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앞두고 각 대선주자 캠프에서 ‘보건의료 공약’을 제시하고 있다. 주자별로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말하는 내용들은 건강보험 보장률 강화, 비급여 항목의 급여화, 지역 의료서비스 강화 등이다.
가장 크게 차이가 나는 내용은 무상의료와 의료민영화에 대한 찬반 여부인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모두 ‘돈’이야기라는 데는 공통점이 있다. 즉 나라가 돈을 퍼 주어서 국민들의 건강을 돌봐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공약들을 보고 있자니 암환자에게 당장 빤짝 하는 강장제나 스테로이드를 퍼 주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우리나라의 보건의료체계는 근본부터 커다란 고장이 나 있는데 이를 해결하겠다는 발상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근본 문제는 다음과 같다. 내는 돈(건강보험료)에 비해 너무나 큰 보건의료 수요, 그것을 뜯어 맞추기 위한 만성 저수가, 의사와 의료기관의 무한선택권의 보장과 그로 인한 의료전달체계 및 지역의료체계의 붕괴, 전근대적인 의료문화로 인한 보호자 간병 시스템 및 부분적으로 간호수가의 부족에 기인하는 간호인력 부족과 간병인 고용, 효능이 불확실한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 의사의 게이트키핑 기능 부족, 수요를 생각하지 않는 전문의 양성 프로그램 등이다.
한 마디로 싼 값에 전문 의료를 내가 원할 때 어디서나 받아야겠다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불가능한 국민의 욕구가 의료계의 희생 덕에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우리 의료이다.
그나마 이것도 고령화와 의료기술의 발전, 의사 수 증가로 인한 개원가의 무한경쟁으로 인해 더 이상 유지되기도 어려운 시점에 도달했는데, 정치권 인사들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로지 모든 것을 돈과 예산의 문제로 치환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듯한 그들의 만용이 참으로 가소롭다.
예컨대 간병인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발상을 살펴보자.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간호수가를 지급하여 병원이 간호인력을 충분히 고용하고, ‘보호자’들이 병원에는 아예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해결책일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간병인’이라는 제도에 대해 일인 당 매월 수백만원의 급여를 지급하겠다면 어떤 건강보험 재정도 오래 버티지 못한다.
비급여 항목 역시 지금은 의료비의 증가를 막고 있는 일종의 안전판 구실을 하고 있는데, 이를 열어버린다면 불필요한 의료수요는 폭증할 것이다. 이를 막는 것은 오로지 의료진의 전문가적 판단인데, 현재의 의료시스템 내에서 의사들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데 더 이상 진료가 필요 없다는 의사의 말에 따를 환자가 어디 있겠는가?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상급 병실까지 건강보험으로 해 준다면 하루 세끼 제공하는 입원실을 환자가 왜 나가겠는가?
의약분업때도 줄창 이야기했지만 의료는 사회과학이나 경제, 관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이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보여주는 질병 행태는 전 세계 어디서도 통용되지 않는 모습들이다.
사회지도층부터가 어디가 아프면 사소한 병에도 초대형병원의 최고 전문의를 우선 찾는데, 자기가 충분히 움직이고 밥 먹을 수 있어도 가족 중 누군가가 24시간 붙어 있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게 하루아침에 바뀔 것인가? 이를 개선하려면 초등학교 이전부터 대대적인 교육과 의식개혁이 있어야 하는데 건국 이래 그런 시도는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환자가 요구하는 대로 모두 들어주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예전 네덜란드에서 만든 유아 교육용 애니메이션인 ‘꼬마 토끼 미피’를 보면 네 살 먹은 아기 미피가 병에 걸려 병원에 가자 엄마 아빠와 작별 인사하고 혼자 병실로 가는 장면이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이것이 일상이니 애니메이션으로 나왔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의료문화, 의료진과 병원을 신뢰하고 꼭 필요한 진료만을 제대로 된 대가를 쳐 주고 받는 의료문화가 되지 않는다면 그 어떤 공약도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인간의 무한한 욕구는 그 어떤 공적 자원도 모두 감당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