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정지용 시/이동원·박인수
'88년 정지용시인 추모공연 준비중인 두 PD의 부탁.
시는 아름다웠지만 노래 만들기엔 어려웠다.
피아노 앞에서 긁적거리기 10개월, 녹음 날짜에 겨우 맞춰 완성.
발표와 함께 엄청난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향수」는 잊을 수 없는 작품중 하나다.
우리 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올려놓은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명곡, 하지만 「향수」만큼 어려웠던 곡도 없었다.
'88년 박강희 PD와 신광철 PD가 찾아왔다.
이들은 당시 정지용시인 추모작업을 준비중이었다.
월북작가로 묶여있다가 해금이 된 천재 작가를 위해 곡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두사람은 정지용 시인을 좋아하는
모임의 회원이었던 것 같다.
이들은 나와 만나기 전에 이미 다른 작곡가에게 곡을 부탁했으나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반드시 대표작인
「향수」에 멜로디를 붙여야 된다는 요구까지 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 고/얼룩백이 황소가 해설 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던 곳…」
시는 아름다웠지만 노래로 만들기는 어려운 곡이었다.
노래도 글자 수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향수」는
기존의 틀에 맞지 않는 곡이었다.
그렇다고 시를 훼손해가며 노래를 만들 수도 없는 노릇,
고민에 고민이 이어졌다. 두사람의 요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곡을 통해 명예회복을 해야겠다는 얘기와 음반으로
제작하고 싶다는 뜻도 비쳤다.
당시에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던 팝송「Perhaps Love」처럼
만들어 달라는 부탁과 함께.「Perhaps Love」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존덴버가 함께 불러 세계적인 히트를 했던 작품이다.
가수 역시 이동원과 성악가인 박인수씨가 내정됐다.
박인수씨는 외국에서 10년이상 공부한 사람인데다
활발한 활동으로 꽤 명성을 얻었던 성악가였다.
피아노 앞에서 날마다 음을 긁적거렸지만
「감」이 떠오르지를 않았다. 10개월이 흘렀다.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아내는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책임을 져야지 그만 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협박성」충고를 했다.
10달이 흐르자 내게 곡을 부탁했던 신PD도 다급해졌다.
두사람은 내가 없는 새에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거의 끝나가는 모양』이라며 『녹음 날짜부터 잡아라』
라고 얘기를 했다.
아직 미완성인 곡을 두고 녹음날짜까지 잡아뒀으니
어찌됐든 일은 끝내야할 판이었다. 결국 곡을 넘겼다.
성공은 미지수였으나 이동원과 박인수씨는 만족해 했다.
이동원에게는 주문을 많이 했다.
시인의 뚜렷한 사상이 담긴 노래이니 「터프하게」 노래를 해라.
미성으로 꾸밀 필요가 없다.
가수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악보를 받고 자기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연습이 필요하다.
노래 한 곡이 탄생하는 데 1~2년이 걸리기도 한다.
악보를 받아 든 가수 역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어 가야한다.
이동원은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차를 타고 강원도 일대를 쏘다녔다. 탁트인 들판,
얼룩백이 황소가 노니는 목장, 이런 곳이 보이면 그 자리에서
차를 멈추고 나가 감정에 몰입했다.
『아마 수천번은 불러봤을 겁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래를 해본 적도 없어요』.
이동원이 이 노래가 성공한 뒤에 내뱉은 고백이다.
허스키한 듯하면서도 맑은 음색을 가진 이동원과
힘이 들어있는 테너 박인수교수의 곡은 묘한 조화를 이뤄냈다.
'89년 10월 3일 정지용시인의 흉상제막식에서 이 노래를 공연했다.
발표와 함께 「향수」는 엄청난 반향을 몰고왔다.
「클래식」과 「대중음악」경계를 나누는 것조차 무의미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여기 저기 열리는 콘서트에 불려다녀야 했다.
그러다 박교수가 국립오페라단에서 제명을 당했다.
국립오페라단의 정식단원은 국내 최고의 성악가들만 누릴 수 있는
영예였다.성악가로서의 품위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제명을 당했지만
인기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이 사건을 계기로 국립오페라단의
정식단원제마저 없어져 버려 결과적으로는 그가 이긴 셈이었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고향이란 인간의 원초적(原初的) 생(生)의 뿌리이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영원한 안식처이다 . 그러므로 시인이
고난과 시련의 현실에 놓여 있을 때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과거의 고향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다.
이 시는 정지용이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재학 시절에 쓴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이국 땅에서 낯선 환경 속에 생활하며
유년 시절에 겪은 여러 추억과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이 시를 쓰게 한 배경이라 할 것이다.
토속적인 어휘와 창가조(唱歌調)의 구성 형태를 취하면서도
표현에 있어 감각적 심상을 사용한 것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특히 감정의 노출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모든 정서를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처리한 것은 이 시가 한국 시사(詩史)에 있어
한 단계 발전했음을 보여 준다.
1. 이동원&박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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