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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 여름을 마감하면서 올해 매상 첫 100을 찍었습니다. 스테프가 다 나가버리고 15일 동안 한 명으로 버텼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 그나저나 네팔 대홍수 사망자가 472명으로 늘어난 가운데, 한국인 9명도 아직 행불 상태이고 2차 피해가 걱정입니다. 우리의 삶은 예기치 못한 슬픔과 상실, 죽음이라는 그늘에 가려질 때가 있습니다. 졸지에 재난을 맞아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잃은 사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에예공! 사방이 아비 귀환인 가운데 몸과 멘틀을 지키느라 고생이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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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갈 것이니 함께 다시 한번 힘을 내자.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은 어디로 가는가? 사랑하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 때문에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일까? 그리고 ‘영혼결혼식’은 죽은 자를 위한 의식인가, 살아남은 자들이 미완의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인가? <화려한 휴가 4>입니다. "이, 이봐요… 죽으면 안 돼요… 이, 이 이봐요…!!(신애)" 김희선(51)(49), 이지아, 이요원(47)은 내가 뽑은 미인 3인방입니다. 신애는 박흥수의 딸로 광주보훈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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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성격의 소유자로, 항쟁 기간 동안 많은 부상자들을 돌봅니다. 민우를 죽이려는 고은섭 일병을 엉겁결에 총으로 쏴 죽인 후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마지막 날 밤, 차량을 타고 광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시민들에게 호소 방송을 합니다. 전옥주라는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입니다. 민우와 신애의 사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민우는 택시 기사이고 신애는 간호사입니다. 둘 사이에는 운명적인 멜로드라마보다 서툰 농담과 어색한 구애가 먼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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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는 신애를 극장에 데려가고 싶어 하고, 출퇴근을 시켜주겠다며 은근히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런 장면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이 아직 일상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영화 한 편, 데이트 한 번, 다음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가 그 평범한 시간을 빼앗아갑니다. 바로 여기에서 <화려한 휴가>의 러브스토리는 단순한 멜로를 넘어섭니다. 국가폭력이 파괴한 것은 목숨만이 아닙니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미래까지 파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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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와 신애가 함께 늙어갈 가능성, 밥을 먹고 다투고 화해할 가능성, 가족을 만들고 평범하게 살아갈 가능성까지 사라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생명의 종결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와 함께 존재했던 수많은 "될 수도 있었던 삶"도 죽습니다. 이 점에서 영혼결혼식은 철학적으로 매우 슬픈 의식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결혼할 때는 앞으로 함께 살아갈 시간을 약속합니다. 그러나 영혼결혼식은 반대입니다. 함께 살아갈 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이미 사라진 미래를 기억하기 위해 치르는 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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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미래를 향한 약속이라면 영혼결혼식은 미완의 미래를 향한 애도입니다. 그래서 영혼결혼식의 핵심은 “죽어서라도 둘이 부부가 되었다"라는 낭만적인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산 자들의 항의에 가깝습니다. "당신들은 이 사람들의 미래까지 빼앗았다.” 국가폭력의 책임을 묻는 데 사망자 숫자만으로는 부족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 명의 죽음 뒤에는 한 사람을 사랑했던 연인이 있고, 부모가 있고, 자식이 있고, 친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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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던 관계망 전체가 상처를 입습니다. 따라서 폭력의 피해는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공동체적입니다. 민우와 신애의 사랑을 이렇게 바라보면 영화 초반의 소소한 연애 장면들이 더욱 아프게 돌아옵니다. 관객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누는 농담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신애가 웃고, 민우가 어설프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 순간은 처음 볼 때는 코믹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다시 생각하면 거의 비극처럼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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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평범함이 얼마나 쉽게 파괴될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발터 베냐민이 말한 역사 인식과도 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사건을 단순히 “이미 지나간 것”으로 바라볼 수 없습니다. 현재의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볼 때, 과거 속에서 실현되지 못했던 가능성이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민우와 신애가 살아서 이루지 못한 사랑도 그렇습니다. 그 사랑은 역사적으로 끝났지만 기억 속에서는 계속 질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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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평범하게 사랑할 권리조차 빼앗겼는가?” 그래서 5·18의 기억은 정치적 기억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기억입니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추상적 명제를 위해서만 거리로 나간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계속 살아가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민주주의가 필요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랑하고, 가족을 만들고, 밥을 먹고, 영화를 보고, 일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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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평범한 삶을 국가가 함부로 빼앗지 못하게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따라서 민우와 신애의 사랑은 실패한 사랑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함께 늙지는 못했습니다. 