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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행복한 아빠가 착한 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
시간에 멈춤의 기능을 주지 않은 신에게 나는 원망을 보내곤 하였다. ‘생애의 절정에 맞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는 개념을 증명할 어떤 특별한 공식은 존재하지 않을 테지만, 그 순간을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낸 후 돌이켜 보게 되면 누구에게나 단 한 차례만 주어지는 사건이 그것이었기 때문에, 그 시각에 멈춤을 줄 방법이 없었음은 기실 원망의 대상을 찾을 사안은 아니었으나, 어떠한 수단을 빌려서라도 이유를 만들어 도피처를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한 인간으로서는 신의 불가해한 힘에 매달리는 외에 달리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에 나는 초보 아빠로서의 무지 탓에 너에게 소화기관에 무리가 오게 하는 병을 얻게 하였고, 너는 치료를 위하여 정아원(正兒院)에 다녀 온 후 원장엄마에게 특별히 배워왔다고 새우볶음덮밥을 만들어 주었다. 요리 솜씨가 서툰 것을 부끄러워하던 네가 모처럼 배워온 솜씨로 만들어 준 새우볶음덮밥은 어릴 적에 즐겨먹던 시장 입구 분식집의 욕쟁이 할머니가 볶아내던 구수한 맛 그대로의 것이어서 나는 그만 두 그릇이나 비우고 말았다. 반찬으로 나오던 천연 야채절임 조리법까지 옛적의 맛 그대로 배워 와서 손수 젓가락질을 하여 입에 음식을 넣어주는 너는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오로지 나만을 위하여 한 세대 전의 잊혀 진 음식을 요리해 주는 내 딸, 그날 어릴 적 가난한 입맛을 행복하게 해주었던 그대로의 오래된 맛에 흠뻑 취한 아빠는 “기적이다! 기적의 맛이야!”하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한 바탕의 폭식으로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추억의 맛을 살려내어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도 행복을 나누는 방법의 하나라고.”
너는 아빠의 행복전도사로서의 직업을 존중하여 자랑삼곤 하였다. ‘지성이 있는 꽃을 조제하여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아름다움을 나누는 뜻 깊은 사업’이라고 전한 아빠의 몇 마디 말을 그대로 믿고 매사에 연계하여 내세우기를 주저하지 않았는데, 아빠 역시 그러한 너를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좋은 내 딸로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아빠가 전한 꽃을 받아 든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은 정말 부러웠어요. 아빠, 오늘 제가 만든 음식, 맛있게 잡수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너는 그렇게 몇 마디 말로 아빠를 감동시키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13년을 살아온 정아원을 떠나 내게 온 첫날, 너는 네 잎 클로버들을 엮어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며 잔뜩 감격에 겨워 말했다.
“원장엄마가 말씀하셨어요. 아빠는 혼자 살아온 외로운 분이니 마음에 닿을만한 선물을 하라고요. 제가 아빠에게 간다고 자랑했더니 친구들이 모두 나서서 이걸 만들어 주었어요.”
정아원 넓은 뜰의 잔디밭에 더부살이로 자란 클로버들을 샅샅이 뒤져 네 이파리짜리들을 찾아내어 낱개로 비닐 코팅을 한 후, 하나하나 실로 꿰어 엮어 만든 풀 목걸이는 아빠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한 정성어린 선물이었다.
“네 잎 클로버는 행운의 상징이래요. 이 아흔 두 개는 얘들이 스스로 따라오기를 청한 거예요. 아빠와 저의 만남을 축하해 주겠다고요. 백을 채우지 못한 건 서운했지만, 얘들의 호의는 무척 기뻤어요.”
아흔 두 개의 네 잎 클로버를 엮어 만든 목걸이를 걸어 주며 백을 채우지 못했음을 미안해하던 너는 나머지 여덟에 대신한다고 아빠의 볼에 뽀뽀 세례를 퍼부어 댔다.
“넌 딸이니까 받아주기만 해도 아빠는 고마운 거야.”
나는 그때, 그 순간의 행복이 언제까지나 계속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실제로 너는 존재함만으로도 감사를 받아 마땅했다.
“내 딸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 정말 고맙다.”
네가 내 딸로 내게 다가왔음을 깨달은 순간,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얻은 양 기쁨에 떨었다. 너는 세상 모든 즐거움의 표상처럼 밝은 모습으로 다가와 내게 몸을 던져 안겼다.
“난 정아예요. 우리 아빠 맞지요?”
나는 너를 가볍게 안고, 양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이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할 일이었음을 이내 깨달았다.
“고마워요, 아빠.”
답례의 표시로 똑 같은 형식의 뽀뽀를 해 준 후, 너는 가장 다정하게 말했다. 살아온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경험해 본적이 없는, 가장 완전한 형태의 정감이 넘치는 목소리였다.
“원장엄마가 아빠는 오랜 세월 혼자이셨다고, 외로우셨을 거라고, 좋은 딸이 되어드리라고 하시더군요. 저요, 요리를 조금 배워왔는데요, 저녁 지어드릴 테니 맛없다 하심 안 돼요?”
