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학과 인정이 물씬 풍기는 애드리브의 달인 임현식
임현식(1945년 12월 31일 ~ )은 매 작품마다 감초 역할을 맡아 보는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 주어 오랜 시간 동안 한국 관객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배우이다.
전라북도 순창 출신으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 1969년 MBC 공채 탤런트 1기로
데뷔하였다.
[경력]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1964년)
경희대학교 한의학 명예박사(2000년)
중국 후난대학교 겸임교수(2006년 8월~)
국민건강보험공단 홍보대사
◆ 출연작
[드라마]-69편
수사반장(MBC)
암행어사(MBC)
한지붕 세가족(MBC)
대장금(MBC)
허준(MBC)
요조숙녀(SBS)
불량가족(SBS)
올드미스 다이어리(KBS)
이산(MBC)
사랑은 아무나하나(SBS)
[영화]-14편
라이어
미녀는 괴로워
올드미스 다이어리
◆ 수상 경력
MBC 연기대상 조연상(1977년)
MBC 연기대상 우수상(1987년)
MBC 연기대상 최우수상(1990년)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1991년)
MBC 연기대상 캐릭터인기상(2000년)
제39회 저축의 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표창(2002년)
SBS 연기대상 공로상(2004년)
임현식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서민적인 멋과 인간적인 사랑이 물씬 풍기는 독특한 연기 캐릭터를 자랑하는 연예계의 보물과 같은 존재이다.
임현식의 집은 송추 입구에 위치한 단아한 기품을 느끼게 하는 한옥이다. 선생의 손길로 다듬어진 정원은 오랜 세월 탓인지(1973년부터 거주하던 이 집을 한옥 으로 개조한 게 10여년 전의 일) 거의 숲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어 인상적이다.
선생의 집에는 대문도 존재하지 않는다. 드문 경우였지만 그만큼 타인을 향해 열려있는 선생의 삶의 철학이 반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선생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에 평생을 다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를 아우라처럼 내 뿜고 있다. 단순한 모방으로는 절대 따라할 수 없는 자신만의 경지에 오른 모습이 이런 걸까 싶다.
무엇보다도 지칠 줄 모르는 의욕으로 일상을 충실히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순수하고 소박하게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도 크다.
해학이 넘치는 에드리브의 달인. 그를 향해 바치는 세상의 이 찬사는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평생동안 자기 일에 끈질긴 진념으로 일관했던 그만이 얻을 수 있는 인간승리 였다. 이른바 신성일류도 아니고 최무룡과도 아닌 그가 그저 끝까지 하고자 하는 뚝심으로 일궈낸 보도의 전과였다.
덕분에 배우 임현식 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캐릭터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는 그는 아직도 ‘잘 나가는 현역 배우’로서의 가치를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외모가 배우의 최대자산으로 여겨지던 그 시절 5,000명이 지원한 mbc 공채 1기 입사시험에서 합격자 26명 속에 포함될 수 있었던 것부터가 기적이라고 할 만큼 배우로서의 그가 걸어온 길은 험하고 고단했다.
선생이 남과 달랐던 건 주위 여건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만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를 창출해냈다는 점이다.
선생은 자신이 내가 이도령 같은 역할만 했으면 지금쯤 연기자의 생활을 접고 장사나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는 너도 나도 ‘이도령’을 목표로 용을 쓰고 있을 때 방자역을 제일 잘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를 위해 70년도에는 전라도 부안에 있는 예악원 에서 향가라든가, 심청전, 춘향가 같은 작품들의 가사를 직접 베껴가며 공부를 했다. 우리 말에 들어있는 해학적 분위기를 체감하기 위해서다. 그런 식으로 쌓아올린 해학에 대한 순발력 등이 오늘 날 배우 임현식의 자산이 된 셈이다.
숱하게 자신을 옥죄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오로지 한길을 걷겠다는 진념을 잃지 않았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자신에 대한 자긍심 때문이었다.
