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많이 피우세요, 나라를 위해.
김종훈
군대에서 담배를 배웠습니다.
상병이 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고, 무엇보다 한 값에 250원밖에 하지 않은 가격이 참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작업 중간중간 쉬는 시간마다 비흡연자는 따로 도구 정리, 심부름 등을 해야 했기 때문에 나름 전략적인 판단이기도 했습니다.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면, 사레 걸린 것 마냥 매운 기침이 터지고 머리가 띵- 울려요. 그렇게 기침이 줄어들 무렵 담배의 참맛을 알았습니다. 폐포 끝까지 연기를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면, 세상 모든 시름과 걱정과 압박과 쓸쓸함이 짙은 한숨으로 눈에 보였습니다. 그게 좋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느 전우들처럼 매월 연초 보급 날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죠.
전역 후에도 많게는 하루 한 갑, 적어도 네다섯 개비는 피웠습니다. 일어났으니 한 까치, 밥 먹었으니 식후땡, 일하다 힘들었으니 한 까치, 퇴근했으니 한 까치, 자기 전 한 까치. 담배를 피우는 이유는 아주 다양하고 구체적이었어요. 주변 사람들도 다들 피는데 뭐 어때, 윈스턴 처칠은 그렇게 피고도 90을 살았다며 자기합리화로 무장했습니다.
점차 입에서도 손끝에서도 옷에서도 담배 쩐내가 배겨가고, 집 안에도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밖에 나가 담배를 입에 물면 죄인마냥 아이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았습니다. 나에게도, 남에게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된 겁니다. 끊어야지, 끊어야지 했지만 저에겐 작심삼일도 억겁과 같았어요. 그래도 죄책감이나 좀 덜어보고자 신년 목표 1순위는 항상 금연이었습니다.
하지만 담배의 수렁은 깊고도 넓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 피웁니다. 안 피운지 오래되었습니다.
옛말에 담배 끊은 독한 사람과는 상종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모진 사람은 아닙니다. 그저 담배를 왜 피워야 했는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을 뿐입니다.
멋있어서? 맛있어서? 아닙니다. 그저 습관이었어요. 중독이었던 거죠. 그럼, 백해무익하다는 담배를 피우면 뭐가 좋은지 고민해 봤습니다.
오랜 생각 끝에 좋은 점이 2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먼저, 담배를 피우면 나라의 발전에 이바지를 할 수 있습니다. 비흡연자에 비해 세금을 엄청나게 많이 내기 때문이죠. 4500원짜리 담배 1갑에 담배소비세 1007원, 국민건강증진부담금 841원, 개별소비세 594원, 지방교육세 443원, 부가가치세 409원, 엽연초 부담금 및 폐기물 부담금 24원, 총 3318원의 다양한 세금을 납부해 주는 성실 납세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저 같은 담배 중독자는 젊어서부터 나라에 세금을 따박따박 내면서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주고, 우리 마을 아이들 교육에도 큰 기여를 합니다.
두 번째,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일찍 죽어주기 때문이죠. 인구를 조절하는 데에는 크게 3가지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전쟁과 질병, 산아정책입니다. 그런데 전쟁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너무 위험하고, 질병은 어린아이와 어른을 구분하지 않고, 산아정책은 국민의 자유권을 침해하면서 그 효과가 투입 대비 미비하기 때문에 추진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담배는 대부분 나이 든 사람들만 골라서 줄여줍니다.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면 폐암 등 각종 질병에 걸려 사망할 확률이 매우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하버드의 마이클 센델 교수는 이로 인한 경제적 효과가 연간 1억 4700만 달러라고 합니다. 나하나 희생해서 노령연금, 건강보험 등 각종 적자 예산의 부담을 확실하게 줄여주는 거죠.
이렇듯 담배에는 아주 훌륭한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이 두 가지는 나에게 필요 없는, 아니, 있으면 절대 안 되는 것일 텐데도 저는 어리석게도 계속 피우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 담배를 완전히 근절시키는 건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신규 유입인구를 막으면 되거든요. 지금 이왕에 피우고 있는 흡연자까지는 어쩔 수 없으니 담배 구매 등록제를 시행하여 계속 구매하게 하고, 이제 자라나는 아이들의 유입만 막는 겁니다. 그렇게 2~3세대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담배 인구가 거의 사라질 것입니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절대 이런 담배 구매 등록제를 추진하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국민의 기호와 행복 증진을 위해? 아닙니다. 당연히 [돈] 때문입니다.
생각 끝에 지금껏 이용만 당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 인생이 한심했고, 불쌍했어요. 그래서 그렇게 담배를 끊었습니다. 지금도 담배 생각이 가끔 나지만, 그럴 때마다 어리석었던 내 젊은 날을 떠올립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담배란 백인들이 독한 술을 준 데에 대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복수’라고 했습니다. 맞아요. 그 복수의 나비가 우리나라 재정에 건전성을 더해주면서 나의 폐를 시꺼멓게 만들어주는 효과를 만들어 주고 있었습니다.
결국 담배는 자발적으로 나의 돈과 건강을 나라에 바칠 수 있게 해주는 도구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훌륭한 통치 수단이죠.
그들은 말합니다.
“담배 많이 피우세요, 나라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