그렇게 호들갑을 떨며 차려 낸 저녁상을 받아들고 나는 네 눈길을 피해 웃음을 참느라고 애를 써야 했다. 장담이 화려하던 네가 계란부침 한 접시와 꿀 바른 토스트 한 조각과 우유 한 잔이 전부인 상을 차려 놓고 잔뜩 부끄러워하는 기색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장엄마가 처음부터 너무 잘하면 귀염 받지 못한다고 요것만 가르쳐 주어서….”
입을 삐죽여 변명의 말을 하며 내 눈치를 살피는 네 모습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는 그만 팔을 걷어 부치고 주방으로 달려가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몽땅 발휘하는 요리전투를 치르고 말았다.
“고마워요, 아빠. 아빠는 뭐든지 잘하는 분이시라고 원장엄마가 말씀하셨는데, 요리솜씨도 최고시네요.”
너는 음식을 예쁘게 먹어주는 법의 표본을 보이는 양으로 야금야금 오물오물 식탁을 비웠다. 내가 조리한 음식을 내 아이가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을 볼 때의 세상 부모들의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몇 날 동안 계속 부엌에서 살았고, 너는 열심히 먹어주어 아빠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그랬는데……
“소화불량은 아니고요. 뭐랄까, 소화기관을 너무 과도히 써서 생긴 피로현상이랄까, 아무튼 위장장애임은 틀림없는 것 같네요.”
급히 달려온 정아원 소속 전문의가 네 몸을 검사한 후 내린 결론이었다. 너는 채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배설하는 병에 걸려 있었고, 그 원인은 바로 아빠인 내가 열심히 만들어 공급해 준 음식들을 사양하지 않고 먹어준 데 있다고 하였다.
“나는 아빠 노릇이 처음이라서 서툰 짓을 잘 해. 네가 꼬집어 주어야 해. 화도 내고, 싫은 소리도 하고, 그렇게 딸 노릇을 해주렴.”
그렇게 부탁했었다. 그런데……
너는 단 한 마디도 싫은 소리를 못했다. “배가 너무 불러요. 고만 먹을래요.”하고 불편한 내색을 조금치라도 하였더라면 그렇게 네 위장을 학대하지 않아도 좋았고, 그 결과로 빚어진 일로 속을 끓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자식을 기를 자격이 없는 분이시군요. 경건시민 1급 인증서를 받았다기에 가장 착한 딸을 보내주었더니…… 더는 맡겨 놓을 수가 없네요. 당장 데려가겠습니다.”
소속 의사의 검진 결과를 보고받은 정아원 원장은 화상전화의 화면 속에서 냉정한 목소리로 선고를 했다. 아이들을 길러 입양을 시키고 ‘원장엄마’로서 후견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삶의 보람을 삼는 맹렬여성에게 나는 속절없이 존속학대범으로서 고개를 숙여야 하였다.
“딸의 치료는 우리 정아원에서 맡을 테니 다시는 얼굴 볼 생각 말아요!”
원장은 구급차에 너를 태운 후 뒤따라 나서려는 나를 밀쳐 냈다. 원장은 여류답지 않게 건강미가 넘치는 체격에다가 성격이 급해 목소리가 높았고, 사건이 사건인지라 칼자루를 잡은 도부수 격이라서, 죄인이 된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정아는 내 딸인데……”
혼자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아니면 텔레파시라도 통했던 것일까. 들것 위에 누워 구급차에 실리던 네가 꼭 감고 있던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부르고 있었다.
“아빠, 잘못했어요.”
잘못하다니, 네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다 아빠가 아빠답지 못한 탓이지. 미안하다, 딸아. 미안하다, 딸아. 나는 그만 오열을 터뜨렸다.
“흥! 그새 정들이 들었군. 꼴사납게 왜 찔찔 짜고 그래? 아이 나으면 다시 보내줄 테니 집안 정리나 해놔요!”
원장의 노염이 풀린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하늘이라도 날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딸아, 너는 어느새 그렇게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자네는 내리사랑을 해보지 못한 값을 톡톡히 치루는 걸세. 가족이 왜 필요한지 아나? 혼자가 아니라는 미더움이 생기는 탓일세. 특히나 자식은, 그 중에서도 딸을 가진 아비로서의 사랑은, 한시적인 소유라는 아쉬움 탓에 무엇이든지 베풀고 싶은 무조건적인 사랑이 되지만, 출가를 시켜야 한다는 전제가 걸려 있는 탓에 광기에 닮게 되는 것인데, 자네는 아기 때부터 키워온 여느 부모와는 달리 다 자란 소녀를 양녀로 맞았기 때문에 면역력을 갖지 못해 홍역을 치르는 것일세.”
딸을 시집보낸 후 우울증에 걸려 병원 신세를 졌던 친구가 찾아와서 고소하다는 듯이 비아냥거렸다. 전날 병원에 있을 때 문병 핑계로 찾아가서 “자네는 딸을 두고 사위와 사랑다툼을 하는 질투쟁이야.”하고 웃음거리로 삼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죄과에 대한 앙갚음인 셈이었다.
“아예 배를 비워놓는대요. 내장을 다 바꿔서. 이젠 많이 먹어도 돼요.”
