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골프계는 1960년대 경제성장기와 맞물려 도약기에 접어들면서 곳곳에 골프장이
건설돼 '귀족운동'의 영역에서 점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이전 까지만 해도 골프는
외국인, 정부의 고관 등 이른바 특권층의 국제친선과 사교무대로 활용됐다.
60년대 중반이후 경제부흥기를 맞아 경.재계 인사들의 골프장회동이 각광받으며
자본주의의 대표적 스포츠로 일컬어지던 골프인구가 급증했으며 기업들의 골프장
진출도 두드려졌다.
국내골프인구는 해방직후 40여명 정도였으며 자유당에서 민주당 집권때만해도 490
여명에 불과했다. 그러던 것이 68년에는 3천3백여명으로 늘었고 71년에는 6개 골프장에서
30만명이 골프를 즐겼다. 67년 7월 기준 서울CC의 회원명부에 의하면 회원은 모두
942명. 이들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실업계가 50%,금융계 10%, 관계 및 국회의원 10%
국영기업체 5%, 전직 장차관, 국회의원,군장성,금융인 등이 13%, 기타 변호사,의사,
출판 언론계 순이었다.
또 관악, 한양, 뉴코리아CC는 기업체, 금융기관의 중역급들이 70~80%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행정부처의 고급 공무원, 또는 국회의원들과 의사, 변호사 등 기타지업으로
나타나 골프인구가 아지은 특정층에 한정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서울CC의 초창기 회원수
추이를 살펴보면 개장에 들어갔던 54년에 231명이던 회원이 65년에는 772명 그리고
68년에는 977명으로 늘었으며 97년 현재는 9백만명에 이르고 있다.
내장객의 변화를 살펴보면 71년 6개 골프장 30만명에서 75년 40만명(골프장수 16),80년
에는 75만명(골프장수 22),85년에는 150만명(골프장수 27)을 돌파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계기로 골프붐이 크게 확산되면서 골프인구도 대폭 늘어 90년에는 프로야구
관중수 310만명을 웃도는 3백20만명의 내장객수를 보였다. 97년 내장객 통계를 보면 회원
제 골프장에서 8백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군골프장과 퍼블릭 골프장을 합산하고 집계치에
넣지 않은 내장객수를 포함하면 1천만명이 넘어 서고 있지만 골프는 홀대 받고 있는 것이다.
<b><font color="#9966CC">그린피</font></b>
1968년 개장한 안양CC의 당시 그린피는 회원이 500원, 비회원이 1,500원이었다. 주말 및
공휴일 그린피는 회원이 1천원, 비회원이 3천원으로 두배의 차이가 난다. 75년에는 회원
1천9백원, 비회원 6천원으로 상향조정됐으며 80년에는 회원 4천9백원, 비회원 1만3천백원
그리고 90년에는 회원 1만6천원,비회원 8만5천원으로 30년새 회원은 122배,비회원은 57배나
뛰어 올랐다. 그러나 다른 물가 오름과 비교할 때 터무늬없는 수치는 결코 아니다.
일반인들과 가장 밀접한 버스요금도 60년대 20원에서 500원으로 20배 이상 오름세를
보였다.
80년 이후 그린피 상승현황은 82년 평일 회원 1만3천원, 비회원 2만4천원 그리고 주말 회원
1만7천원,비회원 3만5천원에서 91년 평일 회원2만9백원,비회원 4만5천원, 주말회원2만
3천원,비회원 5만4백원이었으며 골프장 자율에 맡겨진 94년부터는 대폭 인상돼 주말
비회원의 그린피가 평균 7만2천원선이며 현재는 평일 회원3만원, 비회원 8만원,주말에 회원
3만3천원,비회원 8만5천원으로 올랐다.
98년 9월 현재 안양 골프장의 경우 평일 회원은 7만8천원,비회원은 11만원이다. 주말의 경우는
회원이 8만원,비회원이 12만 5천원으로 올랐다. 88CC의 경우는 평일 회원이 4만5천원,
비회원이 9만원, 주말엔 회원이 4만8천원이며 비회원은 11만원이다. 허나 IMF의 영향으로
최근 각종 할인제도와 자율적인 인하조칙로 그린피가 다운된 곳이 대부분이다.
<b><font color="#9966CC">회원권</font></b>
1956년 개장한 부산CC의 최초 회원권 분양가는 2만원. 4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부산CC의
회원권 값은 1억4천만원을 호가한다. 수치상으로는 엄청난 상승폭이나 화폐가티로 살펴볼
때 당시 2만원은 지금의 1억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큰 돈으로 당시 골프회원권의 고가치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60년대 접어들면서 회원권 분양가격은 십만원 단위로 뛰며 64년 한양CC가 18만원에 회원권을
분양했으며 2년뒤 관악CC가 25만원에 분양했다. 70년대 초에는 40~50만원대가 주류를
이루었으나 70년대 중반 이후 백만원대 회원권이 늘기 시작했다.
75년 프라자CC는 4백만원이라는 파격적인 금액에 회원권을 분양했다.이는 당시 서울 연희동의
빌라 한채 값과 맞먹는 액수이다. 80년대 들어서는 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