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포기한 대학을 재수 후 1년이 지나서 할 수 없이 그 대학을 가게 된다.
한심하다는 생각에 한 동안 공부는 뒷 전이고 고등학교,대학친구들과 열심히 놀았다.
1학년 1학기 때 성적결과는 학사경고 !
그래도 정신을 못차렸다. 지나간 애기지만 이 때도 중학교 시절처럼 운동으로 승화시켰더라면
180도 내 생활은 달라려 엄첨 발전하였을 것인데 이 시기엔 그 때 하지 못하는 술을 먹게 되니 술이 문제로다 !
2학년 2학기가 되서야 철이 드는데
그 때 만났던 같은 과 공부잘하는 유진이가 나의 단짝이 되어준것이다.
그 친구는 지난 2년 동안 나와 사귀고 싶었다하면서 나에게 공부의 방향타 역할을 해 주었다.
친구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친구 잘 사귀어야한다고 세상은 우리에게 말 한다 !
중학생 때 공부 잘 하던 필자에게 어느날 친구 어미니께서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수연이와 잘 지내길 당부하신다고 하셨는데 바로 그 의미일 것이다.
이때 부터 마음을 잡아 공부를 착실히 다시 시작하였다.
영어를 제일 좋아했기 때문에 영문과 공부가 나에게 큰 부담이 되질 않았다.
내친 김에 학교 근처에 있는 육체미 체육관을 찿았다.
중학교 부터 태권도와 합기도 그리고 깡통으로 만든 역기와 아령으로 운동하는데 익숙한 필자는
기구들을 보면서 마치 물 때를 만난 물 고기처럼 기쁨과 흥분 그리고 환상 그 자체였다.
하루 하루 달라지는 근육발달은 몸의 크기 뿐만이 아니라 정신력 배양에 너무 좋았다.
그래서 다시 하번 절감했다 !
운동은 심신훈련을 바탕으로 뭐든지 '하면 된다' 하는 자심감과 요즘 말하는 열정과 확신 그리고 신념을 부여한다고 ~!
세일즈맨
대학 졸업 후 수 많은 입사지원 응모에서 대우자동차 공채14기로 세일즈맨이 된다.
필자는 이 경험으로 취업준비생들에게 주장한다.
일백번 이상 지원해야 하니 한 두번 낙방에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구 !
6박7일간의 연수일정 몇 가지 기억이 새록하다
하나는 식사 때 마다 두 번씩 먹었다 왜냐하면 당시에 육체미를 하루에 2~3시간 하던 터라
먹어도 허기를 느끼니 달리 방도가 없었다 한 번 더 먹는 수 밖에는~
운동은 이렿게 식욕을 왕성하게 하면서도 똥배는 전혀 없으니
그 때 알았다 운동효과의 비결을 !
성인병의 원인이 복부비만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운동 열실히 하면 그게 건강한 삶 아니던가 !
필자는 지금도 실컷 먹고 운동한다. 삼겹살 3인분과 밥 한그릇을 뚝딱 해 치운다.
그런데 나이 뱃살이 조금씩 늘어 간다 ^^
또 하나는 연수일정 중 하이라이트 40키로미터 산악행군 !
이게 바로 '성질테스트 점잖게 표현하면 인성테스트'라고 하던가 ~~~
중간 정도 행군 중 불만자들이 슬슬 생겨나기 시작한다.
우릴 뭘로 알아 ?, 이게 뭐야 ! 하면서 교관들에게 반항한다.
일정시간의 실랑이가 발생되고 그 후 바로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출당한다
이 것이 바로 발령 전 인사관리 측면에서도 인내와 인성발달을 측정하는 일종의 시험 같은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안다.
요즘음 면접장소로 산 정상에서 또는 맥주테스트 그리고 사우나에서도 하는데 다 이런 원리이다.
무사히 연수를 받고 발령지인 부평본사를 관할하는 부천영업소로 보무도 당당하게 첫 출근을 한다.
1986년 6월 !
선배들의 모습은 한 분만 제외하곤 멋있어 보였다
영업소 최고참 선배는 장지갑을 이용하는데 언제나 몇백만이 들어 있는 것을 자주 본다.
신입사원들에게 동기부여(?)차원에서도
영업소장의 지시로 자주 노출시키에 하는데 그 당시에 참 대단했다는 것을 기억한다.
영업사원 출발 14일만에 가까운 지인 소개로 프린스 1.5를 판매한다.
당시에 계약금과 인도금 몇 백만원을 갖고 출고증을 발급받으러 영업소로 가는 길은
왜 이리 발걸음이 가벼운지 난 그 날 부터 축지법의 달인이 되었다.
연고판매로 동기 중 첫 출고의 감격을 맛 본 후 생각했다.
소개는 제한 될 수 밖에 없고 지속성이 없다고 하니 이제 부터는 신규고객 창출에 더욱 열심히 하자고 다짐 한다.
대우자동차 영업사원시절 동료들과 함께 ^^
조 지라드(Joe Girard)
세일즈맨으로서 6개월 정도 지나니까 회의감이 스멀스멀 떠 오른다.