수술을 받고 회복실의 침대 위에 누워 있던 네가 그 와중에서도 나를 걱정하여 위로랍시고 하는 말이었다. 나는 딸에게 걱정을 시켜야 할 만큼 제 역할을 못하는 바보 아빠였다. 딸을 폭식시키는 따위의 실수를 다시 저지를 리는 없겠지만, 나는 너를 다시 찾을 명분을 만들지 못해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아원 소속 전문의의 완치 선언을 듣고 집에 돌아온 너는 전날과는 다른 어른스러운 행동들을 보여 나를 새로운 감동의 세계로 몰아갔다. 음식 솜씨를 자랑하여 예의 볶음덮밥의 기적을 보여주는가 하면, 낡음과 정체의 표본과도 같던 주위 환경들에 일대 변화를 주어 네가 오기 전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하였다.
특별한 기준 없이 내키는 대로 살아온 인생이 ‘혼자가 아니다’라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고, 제자리를 못 잡고 있던 주위의 사물들이 하나 둘 본연의 역할을 찾아갔다. 커튼과 장식장의 색깔이 밝고 화려한 빛깔로 바뀌어 홀아비만의 삶이 아님을 증명했는가 하면, 잠자리의 모포들이 오랜 먼지 구럭을 벗어나 고질병이었던 아토피성 가려움증에서 놓여나도록 도움을 주었다. 불시에 방문한 친구가 “확실히 여자가 있으니 냄새가 다르군.”하고 예의 비아냥거림을 보일 정도의 변화였다.
내 직업은 꽃 가꾸기였다. 세기 초에 시작된 지성체형(知性體形) 동식물 만들기 유행의 일환으로 산업화한 초보적 지성체 식물들을 조제하는 것이었는데, 무기물과 유기물들을 적당히 조합하여 가장 완전한 형태의 꽃을 만들어 시중에 내놓는 것이 일과였으니 ‘꽃을 만들어 판다’가 올바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꽃의 조제’란 몇 가지 공인된 공식을 대입하여 시험용 꽃을 만들고 예술적인 기호를 가미하여 지성체로서의 품위와 상품성이 아울러 갖추어진 제품을 내놓는 것인데, 같은 작업의 반복으로 우울증에 걸려 있었던 것이 네가 오기 전까지의 내 모습이었다. 집안 전체를 화원으로 만들어 미완성 꽃들로 채우고 완성형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이므로 예술 활동 비슷한 것이 되는 셈이었고, 그렇게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의 진화란 완전제어가 불가능한 것인 만큼 돌연변이를 기대한 씨앗 뿌리기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막연한 작업이었던 것이 우울증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이었으리라.
네가 내 주위를 ‘여자의 손길이 닿는 집’으로 바꾸기 시작한 마지막 순서로 화원의 꽃들도 꽃다워지고 있었다. 꽃이란 지켜보아 주는 이가 있을 때 더욱 아름답게 피는 속성이 있는 생물이었고, 더구나 내 화원의 꽃들은 스스로 의사표시를 할 줄 아는 지성체 식물들이어서, 진종일 곁에 붙어서 바람막이가 되어 주는 네 영향은 작을 수가 없었다. ‘용모를 가꾼다’와 ‘용모를 아름답게 한다’가 동의어가 되는 것이 여성세계의 일인지라, ‘꽃을 가꾼’ 네 손길은 ‘꽃을 아름답게 한’ 결과를 낳아 내 화원의 면목은 일신되고 있었다.
(친절하시네요. 왜 우리에게 이렇게 잘 해주시는 거죠?)
(가족이잖아요. 함께 웃고, 함께 즐거워해야 하는.)
너는 꽃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역시 꽃에게 초보적이나마 지성을 심고 예쁘게 피도록 가꾸는 분야의 전문가였던 탓에 기초적인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하다고 자신하고 있었지만, 너는 더욱 깊은, 감추고 있던 속내까지 드러나게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아가씨가 만들어 주는 유기질 비료는 우리 체질에 꼭 맞아서 영양 섭취에 부담이 없어요. 큰 주인님의 영양제 퍼붓기 방식 비료주기는 예쁜 꽃을 피우는 데는 도움이 안 돼요.)
(아빠의 방식에 지나친 점이 있는 건 사실일 거예요. 그렇지만 취하고 남은 나머지가 땅으로 돌아가 다른 식물들에게 영양이 된다고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지 싶네요. 아빠는 많이 만들어 모두에게 베푼다는 생각을 하시고 넘치도록 드리는 게 아닐까요?)
너는 내가 가르쳐 준 적이 없는 생태론으로 꽃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양자 양녀를 키워 가족이 없는 사람들에게 입양을 시키는 국책 기관인 정아원의 교육은 역시 예사로운 게 아니었다.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생태계 전체의 구성원은 궁극적으로 한 가족이 될 수밖에 없고, 생멸의 변화는 다만 순환일 뿐이라는 주장에 동조한 인화론(人和論)을 가르친다는 소문이던데, 내 딸이 그 영향을 받았음이 틀림없었다.
