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13세...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한창 재롱부릴 나이였고 고무줄 놀이, 공기놀이에 석양이 하늘을 붉게 물들여도 동무들과 깔깔대며 온 동네를 뛰어 다녔고 사랑하는 남편. 토끼같은 자식들과 오손도손 소박하지만 예쁘게 사는 꿈을 꾸며 수줍음에 볼 발그레 미소짓는 소녀였답니다.
어느 날이였지요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있다길래 어려운 살림살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고사리같은 손으로 트럭을 잡은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을 줄이야...
그들은 활짝 펴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를 사정없이 꺽어 버렸습니다. 그것이 후세 사람들이 얘기하는 정신대였고 나는 위안부로 불리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학대했는지... 그럴 때 마다 속으로는 얼마나 엄마를 부르며 마른 눈물을 삼켰는지 모릅니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조선의 여성들은 전통적인 유교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성병예방 차원에서 조선인인 나와 내 친구들이 필요했고. 잡아가기도 혹은 일부 같은 동족인 조선인은 우리들을 그들에게 팔아 넘기기도 했답니다.
어떤 친구들은 견디다 못해 쓰러지면 만주에 있는 731부대로 끌려가 마루타가 되어 그 짧은 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얼마나 엄마를 불렀을까요 그 작은 심장은 또 얼마나 콩닥거리며 무서워 뛰었겠습니까?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고 마음은 피폐해졌는데 해방이라는 단비같은 외침. 고향집 삽짝문을 한달음에 들어 섰는데 내 부모형제는 보이지 않고 주위의 손가락질에 고개만 자꾸 땅바닥을 향합니다.
첫댓글 귀한 글 감사히 보앗습니다.
반겨주는 이 없는 내 집에는 참 막막함이 치닥겠지요.
그분들의 맘을 위로하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즐겁고 평강한날이되세요.
고운 걸음 감사합니다.
행복과 사랑이 함께 하는 하루 되세요~^^
마음이 찡해집니다..위안부 생을 살아온 처절함..
그 누구의 책임일까..많은 아픔을 함께 느끼다 갑니다.
다녀가시고 공감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분들의 아픈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아프고 쓰린 가슴만 움켜지고 가시는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