고객을 만날 때 마다 하는 말 즉 고객상담의 내용이 다 똑같고 새로운 것을 배워 나가는 것이 없다.
아마추어 방식의 주먹구구과 일방적 제품설명 그리고 계약유도~~~
꿈 많은 20대 청춘에게 이건 야박하고 가련한 현실이었다.
그 느낌을 갖고 일단 서점으로 간다.
뭔가 내면을 채워야겠가는 생각에 세일즈의 전설 '조 지라드'를 만나게 된다.
250명 법칙,Bird Dog관리,5명의 세일즈의 철칙 등
필자에겐 어뗳게 세일즈를 전개시켜 나가야 할지,비전 등을 시사하는 교훈들이었다.
우선,250명 법칙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준거집단에게 효율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는 찬스이자 가장 효과적인 실적증진의 요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후 부터의 세일즈 방식은 고객과의 돈독한 유대관계의 증진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고객관계관리(CRM)이라고 하는 것을 필자는 1987년 초반에 조 지라드에게 일찌기 한 수 배우게 되는 것이다.
199년 대우자동차 퇴사 후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캐빈 데이비스에게 3일간 8시간 씩 그의 저서'고객의 머리속으로 들어가기'
의 세일즈 메뉴얼을 사사받고 국내에 도입하기 위해서 일행과 동행한다.
마지막 날 저녁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던 중 케빈 데이비스에게 조 지라드를 물어 봤다.
그랬더니 단정한 모습을 지면서 옆에 있는 빈 접시를 본인 앞에 놓더니 포크로 점 하나를 찍으면서
이렇게 얘기 한다.
빈 접시가 조 지라드면 이 점이 바로 본인이라구 !
미국가서 직접 확인한 순간이다.
조 지라드가 왜 세일즈의 전설로 인구에 회지되는지를 !
오늘날 미국에서 유일무이하게 '세일즈 스쿨'을 명실상부하게 운영하여 많은 영업맨들에
최적의 영업성과 창출을 위한 영업실무와 이론을 학습하게 한다
그런데 그가 주창하는 구호가 명품이고 실용적이다.
강의 마무리시 기분 좋을 때 필자도 교육생들과 힘 찬 목소리로 제창한다.
Yes ,we can !
언어중추신경이 모든 신경계를 지배한다고 하니 이를 매일 같이 제창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우리 몸을 '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적극적이고 긍정적 마인드를 함양하게 되고 실제 그렇게 된다고 한다.
과거 신입사원 시절 필자는 출근시 이럻게 주문하면서 영업소를 향해 갔다.
오늘도 내 눈 앞엔 돈이 지나가고 있다,이를 잡으려면 이렇게만 하면 된다.
긍정적,그리고 적극적 마인드만 있으면 된다고 !
왜냐하면 세일즈는 그날 그날의 맘 먹기에 따라 실적으로 이어 지고 이것이 곧 인센티브와 성과급으로 귀결되니까 ~~~
경찰
신입사원 시절엔 주로 고객이 타던 차를 처리하고 새차로 구매하고자 할 경우에
경험이 일천하니 중고차 처분은 고참 선배에게 처리하여 줄 것을 요청한다.
필자가 판매 한 르망으로서 중소기업 사장인데 여의치 않아 처분을 당부하였다.
차는 할부 상태로 명의는 그 사장님 상태에서 할부를 대납하는 조건으로 고참께서 타인에게 처리하였다.
근데 이게 사단의 발단이었다.
할부금이 매월 들어와야 하는데 타던 사람이 한 두번 내고 타다가 또 다른 사람에게 차가 넘어가고 입금이 안되는 것이다.
만약 일정기간내에도 할부금이 안 들어오면 책임은 필자에게 있다.
근데 그 때 그 금액은 20대 청년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고 정신적으로는 더더욱 용납이 안 되었다.
아, 그래서 그 차의 소재파악을 위하여 몇 군데를 돌아보던 중
광명시 철거민촌엘 가게 되는데 그 때 그 곳의 사람사는 풍경을 본 필자는 깜짝 놀란다.
결론적으롬 말하면 아파트 입주권을 얻기 위하여 밤마다 세대가 늘어간다던데 한 가구 당
대략 10세대가 넘은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니 주거환경과 애들의 모습은 피난민이 따로 없었다.
지금 광명시 철산동의 발전된 모습을 보면 참으로 상전벽해가 따로 없다.
경찰은 매우 친숙하다
소실적 꿈이 경찰이었고 대학시절부터는 경찰관들과 운동을 함깨 하여 일종의 선배격이었다.
도주차(?)를 잡기 위하여 경찰에 신고를 해 뒀다.
3개월 후 쯤 밤에 연략이 왔다 지금생각으로 강남에 소재한 파출소인것으로 기억한다.
불심검문에서 차와 운전자를 검거하고 대기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일정 절차 후 차를 영업소로 가져 오고 마무리를 확실하게 하여 몇 개월의 고생과 걱정을 접게 되었다.
