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Ertl 브랜드의 강력 업그레이드 회사인 Highway 61에서 만든 18스켈 호넷을 올려보겠습니다. 하이웨이 61 사는 호넷 양산차 (쿠페와 컨버터블) 외에 허브 토마스, 팀 플록, 마샬 티그 등 여러 대의 호넷 레이싱 카들을 출시했는데, 처음 출시될 때에는 제가 레이싱 카에 관심이 없던 때라 듣보잡이었다가, 몇 년 전에 운좋게 구한 모델입니다. 가격도 싸게 구했는데, 그럼 그렇지, 사이드 미러가 실종 상태이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트윈 H Power가 찍혀있는 붉은 색 카뷰레터들이 인상적입니다. 1951년에는 옵션이었지만, 52년부터는 기본 사양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있어야 정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쉬에는 허드슨 사의 로고가 크게 박힌 휠과 커다란 스피도, 그리고 그 옆에 같은 크기로 있는 것은.. 시계입니다. 네, 시간은 참 중요하죠. 하이웨이 61의 다른 모델들과 마찬가지로 글로브 박스는 여닫을 수 있습니다.
카펫이 깔린 트렁크가 참 너저분하게 찍혔습니다.. 트랙 레이스에서 스페어는 기본적으로 필요가 없죠.
양산차 모델에서는 주유구도 개폐가 되는데, 레이싱 버전에는 주유구 덮개가 없습니다. 이것은 제품 하자가 아니라, 실차를 따라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실차처럼 모델도 작은 창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팀 칼리버의 작은 모델들과 함께..
탑과 배로 장식된 허드슨 문장의 로고
전시관에 있는 마샬 티그 호넷의 복제품들.. 실제 티그가 탔던 6번 차도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마샬 티그는 데이토나 해변에 있던 스모키 유닉의 '동네에서 가장 재수없는 정비소 (이름)'로 어느날 갑자기 찾아가 동업자가 되더니, 곧 미시건의 허드슨 본사로 뜬금없이 찾아가서는 그 자리에서 동업관계를 맺는 등, 돌발 행동을 많이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넷에 대한 사랑만은 각별해서, Fabulous Hornet 이란 이름을 붙이고 엔진 업그레이드와 튜닝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탁월한 기술자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스스로 레이스에 참가해 7번의 나스카 랠리 우승, 27번의 스톡카 대회 우승 등의 기록을 남기며 '데이토나 해변의 제왕'으로 군림합니다.
하지만, 53년 나스카의 창시자이자 황제였던 빌 프란스 경 과 돌발적으로 싸운 후에 제명됩니다. 후에 나스카가 아닌 다른 대회들에서 활동하는데, 1959년 미국의 F1격인 인디 레이스에서의 고속 기록 주행중 돌발 사고로 사망합니다.
호넷 역시 54년을 마지막으로 왕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듣보잡 허드슨 사의 늙다리 6기통 엔진 차의 놀라운 성과를 주목한 빅 3 이 나스카를 광고 타겟으로 삼게 되고, 마침내 55년, 크라이슬러가 강력한 C 300 을 대대적으로 투입, 챔피언을 뺏어가는 것이죠.
(53년 챔피언은 호넷의 허브 토마스가 차지하고, 54년에도 역시 연이은 우승을 이어가지만, 폴 점수 등에서 앞선 리 페티 (리차드 페티의 아버지)가 챔피언이 됩니다. 당시 리 페티는 53년 닷지 쿠페와 크라이슬러 윈저 쿠페를 번갈아서 사용했는데, 챔피언이 된 차는 크라이슬러 윈저였습니다. 경기 우승을 더 많이 한 허브 토마스는 54년 오너스 챔피언이 됩니다. 한편, 1955년 크라이슬러는 나스카를 목표로 만든 C 300을 내놓고, 이듬해 (56년) 테일 램프와 엔진만 바꾼 300 B를 생산하게 됩니다.)
사실, 호넷은 레이스에서의 성공과는 별개로 허드슨 사를 망하게 한 차이기도 합니다. 당시 미국은 전후 호황으로 특히 자동차 분야는 구매욕구가 정점에 달해있었기 때문에 각 메이커들은 최대한 빨리 화려하고 강력한 차를 만들어야 한다고 계산했고, 50년대 초에는 둔중한 40년대 스타일의 개선판인 올즈모빌 (88), 크라이슬러(뉴포트), 포드(커스텀), 허드슨(호넷),폰티악 (8) 등의 낮고 육중한 유선형 차들이 잠깐 빛을 발하지만 53년부터 시보레의 코벳, 그리고 뷰익의 멋지고 화려한 차들과 거대한 캐딜락 엘도라도, 링컨 카프리 등이 한꺼번에 등장하면서 힘과 '크롬' 장식의 환영의 시대로 돌입하게 됩니다.
이런 와중에 일체형 몸통을 가진 차를 열악한 회사가 제작하다 보니 당시 유행이었던 "매년 신모델" 이라는 빅 3 의 구호를 따라가지도 못한채, 돈이 없어 베이스를 갈아엎지도 못하고, 자잘한 부분만 소극적으로 개선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레이스에서 날리던 52-3년 시즌에도 중저가이던 호넷의 매출은 이미 매달 천오백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죠. 53년과 54년에도 윈드쉴드를 일체형으로 바꾸고, 테일 스타일을 바꾸는 등의 여러가지 스타일 '개선'을 하지만, 이쯤 되면 새발의 피여서, 결국 회사가 내쉬(AMC)에 매각되고, 나중에는 크라이슬러 산하의 닷지로 흘러들어가게 됩니다.
크라이슬러 300 B
시대에 뒤떨어진 스타일을 지닌 것으로 여겨졌던 호넷을 크라이슬러 300 같이 새로운 차가 교체하는 것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지만, 카 영화에서 크라이슬러 300 이 아닌 허드슨이나 킹 페티 등 '구세대' 또는 '아버지' 들에 대한 존경이 녹 제거제(Rust-ease) 의 스폰을 받는 라이트닝 맥퀸을 승리로, 그리고 가족같은 친구들로 이끄는 것은 어쩌면 생각해 볼만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나중에 친구들은 라이트닝 맥퀸을 50년대 코벳의 색으로 다시 칠해주기도 하죠). 물론, 디즈니 사의 마케팅을 생각해 보면 미국인들에게 단순한 오락거리나 스포츠 이상의 위상을 지닌 거대한 나스카 시장을 이런 전설적인, 잠자고 있던 '아버지' 캐릭터들을 부활시킴으로써 더욱더 성공적으로 공략했다는 점에서 아주 큰 의미가 있겠지만요.
Doc Hudson
첫댓글 너무도 감동입니다. 쓰시는 책은 언제 쯤 출간입니까? ^ ^
알파원님이나 다른 고수님들의 글을 읽으며 혀를 내두르기 바쁜 저에게 이런 과찬을 .. 다른 분들이 다 쓰시면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300 B도 개인적으로 무쟈게 좋아하는 차입니다~. 곧 게시물로 올려 주시겠죠? ^ ^ 기대 만빵 장전합니다~
네.. 저도 올리고 싶습니다.. 근데 제 코가 넉 자 인데다가.. 막상 300 B 와 C 300 의 정보에도 너무 충돌이 많아서.. 그래도 한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