현장에서 작품에 임할 때마다 더도 말고 다음 번 작품에서 감독들이 케스팅하고 싶은 배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선생은 자신은 주위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연기 외에 그 어떤 것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어진 역할에 몰입하고 그 캐릭터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있어서는 주변의 잡다한 것들에 대한 배우 나름의 정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 하는 그에게 강인한 장인 정신이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배우도 사람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인간이 먼저 돼야 한다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잘못된 인성을 가진 배우는 좋은 작품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도 없을뿐더러 배정되는 복도 누릴 수 없게 돼 있다는 것이다.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임현식은 2년 사이 홀로 딸 셋을 모두 시집 보냈다.
임현식은 “나는 벌써 딸 결혼식이 3번째인 유경험자니까 담담하고 좋다”며 애써 말을 아꼈지만 얼굴에는 딸을 보내야 하는 아쉬움과 허전함이 역력하다. 하지만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해 결혼을 하는 모습을 보니 아빠는 대견스러울 따름이다.
이날 결혼식은 중견 배우들이 총출동한 별들의 잔치였다. 박원숙 이순재 고두심 김병세 이한위 천호진 김을동 강석우까지 한 자리에서 쉽게 보기 힘든 중견 연기자들이 모두 모였다. 임현식의 인맥을 엿볼 수 있는 부분. 하객으로 참석한 연기자들 모두 “임현식이 혼자 세 딸을 참 바르게 잘 키웠다”며 “많이 섭섭할 것이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 아내가 떠난 후 황망했던 심정을 위로해 준 세 딸이 있었기에 슬픔을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홀로 가슴앓이하며 딸들을 애지중지 키워낸 아빠의 마음을 세 딸들은 모두 알고 있을까? 막내까지 곁에서 떠나 보내는 쓸쓸하고 헛헛한 기분은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전해진다.
하지만 임현식은 임현식이다. 슬픔도 곧 웃음으로 이겨내고 극복해낸다. 임현식은 아버지 멋있게 보이라고 얼굴에 분을 칠해주는 둘째 딸에게 “아빠가 미남으로 보이면 안된다. 사람들이 장가 가라고 해 귀찮다”고 농담을 하며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 딸에게 단호하게 “안가” 라고 답했다.
그렇게 떠나 보낸 세 딸, 하지만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큰 딸들이다. 임현식은 딸들의 충만한 사랑으로 인해 딸들의 빈자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행복한 아버지일 것이다.
진솔해질수록 까닭 없이 슬퍼지더라구.
인생은 끝까지 느끼며 사는 거야.
절대 달관이란 게 있을 수 없어. 인간이 인간을 충고할 수 없는 것이, 아무리 말해봐야 전달은 200분의 1도 안돼. 영화에 공감해 관객이 울 수는 있지만 다음 날은 또 씻은 듯 그 감정이 없어져 버리지 않아?
다시 말하면 예술가가 지닌 감정의 200분의 1만 전해져도 우리는 눈물 흘리고 감동할 수 있다는 얘기지.
허투루 넘어가면 조연이니 가뜩이나 별 볼일 없는 장면이 정말 보잘 것 없이 흘러가버려요.
그래서 결말도 없는 장면에서 괜히 나 혼자만의 엔딩을 가져보기도 하지.
(인생의) 좋은 멤버들과 헤어지는 일이 우울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요
언제 내가 정말 고독해봤는가. 진정으로 슬픈적이 있었나. 때리면 아파서 울고, 돈 빌려주고 못 받아서 애석한 적은 있어도 진정한 아픔과 그리움을 겪어봤던가. 그러니 이것을 슬퍼 말자. 이것도 삶의 과정이고 자연적인 섭리다.
그리움과 고독에서 오는 감정은 아름다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움에 겨워 먼산을 본다거나 비오는데 집 앞 철길을 혼자 걷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임현식(그녀에게 말하다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