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 죄악과 허물을 가려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무화과와 가죽옷, 율법과 복음)
성경 : 창세기 3장 7, 21절, 이사야 64:6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물론 예외는 있어서 아프리카의 정글이나 남아메리카의 아마존 정글에 사는 몇몇 부족 같은 경우에는 가장 중요한 부분을 가리는 것 외에는 옷을 입고 살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의복을 갖춰 입는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외부의 위험, 즉 강한 태양 빛이나 혹은 추위로부터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한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것, 혹은 의복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한 것,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업을 나타내기 위한 것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에서 최초의 의복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므로 천지창조를 마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인 아담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불어 넣으셔서 살아있는 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하나의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 언약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과일은 마음대로 먹어도 좋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되며, 만일 그것을 먹게 되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과 아담이 맺은 언약은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하와에게도 해당되는 언약이었으므로 하와 역시 그 언약을 지켜야만 했고, 그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깨뜨린 것이 되므로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에덴동산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하와를 찾아 왔습니다. 뱀이 가장 간교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뱀을 가장 간교하게 창조하셨다는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대항하여 타락한 사탄이 뱀에게 들어가서 뱀을 간교하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사탄에 의해 장악된 뱀은 하와를 찾아가서 하와가 죄를 짓도록 유혹하여 말했습니다. 사탄에 들린 뱀의 유혹에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죄를 짓고 말았고 자신만 죄를 짓는 것에서 지나쳐 남편인 아담까지도 선악과를 따 먹게 하므로 하나님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한 결과 찾아온 것은 자신들의 은밀한 부분을 노출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진 것입니다. 눈이 밝아졌다는 것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변화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은밀한 부분을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만들어서 가렸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을 알고 하나님은 아담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맺은 선악과의 언약에 때라 그들은 하나님의 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여호와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만드셔서 친히 입히신 것은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치부를 가리기 위해 만든 무화과나무 치마가 오래 견딜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 옷은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말라버려서 부스러지고 곧 헤어져서 오래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치를 가리기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죽옷을 한번 입으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가죽옷도 영원한 것은 아니었으나 상대적으로 무화과나무의 잎으로 만들어진 옷과 비교해 본다면 상당한 기간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가죽옷은 대가를 지불해야만합니다. 가죽 옷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털이 있는 가죽을 가진 짐승이 죽어야만, 즉 도살되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죽 옷을 만들어 입히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짐승을 죽여 가죽옷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화과나무의 옷은 아담과 하와가 직접 만들어 입은 것이지만 가죽옷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셔서 입혀주신 것입니다. 아담이 만든 옷은 금방 해어지고 말았으나 하나님께서 만드신 옷은 오랫동안 입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무화과나무의 옷이 인간의 공로를 통해 자신의 수치를 가려보려는 인간의 율법적 노력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가죽옷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허물과 수치를 가려주시는 은혜에 속하는 복음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훗날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대속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들어 주신 구원의 길은 영원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구원의 길은 잠시 있는 것 같다가 사라지는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서 64장 6절에서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라고 함으로 하나님께 의로운 자가 되려는 인간의 노력은 다 더러운 옷과 같고 또 시들어 버리는 잎사귀와 같다고 합니다. 결국 의롭게 되려는 노력을 통해서는 인간의 죄악이 바람같이 인간을 몰아가게 비참한 지옥의 형벌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구원의 은혜는 히브리서 9장 14절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을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오직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믿는 것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오직 영원한 대속을 이루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 그리고 그가 이루어놓으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시므로 우리들은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율법의 한계와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원한 구원을 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셨으며 따라서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받으셔야 합니다. Soli Deo Gloria
창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사 64:6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