(그렇군요. 우리는 ‘길리우는’ 존재이니 영양과잉으로 우스운 꼴이 된다 해도 주시는 분의 호의에 감사하여 꽃을 피우는 역할만 다하면 되는군요.)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 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초식동물이 배부르기 위해 풀의 생명을 해치는 일은, 해침을 받는 식물이 고통스러워함과 마찬가지로 먹이를 섭취하는 동물 역시 즐거워서 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하지 않던가요.)
너는 꽃들을 피해의식에서 해방되도록 달랬다. 가장 아름다울 때 꺾이어 씨앗을 맺지 못하고 화환으로 생을 마감하곤 하는 꽃들의 생몰사는 딸에게도 분명 아픈 사건일 수밖에 없을 터였지만, 아빠의 직업이 꽃 가꾸기이니만큼 당연한 듯이 한편이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들로 변호가 될 논리들을 끌어내고 있었다.
(어떤 생이 아름다웠던가 하는 판단은 당자가 스스로 내릴 수 없는 분야의 자연사(自然史)가 아닌가 싶어요. 씨앗을 만들어 내세를 기약하거나, 가장 아름다울 때 꺾이어 세상에 빛이 되어 주거나, 어느 쪽 삶이 아름다웠나 하는 문제로 손을 들어 주어야할 때 선뜻 나서는 일도 쉽지는 않을 것 같고요.)
너는 무작정 아빠를 편들어 억지 주장을 펴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사건은 있으되 아무도 죄를 범한 것은 아니다’라는 논리는 세기 초에 유행이 시작된 파괴예술가들의 세계에서 내세우던 명분론이었다. 강자의 횡포가 빚은 대량파괴가 먹이 사슬의 순환일 뿐 범죄는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기 시작한 것은 지난 세 차례의 세계대전 끝에 등장한 강대국들이 강한 국력을 배경으로 새로운 시대의 윤리를 주도하고 있는 양으로 입증되고 있는 터여서, 기왕에 빚어온 인간계의 지구 생태계 지배 윤리에 가장 적당하다고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자연으로 돌아가자. 문명의 완전한 파괴로 본래의 순수를 찾는 일이야말로 예술의 궁극적 완성이 된다’라는 형식의 억지 논리까지 예술론의 하나로 둔갑하여 기존 윤리를 거부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시대적 조류였는데, 너를 교육시킨 정아원은 온갖 사상을 수용할 수 있는 건강한 두뇌의 소유자로 원생들을 길러내는 데 목적을 두고 창립된 국책기관이었으므로, 나를 편들기 위해 만들고 있는 너의 이야기들은 정아원 교육의 성공을 증명하는 증표인 셈이었다.
“유전자를 조작한 사이비가 아닌 순수 조제 꽃입니다. 이 품종은 제가 특허를 갖고 있어요. 기르는 이의 기분에 따라 반응하는 기초적인 지성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직업으로 삼는 지성체 꽃의 재배 논리 역시 그러한 백가쟁명식 사회현상의 한 단면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었다. 자고로 윤리란 강자의 지배논리 외에 다른 무엇이었던 적이 없었으므로 내 딸과 의견을 주고받는 식물들은 내 영향 하의 조제를 거친 꽃으로 딸을 통해 불평을 하는 것은 지닌바 기능 중의 하나가 역할을 잘하고 있는 증거일 수는 있었으나, 그 자체가 대국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을 것이었다.
(나는 아빠에게 속해 있어. 아빠는 나를 사랑하여 자유를 주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의 방종까지는 허락하지 않으셔. 너희도 아빠에게 속한 생명이니 이를 존중해 주기 바래.)
입양아동 교육 국책연구기관인 정아원의 교육방침은 입양아를 보호하는 직계 상위 가족원의 뜻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것이었다. 너는 정아원의 우등 졸업생으로 가장 착한 딸이 되어 내 곁에 있었다.
(아빠는 내게 가장 소중한 분이셔. 너희도 소중하지만 아빠 다음이야. 아빠에게 불평하면 미워할 거야.)
내 꽃을 사갔던 고객 중의 하나가 무리한 주문으로 소동을 일으켰을 때, 내 딸이 받은 교육의 진가는 확연히 드러났다. 뜻하지 않은 소동으로 원하지 않은 결과를 낳아 오랜 가슴앓이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되기는 하였지만, 그때의 일은 너와 내가 엮어가던 가정사에 일대 전환점이 된 사건이었다.
그날, 내게서 사간 꽃이 뜻대로의 말대꾸를 해주지 않는다고 칼질을 한 후 말라버린 줄기를 들고 찾아온 고객은 다짜고짜 소리를 질러대어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이 꽃, 내가 좋아하는 거야! 내게 칼 맞은 것만 지우고 옛날 기억 그대로 살려놔!”
“왜, 제 꽃들을 이렇게?”
“뭐가 지성체 꽃이야? 주인의 기분도 모르고 시도 때도 없이 꽃을 피워대는 게!”
“사랑을 해버렸군요. 관상용 꽃에게 애호의 수준을 넘는 사랑을 하는 것은 헛된 욕망일 뿐인데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죽여 놓다니, 초보적이라고는 하지만, 지성을 갖춘 생명인데….”
“살려 놓으면 되잖아! 다른 화원에서는 기억까지 그대로 복제해서 살려낸다고 하더라고!”
