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양지 마을, 문래산
남진원
내가 태어난 마을 이름을 옛 어른들은 골개라고 불렀다. 개울, 즉 물이 흐르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골개는 행정적으로 지역의 이름을 ‘골지’라고 하였다. 골지는 임계면의 리 마을 단위의 하나이다. 즉 임계면 골지리라고 하였다. 이 골지리에는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임계 지서에서 순경 한 명을 파견하여 근무하는 파견대가 있었다. 큰 신작로 가에 주거를 겸하는 파견대가 자리 잡았다. 파견대 뒤쪽 한참 떨어진 곳 밭 가애 우리 집이 있었다. 이곳에서 국민 학교를 마칠 때까지 생활하였다.
내가 사는 곳은 햇볕이 오래 들었기에 따뜻한 ‘양지 마을’이라 불렀다. 맞은 편 강 건너의 높은 문래산 줄기 아래 마을은 음지 마을이라 했다.
5살인 1957년부터 1965년 2월까지 9년의 생활이 고향에서 활동하며 살았던 시간이다. 이 기간 동안의 생활이 내게 소중한 그리움의 동산이 될 줄은 몰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고 부모님과 삼촌들이 한 지붕 아래 살았다. 동네 이웃들은 모두 가족 같이 정겨웠다. 그래서인가, 지금도 어린 날 그때의 삶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아있다.
문래산
남진원
우뚝
솟았다
하늘 깊숙이 붓을 세우고
글을 받드는 산
깎아지른 벼랑은
함부로 하지 못하는
선비의 기상
산과 나무들
나뭇가지가 다 글자이다
흐르는 골지천의 물소리
언어의 꽃이다
빼어난 문장가, 시문의 거장, 세계의 석학을
탄생시킬 꿈을 꾸는 걸까
파수꾼으로 지켜 선
우람한 믿음의 산
내가 찾았단 정든 고향! 그곳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고 삼촌과 고모님, 동네 이웃들이 모두 계셔서 웃고 울던 곳이었다. 마을 친구들은 물론이고 살구나무와 벚나무 사과나무 진달래 무궁화 해바라기 분꽃 채송화 둥근 달, 해, 별 등이 모두 친구가 되었던 삶의 터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