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홍천읍 동면 노천리에서 서석면까지
2015년 11월 12일 목요일 둘이서, 입동 나흘 후, 날씨 매우 적당함. ..
7시에 전철에 학생과 그 어머니가 함께 타는 모습이다. 아, 오늘 수능날이구나, 자세히 둘러보니 학생 몇이 있는데 그들은 매우 고요하게 보인다. 생기가 있다기 보다 어디 먼 선방에서 명상에 잠긴듯하다. 하긴 평생을 좌우하는 시험이니 말이다. 나는 이런 평생을 좌우하는 시험제도에 대해 매우 불만이다. 대학이 평준화되고, 시험은 성적이 아니라 대학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격시험으로 바뀌고, 그것도 한번 통과하면 두 번 시험치를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2등급에 1등급 올리려고, 대학 서열에서 한단계를 올리기 위해 재수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인생의 소모인지 말이야. 인생을 일년 다시 소모하게 만들고도 뻔뻔하게 대학입시 뭐라고 진단하고 떠드는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제도에서 큰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지. 박근혜인들 제정신 이겠나 그래서 며칠 전에는 “혼이 정상적 ..”이란 알 수 없는 삼천갑자 점쟁이 같은 소리도 나온다.
강변터미널에서 홍천까지 그리고 홍천에서 동면까지 동면에서 노천리까지 10시가 넘었다. 강원도에는 안개가 끼어서 홍천에 내렸을 때 싸늘함에 대합실에서 머물렀으나 동면에서는 길거리에 있으니 으실으실하다. 햇볕이 나기 시작하여 그나마 차 기다리며 서있는 동안 그런대로 지낼만하다.
노천리에서 내려서 444번 지방도를 따라 죽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 실개천에는 며칠전 비가 왔기에 물흐르는 소리가 제법 아름답게 들린다. 이 길에는 사람도 차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그래도 이 구도로 주변에는 곳곳에 귀촌집들 팬션들이 들어서 있다. 도로가에 작은 밭들을 일구는 모습이 원주 주변의 귀촌부락들과는 다르다. 여기는 원주 주변은 별장인데 이곳의 귀촌은 삶이 있다. 이 조용한 도로 거의 20킬로를 걷는 동안에 뛰엄뛰엄 귀촌들이 삶의 한적함 고요함 그리고 느긋함이 있어 보인다. 가끔 괜찮은 밭에는 지난번에 보았던 배추가 속을 가득 품었다. 짚으로 배추을 감싸주지 않았는데도, 추수하는 배추밭을 보니 속살 가득하여 퉁퉁하다. 어느 집에서는 김장을 담고 있기도 했다.
노천리에서 서석면으로 가는 길의 반은 오르막이고 반은 내리막이다. 오르막길이 작은 개천을 끼고 가듯이 내리막도 마찬가지다. 이 중간에 고개가 있는데 이름은 잊었지만 고도는 500미터로 되어 있었다. 거의 10킬로를 오르막길을 오르니 모자도 벗고, 머플러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윗도리를 벗어서 들고 걸었는데 땀이 났다. 그런데 고개를 넘어서 다시 옷을 입었다. 오를 때는 바람이 없었는데 내리막길은 바람을 안고 갔다.
이 조용한 길에, 오늘은 군부대 도로 운전연습이 있는 모양이다. 오르막길에서 트럭, 대형버스 작은 승용차 등이 30여대 느린 속도로 오르지만 디젤류들이 품어내는 냄새가 산골 공기를 망쳤다. 내리막길 마지막에서 다시 돌아 오는 길에 마주쳤지만 거의 평지여서 인지 디젤냄새가 거의 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방도는 읍내버스도 하루에 3대 정도 다닌다고 한다. 조용한 동네에 귀촌 귀농자들이 잘 가꾸어가는 곳인 듯하다.
오르면서 한 집 내리막길에서 여러 집에서 고추농사 밭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고추가 익지 못하고 희끗하게 달린 채 있었다. 아마도 이 지역에 고추밭에 질병이 돌았던 것 같다. 고추가지에는 여러 고추가 아직 달려 있는데 한 두 개 붉은 것을 제외하고는 한 그루에 달린 여러 고추들이 허옇게 빗바레 있었다. 고추 추수시기도 훨씬 지났지만, 그대로 둔것에 아마도 농부들 손대기도 싫을 정도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한꺼번에 갈아엎을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내리막 길가의 도로변 깍아 낸 산비탈에 토종벌을 바위들 사이에 여러 곳에 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꽃들이 없는 입동을 지났는데 토종벌통을 옮기지 않고 저 바위들 틈에서 겨울잠을 자는 건가...
늦게 걷기 시작해서, 오르막길 산길을 걷다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리고 내리막길은 쉬웠지만 지친 발길로 걸음이 늦었다. 중간에 사과 반개, 비스켓, 식빵 두조각으로 걸었으니 무척많이 걸은 셈이다. 거의 다섯 시가 다 되어야 서석면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난 안쪽에 청국장을 잘하는 집에서 맛있게 먹었다.
돌아오는 버스는 서석면에 홍천까지 직행으로 56번국도와 44국도로 가는데 한시간이 채 안 걸렸다. 그리고 홍천에서부터는 잠 속에서 서울에 도착했다. (48VL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