결혼생활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가치는 결과만으로 평가되지 않습니다. 사랑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이 국가가 규정한 ‘폭도’나 ‘불순분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사랑받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증언합니다. 영혼결혼식이 중요한 것도 바로 그것입니다. 죽은 이를 다시 삶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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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되찾아줄 수는 있습니다. 번호가 아니라 이름으로. 희생자가 아니라 연인으로. 시민 군이 아니라 누군가가 사랑했던 사람으로. 그렇게 기억하는 순간 국가는 그 사람에게서 빼앗았던 인간성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영혼결혼식은 단순히 죽은 사람끼리 맺어주는 의식이라기보다, 산 사람들이 죽은 자에게 이렇게 말하는 행위처럼 보입니다. "당신에게도 사랑할 미래가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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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미에서 <화려한 휴가>의 진짜 비극은 민우가 죽는 장면 하나에 있지 않습니다. 신애와 민우 사이에 이제는 결코 오지 않을 평범한 내일에 있습니다. 같이 영화 보는 내일, 또 택시를 타는 내일, 밥을 먹는 내일., 싸우고 화해하는 내일, 나이 들어 서로 얼굴에 주름이 늘어가는 내일, 국가폭력은 바로 그 내일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영혼결혼식은 과거를 미화하는 의식이 아니라, 사라진 내일을 기억하는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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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산 자들이 해야 할 일은 죽은 자를 대신해 계속 슬퍼하는 것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갖지 못했던 평범한 내일을 우리가 지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전하게 걷고, 정치적 생각이 다르다고 잡혀가지 않고,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어쩌면 영혼결혼식 이후 산 사람들이 이어서 치러야 할 가장 긴 결혼식인지도 모릅니다. 영혼결혼식은 죽은 연인을 맺어주는 의식이라기보다, 국가폭력이 빼앗아간 ‘함께 늙어갈 미래’가 분명 존재했음을 산 자들이 증언하는 애도의 형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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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비가 차분히 내리고 있는 가운데 백기완(89) 선생님이 별세하셨어요. 선친과 각 장인데 개고생을 하고도 90세까지 장수하셨네요. 영면하소서. 백 선생은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관련이 있어요. 우리 시대는 광주항쟁 연관 데모 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과 <5월 가>를 불렀어요. 시기적으로 <5월 가>가 더 빨랐을 것입니다. 5월 가는 "누가 할머니를 교살하였는가? “라는 샹송을 박 인희 씨가 리메이크한 곡에 누군가 노랫말을 붙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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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자체가 에돌지 않고 직선적이라 광주 항쟁의 상황을 리얼하게 쓰고 있는데 몇 번 불러보지 않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3절까지 가사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사 쓴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았는데, 아직 못 찾은 걸 보면 무명의 작사자도 돌아가신 걸까요? 참고로 저는 광주 항쟁 때 고1(17세)이었습니다. <5월 가>하고 백기완 씨는 관련이 없습니다. 백기완 씨와 DJ의 공통점은 남북문제와 관련이 있고 동시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군사독재의 타깃이 돼서 무지막지한 고문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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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백기완 씨는 고문 피해자의 대명사로 각인되어 있어요. 고문 기술자 이 근한 은 아직 죽지 않은 것 같아요. DJ나 백기완 씨에게 빨갱이 프레임이 씌워져 있는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입니다. 실제로 북에 몇 번이나 다녀왔어요. 김일성을 만난 건 사실이라고 봐요. 백기완 씨가 광주 항쟁이 끝나고 춤꾼에게 바치는 헌정 시를 썼는데 제목이 ‘뫼 비나리’라고 해요. 꽤나 긴 글인데 그 가사 종반부에 삽입된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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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싸움은 용감했어도 깃발은 찢어, 세월은 흘러가도, 구비치는 강물은 안다. 벗이여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라. 갈대마저 일어나 소리치는 끝없는 함성, 일어나라 일어나라, 소리치는 피맺힌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산 자여 따르라. “이곡을 황 석영(1943) 씨가 수정해서 새 버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썼어요. 음악으로 치면 원작자가 백 기완이고 황 석영 씨가 원곡을 살려서 부분편 사를 한 것이에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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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두음법칙이 오건 말건 상관없어요. MB가 광주에서 욕을 먹는 이유 중에 ‘이 노래를 못 부르게 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노래를 불러보면 중독성이 있고 군가처럼 전투적입니다. 지금은 학생 데모를 거의 안 하기 때문에 노사분규 투쟁가로 더 불리는 것 같아요. 홍콩 범죄인 송환 반대 시위 때 홍콩 사람들이 이 곡을 불렀고 중국, 태국, 캄보디아, 일본, 대만 등등 아마 지금 미얀마에서 불리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가사보다 곡이 더 좋던데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since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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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두 사람이 시대의 폭력 때문에 함께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사랑은 실패한 것일까? 그리고 영혼결혼식은 죽은 자를 맺어주는 의식인가, 아니면 산 자들이 빼앗긴 미래를 기억하는 방식인가? “이, 이봐요… 죽으면 안 돼요….”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가 민우를 붙들고 절규하는 순간, 영화는 정치극에서 멜로드라마로 돌아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바로 그 장면에서 국가폭력의 실체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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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이 파괴한 것은 한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우와 신애가 함께 영화를 볼 미래, 택시를 타고 돌아다닐 미래, 사소한 일로 다투고 화해할 미래, 아이를 낳고 늙어갈 미래까지 동시에 사라집니다. 그래서 죽음은 현재의 종결만이 아닙니다. 죽음은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의 학살이기도 합니다.
