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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시 기상. 감기 때문에 머리감는 것은는 포기하고 식사하고 짐을 쌉니다. 3일치 방값과 아침저녁 밥값으로 5700루피 지불합니다. 9시 40분 호텔을 출발. 레 시가지를 벗어나 서쪽으로 향하니 황량하지만 장쾌한 전경이 마치 네바다주 사막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우리는 지금 트레킹 기점인 Chilling으로 가고 있습니다. 칠링에서 시작하는 루트는 원래의 고전적인 마카벨리 루트는 아닙니다. 원래는 Jingchan이란 곳에서 시작하여 해발 4980미터 간다라 고개를 넘어 마카벨리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 루트는 초반부터 5천미터 가까운 고개를 넘어야 하는 힘든 코스일뿐 아니라 고개 넘어 Skiu라는 곳까지 2박3일이 걸립니다. 반면 오늘 우리가 가는 루트는 자동차를 이용하여 Chilling까지 우회한 다음 거기서부터 Skiu까지 계곡으로 파고드는 새로운 코스로서 쉬울 뿐 아니라 당일로 가므로 일정이 이틀정도 절약된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간선도로를 벗어나 잔스카르 강 옆길로 들어서자 멀리 래프팅준비를 하는 팀이 보입니다. 지나치며 보니 우리와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영국 고등학생 팀입니다. 이 친구들 며칠 전 한국이 영국에 축구를 이겼다고 했더니 베컴이 빠져서 자기네가 진 것이라고 하던 녀석들입니다.
(래프팅 준비중인 영국팀)
11시 30분 칠링에 도착. 우리와 함께 갈 가이드, 쿡, 보조원 등도 짐과 함께 막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강을 건너서 걷습니다. 그런데 강 건너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도르래 외줄에 매달린 바구니를 타는 것입니다. EBS 방영 프로그램에서 한번 본 기억이 있는데 막상 내 앞에 있으니 신기합니다. 짐과 함께 일행이 바구니에 실려 건너고 내가 맨 마지막에 탑니다.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잔스카르 강 위로 외줄에 매달려 건너는데 기대한만큼 스릴있지는 않고 좀 밋밋한 느낌?
(가이드와 헬퍼가 짐을 내리고 있습니다)
(바구니에 실려 강을 건너는 빠담풍, 원정대님)
(무사히 도강 성공?)
12시 35분경 준비를 마치고 걷기 시작합니다. 덥습니다. 그늘이 전혀 없는 땡볕을 걷습니다. 발밑에서 열기가 훅하고 올라옵니다. 원정대님과 빠담풍님은 벌써 저만치 앞에 가고 나는 가이드 뜬둡(Tundup)과 천천히 걷습니다. 사방은 풀 한포기 없는 바위산 협곡이고 그 사이로 누런 흙물이 흐릅니다. 작년 파키스탄보다는 경치가 더 낫습니다. 1시가 좀 넘어 땡볕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폅니다. 샌드위치, 바나나, 팩쥬스, 감자 등 내용이 실합니다.
(계곡안으로 들어갑니다)
저 앞에 마치 낙하산을 펴 놓은 듯한 파라슈트 텐트가 보입니다. 시즌에만 운영되는 간이휴게시설이랍니다. 사이다 한 개에 45루피(약 천원정도)인데 혼자 지키고 있는 할머니가 불쌍해서라도 사먹어야겠습니다. 할머니 옆에는 여인네가 양털을 뽑아 실로 만들고 있는데 그 원시적 방법이 진기합니다.
파라슈트 그늘에서 한참을 쉬다 다시 출발. 좀 가다보니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이 안 보입니다. 가이드 뜬둡에 따르면 모두들 레의 달라이라마 집회에 갔기 때문이라네요.. 그러니까 달라이라마 법회가 지난 토요일부터 내일 화요일까지 4일간이랍니다. 우리는 토요일 아침에 잠깐 가보았으니 그저 개회식만 참석한 것이네요.
3시가 넘으니 앞에 흰색 초르텐들이 보입니다. Skiu에 거의 다 왔습니다. 집이 몇 채 안되는 작은 마을입니다. 절벽 꼭대기에 있는 곰빠가 멋있습니다. 왼쪽으로 협곡이 있고 길이 있는데 저기가 간다라 고개에서 넘어 들어오는 길이랍니다. GPS는 오늘 칠링에서 스큐까지 이동거리가 6.86km, 현재고도는 3371미터 (고도상승은 200m), 이동시간 1시간 55분, 정지시간 1시간, 총 시간 2시간 55분 걸렸답니다. 쉬어가면서 3시간만에 왔으니 편하게 온 셈이지요.
숲 그늘 아래 시냇물이 졸졸 흐르는 옆에 텐트를 쳤습니다. 일행이 3명이니 단출하여 좋습니다. 우리를 보조하는 팀으로는 가이드 뜬둡, 딜리라는 이름의 네팔인 쿡, 그리고 헬퍼 1명, 마부 1명 등 총 4명입니다. 말은 5필이 동원되었습니다. 게스트 텐트는 2인용을 2개 쳤는데 한 개는 내가 독채로 쓰는 행운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식당텐트, 키친텐트가 각각 따로 쳐졌고 화장실텐트도 세웠습니다. 3명을 위한 시설들이니 참 호사롭습니다. 간식으로 쿠키와 블랙티를 줍니다. 맑은 시냇물이 졸졸 흐르고 시원한 바람까지 부니 천국이 따로 없군요.