“기억을 복제해서 살려 놓는다…… 그렇게 살아난 생명이 원래와 같은 생명일까요?”
“같지 않으면? 다르면 또 어때? 같다고 믿어 주면 되는 거 아냐!”
지성체 식물 기르기를 직업으로 가진 나에게 손수 조제하여 판매한 가족형 관상식물에 폭행을 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인간이 다시 살려내기를 강요해 대는데, 그 방법이라는 것이 자신이 폭행을 가했던 기억만을 지운 같은 생명으로의 부활이었다. 나는 그의 이기적인 태도에 분노하여 손에 든 꽃삽을 휘둘러 상처를 입히고 경찰의 신세를 지게 되고 말았다.
“내게 저 아이들은 한낱 풀꽃이기 이전에 자식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내 혼이 작용하여 빚어낸 작품으로서,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온 생명인데, 잠깐 기분이 좋지 않다고 칼질을 해댄 무도한 사람에게 화를 낸 게 죄가 됩니까?”
“일단 소유하게 되면 폭군으로 변하는 게 인간계의 실상이더군요. ‘나’와 ‘나의 것’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는데, ‘나의 것’이 ‘나’와 같지 않다고 발작을 일으키곤 하는 사람들의 착시증이 사건을 부르곤 하지요. 나 역시 그 종류의 사람들에게 편들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그 만큼의 자기중심적인 윤리관을 지니는 건 보통사람들 모두의 공통된 행태가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취조에 나선 담당경찰관은 그렇게 논리를 펴서 ‘당신도 같은 형식의 실수를 예사로 하는 보통사람’이라는 자각을 주고 있었다. 하기는 지성체 꽃에 폭력을 휘둘러 사건의 원인을 만든 사람도 풀꽃과의 대화를 환청과 구별하지 못하던 순진한 고객의 하나였다. 새로운 주인을 맞게 된 꽃의 속삭임을 “이게 내 마음 속 소리가 아니고 식물과 텔레파시가 통하는 거 맞아?”하고 대견해 하던 사람이 어느새 폭군이 되어 군림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런 형식의 문답을 주고받으며 취조관을 상대로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데, 철창 저편으로 염려하는 눈길이 다가왔다. 정아원 원장과 함께 네가 찾아온 것이었다.
“어떡해요, 아빠……”
너는 곤경에 처한 아빠를 위로하는 딸로서 잔뜩 울상이 되어 최선의 염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감격하여, 감격하여, 감격하려 하였는데….
“시꺼! 주어진 대로 읊어댈 뿐 저항도 못하는 엉터리가! 네 의지로 아빠를 위해 본 적이 있어? 그 울음, 지금 오면서 원장엄마가 머리 속에 넣어 준 거지? 가장 위하는 척하라고. 쳇!”
나는 내가 네게 폭언을 퍼붓고 있음을 깨닫고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네 진심어린 염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반발이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었다. 네가 보내는 고마움의 인사가 정아원의 교육에 의해 관례로 닦아진 공치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내 생애 최고의 행복으로 각인된 사건인 볶음덮밥의 기적 또한 내 기억 속의 편린을 적당히 훔쳐 가장 감동이 컸을 때의 맛으로 조리해 감탄을 샀음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내가 지성체 식물들을 조제할 때 고객의 기억자료들을 참고하여 사용한 방법과 대차가 없었으므로 진작 속내를 알고 있던 터였으나, 이런 발작과 같은 폭설들은 전혀 원했던 행동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다정한 아이, 오로지 내 편을 들어줄 뿐인 너에게 저 지성식물 폭행범과 같은 소리를 지껄여 대고…… 그래도 너의 잘 길들여진 인사말을 들으면, 나는 행복해서, 행복했는데……. 행복하기 때문에 억지소리를 하게 된 걸까. 정아원 출신 입양 양녀에게서 국책기관 프로그램 이상의 인간의 소리를 듣고 싶어 했다? 욕심이었던가. 만족을 모르는 무한 사랑에의 갈구…… 외곬 사랑을 원한 집착의 결과 그 여진으로 이렇게….
세상 모든 것이 질투의 대상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원했다. 그래서 너를 찾았던 것인데 사랑이 결부되는 세사에는 결코 평범함이 없었다. 나는 주어진 양부 양녀 이상의 사랑을 원했던 정신이상자로 법정에 섰고, 증언대에 나선 정아원 소속 정신과 전문의의 공격을 받았다.
“이 환자는-범죄자가 아닙니다- 경건1급 정상인의 판정을 받아 정부의 시혜를 입고 가장 완전한 딸을 맞아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었으나 그에 적응치 못한 과잉의욕의 소유자입니다. 스스로 지성체 식물을 조제하는 방법을 고안하여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에 안주하여 살아온 결과로 입양시킨 딸에게 집착하여 사연을 만들고 자멸해 간 케이스입니다. 이는 세상 정상 부모들의 상궤를 벗어난 경우로서 소유욕과 베풀고 싶은 욕망 사이에서 업화를 끓이다가…”
짧지 않은 병상생활 끝에 교정이 완료되었음을 선고받고 퇴원하여 좀 더 자란 너를 세 번째로 정아원에서 데려온 후 나는 한동안 또 한 차례의 행복을 흉내 내고 있었다. 그 동안 너는 숙녀적인 매력을 물씬 풍기는 여성으로 자라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나는 곧 출가 직전의 딸을 가진 아빠로서 세상 모든 아빠들이 그러한 것처럼 가장 원초적인 고뇌로 속을 끓이게 되었다.