1. 민우와 신애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
민우와 신애의 사랑에는 대단한 것이 없습니다. 민우는 택시 기사이고 신애는 간호사입니다. 민우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어설프고, 신애는 그런 민우를 웃으며 받아줍니다. 영화 한 편 보자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빙빙 돌고, 출퇴근을 시켜주겠다고 생색도 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사소함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은 강해집니다. 사랑은 본래 거대한 선언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밥 먹었어?” “집에 잘 들어갔어?” “내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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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약속은 어쩌면 “영원히 사랑하겠다”가 아니라 "내일 다시 만나자”입니다. 그런데 광주는 그 내일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화려한 휴가』의 비극은 민우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신애에게 ‘내일’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완성됩니다.
2. 사랑은 이루어져야 성공하는가?
우리는 사랑을 결과로 평가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결혼하면 이루어진 사랑이고, 헤어지면 실패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을 두 사람이 하나가 되는 낭만적 융합이라기보다 ‘둘의 관점에서 세계를 다시 경험하는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사랑하기 전의 나는 세상을 ‘나’의 관점에서 보지만, 사랑이 시작되면 같은 세계를 ‘우리’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3. 영혼결혼식 ― 미래가 사라진 뒤 치르는 결혼식
여기서 영혼결혼식이 등장합니다. 보통 결혼식은 미래를 향한 의식입니다. “앞으로 함께 살겠습니다.” 그러나 영혼결혼식은 시간의 방향이 거꾸로입니다. 앞으로 같이 살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해 산 자들이 뒤늦게 치르는 결혼식입니다. 그래서 영혼결혼식은 매우 역설적인 의식입니다. 미래가 사라진 뒤 미래가 있었음을 증언하는 의식입니다. 이 때문에 영혼결혼식은 낭만적인 전설로만 읽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에는 항의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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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사람에게도 평범하게 사랑하고 함께 늙어갈 권리가 있었다.” 5·18의 상징적인 영혼결혼식은 실제로 1982년 윤상원과 박기순을 위해 치러졌습니다. 윤상원은 1980년 5월 27일 전남도청 최후항쟁 과정에서 숨졌고, 박기순은 들불야학 활동 중 1978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이들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극 《넋풀이-빛의 결혼식》이 만들어졌고, 그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습니다. 따라서 영혼결혼식은 개인적 애도와 역사적 기억이 만나는 장소입니다.
4. 사랑은 어떻게 정치가 되는가?
사랑과 정치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는 둘을 붙여놓습니다. 민주주의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들이 선거를 하기 위해서만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국가가 시민을 마음대로 체포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영화를 볼 수 있고, 가족과 식탁에 앉을 수 있으며, 밤늦게 거리를 걸어도 군인이 총을 겨누지 않는 것. 이 평범한 것들이 정치가 보장해야 할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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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조금 바꾸어 말하면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공통의 세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 세계가 무너지면 사랑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민우와 신애의 사랑은 사적인 사랑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인 사랑이 됩니다. 국가폭력이 침실과 식탁과 데이트까지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5. “임”은 누구인가?
여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도 다시 읽힙니다. 이 노래는 백기완의 장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바탕으로 황석영이 가사를 다듬고 김종률이 곡을 붙인 것으로 정리됩니다. 1982년 윤상원·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을 위한 노래극에서 사용되면서 이후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노래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임’을 특정 개인 한 사람으로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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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죽은 연인을 가리켰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임은 확장됩니다. 사랑했던 사람. 먼저 죽은 동지. 잃어버린 민주주의. 아직 오지 않은 자유. 즉 임은 부재하는 존재이면서 우리가 계속 기다리는 미래가 됩니다. 그래서 이 노래가 세계 여러 민주화 현장에서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보편성 때문일 것입니다.
