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동 사람들_ 탁구왕 이영민①]
"탁구의 기본은 하체야!! 지금까지의 탁구는 잊어!”
대흥동에 살며 부딪히고 엮이는 주민들과의 동네 버라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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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 '우리들 공원' 근처에 위치한 '대흥 탁구'
#대흥동 사람들'연재물을 시작하며
대흥동 사람들 연재는 공감만세가 지리적으로 위치한 곳인 대전광역시 중구 대흥동을 중심으로 공간적 공동체(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자 시작된 프로젝트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전함에 다름 아닙니다. 이 공간이 따뜻한 마을 소식지로서 기능하길 바랍니다. 위 글들은 '로드스쿨(유성탐험대)'과 함께 하는 대흥동 공정여행 진행을 위한 답사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날은 가슴답답증이 나를 괴롭힌 지 5일 째 되는 날이었다. 얄궂게도 그날은 일요일. 날씨는 데이트하기에 너무도 적절한 온도. 기상청 제안 최적의 온도 23도 쯤 일까?
가슴 답답증의 원인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태어나서 처음 받아 본 내시경을 통해서도 뭐 이렇다 할, 속시원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아마 신경성일 테지. 단지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이거 어려운 건데 잘 참네요”라는 말만이 남아 우울한 가슴 한 켠에 위안을 주었을 뿐이다.
약을 타 왔다. 그리곤 집에 들어가 무작정 누웠다. 남자 냄새나는 방구석에서 막힌 가슴을 연신 쓸어내리다가 그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병이 더 도질 것만 같았다.
어느 정도의 운동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운동하기엔 먹은 게 없어 힘들다. 힘들면 누워야 한다. 누우면 힘이 없다. 힘이 없으면 운동을 못한다. 그러면 나약한 나의 몸은 계속 병든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운동. 축구처럼 과격한 운동은 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역시 하나로 귀결된다.
‘탁구’
나는 서둘러 네이버 지도에 표시된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탁구장을 찾았다.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 럭키!
안개처럼 흐리멍텅했던 좌뇌의 주름에 어느새 탁구장으로 가는 길목이 또렷하게 새겨진다.
‘대흥 탁구장’은 정말 낡은 탁구장이었다. 두 청년들이 썩 탐탁치 않은 실력으로 볼을 주고 받고 있었다. 옆 쇼파는 관장님이 스포츠 신문 스도쿠를 풀고 계신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아까 전화드린 사람인데요”
“아~네. 아까 전화하신 분이죠?”
“네, 아까 전화한 사람이 접니다”
몇 분 간 정적이 흐르고, 몇 분 후 관장님은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하루 몇 시간 정도 재미 볼 생각이던 나는 그의 정열적인 언변에 놀아나고 있었다.
“관장님, 저는 회원도 가입해서 매일 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주변에 탁구 칠 사람이 없어요. 탁구를 혼자 칠 수는 없잖아요?”
“그건 학생이 진짜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탁구를 사람이랑 쳐야 한다는 편견을 버려요. 사실 공도 필요 없어. 일단 쳐봐야 알 테니 일어나 봐요”
어떻게 흘러가는 시추에이션인지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난 무언가에 홀린 듯 그의 말에 따르고 있었다.
그는 나와 연습경기를 하며 나의 자세와 구질을 판별했고, 난 단박에 간파 당했다.
“군대에서 탁구쳤죠?”
“네”
“난 딱 안다니까”
그러면서 당신의 화려한 이력을 늘어놓는데 대학 시절엔 체육대회를 하면 어떤 종목에든 그가 들어가기만 하면 우승은 따 놓은 당상이었고, 탁구도 취미로 시작하던 것이 지금은 프로선수 중에도 중하위권들은 자기랑 하면 쩔쩔맨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손님이 없을까. 참 의문이다. 아까 시합을 하던 젊은이들도 가버리고, 쓸데없이 넓어 보이는 탁구장엔 단장님과 나 둘 뿐이었다. 이런 큰 공간에 손님도 없는데 어언 13년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었는데, 그 건물 주인이 단장님이었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종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자기 소명서의 일종인 듯 보이는 그 종이엔 ‘탁구대회에 나가 우승하는 내 모습을 그려 본다’, ‘난 매일 같이 나와 탁구 연습에 매진한다’, ‘난 단장님께 절대 복종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종이에 적힌 것은 나의 미래일까? 특히 마지막 부분은?
하는 운명이 느낌이 잠시 뇌리를 스쳤다.
연습은 시작되고, 난 그의 독특한 몸놀림과 정열적인 립서비스에 반해 버렸다. 그의 립 서비스는 칭찬만 하지 않았다. 날 냉정하게 간파하는 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엔 날 치켜 올리며 내 기분을 고양시켜 주었다. 난 그것을 알았음에도 빠져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금, 시선이 공을 놓쳤죠? 난 다 알아요”
“사람들이 나를 귀신이라고 그래요. 어떻게 다 아냐고”
“이런 게 실력 있는 사람들만 할 수 있는거지”
그렇다고, 그렇다고, 동의해드렸더니 기분이 좋아지셔서 스매싱 기술을 보여주시겠다며 공을 위로 던진 후 탁구채로 냅다 후려갈겼다. 그 포즈 자체도 아크로바틱해서 웃겼지만 공은 목표한 곳을 맞추지 못하고 나를 맞출 뻔 했다. 오늘 처음 본 나인데, 무자비한 스매싱을 내게 날리다니.. 관장님의 그 경우 없음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제자는 역시 막 대해야 맛이지!’
다시 지루한 기본자세와 스윙 연습. 그가 주는 공을 계속 받아내는 훈련이다.
“지금까지는 탁구치면 한 쪽 팔만 아팠죠?”
“네”
“온 몸으로 쳐야 하는데, 팔만 냅다 휘두르려고 하니까 안되지”
“아..”
“특히 하체! 하체가 중요해요!”
반복 훈련인데도 반복이 안 되는 이유는 공이 한 번 오고 가면 부연 설명이 십분. 자세가 조금 흐트러지면 잔소리가 십분. 이런 식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관장님을 통해 경청과 인내심과 하체의 중요성을 깨달아 가고 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