너는 내 모든 것이었다. 너에게 나 외의 누군가가 사랑을 준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네 반려를 찾는 아빠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네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짝을 찾아 국책기관의 자료들을 들추고 있었다.
“신체 건강하고 용모가 뛰어나고 30세 이전에 경건시민 1급 인증서를 받은 특급 레벨 청년들의 신상자료들만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어떤 선택을 하셔도 최선의 결과가 되도록 기관에서 다 정리해 놓았어요.”
젊고 잘난 청년들이 넘치도록 많이 등록되어 있었다. 모두 내가 열등의식을 느낄 수밖에 없을 만큼 우수한 젊은이들이었고, 무엇보다도 네게 걸 맞는 나이의 젊음을 무기로 갖추고 있었다.
“무슨 세상이 이토록 불공평해. 난 젊을 때 무얼 했담.”
나는 내 젊음을 헛되이 보낸 적은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주어진바 현실에서 역할을 다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성취를 이루었다고 스스로 자랑삼고 있었다. 그 증거로 나만의 화원을 지니고 내가 개발한 지성체 꽃들을 키워 생계수단으로 삼고 경건시민 1급의 자격을 얻어 너를 양녀로 맞을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랬는데, 가장 금기의 탐욕이 어느새 자라서……
나만이 너를 소유하고 나만이 너의 상대역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탐욕은 그 자체로 이미 형벌이어서 나는 스스로 빠져 든 번뇌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소유 한다’는 것은 ‘소유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만들고 싶은 욕심의 발로로, 기왕의 소유에 대한 보전과 보다 나은 소유를 향한 집착을 병발하여 중증의 마음병을 앓고 있는 것과 같은 상태를 만든다고 배운 적이 있는데, 내가 바로 같은 경우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빠는 결혼한 적이 없으니 자유스러울 수도 있지만, 넌 내 딸로 오직 하나뿐인 가족이니 의논해야 한다고 생각해. 아빠, 결혼할까 생각중인데 네 의견은 어때?”
내가 생각해 낸 도피 방법이었다. 때마침 다니러온 정아원 원장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기화로 나는 네 의사를 물었다. 내가 먼저 짝을 가짐으로 네게 집착하는 마음을 가볍게 하고 기쁜 마음으로 너를 보낼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그랬는데……
“이 바보! 너 왜 반대 안 해? ‘싫어요, 아빠 결혼하지 마세요!’하고 한 마디 못해? 반대하는 법을 못 배웠다고? 그러게 너는 별수 없는 로봇이라는 거야!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가짜 인생! 국책기관 정아원이 만들어 낸 걸작 인생이 너야!”
나는 가장 혐오스러운 말을 뱉고 있었다. 너는 “아빠, 축하해요.”하는 진심어린 축사를 보내 주었는데, 그 순간 내 이성이 자제력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너, 정아원 조제의 로봇 맞지? 길들여진 대로 고개를 숙이고 미리 심어진 인사말을 줄줄 외울 뿐인 기계인형에 불과한 거 아냐? 인간이라면 단 한마디라도 불평을 해본 기억이 존재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성녀로 교육되었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지성체 식물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고 자랑했었지? 그게 다 만들어진 지성, 가짜 영혼이었던 거야!”
내 갑작스런 폭발에 너는 정아원 원장의 팔에 안겨 혼절을 했다. 나는 더럭 겁이 났지만 입으로는 계속 폭설을 지껄여 대고 있었다.
“40년을 외로웠던 덕택에 널 딸로 가질 수 있었어. 40년 동안 열심히 살아온 경건시민이라고 정부가 큰 인심을 써서 가족을 준다기에 아내를 마다하고 딸을 택했지. 그런데 넌 뭐야. 그저 ‘옳아요. 아빠가 최고에요. 사랑해요’ 타령이잖아. 가족이라는 게 그런 거야? 내 친구의 시집간 딸은 지금도 찾아와 아빠의 월급을 축내는데 너는 왜 그걸 못해? 내가 기계인형을 가족으로 갖고 싶다 했나?”
정아원 원장은 경찰을 불러 내 폭력을 고소했다. 가뜩이나 위험인물 취급을 받던 나는 더욱 엄하게 격리되어 정신감정을 받아야 하였다.
“용서를 받는 방법은 원래대로의 순서로 따님을 결혼시키는 것뿐입니다. 당신과 따님의 일가족은 그렇게 미래가 결정되어 있어요. 당신은 따님을 영원히 곁에 묶어두고 싶은 모양이지만, 정부는 현행 질서의 순조로운 운전을 바랄 뿐으로 또 다른 질서의 선례가 생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외길 수순의 삶을 살고 있는 인생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란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뿐이었다. 나는 운명에 항복하여 고개를 숙였다. 결혼계약서의 신부의 아버지 난에 동의를 표시하는 서명을 한 후, 나는 네 손을 잡아 잘난 젊은이에게 넘겨주는 의식을 치렀다. 정아원의 넓은 뜰에서 많은 친구들과 지성체 식물들의 환호를 받으며 치러낸 의식의 결과, 너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려 내 집을 공식적으로 탈출했고,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꽃들의 호의를 받아들이세요. 아빠가 만든 꽃들이잖아요. 그 애들, 아빠를 무척 좋아해요.”