저녁식사는 원정대님이 직접 요리한 닭백숙입니다. 한국에서 한방재료까지 다 가져왔고 닭만 현지 조달인데 맛이 끝내줍니다. 식사 후 텐트 앞 작은 바위에 앉아 계곡에 노을이 지는 모습을 보니 정말 아름답고 평화롭습니다. 귓가에 들리는 물소리가 이렇게 보드라울 수 있을까요? 졸졸졸이 아니라 돌돌돌하며 흐릅니다. 녹음해 가고 싶습니다. Skiu의 어둠이 솜이불처럼 부드럽게 내려앉습니다.
8월 7일 맑음
5시20분 기상. 허리 풀어주는 운동을 마치고 텐트밖으로 나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습니다. 어제 봐둔 아름다운 계곡 쪽으로 가는데 누군지 계곡 안쪽에서 나오네요. 원정대님입니다. 낮에 햇빛을 가릴 우산과 배낭을 연결할 막대기를 만들어 오는 길이랍니다. 참 부지런하군요. 아침으로는 토스트에 계란부침 그리고 어제 남은 닭죽이 나옵니다.
(계곡위로 햇살이 들어오는데 하늘에는 아직 가기 싫은지 하현달이 머물러 있습니다)
(닭죽을 맛있게..)
커피까지 맛있게 먹고 8시 다 되어 길을 나섭니다. 오늘은 Skiu부터 Markha까지 꽤 먼 길을 걷습니다. 길은 계곡을 따라 나있는 평평한 길이고 자갈도 없고 가는 모래 흙길이어서 먼지는 나지만 걷기에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작년의 K2 자갈길과는 비교안될 정도로 편합니다. 뙤약볕이 문제지만 아침나절엔 그나마 그늘이 종종 있어 다행입니다. 계곡 좌우로는 황토색 산들이 뾰족하게 솟아있습니다. 가는 길 군데군데 파라슈트 텐트가 있어 찬물에 담근 음료수 등을 팔고 있습니다.
(출발하기 전 GPS를 셋팅해놓고..)
11시 20분경 sara라는 곳에 도착. 여기까지 11.2 km 왔다고 GPS에 나왔습니다. 파라슈트 텐트로 들어가 아침에 쿡이 싸 준 도시락을 먹는데 샌드위치, 삶은계란 2개, 감자 1개, 쥬스 1개, 파파야과일 1개 등 진수성찬입니다. 거기다 잘 익은 수박까지 뜬둡이 내놓습니다. 텐트에 이스라엘 젊은이 남녀 각 두 명씩 4명이 들어옵니다. 남녀가 각각 따로 레에 왔는데 거기서 서로 만나서 같이 트레킹하기로 해서 온 것이랍니다.
휴식 후 12시 30분 다시 출발. 길 옆은 대부분 가시덩쿨이지만 가끔 조그만 밭도 보입니다. 밭에는 보리가 심어져 있는데 이삭이 다 패어 수확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군요. 더운 길을 관세음보살을 외며 묵묵히 걷습니다. 어느 마을 입구에 이르니 멋진 초르텐과 함께 온갖 짐승의 뿔로 쌓은 것이 있습니다. 붉은 염료가 잔뜩 뿌려져 있는데 마을의 수호신이라네요.
좀 더 가니 길 옆에 돌로 둥그렇게 쌓은 곳이 있는데 뜬둡 말이 이건 늑대잡는 곳이랍니다. 이렇게 높게 벽을 쌓고 그 안에 동물 뼈와 살을 넣어두면 늑대란 놈이 먹으로 들어왔다가 높은 벽에 막혀 나가지 못한답니다. 그러면 마을사람들이 위에서 돌을 던져 쳐죽인대요. 매우 원시적이지만 그만큼 진기한 모습입니다.
(마을 수호신 표시)
(늑대를 이곳에 가두어 잡는답니다)
2시 30분 강폭이 넓어지는 곳에 왔습니다. 여기서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합니다. 샌달을 꺼내 갈아신고 건넙니다. 무릎까지 물이 찹니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아서 강을 건넌 후 그대로 샌달을 신은채 갑니다. 3시가 넘자 Markha의 집들과 텐트사이트가 나타납니다. 텐트사이트는 넓은 풀밭에 말들이 풀을 뜯는 그림같은 곳입니다. 계곡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랍습니다. 오늘 여기까지 21킬로를 걸었고 해발고도는 이제 3770미터입니다.
텐트치고 짐 정리하고 빨래를 합니다. 내친 김에 손수건을 흐르는 물에 빨아 간이목욕까지 하고 나니 아주 개운합니다. 오늘 저녁식사는 된장국에 김치와 밥입니다. 식사 후 무릎에 테이핑을 합니다. 무릎이 이제 예전만 못한데 테이핑을 하니 잡아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강물 흐르는 소리가 폭포소리 같습니다. 무념무상입니다.
(텐트 사진을 찍는데 말이 가로막아서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멋진 모습이..)
첫댓글 다른 일 하느라 까맣게 잊고 있다 오늘에야 산행기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내년 여름에 북인도 마카벨리로 해서 스톡 캉그리+초모리리를 가거나 아니면 K2+곤도고로라를 갈까 생각 중입니다
이렇게 귀한 글과 사진을 보게 되어 감사합니다~
쿡이 한국 음식을 할 줄 아나봅니다??