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사)수필협회의 작품
나의 분신진주 나의 문학
정 정 숙
나는 진주를 사랑한다. 아니 나 뿐 아니라 여자라면 진주를 사랑하지 않는 이가 있을까.
천연진주는 조개의 체내에서 분비물이 형성한 구슬모양의 석회질덩어리다. 조가비 층에 모래알이나 어떤 기생물이 들어가거나 가시와 같은 이물질이 박히면, 그 상처를 방어하기 위해 애써 분비한 체액이 쌓여서 생체결정을 이룬 고통의 덩어리다. 인내를 표상(表象)하여 눈물의 여왕이라고 일컬어지는 보석 진주의 그 우아한 은빛은 처녀(순수)의 심벌! 나 또한 내 안에 상처 난 진주와 공생하고 있으니까.
나의 진주는 대장 안에서 무척 춥고 아프다고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인간복제가 눈앞에 와 있는 대명천지에 선고받은 불치병‘암’도 아니면서 왜 나는 투병으로 세월을 낭비해야 하는지, 수술도 안 된다는 장협착‘기능성 장애 난치병’그 어굴한 통한은 신만이 아실뿐이다. 1984년, 대장게실염이란 수술은 의사의 오진이었고. 그 수술후유증은‘과민성 대장염 증후군’만성병을 낳았다. 무엇인가 생각만 해도 대장안의 진주가 결린다. 말만 조금 해도 자리에 누워야하니 누구를 만날 수 있겠는가. 늘 불안하고 긴장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신경을 다른 곳에 쏟으면 덜 아플까 하여 시작한 것이 내 이야기를 토로(吐露)하는 글쟁이가 되었다. 그것은 분신진주의 아픔으로 하여 시간을 낭비하는 허탈감을 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주의 아픔에는 정답이 없는가. 늘 상 미열에 몸살 앓게 하던 진주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게 하더니 끝내 “말”을 잃고 세상의 뒤안길로 나를 내 몰았다. 소화기내과 정신과 이비인후과 의사의 처방대로 잃어버린 언어를 찾기 위해 가정을 등졌다. 혈육을 잘라내고 이웃을 멀리하고 나에게 외로움이나 그리움은 사치라고 밟아 버리게 했다. 굶주린 짐승마냥 요양원을 전전하는 동안 사계(四季)의 풍경이 바뀌고, 멀리 가까이 애달픈 사연들이 끊임없이 지나같다. 홀로서는 투병생활 20년, 절대 고독은 빙점이 되어 허기진 가슴에 화석을 심었다. 지금도 나의 진주는 둔통을 호소한다. 때로는 메스껍다고 또는 아프다고 아우성친다. 삑삑거리며 시원치 않는 설사, 장에 가스가 팽창하면 가물거리는 정신과 육체의 고달픔에 누울 자리만 보인다. 경직된 장의 연동운동을 위해 핫 팩이 애인이 되었고. 침과 쑥뜸 자외선 한방치료에 시간을 퍼마며 『반점(斑點)』 꽃을 피운다.
하얀 살갗을 관통하듯 후려치는 침 빗살
경혈 따라 가슴속 적막을 송두리째 뒤흔들고
생살 태우며 이내 반점(斑點)으로 얼룩지는
검붉은 눈물의 꽃 문신으로 점점이 수놓는다
몸속의 핏덩이 토하듯 침 뜸이 파고들면
고사목(枯死木)에 싹이 돋듯 피어나는
또 하나의 그리움 창가에 머물고
내장의 진주덩이는 뜨겁고 아파도
은빛 핵 꽃을 피워내며
그래도 참아야 한다고 아린 웃음 짖는다
꿈좇는 고도의 예술
나의 문학을 위하여
그날의 일기와 메모, 비망록 쓰기도 문학에 도움이 된 것일까. 일기는 일찍이 소녀 가장으로서 사춘기의 심리적 갈등과 고뇌, 미궁처럼 몰려들던 자아실현에 대한 안타까움, 청소년기의 사색에 관한 기록으로 사실적이기 보다 주관적이고 감상적, 탐미적 요소가 많아 자전적인 수필과 비슷한 형태였다. 세월과 함께 책상서랍에서 잠자던 여러 권의 일기와 낙서 장은, 홀로서야 하는 삶의 무게에 사로잡힐 때마다 한권씩 살아져갔다. 불면의 밤, 밤을 낮 삼아 나의 글쓰기 작품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데는 가족들의 애절한 격려가 있다. 알게 모르게 나를 지켜보는 지인들의 눈길과, 추억을 일깨워주는 친구의 편지는 내 꿈 많던 기억들조차 끄집어내어 글을 쓰는 손에 힘을 실어 주었다.