너는 매일 화상전화를 걸어 가장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이런저런 걱정을 해주었다. 결혼을 하였으므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의 지성교정이 완성된 터라 원칙적으로는 나와 동격인 완성형 지성인인 셈이었지만, 기왕에 엮어진 부녀지간이라는 굴레에 길들여진 너는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 전날과 다름없이 나를 염려하고 있었다.
“아빠의 꽃들이 다른 누구의 꽃보다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건 아빠가 자랑삼던 사실이잖아요. 아빠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아빠의 집안에는 온통 사랑이 가득할 거예요.”
채 완성되지 못한 꽃들로 가득한 내 화원에서 완성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지성체 꽃들은 내가 주재할 수 있는 질서계의 구성원들이었다. 나는 내가 특허를 가지고 있는 조제법으로 의도한바 세계를 구성할 수 있었고, 날마다 “위대한 주인님!”을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며 행복해 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원했던 결과는 아니었지만 네가 떠난 건 나이가 차서 제 짝을 찾은 필연의 수순이었음을 인정해야 하였다. 신혼인 너희 부부가 아직 젊고 아름다운 건 당연한 자연현상이었고, 꽃이 핀 결과로 열매를 맺어 아이를 갖는 것도 상궤대로의 변화였는데, 나는 내 품을 떠난 네가 더욱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여 폭발하고 말았다.
“딸 쌍둥이를 낳았어요. 원장엄마가 산후 수발을 해주셨고요. 할아버지와 꼭 닮은 손녀들이라고 아주 좋아 하셨어요. 제 딸들 보러 오세요.”
딸 쌍둥이를 낳은 네가 화상전화의 화면에 나와 아기들을 자랑하는 순간, 나는 격렬한 적의를 느끼고 부르르 떨었다. 네 짝짓기와 그에 연한 가정사는 국책기관의 프로그램대로의 변화였으나 내 질투는 삶의 현장에서 발생한 실제 상황이었다. 아빠를 떠난 딸이 아빠의 품안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해지다니. 누군가의 첫 남자가 되고, 누군가의 첫 여자가 되는 것이 세상 남녀들의 꿈이고, 그 결과로 가정을 꾸미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는 하지만….
너와의 과거를 추억으로 돌리려고 행복해진 너를 인정해 주었는데, 또 한 차례의 가슴앓이를 만든 결과밖에 안 되었으니…… 너는 어느새 네 일가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그렇듯 행복에 겨워 길들여져 있음을 자랑삼고 있구나.
길들여진다는 것. 나도 한때는 너와의 생활에 길들여져 행복해 한 적이 있었는데, 이제 내게는 온통 시새움뿐, 질투도 사랑의 한 종류라고 하니 아직 사랑을 할 공간이 남았다는 말인가. 슬픈 결론이로세.
“꽃을 보내마. 가장 예쁘고 향기가 짙은 꽃으로. 네가 자랄 때 내 화원의 꽃들과 친구가 되었던 것처럼 네 딸들에게 좋은 대화상대가 될 수 있도록 아빠의 실력을 다해서 지성을 갖추어 보낼 테니 아빠를 대하는 것처럼 사랑해주렴.”
나는 내 온 실력을 다해 내 특허 하의 지성체 꽃을 조제했다. 너희 일가 넷이 흠뻑 빠져들 수 있도록 향기가 짙게 하고, 가장 아름다운 꽃송이와 싱싱한 이파리를 달아 젊은 가족의 친구로서 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내가 일찍이 만든 적이 없는 어떤 복선을 깔아 완성형으로 삼아서.
꽃이 담긴 옹기화분은 내가 가진 물건들 중 가장 귀하게 여김을 받던 것이었다. 소문 높은 부정축재자의 유품을 정리할 때 경매에 나온 걸 구입했는데, 전 소유주가 일가 자살을 한 까닭에 불길한 물건이라 하여 아무도 욕심을 내지 않아 뜻밖에 가난한 호주머니의 소유자에게 차례가 온 것이었다. 그런 사정을 딸도 잘 알고 있었으나 딸에게 보낼 꽃을 담을 용기로 그만한 적임도 없을 듯싶어 화분에 반 넘어 흙을 채우고 예의 꽃을 심어 보냈다.
(저 꽃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향기에 무언가 장치를 했어요.)
“그 인간, 정신병자야. 그 꽃향기 가까이 하지 마!”
배달된 꽃이 화분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함께 딸려 보낸 장식용 꽃들이 고발자가 되어 한 목소리로 예의 꽃을 멀리 할 것을 종용했다. 더불어 전날의 내 행적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정아원 원장도 가세하여, 꽃들과 더불어 이구동성으로 네게 내 꽃을 가까이 하지 않기를 권하고 있었다.
