덮고 자는 남펀이 이해가 안되지만 남편은 참 적응도 잘한다.
아침 7시 베두윈 국민 스프인 " 풀" 이라는 콩스프와 빵 그리고 베두윈 차를 마시고 베두윈 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남편과 김목사님은 짐칸에 자리를 잡았다.
이 베두윈 캠프를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였을까? 다음 장소를 향해 떠나는 광야는 너무도 평안하고 아름다웠다. 요르단 와디럼을 연상케하는 돌산들과 붉은 모래 사막 .. 밤새 내린 비로 더 맑아진 아침 햇살과 함께 광야의 세상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전날 내린 비때문일까? 붉은 모래 사막은 질퍽거렸다. 아침에 지나간 바퀴자국을 따라 길을 찾아 지나갔지만 둔덕을 넘을 때마다 오래된 베두윈 짚차는 힘겨워했다.. 마침내 시동이 자주 꺼지며 옴짝 달싹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베두윈이 더이상 이 차로는 갈수 없다며 방향을 바꿔 1시간 반 거리를 다시 돌아가야한단다. 그러나 그도 잠시 ... 돌아가는 방향으로도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사막에선 인터넷이 안된다.. 베두윈이 여기 저기 다니며 신호가 잡히는 곳을 찾는다. 드디어 찾아 전화를 걸어 이곳까지 와달라고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 무엇을 이정표로 삼았을까? 모두가 다 똑같은 사막인데 말이다. 아무리 광활해도 그들이 다니는 길쯤은 훤히 다 알고 있나보다 .
주위를 보니 싯딤나무 네다섯그루가 아름답게 서있다.근처에는 베두윈 무덤으로 보이는 돌들이 세워져 있다 이것이 이정표가 되었을까?
기다리는 1시간 반동안 나는 행복했다 ..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는 두려움이 왜 내게 없었을까? 생떽쥐베리는 사하라 사막에서 조난 당한 며칠간의 이야기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책중 하나인 어린 왕자를 집필했다. 사막은 여태까지 인생에서 체험 못한 모래속으로 빨려드는 듯한 매력이 있다.사막에서 밤하늘에 더있는 별을 본적이 있는가? 바람만 불지 않는 따뜻한 날에는 그렇게 고요하고 낭만적일수 없다. 이런 밤은 모닥불을 피고 뜬 눈으로 밤을 새도 하룻밤이 모자라다.
사막의 붉은 모래를 밟으니 여러 생각이 든다. 다 모래로 쌓인 사막인데 얼마나 다져졌으면 이렇게 사람이 지나가도 움푹 파이지 않는 걸까 싶다. 단지 지닌밤 내린 비로 조금 발자국을 낼 정도이다. 아마 비가 안왔다면 바람에 모래가 날렸을까?
이 모든 순간을 걱정하는 사람은 오직 남편과 베두윈 그리고 하루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남편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는 김목사님 가족이었던것 같다.
1시간 반이 지나니 정말 짚차 한대가 온다.짚차를 옮겨 타고 숙소로 돌아오니 베두윈이 또 차를 내려오 한다. 다급한 마음의 남편은 초조해진다. 빨리 다음 장소로 이덩해야하니 말이다. 다행히 도로로 나오니 베두윈 짚차도 힘을 낸다 .. 간밤에 내린 비로 질퍽거리는 모래 사막이 이 베두윈 차에는 버거웠었나 보다 . 우리는 무사히 다른 차로 갈아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 광야40년의 길이 어떻게 쉬울수 있겠는가 .. 낮에는 뜨거운 태양으로 지치고 밤에는 강한 바람으로 피난처를 찾아야했던 광야 생활 .. 온전히 하나님의 불기둥과 구름기둥만을 의지하며 한발 한발 나아갔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니 간밤에 잠자리가 불편하다며 불평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아무리 유대인들이 노예생활을 했다지민 모든 유대인들이 다 출애굽을 따라 나섰을까? 이집트인과 결혼해 안정적으로 산 사람들도 있었을 테고 노예라지만 그들이 불평했듯이 먹는 건 풍부하게 안정적으로 지낸 사람들도 많았던것 같다. 나일강 어디에서나 잡히는 생선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생선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엇을지 상상하게 된다.
유대인 사내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는 이런 상황에서 가장 떠나고 싶었던 건 유대인 엄마들이 아니었을까? 사실 피난길에 남자들도 힘들지민 여성들은 더 말할것도 없다 .. 화장실문제도 그렇고 좀더 약하지.않은가...하지만 그들은 결단을 내릴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녀들을 위해서 이집트를 탈출하는 것만이 자신의 아이들을 구하는 길이었다.. 미래가 없는 삶 .그렇게 그들은 모세를 따라 나섰다.
2천년만에 다시 찾은 이스라엘은 너무도 평온하다.
언제 그들이 이집트인의 노예였었나 싶게 이집트와 이스라엘의 국력과 경제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이집트는 강해진 이스라엘과 평화 협정을 맺었고 국경은 자유롭게 서로 오가고 있다. 올 10월 부터는 이집트 국적기를 단 비행기가 이스라엘 공항을 이용할수 있다.
73년에 빼앗은 시나이 반도는 79년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통해 평화 협정을 맺은 이후 다시 이집트로 반환되었다 . 시나이 반도에 유대인들이 살 동안 이곳 베두윈들은 그대로 살고 있었다. 그 때 배운 히브리어 실력일까? 베두윈분아니라 국경에서도 몇몇 아랍인들은 히브리어를 한다.. 아랍 국가로 최초로 평화 협정을 맺은 이 두 나라는 더이상 적국이 아니다.
구약 성경에서 가장 극적이고 재미있는 출애굽 이야기가 있은 이집트. 긴 소설책을 읽은 듯한 이번 이집트 답사기는 세상을 보는 그리고 성경을 보는 시각을 좀더 넓고 새롭게 바라볼수 있게 해주었다.
카잔차키스의 표현처럼 유럽의 씨앗이 되었던 이집트 ... 이집트 문명의 씨앗으로 유럽에 꽃을 피우게 한 이집트는 모든 여행의 출발점이가도 하다. 또한 성경 연구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 바로 액소더스의 시작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