6. 벤야민 ― 죽은 자의 미래를 구원한다는 것
발터 벤야민은 역사를 승자의 성공담으로 읽는 것을 경계했습니다. 역사는 앞으로 전진하는 진보의 행렬만이 아니라 그 길에 쓰러진 사람들의 실패와 좌절과 실현되지 못한 꿈까지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과거를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기록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현되지 못했던 가능성을 현재가 다시 책임지는 일입니다. 민우와 신애에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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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이 갖지 못했던 미래를 오늘 우리가 조금이라도 현실로 만들 수는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않는 사회. 생각이 다르다고 사람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사회. 그것이 과거를 구원하는 방식입니다.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지만, 그들이 꿈꾸었던 미래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있습니다.
7. 애도는 언제 끝나는가?
데리다에게 애도는 단순히 잊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을 완전히 내 안에 흡수해버리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떠나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그 사람의 부재를 품은 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대로 된 애도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잊지 않지만 붙들고만 있지도 않습니다. 신애가 민우를 평생 울면서만 기억한다면 그것 역시 민우가 바라는 삶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를 기억하는 가장 깊은 방법은 그의 죽음 앞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함께 살고 싶었던 삶을 계속 살아내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결혼식은 죽은 사람을 과거에 가두는 의식이 아닙니다. 산 사람에게 미래를 맡기는 의식입니다.
8. “산 자여 따르라”
그래서 「임을 위한 행진곡」의 마지막 호소는 중요합니다. 그 노래의 핵심은 죽은 자에게 있지 않습니다. 산 자에게 있습니다. 먼저 간 사람이 산 사람을 부릅니다. 이것은 복수하라는 말로만 읽기보다 살아 있으니 책임을 이어가라는 요청으로 읽는 편이 더 깊습니다.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사람과 함께 죽는 것이 사랑의 완성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소중하게 여겼던 세계를 지켜내는 것이 사랑의 또 다른 형태입니다. 그래서 “산 자여 따르라”의 ‘따름’은 죽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9. 백기완의 「묏비나리」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백기완의 「묏비나리」가 중요한 것도 여기입니다.「임을 위한 행진곡」은 「묏비나리」의 일부 표현을 차용하여 황석영이 가사를 구성하고 김종률이 곡을 붙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계보에는 처음부터 죽음과 사랑과 투쟁이 함께 있었습니다. 사랑하던 사람이 죽고, 남은 사람이 울며, 그러나 거기서 끝내지 않고 다시 걷습니다. 그래서 이 곡이 군가처럼 힘차게 들리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애도의 곡인데 행진곡입니다. 슬픈데 앞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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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을 부르는데 산 사람에게 걸으라고 합니다. 바로 이 모순이 이 노래의 힘입니다.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책임으로 형태를 바꾼다" 민우와 신애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결혼이라는 결과를 가져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민우가 죽은 뒤에도 신애의 기억 속에서 사랑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관객의 기억 속에서도 존재합니다. 더 나아가 그 사랑은 하나의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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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평범하게 사랑할 권리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 여기에서 개인의 사랑은 공동체의 윤리가 됩니다. 영혼결혼식도 그렇습니다. 죽은 사람에게 뒤늦게 결혼식을 올려주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그 의식은 산 사람들이 선언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에게도 미래가 있었다.” “그 미래가 폭력 때문에 사라졌음을 우리는 잊지 않겠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그 미래를 다시 빼앗기지 않게 하겠다.” 그래서 나는 영혼결혼식을 ‘미완의 미래를 위한 결혼식’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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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보통 두 사람의 미래를 시작하지만, 영혼결혼식은 사라진 두 사람의 미래를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사랑은 죽음 앞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저 형태를 바꿉니다. 함께 살아갈 사랑에서, 기억하는 사랑으로. 기억하는 사랑에서, 책임지는 사랑으로. 그리고 마침내 죽은 자의 목소리는 산 자에게 남습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국가폭력이 민우와 신애에게서 ‘함께 늙어갈 미래’를 빼앗았다면, 영혼결혼식은 그 사라진 미래가 분명 존재했음을 기억하고 그것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산 자들의 의식입니다. 사랑은 죽음 뒤에도 미래를 가질 수 있는가?
2026.8.29.sat.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