수필은 삶의 향기며 철학이다.‘문학의 정의가 아픔과 고통을 극복하는‘희망추구의 환치작업’임에 비추어볼 때 삶의 통고(痛苦)에서 발원된 진곡한 자기 자조(自照)적 자전수필은 예술적 차원을 초탈한 빛나는 전리품이다‘ 고 했다. 그런 만큼 완숙한 삶의 연륜과 인생철학이 배어난 수필을 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재현된 참삶의 가치와 보람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분신진주는 내 인생에 청향작가라는 선물을 안겨준 보물이다. 나의 문학에 있어 변화무상하게 펼쳐지는 상상의 날개는 때로는 반전이다. 굴절된 인생풍경에 주제인 주인공이 되면 현실은 차라리 꿈길처럼 아득하지만, 그 곳에 서린 열정과 슬픔까지도 은빛으로 연마된 (진주반지 귀거리 목거리 팔찌등) 여인들이 선호하는 장신구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기쁨의 무게는 고통의 무게로 잰다’고 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곳에는 쉬지 않고 사랑이 물결치듯 참삶이 있는 곳이면 고통이 따른다. 내안에 형성된 인내의 결정체인 진주의 고통이야 말로, 인간관계인 사회성 부족으로 시야가 좁고 문학의 뿌리도 지식도 없는 내게 안겨준 작가란 선물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장 아름다운 광택으로 진주가 밝혀주는 농밀한 인생의 설화(說話)가 아닐까. 문학에 우연은 없다. 분신 진주의 아픔, 그 무성한 진통 속에서 문학의 열매가 고독한 가슴에서 이루어지는지 모른다. 나의 기독교 신앙은 영적으로 첫사랑님의 십자가를 연모하며 진주의 눈물을 다독이는 인생이란 물레질. 도전이다 또 다른 날개 나의 문학을 위하여 … .
Shadows in the moonlight (실로폰 연주곡)
* 아래 약력에서 추려서 사용하여 주세요 / 감사 합니다
※ 청향 정정숙 플로필※
2002년, 문예종합지(문학마을) 신인수필 등단
2003년, 캐나다 밴쿠버 문협주최 신춘문예 수필수상
2003년 : 밴쿠버 교민신문 한국일보 연제『밴쿠버의 인상』주1회 (3개월)
2005년, 문예종합지 <<한국작가>> 신인 시로 등단
2008년, 시조사 100주년 공모 수필최우수 문학상수상
※ 작품 연보 ※
◎ 1993년 : 에세이집 『 다시 일어서야겠습니다. 』
◎ 2005년 : 수필집 『 바위를 뚫고나온 구절초 』
◎ 2010년 : 시집『 빛은 실로 아름다움이라 』출간
◎ 현 카페지기: <뉴 스타트 구절초향기>문집 -매년 동인지 1~3집 출간
한국문협, 재림문협, 시원문학, 한국작가회 회원
첫댓글 꿈을 좇는 고도의 예술 문학을 위하여 온통 아픔이네요.
영적으로 첫사랑님의 십자가를 연모하며 진주의 눈물을 다독이는
인생이란 물레질. 도전이다 또 다른 날개 나의 문학을 위하여 … .
아름다운 노후에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행복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