가장 아름다운 꽃에는 가장 독성이 강한 향기가 숨어 있기 마련이었다. 나는 가진바 실력을 다하여 꽃의 향기를 더욱 짙게 하였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의도한바 행동을 보여주도록 조제를 하였는데 훼방꾼이라니, 내 실망이란… 그래도 아빠가 딸의 출산을 축하하여 주는 선물이니 응당 받아주려니 하였는데….
장식용 꽃들도 초보적인 지성활동을 할 수 있도록 손수 조제했었다는 사실을 간과한 실수였다. 이렇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는 질투의 화신이 되어 온갖 추태를 부렸고, 딸의 가족들에게까지 신뢰를 못 받는 늙은이가 되어, 질투 끝의 광기로 독이 든 꽃을 선물했다고 조소거리가 되는 결과를 맞았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저 꽃의 향기를 저들은 저주의 향기로 받아들이고 내게 자폭을 유도하는 치명적인 말들을 뱉고 있으니…. 나는 그들의 의도를 짐작하고 스스로 종말을 찾기로 하였다.
독은 환상이었다. 예의 꽃은 독은커녕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풍기며 활짝 피어 이파리의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회심의 한 마디를, 그렇게 마음을 먹고 갈등을 가졌었지만 차마 표현하지 못했던 욕심대로의 한 마디를 꽃은 프로그램대로 전하고 있었다.
“내 딸이 되어주어서 참 고마웠다. 속도 많이 썩힌 아빠였지만, 너는 조금도 괘념치 않고 흔쾌히 받아주었다. 난 주제에 어울리지 않게 참으로 행복했다. 그런데 딸아, 네가 낳은 쌍둥이 딸 중에 하나쯤 내 손녀로 직접 기르게 해주지 않겠니?”
딸은 “아빠가 주셨으니…”하는 단순한 이유로 독이 있을지 모르는 꽃을 기꺼이 받아주었다고 하였다. 두 팔을 활짝 벌려 예의 꽃이 심어진 화분을 끌어안았다고 하였다. 꽃봉오리에 코를 묻고 꽃향기에 취해 눈물을 글썽였다고 하였다. 쌍둥이 딸들의 손을 끌어 꽃을 만지게 하고 아빠의 솜씨를 자랑하였다고 하였다. “꽃을 보렴. 얼마나 예쁘고 향기로운지. 할아버지의 솜씨다, 너희를 사랑하시는 할아버지의 솜씨야.”하고.
첫댓글 지면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변변찮은 글이나마 열심히 올려 보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모자란 글인데 읽어주셨군요. 감사드립니다.
아.. 과하객님의 방이군요.
기쁨니다. 좋구요.
과하객님의 히든카드를 볼 수있는 기회가 왔군요. 방갑습니다.
,,
잘 읽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간엔 멈춤장치가 없군요.
,,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들려주셨군요. 서툴게 전을 펴놓고 가게세를 못내면 어쩔까 싶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에 멈춤장치가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힘 내!"하고 밀고 나가면 언젠가 시간보다 빨리 달릴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꿈을 꾸곤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글을 계속해 볼 생각인데 인생 막바지의 불경기 때라 어렵겠지만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서툰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데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가게세 ?? ㅋㅋ
..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는 법이지요.
어디 남들이 별을 안 쳐다 본다고 그 별이 빛나지 않나요.
여행객 많은 만리장성보다 숨어 있는 정동진이 오히려 품격이 있기도 하지요.
..
감사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별인데 스스로 느끼지 못한다는 말이 있던데 그 말씀을 해주셨군요. 예쁘지는 않을망정 열심히 반짝이는 흉내를 내보겠습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 아름다운 필체로 잔잔히 그리고 계십니다.
많은 뜻을 품고있어서 이해가 저는 좀 더디구요.
계속 감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말씀처럼 아름다운 SF소설을 써보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뜻과 같지 되지 않아 답답했는데 좋게 평가해 주셨네요.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형님의 책들이 다른 누구의책보다던 사실이잖아요.
집은 책방이고
은 책이라 여겨집니다.
주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한 건
님이 자랑
형님 마음을 열기만 하면,
집안에는 온통 사랑이 가득할 거예요.”
양딸의 고백을 현실에 맞게 변형해 보았습니다.
양딸은 실제로 형님과
부녀의 정을 맺은 여고생이고
그녀를 본 소설에서 재등장시켜
잔잔하게 스토리를 풀어가셨다고 보아집니다.
그리고
오늘
형님과 따님을 뵈오러 가려 하였지만
사정상 다음 기회로 미루게 되어 섭합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다정하고
가식없는 형님의 목소리를 들으니
잔잔한 속삭임이 귀에 닿는 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사람 사이의 연분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쁘기도 하였고.....
소설은 딸에게 영향을 받아 쓴 게 맞습니다. 속내를 읽혀버린 듯싶어 부끄럽습니다마는, 아이와의 감정 싸움에 번뇌를 끓였던 게 사실이기도 하고요.
언제든지 들려 주세요. 사실 헌책방은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거든요. 오늘도 장날이라 어르신들이 몇 분 다녀가셨답니다.
고맙게 잘읽었습니다
읽어 주시고 좋은 말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