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나라 수도 동경
이 신 백(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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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 단풍 들것네”. 김영랑의 시‘단풍의 한 구절이다. 가을 걷이와 함께 산야를 울긋불긋 수놓은 시월상달에 한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의 수도 동경을 나흘간의 여정으로 다녀왔다. 사십 명의 일행은 예비역 대장, 전직 국회의원, 전, 현직 대학교수, 기초 및 광역의원, 중견 탈랜트 사업가 등 자기고장에서 지도층 인사라고 할 만한 분들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이륙한 비행기가 동해안과 현해탄을 건너 동경 나리타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약 두 시간이 소요되었다. 일본의 천주교 전래 역사와 성당 등을 둘러보기 위해 2005년 가을 천주교 교우들과 함께 나가사끼 등지를 다녀 온지 팔년 만이요 두 번째 일본 나들이였다.
비행기 창밖으로 내려다보이는 동해와 현해탄의 물결은 잔잔하였고 한낮에 항해하는 배들의 모습과 창공에 여기저기 떠다니는 구름들은 이십 세기 전반 일제 강점기 시절 가슴 아픈 대한제국의 역사는 잊은지 오래인 듯 한가롭고 평화롭기만 하였다. 비행기가 일본 열도에 들어서자 어느덧 눈 모자를 쓴 후지 산이 시선을 사로잡더니 산과 들, 도시와 농촌이 한눈에 들어온다. 들판은 가을 추수가 끝나고 들녘에는 벼를 거둬들이고 남은 그루터기를 예술적 문양으로 보기 좋게 다듬어 놓은 곳이 드문드문 눈에 들어온다. 일본의 국토가 좁은 줄만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듯 자그마한 숲과 녹지공간들이 이곳저곳에 자주 눈에 띄는 것이 퍽 인상적이다. 조국을 떠나 다른 나라의 입국관문인 공항을 나설 때면 이국적인 정취와 멋으로 흥분되고 설레 임이 느껴지는 것이 여행자들의 공통된 마음일진데, 두 번째의 일본 방문이기는 하지만 설레이기 보다는 화창한 가을날씨에 걸맞지 않게 차분하다 못해 착잡한 마음이 되는 것은 ‘특수한 한, 일 관계’를 알고 살아온 나 혼자만의 감정은 아닐 터이다. “세상에는 신(神)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과거를 바꾸는 것이다.”라는 말로 박 대통령이 한, 일 관계의 특수성을 말하지 않았던가.
일본은 일억 이천 칠백만 명의 인구가 네 개의 큰 섬을 비롯하여 약 육천 팔백 여개의 섬에 흩어져 사는 열도로 구성되어 그 넓이는 우리나라의 약 3.8배(38만 제곱Km)에 이른다. 기후는 주야간 온도차가 크며 서울과 동경 간에는 한 시간의 시차가 있다. 동경은 나리타공항에서 약 60km 떨어져있어 버스로 한 시간정도 걸린다. 일행은 동경시내로 들어가 시청사 건물 꼭대기 층인 45층 전망대에서 시내를 관광하는 기회를 가졌다. 전망대에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동경 시내 주요 볼거리에 대한 사진들과 함께 해설이 실린 액자와 2020년 동경 올림픽 유치 성공을 환영하는 홍보용 포스터가 벽면에 부착된 것이 이채롭다. 전망대 주변의 주요건물에 대한 해설은 통역기를 이용해 들을 수 있는 한편으로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동경시내를 감상하는 동안 자원봉사요원인 안내인들은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과 친절한 언행을 보여줌으로써 일본에 대한 ‘응어리진 감정’이 조금은 풀리는 듯하였다. 동경은 인구가 12백만 명으로 일본 전체인구의 약10%를 차지 할 정도로 밀도가 높은 반면, 면적은 서울의 약 3.5배가 된다고 한다. 그토록 넓은 땅에 빌딩 숲을 이루는 도시 중심지역은 참으로 비좁고 옹색하다는 느낌이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답게 건물이나 거리, 수로 등 거리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듯 깨끗하면서도 오밀조밀 짜임새 있게 꾸며져 있었다. 일본인들 특유의 검소함과 절제, 품위가 느껴지는 인상을 풍긴다. 동경시내 세 개의 지방도시 면적의 5분의1이 매립지인데 바다를 매립하면 이십년 이상 묵혀서 자연스럽게 다져지기를 기다렸다가 건축을 한다니 그들의 인내심은 ‘빨리빨리’로 표현되는 우리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한번 건축물을 지으면 삼십년은 지나야 재건축을 할 뿐만 아니라 지을 때는 ‘백 년 동안 살 수 있는 집’을 짓는다는 것이 건축가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저들의 ‘실용성’은 평가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구는 한국의 2.5배요 국토면적은 3.8배인 ‘대국’ 일본일진데 어이하여 이웃나라를 탐하고 ‘땅 욕심, 바다 욕심’이 그 토록 큰 것인지 순진한 나로서는그들의 국민성이 도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일제(日製)는 좋은데 또 다른 일제(日帝)는 싫다’는 우리 국민들의 성향은 결코 나만의 생각은 아닐 터이다. 대한제국을 36년간 침탈하고 ‘동양 평화론’을 주창한 안중근 의사를 ‘테러리스트’라고 평한 일본은 어떤 이웃 나라인가?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의 한자나 불교가 한국을 통해 일본에 전해졌고 메이지 유신이후에는 일본을 통해 서양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왔다. 두 나라는 정치, 역사, 영토문제에서 다투는 경우가 많은 현실에서 “정치가 문화를 절대화하면 사람들 사이에 대립을 불러오지만, 문화가 정치를 상대화하면 대립을 진정 시킬 수 있다“는 일본의 중견 언론인의 글이 생각난다.
어느 종교단체는 대한민국은 아버지(父)의 나라요, 일본은 어머니(母)의 나라라 하거늘, 이웃이 숙명인 일본이 몸과 마음과 영혼, 삼위일체가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 이웃사촌의 나라, 형제의 나라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끝) (2013.10.14.-17. 동경 방문. 10. 27 작성. 2014.7.23. 1차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