대한민국 경찰의 힘!
역시 대단함을 그 때 다시 한번 절감했던 순간이다.
10여년 전 부터 경찰관들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면 경찰관들이 이렇게 얘기한다.
'박사님은 스타일이 경찰 같아요' ,' ^^
몇년 전 강의 후 교육장에서 나와 백주대로를 걷고 있는데 패트럴 카가 지나 가다 갑자기 서더니 한 경찰관이
거수경례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교수님 ,그 때 강의 잘 들었습니다 ' 하고 ,그 날 기분 아주 좋았다.
이게 교육하는 자의 보람이구나 ! 하면서~~~
필자는 주위에 강조한다.
중고차 매매시 가격이 아니라 첫 번째 고려요소는 신속한 명의이전이라고 !
특히 대포차다 뭐다 하는데 요즘은 더 더욱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결혼
아침 밥을 못 먹고 겨울에도 찬 물에 미숫가루나 회사 근처에서 라면을 먹던 필자가 드디어 결혼을 한다.
이채로운건 중매로 장모님을 1주일 먼저 뵈었다.
집사람을 만나고 장모님의 주도적인 일정에 따라 결혼한다.
본가 사정은 부모님의 큰 아들의 교통사고로 인하여 여의치 않아 사정을 말씀드렀드니 괘히치 안으시길래 연내 가정을 꾸리게 된다.
장모님은 은행원 출신으로서 올해 82세 되셨다.
어미니하고 갑자생이신데 정신적,육체적으로 건강하시니 필자는 감사하고 복되게 진정 생각한다 !
상업은행에 다니던 집사람은 결혼과 동시에 퇴사한다.
그 때 장모님께서 '은행 계속 다니는게 좋을까 ?' 하고 물어 보신다
아니요! 하고 단호하게 답변드렸다.
역시 남자는 가정을 이루어야 안정이 된다 하니 그 말이 정설이었다.
그래서 못 다한 면학의 꿈을 펼치기 위하여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런데 이 논문이 국내최초의 영업실무와 마케팅을 겸비한 논문이라하면서 메스컴을 타기 시작한다.
조선일보에 기사가 보도되더니 KBS의 아침마당 출연,라디오, 잡지 등
아 그러더니 제주도에까지 전화가 쇄도한다 그 논문좀 보고 싶다고 ~~
그리고 연일 영업소로 영업관계자들이 방문한다.
이것이 연유가 되어 대우자동차 사내강사가 되고 CEO실도 자유롭게 방문하면서 영업력 향상과
마케팅 전략에 대하여 매우 미숙하나마 보고도 드린다.
결혼의 시작은 못 다한 공부의 서막이 되어 향 후 좋은 출발의 상징이 된다는 것을 점진적으로 알게 된다.
집사람은 가내의 위계가 정립되고 화목하고 교양이 있는 집안의 자손이었다.
특히 장녀로써 부모민은 물론 조부모의 사랑과 인텔리한 삼촌,고모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자랐으니
그 얼마나 사랑과 정으로 인성개발이 되었겠는가 !
그 사랑과 정이 내조의 힘으로 승화되어 필자는 결혼 후 석사가 되어 33세에 최연소로 지방의원이되고
경영학박사가 되고 또 광역의원이 되고 교수도 되고 보니 다 이것이 집사람의 내조의 덕이라고 겸허히 단언한다.
이렇게 하면 팔불출이라 하지만 그래도 사실을 말하야만 직성이 풀리는 필자는 말하고 싶다.
참 마음씨 곱다고~, 참 바르다고~, 참 착하다고 ~~
결혼 후 25년 동안 한 번도 불평한적 없다!
막내며느리면서도 부모재산은 다른 지식이 몰래 독차지하고 그야 말로 수수방관하는데도 일말의 불만없이 자기가 매달 생활비 전액을 보내드리고 직접가서 어머님이 불편하실 때 하는 걸 보노라면 참 눈물 겹고 나 자신을 성찰해 본다.
요즈음은 사정 상 도우미 아주머니를 고용한다
집사람은 이제 그나마 5천월짜리 구매도 삼가할 것을 상상하니 너무 미안하고 한편으론 필자에게 심기일전을 더 하게 만든다.
집사람은 만원 넘는 옷이 외출복 한 두벌 외엔 거의 없을 거다
집에선 애가 입던 옷으로 처녀 때 입은 옷으로 마치 안빈낙도의 삶처럼 말이다.
고맙다 !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하늘에 감사드린다 !
기회 있을때 마다 제자들과 후배들에게 자주 강조하였다
배우자의 선택에 따라 개인은 룰론 그 집안의 명운을 달리하니 신중하라고 ~~~
부보재산 강탕하여 실컷 자고 넘치게 먹고 마시고 고생 모르고 세상 우습게 생각하며 사는 놈들이 얼마나 잘 되나 !
그 자식들 또한 제대로 된 놈들 몇이나 될까 ?
동서고금은 답변한다 ,
그러한 존재 허용 될 수 없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