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Title) : 산상설교 해설(Explanation of Sermon on the mountain)
부제(Sub-Title) : 온유한 자들의 복(Blessed are the meek.)
성경 본문(Bible Text) : 마태복음(Matthew) 5장 5절
“온유한 자는(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μακάριοι οἱ πραεῖς, ὅτι αὐτοὶ κληρονομήσουσιν τὴν γῆν.”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1. 온유의 어원적 의미
온유(溫柔)라는 헬라어는 프라오스(πράος) 라고 하며 영어로는 meek입니다. 본문에 나온 온유한 자는 헬라어로 온유한 자들(οἱ πραεῖς)이라는 복수형이며 영어로는 The Meek입니다. 고대 그리스(Greece) 문학에서 온유함은 대부분 점잖거나(gentle) 부드럽다(soft)는 의미로 씌어졌다고 합니다. 놀란드(Nolland)라는 학자는 이 온유라는 원어적 의미를 무기력한(powerless)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2. 그러면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유하다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첫째, 온유하다는 것은 나약하거나 무조건 물러선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어적 의미가 그렇게 오해할 수 있겠으나 실제적으로 온유하다는 것은 나약하여 무기력하게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의 의견과 뜻에 따라 무조건 물러서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둘째, 온유하다는 것은 자기 소신이나 주관, 그리고 용기도 없이 무조건 얌전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소신과 주관이 없어 무조건 다른 사람의 의견을 따르거나 혹은 소신과 주관이 있어도 표현할 용기가 없어 얌전히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무조건 따르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셋째, 온유하다는 것은 극단적이지 않다는 것으로서 동양철학의 중용이나 혹은 로마 제국 시대에 유행했던 스토아 철학의 중용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지나치지 않고 부족하지 않은 적절함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넷째, 온유하다는 것은 잘 길들여지므로 나타나는 품성입니다. 마치 소나 말이나 기타 짐승들처럼 처음에는 거칠고 사나웠지만 인간에게 길들여지므로 부드러운 품성을 가지게 되어 인간을 잘 따르고 순종하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인생의 여정에서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통해 거칠고 사나우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않던 사람이 부드러운 성품으로 변화되어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된 성도의 성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온유하다는 것은 자신의 본능과 충동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자유로운 결단으로 모든 일에 신중하고 절제할 수 있는 품성을 말합니다.
여섯째, 온유하다는 것은 겸손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이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깨닫는 것이며 그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가식적으로 무조건 자신이 부족하다거나 연약하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자각함으로 진심으로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겸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온유는 이러한 겸손함을 바탕으로 나타나는 품성입니다.
3. 겸손함이 드러나는 성경의 예를 들면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째, 모세의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모세가 이집트의 궁정에서 왕자로 있을 때 그는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 병사에 의해 학대를 당하고 있을 때 분노하여 폭력을 휘둘러 그 병사를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 정부의 처벌을 피하여 미디안 광야로 가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마도 거기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처절히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또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왕 바로(파라오)로 부터 탈출시켰습니다. 그는 자신의 무기력함과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체험하고 겸손히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다.”는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민 12:3)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그의 고난의 삶을 통해 연단을 시키시므로 인간으로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깨닫게 하셨으며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의 변화시키셨습니다. 이렇게 자신과 자신이 가진 것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람들을 향하여 유순하고 부드럽게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모세의 온유함이었습니다.
둘째, 아브라함의 온유함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왔습니다.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므로 그는 풍요의 땅인 이집트로 갔다고 아내 사라를 파라오에게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의 약속을 의지하기보다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행하였다고 낭패를 당한 것입니다. 그 후에도 여러 사건들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생각대로 행하였다가 낭패를 경험하는 여러 사건들을 겪게 됩니다. 그러한 사건들을 통해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반항하거나 항의하거나 하지 않고 온유하게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그의 뜻을 깨달은 자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온유할 수 있습니다.
셋째, 다윗의 온유함입니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는 여러 잘못들을 많이 지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징계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늙어서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압살롬의 군대를 피하여 피난을 가던 도중에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시므이를 만났습니다. 시므이는 사울 왕과 먼 친척이었던 게라의 아들로서 사울 집안의 몰락이 다윗이라고 생각하여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시므이는 피난하는 다윗과 그의 일행들이 바후림에 도착했을 때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하였습니다. 이에 다윗과 함께 했던 장군 아비새는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다윗 왕에게 말하자, 다윗왕은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는 자신에게 징계를 내리신 것이므로 받아들이겠다고 했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태도를 보시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이니 시므이를 용서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태도에서 온유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힘과 권세가 있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적대하지 않고 온유하게 받아주는 그의 모습에서 온유함을 발견하게 됩니다.
넷째, 우리 구주 예수님의 온유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기꺼이 대제사장들이 보낸 사람들과 로마 병사들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산헤드린의 재판과 빌라도의 재판에서도 온유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자들에게 당장이라도 심판을 내리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모욕과 학대를 감내하시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온유하심으로 모든 고난을 견디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자신을 모욕하고 욕하는 자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온유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4. 온유한 자들이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온유한 자들이 받는 복이 “땅을 유업으로 받는 것”(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이 복이 부동산을 많이 소유하여 땅 부자가 되게 하실 것이라는 오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이 약속에서 땅(the earth)이라는 것이 물리적인 땅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지구상 곳곳, 즉 온 세상에 퍼져 있습니다. 따라서 온유한 사람은 온 지구상에 있는 사람들과 선하고 좋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온유한 사람과 친구가 되고, 이 온유한 사람과 함께 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를 든다면 역시 우리의 구주가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온유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지구상의 모든 곳에 주님의 제자들과 백성들과 친구들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온유하신 예수님이야말로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와 인종을 뛰어 넘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업으로 받으셨습니다.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한다면 넓은 인맥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나라와 민족과 언어와 문화와 인종을 뛰어넘어 지구상의 모든 땅에서 친구와 동역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5. 글들 맺으면서
사람들은 사납고 폭력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온유하고 모든 사람들을 포용하고 용납하여 품어주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온 땅(the earth)에서 살아가는 자신과 친근히 관계를 맺는 사람들을 기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온유함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성품이며 또한 인생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주시는 성품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계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